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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흡혈검 (11/225)
  • ┃흡혈검

    몬스터의 잔존 마력은 1마리당 하나의 마석이나 아이템으로 변하는 게 정석이었다.

    마석이나 아이템으로 변하지 못하면 그대로 흩어져 버린다.

    한데 이변이 벌어졌다.

    현성이 잡은 흡혈 박쥐들의 잔존 마력이 하나로 뭉쳐 아이템을 만들어 낸 것이다.

    현성이 떨리는 눈으로 검을 움켜잡았다.

    [흡혈검 - 희귀 등급]

    -공격한 대상의 피를 흡혈해 사용자의 체력과 마력을 회복시킨다.

    ‘좋다.’

    흡혈검의 등급은 희귀.

    옵션은 하나였다.

    하지만 그 하나의 옵션이 다른 옵션 2개의 값어치를 했다.

    체력과 마력 회복.

    딜러나 탱커들 입장에서는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만한 아이템이었다.

    중요한 점은…….

    ‘또 나올 수도 있어.’

    일반 등급의 몬스터라도 한 번에 대량으로 잡으면 희귀 등급 아이템을 뱉어 낸다.

    희귀 등급의 몬스터를 한 번에 대량으로 잡는다면?

    어쩌면 영웅 등급 아이템이 나올 수도 있다.

    ‘또 해 보자.’

    흡혈 박쥐 던전은 실험을 하기에 적격인 던전이었다.

    * * *

    ‘너무 쉽게 생각했나?’

    현성이 주변에 수북하게 쌓인 마석과 아이템 들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벌써 일주일째 흡혈 박쥐 던전에서 사냥을 하고 있었다.

    업적은 이미 진작 완료했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속해서 사냥을 했다.

    문제는 결과가 영 신통치 않다는 점이었다.

    흡혈 박쥐들의 잔존 마력이 하나로 뭉쳐지는 현상은 쉽게 일어나지 않았다.

    첫날 이후 딱 한 번 동일한 현상이 벌어졌다.

    하지만 흡혈검 같은 대박이 아니었다.

    오히려 쪽박에 가까웠다.

    [흡혈 박쥐의 망토 - 희귀 등급]

    -질기고 단단하며 잘 찢어지지 않는다.

    ‘이게 뭐냐고…….’

    말이 희귀 등급이지 일반 등급 아이템과 별반 차이가 없는 옵션이 나왔다.

    이런 아이템이 나올 거라면 차라리 잔존 마력이 뭉치지 않고 마석과 다른 아이템으로 변하는 게 더 나았다.

    ‘이건 완전히 도박이네.’

    잔존 마력이 하나로 뭉쳐지는 경우 자체가 드물다.

    설사 뭉치더라도 대박이 아니라 쪽박이 날 수도 있다.

    ‘접자.’

    흡혈 박쥐를 사냥해서 현성이 얻을 수 있는 건 오직 포인트뿐이다.

    하지만 다른 던전에서 사냥을 하면 칭호를 얻을 수 있다.

    혹시 모를 대박을 노리기 위해 흡혈 박쥐 던전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건 명백한 손해였다.

    ‘나중에 더 강해진 후에 한 번 더 시도해 보자.’

    지금처럼 1천여 마리를 몰아 잡는 수준이 아니라 1만 마리를 몰아 잡는 수준이 되면 변화가 일어날지도 몰랐다.

    * * *

    어머니가 정식으로 퇴사를 했다.

    그날 현성은 사냥을 나가는 대신 어머니를 모시고 부동산으로 향했다.

    이사 갈 집을 보기 위해서였다.

    원룸에서 성인 3명이 살기에는 불편한 점이 너무 많았다.

    “어서 오세요.”

    부동산에 들어가자마자 중개인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현성과 어머니를 반겼다.

    “방금 전화드렸던 사람인데요.”

    “아, 요 앞 단지에 있는 32평 아파트 맞으시죠?”

    “네.”

    “바로 나가시죠.”

    중개인이 현성과 어머니를 안내했다.

    “너무 큰 집을 보는 거 아니니?”

    중개인을 따라가는 도중에 어머니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아요. 각자 방 하나씩은 있어야죠.”

    52평도 42평도 아닌 32평이다.

    현재 자금 사정과 현성의 예상 수입으로 볼 때 32평 아파트를 구하는 것은 결코 과소비가 아니었다.

    “24평도 방 3개짜리 집 많아. 있을 때 조금이라도 아껴야지.”

    어머니는 부담스러운 듯 24평 아파트를 권했다.

    “앞으로 제가 더 많이 벌어 올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전세라서 어차피 나중에 다 돌려받는 돈이잖아요.”

    현성의 말에 결국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가 부엌이고 여기가 안방입니다.”

    부동산 중개인의 설명에 어머니가 꼼꼼히 집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지 환한 미소를 지었다.

    “마음에 드세요?”

    현성의 말에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곰팡이도 없고 결로 현상도 없구나. 주방도 요리하기 편하게 되어 있고.”

    “그럼 이 집으로 할게요.”

    “그건 아니다. 한 번 보고 결정하면 나중에 후회해. 다른 집도 구경하자.”

    어머니의 말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성과 어머니는 총 4채의 아파트를 구경했다.

    하지만 결국 결정한 것은 가장 처음 봤던 32평 아파트였다.

    현성은 그날 전세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감사합니다.”

    “집 보여 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이게 제 일인걸요.”

    현성과 중개인이 환한 표정으로 악수를 나눴다.

    계약을 끝낸 현성은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향하는 어머니의 얼굴에는 밝은 미소가 맺혀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현성의 입가에도 만족스러운 미소가 맺혔다.

    ‘나중에 더 좋은 집 사 드릴게요.’

    아버지가 건강해지시면 두 분이 사실 수 있는 집을 마련해 드릴 것이다.

    누나나 자신이 독립을 하더라도 어머니와 아버지가 편하게 살아가실 수 있게끔 말이다.

    * * *

    이사 일정이 빠르게 잡혔다.

    전 세입자가 이사 갈 집을 미리 구해 놓은 상태였기에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사 당일.

    현성은 용달 트럭 하나를 불러 직접 짐을 날랐다.

    짐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이삿짐센터를 부를 필요도 없었다.

    “와, 넓다.”

    집을 목격한 누나 최현지가 입을 쩍 벌리며 말했다.

    “누나는 처음 와 보지?”

    집을 보러 간 날이 평일 낮이었기에 최현지가 이사 가는 집에 온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응, 진짜 좋다.”

    서른 살이 넘은 최현지가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좋아했다.

    “나중에 더 큰 집으로 가게 해 줄게.”

    현성의 말에 최현지가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해.”

    좁은 원룸을 벗어났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최현지는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머니도 마음에 드는지 미소를 지으며 부지런히 이삿짐을 정리했다.

    이삿짐 정리가 끝나고 새로 들어올 가구들을 정리한 후 현성 가족은 자장면과 탕수육을 시켜 먹었다.

    이삿날에는 역시 중국집 배달 음식이 최고였다.

    “맛있다.”

    최현지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엄마, 내일 이웃분들한테 떡이라도 돌려요.”

    “그래, 그게 좋겠다. 새로 이사 왔으니 이웃분들께 인사를 드려야지.”

    그 말을 시작으로 어머니와 누나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좋다.’

    두 사람의 밝은 미소를 보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아버지가 완치되셔서 온 가족이 둘러앉아 지금처럼 웃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았다.

    ‘꼭 그렇게 만들어야지.’

    현성은 굳게 결심했다.

    * * *

    “도대체 이놈 정체가 뭐야?”

    마지훈이 황당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이수희에게 물었다.

    “그게 저도 잘…….”

    이수희가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이수희는 현성을 만난 후 바로 길드로 향했다.

    그리고 자신이 점찍은 신입의 존재를 서우 길드의 길드 마스터인 마지훈에게 보고했다.

    마지훈은 바로 조사를 명령했다.

    그간 서우 길드는 경쟁 길드들에 많은 유망주들을 빼앗겼다.

    특히 김하나, 차우혁, 주영호같이 톱클래스 플레이어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은 에이스들을 하나도 확보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별다른 차이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점점 차이가 크게 벌어졌다.

    그 결과 서우 길드는 크게 휘청거렸다.

    초창기 한국 3대 길드로 손꼽히던 서우 길드는 현재 한국 10대 길드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이수희가 새로운 정보를 물고 왔다.

    마지훈은 서우 길드의 힘을 이용해 현성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서우 길드의 힘은 대단했다.

    스폰서 기업인 서우 그룹의 도움을 받아 정상적인 경로로 손에 넣기 힘든 정보들을 너무도 손쉽게 알아냈다.

    현성의 이름, 나이, 가족 관계, 출입한 던전, 습득한 아이템과 마석의 수량까지 정확하게 파악했다.

    한데 그 결과가 실로 놀라웠다.

    반신반의했는데, 이수희가 현성을 처음 만난 날이 정말 첫 사냥이었다.

    1레벨.

    첫 사냥.

    한데 뿔 토끼를 말 그대로 쓸어버렸다.

    뿔 토끼가 아무리 최하급 몬스터라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몬스터는 몬스터다.

    지금까지 등장했던 그 어떤 플레이어들도 1레벨부터 그런 신위를 보여 주지는 못했다.

    물론 그게 끝이었다면 그냥 초기 스텟이 엄청나게 좋거나 특별한 스킬을 가지고 있어서라고 납득했을 것이다.

    문제는 그 후였다.

    가지고 나오는 마석의 양을 보면 대충 사냥한 몬스터의 숫자를 알 수 있다.

    현성은 하루에 대략 1,000마리 정도의 몬스터를 사냥했다.

    그게 이해하기 힘들었다.

    현성이 지금까지 사냥한 몬스터의 숫자는 최하로 잡아도 1만 마리가 넘었다.

    현성이 그간 판매한 마석 수량을 바탕으로 추정한 숫자였다.

    1만 마리라니?

    아무리 최저 레벨 몬스터라고는 하지만 1만 마리가 모이면 엄청난 경험치가 된다.

    최소한으로 잡아도 1차 전직을 마치고 초보티를 벗을 정도로 레벨 업을 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최저 레벨의 몬스터를 무더기로 잡아 1차 전직을 할 정도의 경험치를 쌓는 건 불가능하다.

    20레벨의 법칙 때문이다.

    몬스터와 레벨 차이가 20레벨 이상 벌어지면 경험치도 주지 않고 마석도 주지 않는다.

    그게 당연한 거다.

    그런데 현성은 이미 졸업해야 할 레벨의 최하 등급의 던전들을 순회공연하고 있었다.

    심지어 5~10레벨의 플레이어들이 주로 사냥하는 블러드 폭스 던전에서 일주일 넘게 사냥을 하다가 갑자기 1~5레벨의 초보 플레이어들이 사냥하는 뿔 토끼 던전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백번 양보해서 현성이 제정신이 아니라 미친 짓을 하고 다니는 거라 치자.

    하지만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현상이 있었다.

    바로 마석이다.

    마석을 어떻게 그렇게 많이 가지고 온다는 말인가.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단 1개의 마석도 얻을 수 없어야 하는데 말이다.

    “무슨 특별한 스킬이 있는 게 아닐까요?”

    이수희의 말에 마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가능성이 높겠지. 아마 20레벨의 법칙을 무너트리는 스킬일 거야.”

    20레벨의 법칙은 플레이어들에게 있어서 상당히 골치 아픈 제약이었다.

    플레이들이 더 빠르게 레벨 업을 할 수 없는 것도, 더 많은 돈을 벌 수 없는 것도, 최상위 랭커들이 더 이상 레벨 업을 하지 못하는 것도 역시 20레벨의 법칙 때문이다.

    20레벨의 법칙을 파괴할 수만 있다면, 한국이 아니라 세계 1위의 길드가 되는 것도 문제가 아니었다.

    ‘최현성이라는 녀석의 행보는 20레벨의 법칙을 파괴한 게 아니면 납득할 수가 없어. 특별한 방법이 있는 건가? 아니면 특별한 스킬? 스킬이라면 다른 이에게도 적용 가능한 방법이 있는 건가?’

    마지훈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결론은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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