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두표
‘여기도 끝이네.’
현성이 마석을 회수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붉은 갈기 늑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던전은 상당히 넓다.
하지만 무한하지는 않다.
현성은 타 플레이어들의 눈도 피해야 하고 안전 요원의 눈도 피해야 했다.
다른 이들의 눈을 피하다 보니 막상 사냥할 만한 공간이 얼마 없었다.
‘일단 움직여 보자.’
현성이 가볍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역시 사냥할 만한 장소는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여기도 파티가 있네.’
5인 파티가 열심히 붉은 갈기 늑대를 때려잡고 있었다.
‘다른 곳으로 가야겠다.’
현성이 발걸음을 돌렸다.
콰직!
“아아아아악!”
그 순간 커다란 비명이 들려왔다.
현성이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현성의 눈에 도저히 믿기 힘든 광경이 들어왔다.
좌악!
우득!
“커억!”
머리가 3개 달린 표범이 5인 파티를 무참하게 학살하고 있었다.
현성이 어찌할 틈도 없이 상황이 끝나 버렸다.
처참하게 손상된 다섯 구의 시체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학살을 자행한 핏빛 털의 삼두표는 입가에 뭍은 피를 핥으며 현성을 노려보았다.
‘젠장.’
현성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타악!
그 순간 핏빛 털의 삼두표가 현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현성은 전력을 다해 달렸다.
등 뒤에서 진한 피비린내가 풍겨 왔다.
‘점점 가까워진다.’
전력으로 달리고 있지만 피비린내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훅훅!
등 뒤에서 삼두표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은신.’
갈림길에서 스킬을 사용하며 벽 뒤로 몸을 숨겼다.
휘익!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삼두표는 정확히 현성이 있는 곳을 향해 몸을 돌렸고, 그대로 앞발을 휘둘렀다.
타악!
현성은 있는 힘껏 몸을 날렸다.
좌악!
삼두표의 앞발이 현성의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콰지직!
흉부를 지켜 주던 갑옷이 종잇장처럼 베였다.
다행히 부상을 당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좋아할 때가 아니었다.
삼두표의 가운데 머리가 현성의 코앞까지 다가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실드 스턴.’
현성이 스킬을 발동시키며 방패로 삼두표의 코를 후려쳤다.
퍼억!
하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삼두표의 가운데 머리가 잠시 움찔거리긴 했지만 양옆에 달린 2개의 머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빨을 들이밀었다.
‘파이어볼, 파이어볼, 파이어볼.’
연달아 스킬을 발동시켰다.
꽈아아앙!
파이어볼이 각각 하나씩 삼두표의 머리에 적중했다.
캬아아아아앙!
삼두표가 눈을 감으며 뒤로 물러섰다.
현성이 그 기회를 틈타 다시 거리를 벌렸다.
‘피해가 거의 없어.’
삼두표의 얼굴은 털이 타들어 가고 약한 화상을 입은 걸 제외하고는 너무나도 멀쩡했다.
‘스킬 저항력도 더럽게 높네.’
현성의 마력은 98이다.
아무리 일반 등급 스킬인 파이어볼이라고 해도 그 위력이 만만치가 않았다.
붉은 갈기 늑대의 경우 파이어볼 한 방이면 끝이었다.
한데 삼두표는 털이 타들어 가고 약한 화상을 입은 게 고작이었다.
‘아까 머리를 후려쳤을 때도 마찬가지였어.’
실드 스턴 스킬을 이용해 전력으로 머리를 후려쳤다.
그런데 잠시 움찔하는 게 전부였다.
‘도대체 어디서 저런 괴물이 나온 거야?’
여긴 15~20레벨 던전이다. 저런 괴물이 나올 레벨의 던전이 아니었다.
‘파이어볼, 파이어볼, 파이어볼.’
현성이 부지런히 발을 놀리면서 파이어볼 스킬을 난사했다.
그나마 현재 삼두표에게 약간이라도 타격을 줄 수 있는 스킬은 파이어볼이 유일했다.
하지만 마력은 유한하다.
이대로 가다가는 꼼짝없이 잡혀 죽는다.
캬아아아앙!
성난 포효와 함께 삼두표의 날카로운 발톱이 현성의 등을 스치고 지나갔다.
‘큭!’
등이 화끈거렸다.
하지만 다행히 살이 베인 건 아니었다.
흡혈 박쥐의 망토 덕분이었다.
‘살았다.’
질기고 단단하며 잘 찢어지지 않는다는 단순한 옵션.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흡혈 박쥐의 망토는 현성이 대여한 일반 등급 갑옷보다도 높은 방어력을 자랑했다.
‘이대로는 답이 없어.’
삼두표는 현성보다 빨랐다.
파이어볼로 거리를 벌려도 순식간에 따라붙었다.
일단 삼두표와의 거리를 더 벌릴 필요가 있었다.
‘구매창.’
해결책은 구매창뿐이었다.
구매창을 열자 익숙한 아이콘의 향연이 펼쳐졌다.
느긋하게 아이템과 스킬을 고를 시간이 없었다.
일단 당장 도움이 되는 민첩 스텟을 올려야 했다.
[최하급 민첩 스텟 증가 비약 - 일반 등급]
-민첩 스텟이 1 상승한다.
-민첩 스텟이 100이 넘는 각성자에게는 효과가 없다.
-복용 방법 : 섭취
-판매자 : 리커머스
-판매가 : 4,999,999포인트
‘이거지.’
-최하급 민첩 스텟 증가 비약 - 일반 등급을 구매하시겠습니까? 한번 구매한 물품은 환불이나 교환이 불가능합니다.
-[예] [아니오]
바로 예를 눌렀다.
-최하급 민첩 스텟 증가 비약 - 일반 등급을 구매하셨습니다.
현성은 비약이 나오자마자 먹어 치웠다.
그 후 다시 비약을 구입했다.
구입하고 먹고 구입하고 먹고.
순식간에 민첩 스텟이 100으로 상승했다.
더 이상 거리가 가까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미세하게 멀어졌다.
‘이제는 체력이다.’
-최하급 체력 스텟 증가 비약 - 일반 등급을 구매하시겠습니까? 한번 구매한 물품은 환불이나 교환이 불가능합니다.
-[예] [아니오]
무조건 예였다.
-최하급 체력 스텟 증가 비약 - 일반 등급을 구매하셨습니다.
계속 먹어 치웠다.
순식간에 체력 스텟이 100이 되었다.
그다음은 마력이었다.
-최하급 마력 스텟 증가 비약 - 일반 등급을 구매하시겠습니까? 한번 구매한 물품은 환불이나 교환이 불가능합니다.
-[예] [아니오]
‘자동으로 예를 눌러 줄 수는 없나?’
자꾸 물어보는 것도 지쳤다.
-최하급 마력 스텟 증가 비약 - 일반 등급을 구매하셨습니다.
쉴 새 없이 비약 구매에 열을 올렸다.
마력 수치가 낮았기에 총 70개의 마력 스텟 증가 비약을 먹어야 했다.
그건 정신력 스텟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약 섭취 후 현성의 스텟이 눈에 확 뜨일 정도로 상승했다.
스텟 총합 849.
160레벨대 플레이어의 스텟을 갖춘 것이다.
그 효과는 곧바로 드러났다.
콰아아앙!
화염에 휩싸인 삼두표의 얼굴이 검은 연기와 함께 흉하게 타들어 갔다.
피부가 녹아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좋았어.’
공격이 먹혔다.
‘백날 쫓아와 봐라, 내가 잡히나.’
현성은 조금 전보다 월등히 강해졌다.
그에 비해 삼두표의 스펙은 변화가 없었다.
‘파이어볼, 파이어볼, 파이어볼.’
연속으로 파이어볼을 날렸다.
삼두표는 몸을 돌려 피하거나 앞발을 휘둘러 파이어볼을 막아 냈다.
하지만 그런다고 완전히 피해가 없을 수는 없었다.
앞발의 털이 타들어 가고 가죽이 녹아내렸다.
‘이대로만 가면 충분히 잡을 수 있겠어.’
포인트를 대량으로 소모해 스텟을 상승시킨 보람이 있었다.
‘어?’
파이어볼을 난사하며 삼두표를 공격하던 현성의 눈에 이변이 감지되었다.
‘저게 뭐야?’
처음 파이어볼에 적중당했던 삼두표의 머리가 멀쩡하게 변해 있었다.
타 버린 털까지 자라나지는 않았지만 화상으로 녹아내렸던 피부는 어느새 완전히 회복된 상태였다.
다른 부위도 마찬가지였다.
화상을 입은 부위에 빠르게 새살이 올라오며 상처가 나아 가고 있었다.
‘재생력까지 뛰어나다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파이어볼 가지고는 답이 없어.’
현성은 스킬북 창을 열었다.
삼두표의 숨통을 끊을 만한 강한 스킬이 필요했다.
‘젠장.’
포인트가 아까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비약을 구입하며 모아 두었던 포인트의 대부분을 사용했다.
스킬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수명을 깎아야 했다.
하지만 죽은 후에 포인트가 다 무슨 소용 있겠는가?
일단 살고 봐야 했다.
‘화염계 스킬에 약한 거 같은데 뭐가 있나?’
그는 눈을 부라리고 스킬을 찾았다.
그때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파이어 스피어 - 희귀 등급]
-액티브 스킬북
-강력한 관통력을 가진 화염 창을 만든다.
-판매자 : 브쿠라코
-판매가 : 399,999,999포인트
스킬의 장인보다는 월등히 싸다.
하지만 토 나오게 비싼 가격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액티브 스킬북 파이어 스피어 - 희귀 등급을 구매하시겠습니까? 한번 구매한 물품은 환불이나 교환이 불가능합니다.
-[예] [아니오]
예를 눌렀다.
구매창에서 튀어나온 푸른 표지의 고풍스러운 스킬북을 단숨에 움켜쥐었다.
-액티브 스킬북 파이어 스피어 - 희귀 등급을 습득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당연히 습득해야지.’
액티브 스킬 창에 파이어 스피어가 생겼다.
현성이 고개를 돌렸다.
부지런히 자신의 뒤를 추격하고 있는 삼두표의 모습이 보였다.
정조준을 하고…….
‘파이어 스피어.’
스킬을 날렸다.
‘제발 먹혀라.’
현성은 간절히 소망했다.
퍼억!
기이한 소음과 함께 파이어 스피어가 삼두표의 가운데 머리를 꿰뚫었다.
‘먹혔다.’
처음으로 치명타가 적중했다.
크아아앙!
하지만 삼두표는 더욱 사납게 울부짖으며 현성을 추격했다.
머리 하나가 침묵했지만 2개의 머리는 멀쩡했다.
‘다시 한 방.’
현성이 다시금 파이어 스피어를 날렸다.
휙!
하지만 이번에는 빗나갔다.
삼두표가 민첩하게 파이어 스피어를 피해 버린 것이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연속으로 파이어 스피어를 날렸다.
퍼억!
삼두표의 왼쪽 머리가 파이어 스피어에 꿰뚫렸다.
‘잡을 수 있어.’
현성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맺혔다.
그 순간…….
띵!
‘어?’
갑자기 머리가 울리고 심장이 아려 왔다.
무슨 현상인지 알 것 같았다.
‘마력 고갈.’
계속 파이어볼을 난사했다.
거기다 희귀 등급 스킬인 파이어 스피어까지 연속으로 사용했다.
마력이 고갈되는 게 당연했다.
중간에 마력 스텟 증가 비약을 먹어 마력을 올리지 않았다면 진작 마력 고갈로 쓰러졌을 것이다.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체력은 멀쩡해.’
비약으로 올린 민첩과 체력 스텟 덕분에 얼마든지 더 달릴 수 있다.
그에 반해 머리 2개를 잃어버린 삼두표는 출혈이 심하기 때문인지 눈에 띄게 느려져 있었다.
‘마력이 회복될 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내가 이긴다.’
현성이 사력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