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권. 아공간 스킬 (16/225)

┃아공간 스킬

목적지에 도착한 현성은 곧바로 붉은 갈기 늑대 던전 근처에 자리한 모텔에 방을 잡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붉은 갈기 늑대 던전에 입성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마석 수량을 속일 방법이 필요해.’

당장 돈은 급하지 않다.

습득한 마석 중 소량만 처분해도 충분했다.

서우 길드가 현성을 의심한 계기는 비정상적인 마석 판매였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당장 현성에게 접근한 길드는 서우 길드 하나뿐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대량의 마석을 지속적으로 가지고 나오면 다른 길드 역시 현성에게 관심을 가질 것이다.

‘플레이어 협회 놈들을 믿을 수는 없어.’

던전 출입구를 관리하는 직원부터 아이템 경매장이나 마석 판매장에 근무하고 있는 직원 모두가 현성에겐 경계 대상이었다.

그들은 현성의 개인 정보를 서우 길드에 팔아넘긴 전적이 있다.

그 말은 앞으로도 현성의 개인 정보를 타 길드에 팔아넘길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뜻이었다.

‘협회 직원들의 눈을 피해야 해.’

문제는 그게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던전 출입구 관리인은 사냥을 마치고 던전에서 나온 플레이어들의 소지품을 검수한다.

플레이어의 소지품을 검수하는 공식적인 이유는 몬스터의 알이나 이계 식물의 씨앗같이 문제의 소지가 있는 이계 물품의 반입을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건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했다.

‘진짜 이유는 탈세를 막기 위해서지.’

플레이어들은 저레벨들을 제외하면 모두가 고수익을 올리는 억대 연봉자다.

당연히 대다수의 플레이어가 최고 세율을 적용받으며 엄청난 세금을 국가에 납부한다.

정부는 탈세를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던전 출입구를 만들었다.

‘그럼 제대로 관리를 하든가.’

뇌물 받고 개인 정보 빼돌리는 놈이 있다면 분명히 뇌물을 받고 플레이어가 습득한 아이템이나 마석의 수량을 허위로 보고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아마 대기업의 스폰을 받는 거대 길드와 연관이 있겠지.’

현성은 플레이어 사회에서 아무런 힘이 없는 일개 개인에 불과했다.

그런 현성이 플레이어 협회와 거대 길드의 카르텔을 깨부술 수는 없었다.

최선의 방법은 그들의 눈을 피하는 것뿐이다.

‘분명히 해답이 되어 줄 거야.’

현성이 상태창을 열었다.

고유 스킬 [구매]로 들어가자 수많은 아이템과 스킬북 들이 현성을 반겼다.

‘전에 이쯤에서 본 것 같은데.’

한창 스킬북을 열람하던 현성이 드디어 원하던 스킬을 찾았다.

아공간 - 희귀 등급

-액티브 스킬북

-스킬북을 습득한 플레이어만이 사용 가능한 아공간을 열 수 있다.

-생명체는 수납할 수 없다.

-판매자 : 리오스

-판매가 : 699,999,999포인트

-액티브 스킬북 아공간 - 희귀 등급을 구매하시겠습니까? 한번 구매한 물품은 환불이나 교환이 불가능합니다.

-[예] [아니오]

‘더럽게 비싸네.’

찾긴 찾았는데 정말 엄청나게 비쌌다.

스킬의 장인 스킬북보다 비쌌다.

아마 장담컨대 경매장에 올리면 20억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꼭 필요한 스킬이야.’

현성이 두 눈 딱 감고 예를 눌렀다.

화악!

밝은 빛과 함께 푸른빛의 고풍스러운 스킬북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와 함께 안 그래도 10년은 늙어 보이던 현성의 외모가 더 폭삭 늙었다.

한때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던 현성의 외모가 지금은 50대 중년인으로 변했다.

-액티브 스킬북 아공간 - 희귀 등급을 습득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현성이 곧바로 예를 눌렀다.

‘아공간.’

현성이 곧바로 스킬을 사용했다.

사아아아아악!

주변의 풍경이 일그러지며 칠흑처럼 어두운 아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생각보다 넓네.’

아공간의 내부는 한 치 앞도 보기 힘들 정도로 어두웠다.

하지만 스킬 사용자인 현성에게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아공간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어떤 물건을 넣을 수 있고, 넣을 수 없는지.

물건을 넣거나 꺼내는 방법까지.

마지 각인이라도 된 것처럼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대충 전에 살던 고시원 정도 크기는 되는 것 같은데.’

고시원은 사람이 살기에는 좁지만 마석을 쑤셔 넣기에는 충분한 공간이었다.

갑옷 같은 덩치 큰 종류의 아이템도 문제없이 수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사냥하러 가 보자.’

문제를 해결했으니 바로 움직여야 할 때였다.

* * *

-믿을 수 없는 업적 - 희귀 등급

-단독으로 상위 레벨의 몬스터 붉은 갈기 늑대 1,000마리를 사냥하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붉은 갈기 늑대 포식자 - 희귀 등급]

‘순조롭네.’

던전에 입장한 현성은 아무런 문제 없이 사냥을 이어 나갔다.

이전 던전에서 있었던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던전 입장도 순조로웠고.’

많은 포인트를 사용해 중년인의 모습으로 바뀐 현성은 얼굴을 전체적으로 가리는 안면 보호대를 착용하고 다녔다.

처음에는 긴장했지만 던전 출입구 관리인은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다.

플레이어 등록증과 함께 지문 인식을 하면 통과 절차는 끝난다.

굳이 얼굴을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플레이어들 중에 괴짜들이 오죽 많아야지.’

현성처럼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경우는 양반이다.

심한 경우는 전신을 철갑이나 로브로 뒤덮고 다니기도 한다.

현성은 주변에 널려 있는 마석들을 모조리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여기서는 평범한 플레이어 코스프레를 시전할 생각이었다.

저레벨 사냥터에 와서 솔로잉하는 중 레벨 플레이어.

이게 현성이 정한 콘셉트였다.

‘아주 없는 경우는 아니니까.’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자신과 비슷한 레벨대의 사냥터에서 파티 사냥을 하는 게 가장 효율이 좋다.

하지만 장비나 실력이 떨어지는 플레이어의 경우 저레벨 사냥터에서 솔로잉을 하기도 한다.

당연히 효율은 극악이다.

‘보여 주기 식으로 마석 몇 개만 들고 나가야지.’

현성이 다시금 사냥을 이어 나갔다.

희귀 등급 칭호를 획득했으니 이제는 영웅 등급 칭호를 획득할 차례였다.

* * *

“마지훈이 눈독 들이고 있는 신입이 있다고?”

서우 길드의 부길드 마스터 정성우의 눈이 반짝였다.

“예, 그간 꼭꼭 감추고 있어서 정보를 캐내기가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제 판단으로는 우리가 무조건 포섭해야 하는 대상입니다.”

“말해 봐.”

정성우의 말에 제2 지원 팀장 서대웅이 자신이 확보한 정보를 주절주절 털어놓기 시작했다.

“각성한 지 두 달도 안 돼서 15~20레벨 던전을 출입한다고? 그것도 혼자서?”

“예,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그 최현성이라는 이름의 플레이어는 20레벨의 법칙에서 벗어난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게 사실이야?”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됩니다.”

“아직 포섭하지 못한 거 확실하지?”

정성우가 다급하게 물었다.

“예, 계약 문제로 아직 협상 중인 것 같습니다. 계약금으로 요구하는 금액이 조금 커서요.”

“계약금으로 얼마를 불렀기에 그러는 거야?”

“1천억이라고 합니다.”

정성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신규 플레이어의 계약금으로는 너무도 엄청난 거액이었기 때문이다.

“길드 마스터 측에서 1차로 계약금 100억에 연봉 10억을 불렀는데 거절하고 계약금 1천억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미친놈이군.”

1천억이 누구 집 애 이름인가?

그 돈이면 즉시 전력으로 활용이 가능한 고레벨 플레이어를 영입할 수 있다.

“아니면 진짜거나.”

1천억은 절대 작은 액수가 아니다.

하지만 20레벨의 법칙을 파괴할 수 있는 플레이어를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계약금이 아니라 입장 차이 같습니다. 최현성은 계약금을 먼저 지급해야 자신의 상태창을 공개한다는 입장이고, 마지훈 측은 상태창을 먼저 본 후 계약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입니다.”

“하!”

정성우의 얼굴에 비웃음이 서렸다.

“그 우유부단하고 맹한 성격은 여전하구먼.”

그런 어설픈 태도 때문에 김하나를 비롯한 뉴비들을 모조리 놓쳤다.

한데 또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그놈이 그렇게 쉽게 바뀔 리가 없지.’

정성우에게는 잘된 일이었다.

정성우는 길드 마스터인 마지훈을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뛰어난 무력과 전투 감각은 칭찬할 만하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마지훈은 용맹한 돌격대장은 될 수 있어도 뛰어난 리더는 될 수 없었다.

‘능력도 없는데 운 좋게 시류를 잘 타서 높은 자리에 올라갔으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지.’

길드 마스터는 자신이 되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서우 길드가 지금처럼 빌빌거리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단 계약금을 지급하고 상태창을 본 후에 문제가 있으면 트집을 잡아서 다시 회수하면 되는 걸.’

간단한 문제였다.

‘노선을 확실히 해야지.’

플레이어 협회 소속 직원을 매수하고 개인 정보를 수집하는 정도의 불법은 잘도 저지르면서 어째서 이런 간단한 생각을 못 한다는 말인가.

“자네가 직접 최현성에게 접근해 봐.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바로 1천억 쏴 주고.”

“정말 지급합니까?”

“계약서만 잘 작성하면 문제가 생겼을 때 충분히 회수할 수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제2 지원 팀장이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물러갔다.

홀로 집무실에 남게 된 정성우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맺혔다.

‘이 건만 잘 해결하면 내가 길드장이 될 수도 있어.’

이번이야말로 무능한 길드장을 몰아낼 절호의 기회였다.

* * *

사냥을 마친 현성이 태연한 표정으로 던전 출입구 관리인을 바라보았다.

던전 출입구 관리인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현성을 통과시켰다.

그간 눈이 휘둥그레지며 놀라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됐다. 이제 서우 길드의 시선을 피할 수 있어.’

그간 서우 길드는 징그러울 정도로 집요하게 현성에게 연락을 취해 왔다.

현성은 스마트폰 번호를 바꾸고 전혀 연고가 없는 지역으로 이동했다.

서우 길드로서도 추적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서우 길드가 아무리 대단해도 플레이어 협회 전 직원을 매수할 수는 없어.’

서우 길드의 방문 이후 현성은 플레이어 포럼을 샅샅이 뒤졌다.

그 결과 거대 길드들이 단골처럼 사용하는 던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던전은 모두 국가 소유다.

하지만 거대 길드들은 투자 시간 대비 경험치 획득량이 많거나 수익성이 좋은 특정 던전들을 길드 전용 던전처럼 사용했다.

빠르게 레벨을 올리려는 이유도 있겠지만 주목적은 탈세가 확실했다.

특정 던전 출입구 관리인만 매수하면 깔끔하게 해결된다.

서우 길드의 이수희와 고진성이 찾아왔던 핏빛 쥐 던전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핏빛 쥐 던전은 경험치 획득량이 좋아 서우 길드의 저레벨 플레이어들이 전용 던전처럼 이용하던 곳이었다.

‘이 던전은 오성 길드 저레벨 플레이어들이 주로 이용하지.’

오성 길드는 한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거대 길드다.

그리고 서우 길드와 사이가 좋지 않기로 유명했다.

앙숙인 오성 길드가 관리하는 던전인 만큼 서우 길드의 영향력이 미칠 확률은 상당히 낮았다.

‘아공간이 있으니까 편하네.’

대량의 마석을 가지고 나왔다면 분명 오성 길드의 이목을 끌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공간이 있는 이상 그럴 일은 없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