┃분란의 씨앗
크아아아앙!
붉은 갈기 늑대들이 사나운 포효를 터트리며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현성은 느긋하게 스킬을 난사하며 몰려드는 붉은 갈기 늑대들을 쓸어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에 있던 붉은 갈기 늑대들이 말끔하게 정리되었다.
사아아아아악!
붉은 갈기 늑대들이 무더기로 죽어 나간 자리에 수북하게 쌓인 마석들을 칠흑빛의 아공간이 말끔하게 먹어 치웠다.
전에는 사냥이 끝난 후 마석을 회수하는 것도 하나의 일이었다.
하지만 아공간이 생긴 뒤 그런 골치 아픈 문제가 말끔하게 해결됐다.
마치 게임에서 바닥에 떨어진 아이템을 자동으로 습득해 보관해 주는 창고형 펫이 생긴 기분이었다.
현성은 단순히 마석 수량을 속이기 위해 아공간 스킬을 구입했다.
하지만 의외로 아공간 스킬은 사냥 효율을 올리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그 덕분이었을까?
현성은 아공간 구입 후 더 빠른 시간 안에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업적 – 전설 등급
-단독으로 상위 레벨의 몬스터 붉은 갈기 늑대 10,000마리를 사냥하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붉은 갈기 늑대 학살자 - 전설 등급]
‘드디어 졸업이다.’
현성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아이템 정리나 좀 하자.’
학살자 칭호를 얻기 위해 너무 무리하게 사냥을 한 터라 피로가 몰려왔다.
현성은 던전 입구로 향하며 아공간을 열었다.
그동안 사냥에 열중하느라 아공간이 뭘 먹어 치웠는지 일일이 확인하지도 않았다.
마석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스킬북이나 아이템은 바로바로 사용해 주는 게 좋았다.
‘이건 중복이네.’
중복된 스킬북은 다시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오호!’
현성이 눈을 반짝였다.
신규 스킬북이었다.
재생의 바람 - 일반 등급
-패시브 스킬북
-상처 회복 속도를 올려 줍니다.
-패시브 스킬북 재생의 바람 - 일반 등급을 습득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드디어 나왔네.’
일반 등급 중에서는 꽤 고가에 팔리는 스킬북이었다.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부상을 입는 빈도가 높은 플레이어들 역시 포지션에 상관없이 무조건 익히고 보는 스킬이었다.
‘그동안 어지간히도 안 나오더니.’
현성은 예를 눌렀다.
그 순간 스킬북의 마력이 현성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그와 함께 황당한 메시지가 현성의 눈앞에 떠올랐다.
-패시브 스킬 재생의 바람 – 일반 등급 습득에 실패하셨습니다.
‘뭐?’
스킬 습득에 실패하다니?
이런 경우는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메시지는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패시브 스킬 불사의 서 - 유일 희귀 등급이 패시브 스킬북 재생의 바람 - 일반 등급을 흡수하였습니다.
-패시브 스킬 불사의 서 - 유일 희귀 등급이 성장했습니다.
‘이게 뭐야?’
현성이 황당한 표정으로 상태창을 열어 불사의 서를 눌렀다.
불사의 서 - 유일 희귀 등급
-패시브 스킬
-머리가 완전히 파괴당하지 않는 한 죽지 않습니다.
-즉사하지 않는 한 모든 상처가 천천히 회복됩니다.
-성장형 스킬입니다.
내용은 전과 동일했다.
변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불사의 서가 성장했다고 했어.’
그간 불사의 서 스킬을 성장시킬 방법을 몰라 꽤 답답했었다.
한데 이제 답이 나왔다.
‘회복력을 올려 주는 스킬을 흡수하는구나.’
일반 등급 스킬인 재생의 바람은 유일 희귀 등급 불사의 서의 하위 호환 버전이다.
하위 버전 스킬을 상위 버전 스킬이 먹어 치운 것이다.
‘그런데 얼마나 성장한 거야?’
효과가 얼마나 좋아졌는지 알아볼 방법이 없었다.
현성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흡혈검으로 손가락에 작은 상처를 냈다.
상처가 서서히 아물기 시작했다.
‘별 차이가 없는데.’
현성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도대체 얼마나 처먹어야 성장하는 거야?’
재생의 바람은 최하 3,000만 원이 넘는 고가의 스킬북이다.
한데 그런 고가의 스킬북을 처먹어 놓고 성능에 변화가 없다.
‘연비가 엄청 나쁘잖아.’
어느 세월에 불사의 서를 성장시킬지 갑갑한 마음이 들었다.
붉은 갈기 늑대 던전을 빠져나온 현성이 스마트폰을 켰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리기 위해서였다.
위이이이잉!
한데 스마트폰을 켜자마자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였다.
‘스팸인가?’
하지만 스팸 전화 차단 어플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010으로 시작하는 번호였다.
‘일단 받자.’
지인 중 누군가가 번호를 바꾼 것일 수도 있다.
스팸 전화면 받자마자 끊어 버리면 그만이다.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최현성 씨.
‘누구지?’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서우 길드 제2 지원 팀장 서대웅이라고 합니다.
서우 길드라는 말을 듣는 순간 현성의 얼굴이 확하고 일그러졌다.
“제 요구 조건을 수용할 생각이 아니라면 연락하지 말라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계약금 1천억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수용해 드리겠습니다. 바로 만나서 계약서에 서명하시죠.
상대의 수락에 현성은 적지 않게 당황했다.
“진심이신가요?”
-물론입니다. 이런 큰돈이 오가는 거래에 거짓이 있을 수는 없죠.
“제가 아직 사냥 중이어서 당장은 힘들 것 같습니다. 일단 계약서를 보내 주실 수 있나요?”
-지금 당장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럼 계약서 확인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현성이 그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계약서가 문자로 날아왔다.
‘쉬기는 글렀네.’
현성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변호사 사무실을 향해 이동했다.
변호사 사무실에 도착한 현성은 계약 금액이 삭제된 계약서를 변호사에게 보여 줬다.
“상당히 좋은 조건의 계약서입니다. 복리후생도 꽤 잘되어 있고요. 하지만 상대가 악의적으로 나왔을 때 물고 늘어질 수 있는 조항이 꽤 있습니다.”
변호사의 말에 현성의 눈이 반짝였다.
“악의적으로 나왔을 때 물고 늘어질 수 있는 조항이 뭐죠?”
“일단 이 부분입니다. 길드원의 행동이 길드의 품위를 손상시켰을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사실 이 부분은 전적으로 길드 수뇌부의 판단으로 이루어지기에 좀 불합리한 조항입니다. 또 길드원의 실력과 심성이 불량할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이 조항도 동일합니다.”
쉽게 말해 명확한 기준 없이 길드 수뇌부의 생각 변화만으로 현성을 제명시킬 수 있다는 뜻이었다.
“계약금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위약금이 꽤 많군요. 계약자의 잘못으로 계약이 해지될 경우 계약금의 10배를 배상해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개자식들이.’
혹시나 했건만 역시나였다.
달콤함으로 가득한 계약서 안에 치명적인 맹독을 숨겨 놓았다.
“제가 봤을 때 위약금 조항을 계약금 전액으로 수정하고 불합리한 조항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한다면 계약을 하셔도 손해 보실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굳이 다른 변호사 사무실을 갈 필요는 없겠네.’
계약서에 대해 좋은 이야기만 했다면 다른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어 보였다.
위이이잉!
그때 현성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서우 길드 제1 스카우트 팀장 고진성이었다.
‘확실히 이야기해 줘야겠네.’
이따위 계약서를 들이민 분풀이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전화 좀 하고 와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최현성 씨,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그 계약금 말입니다. 혹시 500억 정도로 타협 보실 생각 없으십니까?
전화기를 받자마자 고진성이 다급하게 용건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고진성의 말을 들은 현성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 금액은 어렵겠는데요? 제가 원한 계약금은 1천억이지 500억이 아닙니다.”
-하하하,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셔야죠. 서우 길드가 거대 길드라고는 하지만 그 정도 금액은 수긍하기가 어렵습니다. 500억도 제가 상부에 사정사정해서 겨우 허락받은 금액입니다.
“한번 고민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게 정말이십니까?
고진성이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기대도 하지 않고 찔러봤는데 의외로 긍정적인 반응이 돌아온 것이다.
“예, 그 전에 그 계약서를 한번 받아 볼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지금 바로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현성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계약서가 도착했다.
“변호사님 이것도 좀 봐주실 수 있을까요?”
“정말 실력이 뛰어난 플레이어신가 보군요. 저야 좋습니다.”
변호사 입장에서는 상담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있으니 사양할 필요가 없었다.
현성은 계약금 부분을 지운 계약서를 변호사에게 전송했다.
“음…….”
현성이 보내 준 계약서를 정독한 변호사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전에 보내 준 계약서와 같은 길드에서 작성한 건가요?”
“어떻게 아신 거죠?”
변호사의 물음에 현성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전체적으로 계약서의 양식이 동일합니다. 부분적으로만 다르더군요. 독소 조항은 이게 조금 적기는 한데, 전체적으로 비슷합니다. 그래도 위약금은 5배로 되어 있으니 조금은 더 양심적이네요.”
쉽게 말해 둘 다 독소 조항이 많은 계약서라는 뜻이었다.
“왜 같은 길드에서 다른 계약서가 왔을까요?”
현성이 변호사에게 물었다.
짐작 가는 게 있기는 했지만 확실히 확인하고 싶었다.
“고객님을 스카우트하고 싶어 하는 길드에 내분이 있는 걸로 추정됩니다. 계약서를 따로 보낼 정도면 파벌 다툼이 꽤 심각한 모양입니다. 고객님 입장에서는 이득입니다. 적당히 줄타기를 하시면 더 좋은 조건으로 계약할 수도 있으니까요.”
“혹시 첫 번째 계약서를 베이스로 해서 독소 조항을 제거한 형태의 새로운 계약서를 만들어 주실 수 있나요?”
“당연히 가능합니다. 제가 그간 담당한 플레이어와 길드의 계약서 수정만 해도 100건이 넘습니다. 믿고 맡겨 주십시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독소 조항이 사라진 계약서가 만들어졌다.
“아주 좋네요.”
계약서를 받아 든 현성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맺혔다.
변호사 사무실을 나온 현성은 서우 길드에 대한 정보를 검색했다.
‘아주 개판이구먼.’
서우 길드의 파벌 다툼은 외부로 드러나 있을 정도로 심각했다.
‘길드 마스터 마지훈과 부길드 마스터 정성우라…….’
서대웅과 고진성 중 누가 길드 마스터 파벌이고 누가 부길드 마스터 파벌인지는 현성으로서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굳이 알아내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었다.
전화 몇 통이면 서우 길드 내부를 난장판으로 만들 수 있으니까 말이다.
현성은 일단 서대웅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우 길드 제2 지원 팀장 서대웅입니다.
“저 최현성입니다.”
-아, 최현성 씨! 결정은 내리셨나요?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까 계약금이 너무 적은 것 같아서요. 혹시 계약금 2천억 가능한가요?”
-지금 당장 제가 확답을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아마 가능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럼 3천억은요?”
약간의 침묵이 이어졌다.
-지금 저랑 장난하시는 건가요?
서대웅의 목소리가 약간 높아졌다.
“아뇨. 사실 서우 길드 제1 스카우트 팀장인 고진성 씨한테도 연락이 와서요. 두 분 사이가 그리 좋지 않으신 것 같던데…….”
현성이 말꼬리를 흐렸다.
-고진성 씨보다는 무조건 높은 조건으로 맞춰 드리겠습니다.
서대웅의 말을 들은 현성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맺혔다.
바로 전화를 끊은 현성이 이번에는 고진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우 길드 제1 스카우트 팀장 고진성입니다.
“저 최현성입니다.”
-네, 최현성 씨, 계약서는 검토해 보셨나요?
“상당히 긍정적으로 판단했습니다. 사실 당장 계약을 하자는 연락을 드리려고 했었거든요.”
-그럼 당장 만나시죠. 제가 최현성 씨가 있는 장소로 당장 달려가겠습니다.
“그런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네요.”
-예? 그게 무슨?
“제가 방금 문자로 계약서 한 장 보내 드렸습니다. 일단 그것부터 확인하고 이야기를 계속하시죠.”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고진성은 말이 없었다.
“확인하셨습니까?”
-아, 네.
현성의 물음에 고진성이 떨떠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음부터는 내부 의견 통일이나 제대로 하고 계약서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계약금 1천억은 너무 적은 액수 같습니다.”
-예? 그게 무슨?
“2천억으로 하죠. 아니다, 그것도 너무 적다. 3천억으로 하죠.”
-이봐요, 최현성 씨! 지금 저랑 장난하시는 겁니까?
“싫으면 마시고요.”
현성이 그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5분 정도 시간이 지난 후 서대웅과의 통화 내용을 현성의 편의대로 수정한 음성 파일을 고진성에게 보냈다.
요즘 세상에 음성 파일 편집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그 후 폰의 배터리를 빼 버렸다.
‘스마트폰이나 새걸로 바꿔야겠다.’
둘이 치고받고 싸우는 동안 잠이나 한숨 푹 자야 할 것 같았다.
* * *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현성은 아공간을 활용해 주변의 이목을 끌지 않으면서도 빠르게 칭호를 늘려 나갔다.
포인트가 쌓임에 따라 중년인의 외모를 하고 있던 외형 역시 본래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그 시각.
서우 길드의 부길드 마스터 정성우는 상당히 난감한 상황에 빠져 있었다.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정성우가 성난 목소리로 제2 지원 팀장인 서대웅을 다그쳤다.
“우리 측에서 관리하고 있는 던전에 일절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사람을 풀어 찾고는 있는데…….”
서대웅이 말꼬리를 흐렸다.
“너 능력이 그거밖에 안 되는 놈이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찾으라고!”
정성우의 노성에 서대웅이 송구하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겉으로 보이는 모습뿐이었다.
‘방법이 없는데 어떻게 하라고…….’
서우 길드는 길드장과 부길드장의 파벌 싸움으로 둘로 갈라진 상태다.
당연히 정보 공유가 쉽지 않다.
또 아무리 서우 길드라고 해도 국가에서 관리하는 플레이어 던전 출입 기록을 마음대로 열람할 수는 없다.
길드장 파벌이 초기에 최현성에 대한 개인 정보를 빠르게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운이 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땅으로 꺼졌는지 하늘로 솟았는지 행적 자체가 말끔하게 사라져 버렸다.
“다른 길드에 들어간 건 아니겠지?”
“아마 아닐 겁니다.”
“아마 아닐 겁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꼴도 보기 싫으니 당장 나가!”
“예!”
정성우의 외침에 서대웅이 재빨리 몸을 뺐다.
“빌어먹을…….”
정성우가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현성이 보낸 계약서와 음성 파일이 문제의 시발점이었다.
마지훈 파벌은 정성우가 섣불리 접근해 일을 망쳤다며 방방 뛰기 시작했다.
정성우 파벌은 마지훈이 일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벌어진 일을 자신들에게 뒤집어씌운다고 난리를 피웠다.
이 일을 계기로 오랜 시간 쌓여 왔던 두 파벌의 앙금이 폭발해 버렸다.
마지훈 파벌은 그간 실패한 영입을 모두 정성우의 탓으로 돌리며 맹비난을 가했다.
정성우 파벌 역시 지지 않고 그간 길드 마스터인 마지훈의 능력 부족을 꼬집으며 맞비난했다.
그 결과 현재 서우 길드는 둘로 쪼개져 버렸다.
문제가 있다면 현성이 조작한 계약서와 음성 파일이 정성우 파벌의 약점이 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정성우는 계약서와 음성 파일이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어 버렸다.
일반 길드원이 전체적으로 길드 마스터인 마지훈의 편으로 돌아선 것이다.
‘빨리 찾아야 하는데…….’
문제의 발단이 된 최현성을 설득해 길드에 가입시켜야 한다.
그렇게라도 해야 그간 실패한 영입에 대한 책임을 마지훈에게 뒤집어씌울 수 있었다.
* * *
서우 길드를 둘로 쪼개 놓은 당사자인 현성은 오늘도 평화롭게 사냥에 열중하고 있었다.
‘사냥으로 얻는 포인트도 꽤 짭짤하네.’
현성은 24시간 중 14~15시간을 사냥에 투자했다.
그러다 보니 순수하게 사냥으로 버는 포인트만 해도 하루에 60만 포인트가 넘었다.
한 마리 한 마리가 주는 포인트는 적지만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모이니 꽤 많은 포인트가 되었다.
전자 제품 판매는 현재 답보 상태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건전지 판매는 계속해서 호조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 전자 제품 판매량이 누적될수록 건전지 판매량에 불이 붙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판매량이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이대로만 가면 금방이야.’
건전지 판매가 확 올라감에 따라 고작 한 달 만에 현성의 외모는 30대 초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지금의 판매량만 유지된다면 일주일 안에 본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판매창이 너무 적어.’
고작 10개.
건전지 판매가 빨라지며 문제가 불거졌다.
아공간에 건전지를 넣어 놓고 판매 메시지가 뜨면 사냥이 끝난 후 보충을 해 주고는 있지만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자고 있을 때 물품이 고갈되면 보충을 해 주고 싶어도 해 줄 수가 없었다.
‘게임처럼 대량으로 등록이 되면 좋은데.’
예를 들어 건전지 1만 개를 등록해 놓고 1개당 가격을 설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면 현성으로서도 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쉽게도 판매창에 그런 기능은 없었다.
‘전자 제품을 뺄 수도 없고…….’
전자 제품은 한 번에 많은 포인트를 수급해 준다.
잘 팔리지는 않지만 팔리기만 하면 현성에게 큰 포인트를 안겨 준다.
또 전자 제품이 팔려야 건전지가 팔린다.
현성이 판매 중인 전자 제품은 태블릿 피시, 스마트폰, 게임기였다.
원래는 더 많은 종류를 판매했지만 효율을 위해 가장 많이 팔리는 3개로 압축했다.
‘등급이 올라가면 좀 바뀌려나?’
다른 판매자들의 경우 수백, 수천 개의 물품을 올려놓고 대량으로 판매를 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비약 판매를 주력으로 하는 리커머스였다.
리커머스라는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는 물품의 숫자는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방대했다.
‘언제 올라가나?’
현성의 현재 누적 포인트는 채 50억이 되지 않았다.
조만간 넘길 것 같기는 하지만 등급을 올리기 위해서는 누적 포인트가 100억에 도달해야 한다.
아직 반도 안 온 것이다.
‘더 노력해야지.’
물품 판매는 현성이 노력한다고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사냥은 달랐다.
사냥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면 투자할수록 더 많은 포인트를 벌 수 있다.
‘사냥 시간을 더 늘려야겠어.’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매직 미사일.’
퍼억!
캭!
스킬에 적중당한 토드맨이 죽었다.
캬아아아악!
그와 동시에 동료의 죽음에 화가 난 토드맨들이 일제히 현성에게 달려들었다.
긴 혀와 독.
거기다 뛰어난 점프 실력으로 기동성까지 확보한 토드맨은 상당히 까다로운 몬스터였다.
하지만 반대로…….
‘파이어볼.’
불에 약했다.
화르르르륵!
현성에게 달려들던 토드맨들이 일제히 화염에 휩싸여 생을 마감했다.
좌악!
가까이 다가온 녀석들은 흡혈검을 휘둘러 처리했다.
사아아아악!
사냥이 끝나자 아공간이 마석을 먹어 치웠다.
-등록된 물품이 판매되었습니다.
-등록된 물품이 판매되었습니다.
-등록된 물품이 판매되었습니다.
……후략……
현성이 다음 사냥터로 이동하려는 순간, 물품 판매 메시지가 떴다.
‘누가 건전지를 쓸어 갔나 보네.’
전자 제품을 구입한 고객들은 대량의 건전지를 쟁여 놓는 습관이 있었다.
현성이 건전지를 보충하기 위해 판매창을 열었다.
그때였다.
-판매자 최현성 님의 물품을 구매한 구매자 크로우 님으로부터 컴플레인이 들어왔습니다. 컴플레인이 지속 및 누적되면 판매자 등급이 하락하거나 영업정지를 당할 수 있습니다. 주의해 주세요. 컴플레인 내용을 읽어 보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판매자 최현성 님의 물품을 구매한 구매자 크로우 님으로부터 컴플레인이 들어왔습니다. 컴플레인이 지속 및 누적되면 판매자 등급이 하락하거나 영업정지를 당할 수 있습니다. 주의해 주세요. 컴플레인 내용을 읽어 보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후략……
무더기로 컴플레인이 걸렸다.
‘뭐야?’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일단 메시지부터 확인하자.’
XX사 건전지 - 일반 등급 컴플레인
-앞으로는 지금 판매가의 절반 가격으로 판매하도록 하세요. 판매 시간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2시간 지난 후입니다. 내 말을 듣지 않으면 후회할 겁니다.
XX사 건전지 - 일반 등급 컴플레인
-앞으로는 지금 판매가의 절반 가격으로 판매하도록 하세요. 판매 시간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2시간 지난 후입니다. 내 말을 듣지 않으면 후회할 겁니다.
……후략……
모든 컴플레인의 내용이 동일했다.
‘이게 뭐야?’
소비자의 반란인가?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다행히 전처럼 영업정지 처분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그간 현성이 판매한 물품의 숫자는 수천 개가 넘어간다.
당장 컴플레인 6개가 걸렸다고 문제가 생길 수준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계속 이런 식의 컴플레인이 지속되면 영업정지를 당할 수밖에 없다.
‘크로우라…….’
현성은 크로우라는 판매자가 올린 상품들을 살펴봤다.
비약부터 시작해서 스킬북과 무기, 갑옷, 장신구 등.
안 파는 물건이 없는 대상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신의 물품을 구매한 리스트를 살펴봤다.
‘뭐야?’
크로우가 현성의 물품을 구입한 기록은 방금 전 건전지 판매 기록이 처음이자 끝이었다.
게임기, 스마트폰, 태블릿 피시, 보조 배터리는 아예 구매한 기록이 없었다.
‘왜지?’
현성은 전자 물품을 사용하기 위해 건전지를 지속적으로 구매하던 고객이 울화가 치밀어 컴플레인을 건 거라고 생각했다.
한데 그게 아니었다.
컴플레인 내용도 웃겼다.
‘지금 판매가의 절반 금액으로 판매하라고? 그것도 자기가 통보한 시간에? 내가 왜?’
판매가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현성은 독점 판매자다.
가격을 쥐고 흔들 수 있는 독점적 위치에 있는 것이다.
물론 판매 가격이 너무 높아서 구매자들의 컴플레인이 지속되고 판매량이 떨어지면 가격을 떨어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현성이 올린 물품들은 무척 잘 팔리고 있다.
특히 건전지 판매의 경우는 사재기 고객이 몰리면서 제대로 불이 붙었다.
게스피트와 백화 이후 컴플레인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전자 면도기, 폴라로이드 카메라, 다마고치 같은 경우 판매 직후 컴플레인이 들어왔다.
이런 쓸데없는 물품을 1억 포인트나 되는 바가지를 씌워서 팔아먹었다고 말이다.
컴플레인 이후 전자 면도기, 폴라로이드 카메라, 다마고치는 소량씩 판매되다가 얼마 가지 않아 단 한 대도 판매되지 않았다.
그 외의 물품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게임기, 스마트폰, 태블릿 피시, 보조 배터리, 건전지를 제외한 물품들은 모두 컴플레인을 받았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 단 한 대도 팔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