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우 길드
“무조건 포섭해야 해.”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마지훈의 말에 이수희도 동의했다.
“협상 전문가 붙여 줄게. 일단 안면이 있는 네가 직접 나서 봐.”
“네.”
“다른 길드원에게 정보 흘리지는 않았지?”
“네, 부길드 마스터 쪽 사람들은 몰라요. 지수도 제가 단단히 입단속을 했고요.”
“잘했어.”
마지훈은 서우 그룹의 힘을 이용해 철저하게 현성에 대한 정보를 차단했다.
하지만 알음알음 알려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가장 문제가 되는 건 타 길드가 아니라 같은 서우 길드였다.
부길드 마스터 정성우.
그는 길드 마스터인 마지훈과 시시각각 대립하는 인물이었다.
부길드 마스터 정성우는 서우 그룹 관계자들과 친분이 두터웠다.
길드 마스터인 마지훈이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 막고는 있지만 비밀이 오래 지켜지기는 힘들었다.
‘성우 그놈이 알아차리기 전에 최대한 빨리 포섭해야 해. 그래야 내 자리를 지킬 수 있어.’
길드 마스터인 마지훈은 현재 코너에 몰려 있었다.
마지훈은 19년 전 대격변이 일어난 해에 각성한 초창기 플레이어였다.
마지훈은 다른 초창기 플레이어들을 포섭한 후 대기업인 서우 그룹의 스폰을 이끌어 냈다.
그때 포섭한 초창기 플레이어 중 1명이 바로 부길드 마스터인 정성우였다.
처음에는 둘이 죽이 잘 맞았다.
두 사람은 서로 힘을 합쳐 서우 길드를 한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 길드로 성장시켰다.
문제는 그 후였다.
길드의 규모와 이권이 커지자 마지훈과 정성우가 대립하기 시작했고 파벌이 갈렸다.
현재 마지훈은 길드 마스터 자리도 간당간당했다.
톱클래스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은 신규 플레이어들의 포섭에 연이어 실패하며, 길드 순위가 10위권으로 밀려난 게 결정적이었다.
‘정성우 그놈이 방해만 안 했어도.’
물증은 없었다.
하지만 심증은 있었다.
마지훈은 정성우가 길드 내부의 정보를 빼돌려 신규 플레이어 포섭을 방해했다고 확신했다.
‘이번 일까지 실패할 수는 없어.’
한 방에 그간의 실책을 만회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절대 실패할 수 없었다.
* * *
이사를 마친 현성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이른 새벽 던전으로 향해 사냥에 열중했고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에는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 병문안도 잊지 않았다.
매일 찾아뵙지는 못했지만 2~3일에 한 번 정도는 찾아뵈며 스스로의 각오를 다졌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낮 동안 핏빛 쥐 던전에서 정신없이 사냥에 열중했던 현성은 차원 게이트를 넘어 일상으로 돌아왔다.
‘후딱 팔아 치우자.’
오늘 획득한 마석을 팔아 치우고 집으로 돌아가 쉬고 싶었다.
“최현성 씨?”
그때 누군가가 현성에게 말을 걸었다.
현성이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었다.
‘그때 그 안전 요원이다.’
“이렇게 다시 뵙게 되네요. 정식으로 소개드릴게요. 서우 길드 제1팀의 부팀장을 맡고 있는 이수희라고 해요.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을까요?”
이수희의 말에 현성의 표정이 굳어졌다.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지?’
던전에서 잠깐 만났을 뿐이다.
현성의 신상 정보를 알 만한 힌트는 하나도 없었다.
한데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자신이 들어간 던전 입구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
오늘은 핏빛 쥐 던전에 들어온 첫날이다.
어제까지는 뿔 토끼 던전에서 사냥을 했다.
‘저 자식들이.’
현성이 던전 담당 출입구 관리원들을 노려보았다.
정보가 새어 나갈 구멍은 저들밖에 없었다.
플레이어의 개인 정보 유출.
명백한 불법이었다.
“제 이름은 어떻게 아신 거죠? 또 여기는 어떻게 알고 찾아오신 겁니까?”
현성의 물음에 이수희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 뒷조사를 하신 겁니까? 관리원들까지 매수해서?”
현성이 이수희의 말을 끊어 버리며 물었다.
적대감 가득한 현성의 태도에 이수희가 후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옆에 있는 사내에게 눈짓을 보냈다.
“반갑습니다, 최현성 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다른 장소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정장 차림에 말끔한 외모.
사내는 딱 봐도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은 것처럼 보였다.
“싫습니다.”
현성은 그 한마디와 함께 그대로 몸을 돌려 발걸음을 옮겼다.
“그럼 집으로 찾아가도 괜찮겠습니까? 나름 배려해 드려서 이곳에서 기다린 건데 말이죠.”
사내의 말에 현성의 발걸음이 그대로 멈췄다.
* * *
룸 형식으로 된 카페에 세 사람이 마주 앉았다.
“고진성이라고 합니다. 서우 길드 제1 스카우트 팀의 팀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사내가 자신을 소개했다.
하지만 현성은 사내의 이름과 직책 따위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왜 저를 찾아온 겁니까?”
“당연히 스카우트 제의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서우 길드에 들어갈 생각이 없는데요.”
“하하, 제 행동이 많이 불쾌하셨던 것 같습니다. 저도 충분히 그럴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정중히 사과드리겠습니다. 하지만 크게 불쾌해하실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길드들도 비슷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으니까요. 오히려 이 정도면 상당히 신사적으로 나온 겁니다. 다른 길드의 경우는…….”
고진성이 주절주절 이런저런 사례들을 이야기했다.
‘말이 앞뒤가 안 맞잖아.’
사과에 진정성이 없었다.
사과를 하고 주절주절 변명을 하는 게 무슨 진심 어린 사과라는 말인가?
“대서우 길드는…….”
변명이 끝나자 서우 길드 찬양 대회가 열렸다.
‘말발은 좋네.’
말하는 솜씨가 아주 청산유수였다.
서우 길드에 가입만 하면 금세 고레벨 플레이어가 되고 갑부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말이 두루뭉술했다.
거액의 계약금이 정확히 얼마인지 연봉이 얼마인지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그래서 제가 계약금과 연봉을 얼마나 받을 수 있다는 겁니까?”
현성이 고진성의 말을 끊으며 물었다.
“확실한 건 레벨과 스텟 그리고 스킬을 공개하시고 길드에 가입한 후 결정됩니다.”
현성이 얼굴을 찌푸렸다.
‘결국에는 나보고 패를 먼저 까라는 거네.’
“하지만 최하 계약금 100억에 연봉 10억은 보장하겠습니다.”
고진성의 말에 현성의 눈이 커졌다.
계약금 100억에 연봉 10억.
현성으로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거액이었다.
‘이상해.’
현성은 거액의 계약금과 연봉 제의에 놀라기보다는 의구심을 가졌다.
이수희가 현성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고 해도 너무 큰 거액이었다.
‘나를 길드의 대표 플레이어로 키우려는 건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조건이 너무 과했다.
서우 길드가 대기업을 스폰서로 두고 있다고는 하지만 신규 플레이어 1명에게 투자하기에는 지나치게 큰 거액이다.
톱급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가진 신규 플레이어라고 해도 길드에 가입할 때 받는 계약금은 많아야 수십억대였다.
성장에 많은 투자가 필요하고, 쪽박을 찰 가능성도 존재했기 때문이다.
성장한 플레이어의 실력이 기대에 못 미칠 수도 있고, 또는 사냥 도중 사망하거나 불구가 되어 버릴 수도 있다.
결정적으로 몬스터 사냥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가진 플레이어라도 홀로 동급 레벨의 몬스터를 쓸어버릴 수는 없다.
쉽게 말해 아무리 톱급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은 뉴비라고 해도 쪽박의 위험을 감수하고 100억을 투자하는 길드는 없다는 것이다.
‘김하나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말이지.’
그녀는 특별하다.
혼자 강해지는 게 아니라 파티원 전원을 강화시킬 수 있으니까.
거기다 김하나의 경우는 버프로 성공한 타국 플레이어들의 사례가 존재했다.
그 결과 김하나는 역대 최고의 계약금을 받고 계약했다.
하나 현성은 아직 증명된 게 아무것도 없다.
또 파티에 도움이 되는 스킬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물론 현성은 고유 스킬 구매와 판매를 통해 추가로 스텟을 더 올릴 수 있다.
포인트만 충분하면 희귀 등급 스킬도 얼마든지 구입해 익힐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현성 혼자 동 레벨 파티를 다 합친 것만큼의 전력을 발휘할 수 있다.
동 레벨 몬스터를 혼자서 쓸어버리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증명하려면 고유 스킬 구매와 판매의 존재를 알려야 한다.
‘그걸 알 리는 없어.’
현성은 지금까지 상태창을 공개한 적이 없다.
플레이어 협회에서 등록증을 발급받을 때도 레벨만 공개했을 뿐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세상에 공짜는 없다.
플레이어로 각성하며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혹시?’
뭔가 집히는 게 있었다.
“마석 때문입니까?”
현성의 물음에 고진성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오히려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이수희는 아니었다.
순식간에 사라지기는 했지만 분명 표정에 변화가 있었다.
‘20레벨의 법칙.’
현성은 1레벨 플레이어다.
경험치 대신 포인트가 오르니 레벨이 오르지 않는다.
당연히 20레벨의 법칙에서 자유롭다.
그렇기에 저레벨 던전을 돌아다니며 대량의 몬스터를 잡아 마석을 쓸어 담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플레이어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플레이어 협회 소속 관리원을 이용해서 내 신상 정보와 사냥하는 던전을 알아낸 자들이야.’
그간 자신이 팔아 치운 마석의 수량을 파악하는 일쯤은 식은 죽 먹기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마석을 많이 얻어도 일개 개인일 뿐이야.’
서우 길드는 대기업의 후원을 받는 대형 길드다.
현성이 하루에 버는 수입이라고 해 봐야 서우 길드와 비교하면 새 발에 피에 불과했다.
‘내가 특별한 노하우나 스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현성에게는 특별한 노하우나 스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1레벨 플레이어이기에 아무런 페널티 없이 마석을 얻을 수 있는 것뿐이다.
이걸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적용시켜 줄 수도 없다.
‘완전 헛다리 짚고 있구나.’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직은 괜찮아. 하지만 계속 이런 식으로 엮이다 보면 내가 가진 비밀이 노출될 수 있어.’
서우 길드가 자신에 대한 관심을 끊게 할 만한 수단이 필요했다.
‘마석 수량도 조절해야 해.’
너무 많은 마석을 팔아 치웠기에 이 사달이 벌어진 것이다.
‘썩어 빠진 놈들.’
자신의 개인 정보를 팔아 치운 플레이어 협회 직원들의 부패에 절로 욕이 나올 것 같았다.
‘정상적인 경로로 마석을 팔면 안 돼.’
정상적인 경로로 마석을 판매할 때는 무조건 플레이어 등록증을 제시해야 한다.
탈세를 막기 위한 방책이었지만 현성으로서는 골치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던전 출입구 관리인도 문제야.’
오늘 자신이 던전에 출입한 사실을 서우 길드에 알렸다.
정상적인 경로로 마석을 팔지 않는다고 해도 던전에서 자신이 가지고 나온 마석의 수량은 들통날 수밖에 없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자신의 개인 정보를 유출한 플레이어 협회 직원들에게 콩밥을 먹여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신고를 한다고 해도 제대로 단속되지 않을 확률이 높아. 그리고 어쩌면 내가 더 큰 주목을 받을 수도 있어.’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다.
“뭘 그렇게 고민하십니까? 최현성 씨가 손해 보실 일은 없지 않나요?”
고진성의 말에 현성이 입을 열었다.
“플레이어가 자신의 상태창을 타인에게 공개하는 것 자체가 손해를 보는 겁니다. 그리고 고진성 씨는 무엇 하나 확실하게 약속하신 게 없습니다. 차라리 한 1천억을 계약금으로 선지급해 주세요. 그럼 상태창을 공개하고 길드에 가입하겠습니다.”
현성의 말에 고진성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는 아무런 보장 없이 1천억이라는 거금을 투자할 권한이 없었다.
만약 현성이 사기꾼이라면 1천억만 날리는 꼴이다.
“저에게 일방적인 손해를 강요하시는 분과는 더 이상 나눌 말이 없네요.”
현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카페를 나갔다.
1천억이라는 큰돈을 불렀음에도 고진성에게 계속 연락이 왔다.
고진성은 달콤한 말로 현성을 꿰려고 할 뿐 절대 1천억을 지급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현성은 전화는 차단해 버렸고, 직접 찾아오면 무시했다.
설사 정말 1천억을 준다고 해도 상태창을 공개하고 서우 길드에 가입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서우 길드의 영입 제안을 거절할 핑계가 필요했기에 그 큰돈을 부른 것뿐이다.
현성은 사냥에 열중했다.
중간중간 나오는 스킬북 중 건강과 관련된 패시브 스킬북은 팔지 않고 어머니에게 드렸다.
스킬북이 팍팍 나온다면 좋겠지만, 아주아주 드문 확률로 나왔기에 많이 드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3주의 시간이 흘렀고 현성은 추가로 3개의 칭호를 더 얻을 수 있었다.
포인트도 꽤 많이 쌓였다.
마석을 팔아 버는 수입도 점점 늘어났다.
현성이 칭호를 획득하는 던전의 레벨이 점점 올라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포인트를 획득이 늘어나자 현성의 외모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일 정도로 어려졌다.
하지만 예상대로 더 이상 어려지지는 않았다.
‘이대로만 하자.’
지금처럼만 하면 금세 엘릭서를 구매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가 완치되시기만 하면 불행 끝 행복 시작이다.’
아니, 불행의 그늘에 가려졌던 가족들의 얼굴이 환해진 것만 봐도 기분이 좋았다.
이미 행복이 시작된 것이다.
* * *
현성은 평소와 같이 사냥을 나갔다.
오늘의 목적지는 붉은 갈기 늑대 던전이었다.
붉은 갈기 늑대는 15~20레벨의 플레이어들이 사냥하는 던전이다.
어제 사냥했던 푸른 도마뱀 던전보다 레벨이 높기는 했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한 방인데, 뭐.’
이제 현성의 스텟은 2차 각성을 완료한 중 레벨 플레이어들과 비등한 수준이었다.
‘상태창.’
이름 : 최현성
플레이어 레벨 : 1
메인 직업 : 없음
칭호 : [뿔 토끼 학살자 - 전설 등급] [블러드 폭스 학살자 - 전설 등급] [최초의 영웅 등급 업적 달성자 - 영웅 등급] [최초의 전설 등급 업적 달성자 - 전설 등급] [흡혈 박쥐 학살자 - 전설 등급] [핏빛 쥐 학살자 - 전설 등급] [거대 개미 학살자 - 전설 등급] [푸른 도마뱀 학살자 - 전설 등급]
스텟 : [힘 70 +76] [민첩 70 +68] [체력 70 +68] [마력 30 +68] [정신력 30 +68]
미분배 스텟 : [0]
고유 능력 : [판매] [구매]
액티브 스킬 : [힐 - 일반 등급] [파이어볼 - 일반 등급] [도발 - 일반 등급] [매직 미사일 - 일반 등급] [실드 - 일반 등급] [은밀한 기습 - 일반 등급] [은신 - 일반 등급] [실드 스턴 - 일반 등급] [큐어 - 일반 등급]
패시브 스킬 : [단단한 몸 - 일반 등급] [강인한 체력 - 일반 등급] [삼재심법 - 일반 등급] [초급 검술 지식 - 일반 등급] [초급 마법 지식 - 일반 등급] [초급 방패술 지식 - 일반 등급] [스톤 바디 - 일반 등급]
비약을 통해 올린 스텟보다 총 8개의 칭호를 통해 얻은 플러스 스텟이 더 많았다.
거기다 그간 얻은 중복되지 않는 스킬북을 부지런히 흡수해 액티브 스킬 9개 패시브 스킬 7개를 달성했다.
현성에게 있어서는 10~15레벨 수준의 푸른 도마뱀이나 15~20레벨 수준의 붉은 갈기 늑대나 공평하게 한 방이었다.
직접 실험해 보지는 않았지만 60~70레벨 수준의 몬스터도 한 방 사냥이 가능할 것 같았다.
‘붉은 갈기 늑대 사냥꾼부터 시작해 보자.’
그게 오늘의 첫 목표였다.
현성이 붉은 갈기 늑대 던전으로 입성했다.
던전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레벨이 오를수록 갈 수 있는 던전 숫자가 줄어든다는데 걱정이네.’
플레이어는 꾸준히 탄생한다.
각성은 공평하다.
누구나 레벨 업을 하면 스텟을 찍어 강해지고 더 상위 사냥터로 향한다.
문제는 더 이상 차원 게이트가 늘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격변 이후 10년간 끊임없이 늘어나던 차원 게이트들은 9년 전 생긴 영웅 등급 던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늘지도 줄지도 않았다.
그저 꾸준히 존재할 뿐이었다.
현성은 인적이 드문 곳을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사냥을 시작했다.
타악!
힘차게 몸을 날려 검을 휘둘렀다.
캬악!
붉은 갈기 늑대는 현성의 공격에 제대로 된 반격조차 하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크아아앙!
주변에 있던 붉은 갈기 늑대들이 반응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붉은 갈기 늑대는 동족 의식이 강한 몬스터였다.
1마리를 사냥하자 주변에 있던 붉은 갈기 늑대들이 모두 달려들었다.
다른 플레이어들이라면 기겁할 상황이지만 현성으로서는 즐겁기만 했다.
“파이어볼.”
화르르륵!
뜨거운 화염이 현성에서 덤벼들던 붉은 갈기 늑대들을 쓸어버렸다.
“매직 미사일.”
매직 미사일이 멀리 떨어져 있던 붉은 갈기 늑대 1마리를 죽였다.
그 순간 어그로가 끌린 주변의 붉은 갈기 늑대들이 현성을 향해 몰려들었다.
“파이어볼.”
다시금 화염이 붉은 갈기 늑대들을 뒤덮었다.
파이어볼을 피해 가까이 다가온 놈들은 검과 방패를 휘둘러 처리했다.
좌악!
오른손에 들린 흡혈검이 휘둘림과 동시에 4마리의 붉은 갈기 늑대가 세상을 하직했다.
퍼억!
왼팔에 달린 커다란 사각 방패는 주변에 있던 붉은 갈기 늑대들을 날려 버렸다.
깨갱!
붉은 갈기 늑대들이 비명을 터트렸다.
매직 미사일로 어그로를 끌고 멀리 떨어져 있는 놈은 파이어볼로 정리했다.
파이어볼의 화망을 뚫고 가까이 다가온 놈들은 검과 방패로 처리해 버렸다.
혹시 모를 기습에 대비해 몸에 실드를 두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순식간에 붉은 갈기 늑대들의 씨가 말랐다.
그와 함께 현성의 주변으로 붉은 갈기 늑대의 사체와 마석 들이 수북하게 쌓이기 시작했다.
업적도 달성했다.
-믿을 수 없는 업적 - 일반 등급
-단독으로 상위 레벨의 몬스터 붉은 갈기 늑대 300마리를 사냥하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붉은 갈기 늑대 사냥꾼 - 일반 등급]
‘예상보다 일찍 끝났네.’
마력 스텟과 정신력 스텟이 오른 후 사냥이 더 손쉬워졌다.
스킬의 위력이 강해졌고, 쿨타임이나 캔슬 없이 일반 등급 스킬을 남발할 수 있었다.
흡혈검 덕분에 소모된 마력과 체력은 전투 중에 알아서 회복되었다.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겠어.’
현성이 던전 깊숙이 발걸음을 옮겼다.
* * *
“의무 기간은 도대체 왜 있는 거야?”
오찬수가 얼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러게 말이야. 진짜 귀찮아 죽겠다.”
박호영이 오찬수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울상을 지었다.
오찬수와 박호영은 1차 각성을 마친 플레이어다.
당연히 안전 요원 의무 기간이 있었다.
그간 미루고 미뤘다.
하지만 더 이상은 미룰 수가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의무 기한을 때우기 위해 플레이어 협회를 찾았다.
그 두 사람에게 배당된 곳이 바로 붉은 갈기 늑대 던전이었다.
“며칠 남았지?”
“78시간은 더 채워야 해.”
“아, 중간중간 기간 채워 놓을걸.”
“그러게 말이야.”
후회가 밀려왔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크르르릉!
낮은 으르렁거림과 함께 차원 게이트에서 전신이 붉은 털로 뒤덮인 삼두표 1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같은 붉은색이기는 했지만 늑대와 표범은 달랐다.
거기다 붉은 털을 가진 삼두표의 덩치는 붉은 갈기 늑대와의 비교를 불허할 만큼 큰 차이가 났다.
결정적으로 머리가 셋이나 달려 있는 표범이다.
붉은 갈기 늑대와 착각할 수가 없었다.
“어라?”
오찬수가 붉은 털의 삼두표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딱 봐도 15~20레벨 던전에 등장해서는 안 되는 몬스터였다.
“처리해야겠지?”
오찬수가 물었다.
“당연하지.”
박호영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렇지 않아도 심심해 죽을 지경이었는데 오히려 잘됐네.”
“그러게 말이야.”
오찬수와 박호영이 각자의 무기를 꺼내 들고 붉은 털의 삼두표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위 던전에서 상위 몬스터가 튀어나와 봐야 고작 기존에 나오던 몬스터보다 10여 레벨이 더 높을 뿐이다.
선공은 오찬수였다.
휘익!
오찬수의 창이 붉은 털 삼두표의 옆구리를 향해 날아갔다.
크아앙!
붉은 털 표범이 재빨리 몸을 피하며 오찬수의 머리를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밀었다.
“어딜!”
박호영이 재빨리 오찬수의 앞을 가로막으며 커다란 방패로 붉은 털 삼두표의 머리들을 후려쳤다.
꽈앙!
커다란 소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별다른 타격은 없는 듯했다.
붉은 털 삼두표는 맹렬한 기세로 오찬수와 박호영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마치 한 몸인 것처럼 합공을 이어 나갔다.
오찬수의 창이 원거리에서 붉은 털 삼두표를 공격했다.
붉은 털 삼두표가 반격을 하면 박호영이 나서 방패와 메이스로 견제했다.
전투는 꽤 길게 이어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승패가 확실하게 갈렸다.
오찬수와 박호영의 몸에는 부상은커녕 작은 생채기 하나 생기지 않았다.
그에 반해 붉은 털 삼두표의 몸에는 창에 꿰뚫린 상처가 가득했다.
거기다 3개의 머리 중 2개는 이미 두개골이 꿰뚫려 축 늘어진 상태였다.
삼두표의 붉은 털이 검붉은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 순간…….
콰직!
결정타가 터졌다.
스킬을 사용한 오찬수의 창이 출혈로 움직임이 느려진 붉은 털 삼두표의 마지막 머리를 꿰뚫어 버린 것이다.
3개의 머리를 모두 잃은 붉은 털 삼두표의 몸이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 후 사체가 하나로 뭉쳐지며 마석으로 변해 갔다.
“오, 마석 나온다.”
“그러게 확실히 레벨이 좀 높은 놈이었나 봐.”
오찬수는 71레벨이었고, 박호영은 72레벨이었다.
마석을 준다는 것은 붉은 털 삼두표의 레벨이 오찬수나 박호영의 레벨보다 20레벨 이상 낮지 않다는 증거였다.
방금 전 직접 경험한 붉은 털 삼두표의 전투력은 상당히 뛰어났다.
거기다 10레벨 이상 차이 나면 마석이 나오는 확률이 엄청나게 낮아진다는 점으로 고려해 볼 때, 붉은 털 삼두표는 60레벨대의 몬스터일 확률이 높았다.
“왜 이런 놈이 여기서 나왔지?”
오찬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15~20레벨 수준인 붉은 갈기 늑대 던전에서 나오는 상위 몬스터의 레벨은 높아 봐야 30~40레벨 수준이었다.
한데 이놈은 달랐다.
“이상하기는 하네. 하지만 덕분에 용돈 벌었잖아.”
박호영이 오히려 잘되었다는 듯 바닥에 떨어진 마석을 주워 들었다.
“그런데 너 머리 3개 달린 표범 본 적 있냐?”
“아니, 나도 처음 보는데. 몬스터 도감에서도 본 적이 없는 거 같아.”
“그럼 오히려 사체가 더 돈이 되지 않았을까? 신규 몬스터의 사체는 비싸게 거래되잖아.”
“그러게 차라리 마석 말고 사체로 남는 게 돈이 더 될 수도 있겠다.”
크르르릉!
두 사람이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사방에서 늑대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투의 소란에 이끌린 붉은 갈기 늑대들이 몰려온 것이다.
하지만 오찬수와 박호영은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청소 한번 해야겠다.”
“그러게.”
15~20레벨 수준의 붉은 갈기 늑대는 오찬수와 박호영에게 있어서 언제든 짓밟을 수 있는 개미 떼에 지나지 않았다.
그저 경험치와 마석을 주지 않았기에, 그리고 안전 요원으로 와서 저레벨들의 사냥을 방해할 수는 없었기에 사냥하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먼저 덤벼든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크아아앙!
붉은 갈기 늑대들이 사나운 포효를 터트리며 달려들었다.
기세는 대단했지만 붉은 갈기 늑대의 레벨은 15~20 수준이었다.
70레벨 플레이어인 오찬수와 박호영의 상대가 될 리 만무했다.
붉은 갈기 늑대들이 무참히 죽어 나갔다.
“하하하, 그간 쌓인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
“그러게 가끔 이렇게 사냥하는 것도 나쁘지 않네.”
비슷한 레벨의 몬스터만 사냥하다가 저레벨 몬스터를 일방적으로 쓸어버리다 보니 묘한 통쾌함이 느껴졌다.
그 때문이었을까?
오찬수와 박호영은 어둠에 녹아 차원 게이트를 통과한 무언가를 목격하지 못했다.
콰직!
섬뜩한 소리와 함께 박호영의 머리가 사라졌다.
털썩!
머리를 잃은 몸이 힘없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어?”
화들짝 놀란 오찬수가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의 눈에 집채만 한 크기의 거대한 삼두표가 보였다.
삼두표의 머리 하나가 박호영의 머리를 우적우적 씹어 먹고 있었다.
핏빛 털가죽을 가진 거대한 삼두표는 방금 전 자신들이 사냥한 붉은 털 삼두표와 상당히 닮아 있었다.
마치 어미와 새끼처럼 말이다.
“으아아아!”
오찬수가 비명을 지르며 창을 찔러 넣었다.
마력을 있는 대로 불어 넣었고, 스킬도 사용했다.
콰득!
삼두표의 머리 하나가 오찬수의 창과 오른팔을 통째로 물어뜯었다.
우득! 우득!
100레벨대 몬스터의 사체로 만들어진 고가의 창과 그 창을 들고 있던 오찬수의 오른팔이 삼두표의 입안에서 과자처럼 으스러졌다.
그리고…….
꿀꺽!
삼두표의 배 속으로 사라졌다.
“아아악!”
오른팔이 사라진 오찬수가 고통 어린 비명을 지르며 출구를 향해 몸을 날렸다.
도망가야 했다.
저건 자신이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의 몬스터가 아니었다.
오찬수가 공포에 떨며 발을 놀렸다.
‘괴물이야, 괴물.’
콰직!
그게 오찬수가 한 생의 마지막 생각이었다.
삼두표의 앞발이 오찬수의 머리를 그대로 날려 버렸기 때문이다.
털썩!
머리를 잃은 몸이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우득! 우득!
삼두표의 머리들이 오찬수와 박호영의 사체를 씹어 먹었다.
크르르릉!
그리고 낮은 으르렁거림과 함께 오찬수가 향했던 던전 출구 쪽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이동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