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스피트와 백화
“아씨, 다 못 샀어!”
게스피트가 짜증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불만을 토해 냈다.
다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손은 눈보다 빠르니까 말이다.
하나 경쟁자가 있었다.
무려 4개의 물품을 빼앗겨 버렸다.
‘누군지 걸리기만 해 봐라.’
마계의 인물이든 천계의 인물이든 중간계의 인물이든 누구든 걸리기만 하면 요절을 내 버릴 것이다.
그리고 그자가 가지고 있는 전 차원 유일의 물품을 빼앗을 속셈이었다.
‘그런데 이건 뭐지?’
게스피트가 의아한 표정으로 6개의 물품을 바라보았다.
난생처음 보는 물건들이라 그 용도를 알 수가 없었다.
검은색의 반투명 유리가 2개나 달린 물건.
도대체 어떤 용도로 사용하라고 만든 것인지 도저히 이해 가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난생처음 보는 물건이었고 난생처음 보는 재질로 이루어져 있었다.
[블리운]
길쭉한 부분에 이상한 글자가 써 있었다.
그런데 그 뜻을 해석할 수가 없었다.
플레이어의 권능은 타 차원의 언어와 문자를 이해하게 만들어 준다.
한데 이건 읽을 수는 있는데 그 뜻을 알 수가 없었다.
사실 이건 당연한 일이었다.
마계의 마왕이 어떻게 한국의 저가 선글라스 브랜드의 이름을 알겠는가?
게스피트는 이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초초초초유니크 물품이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건 자신의 컬렉션 룸에 입성할 자격이 있었다.
게스피트가 계속해서 물품들을 살펴봤다.
하지만 그 용도를 짐작하기 힘들었다.
투시 마법으로 속을 꿰뚫어 봐도 알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때였다.
띠리리리!
게임보이라는 이름의 기이한 디자인을 가진 장식품을 살펴보고 있을 때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장식품 중앙에 위치한 검은색 유리가 밝게 빛나며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이거 마법 물품이었어?’
게스피트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게임의 뜻과 보이의 뜻은 안다.
하지만 그 이름이 이 물체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몰랐다.
마력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에 그냥 게임보이라는 이름의 장식품이라고 생각했다.
한데 스스로 빛을 내고 어떤 그림과 글자를 보여 준다.
이런 효과를 낼 수 있는 건 마법 물품뿐이었다.
한데 마력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오오오!”
게스피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마력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마법 물품이라니!
딱 봐도 엄청나게 귀해 보였다.
마계 흑마법사 협회 마족들이 봤다가는 눈이 뒤집혔을 것이다.
게스피트의 눈도 뒤집혔다.
그녀가 바로 마계 흑마법사 협회의 회장이었으니까 말이다.
게스피트는 마법사 특유의 호기심을 가지고 마법 물품을 탐구했다.
그러다 스타트라는 버튼을 발견했다.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시작해 볼까?’
띠리리리!
기이한 소리와 함께 게임이 시작되었다.
게스피트는 장난삼아 버튼들을 눌러 보다 묘한 규칙성을 발견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뿅! 뿅! 뿅!
꽈앙!
-게임 오버
“아씨, 또 죽었어어어어!”
게스피트가 히스테릭한 비명을 터트렸다.
게스피트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이미 조작법은 모두 숙지했다.
게스피트가 다시금 게임에 돌입했다.
게임에 열중하는 그녀의 입은 반쯤 벌어져 침이 흘러나올 것 같았다.
평소 보석처럼 반짝이며 총기 넘치던 칠흑빛 눈동자는 이미 반쯤 풀려 있었다.
거기다 오늘 구입한 다른 아이템의 이름과 사용법을 알아보겠다는 생각 역시 까맣게 잊어버렸다.
게임! 게임! 게임!
그 외에 다른 생각은 모두 우주에 존재하는 안드로메다은하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녀의 머릿속에 가득 찬 생각은 오직 게임뿐이었다.
자신이 훌륭한 게임 폐인의 길로 들어섰다는 사실도 모른 채 게스피트는 게임에 빠져들었다.
* * *
“음, 이건 도대체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도무지 알 수가 없구나.”
백색 무복을 입은 백발의 미녀가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자신의 눈앞에 있는 4개의 물품을 바라보았다.
은거한 이후 그녀의 유일한 취미는 고유 스킬을 통한 쇼핑이었다.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이 쇼핑 중이었다.
그러다 갓 등급 아이템 알람이 떴기에 호기심에 들어가 봤다.
그런데 영 신통치 않았다.
공격력이나 스킬도 없는 그냥 평범한 일반 등급 아이템들이었다.
판매창에 최초 등록된 아이템이 아니었다면 절대 갓 등급이 뜨지 않았을 것이다.
1억 포인트도 채 되지 않는 저렴한 가격이기에 싼 맛에 한번 구매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괜한 호기심에 귀중한 포인트를 낭비한다는 생각이 들자 망설여졌다.
그녀는 본인이 어디까지나 순수한 취미로 쇼핑을 즐긴다고 생각했다.
절, 대, 스스로를 쇼핑에 푹 빠져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살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물품들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단전의 마력이 노도와 같이 흐르며 전신의 혈맥으로 퍼져 나갔다.
마력을 전달받은 그녀의 손가락이 번개보다 빠른 속도로 무림 5대 지법 중 하나에 속하는 백화지법을 펼쳤다.
그건 이성이 아니라 본능의 선택이었다.
머리로 생각을 하고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마력이 반응하고 손가락이 움직였다.
그렇게 4개의 물품을 충동구매해 버렸다.
난생처음 보는 것들뿐이었다.
그녀는 백화신검이라는 별호로 강호를 종횡무진하며 수천 년 전부터 이어져 온 요괴들의 발호를 막아 냈다.
그 와중에 여중제일인과 천하제일인을 넘어 고금제일인이라는 경의적인 칭호를 손에 넣은 무인이 바로 그녀였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눈앞에 있는 물품들은 난생처음 보는 것들뿐이었다.
‘이게 뭘 뜻하는지 모르겠구나.’
기이한 모양의 팔찌에 검은 유리가 박혀 있었다.
그 안에는 난생처음 보는 기이한 숫자가 쓰여 있었다.
플레이어의 권능으로 숫자의 뜻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저 숫자가 도대체 뭘 의미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숫자가 바뀌었다.
“호오.”
그녀의 얼굴에 작은 흥미가 피어올랐다.
‘시간이 흐를수록 숫자가 바뀌는구나.’
그녀는 걸어 다니는 생체 시계였다.
그렇기에 숫자가 바뀌는 규칙성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시간을 세분화해서 알려 주는 기물이로군.’
확실히 특이하기는 했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별다른 쓸모가 없는 물건이었다.
괜한 후회가 밀려들었다.
그래도 일단 구매한 김에 사용을 해 보기로 했다.
그녀는 시간을 알려 주는 팔찌를 찼다.
그리고 옆에 있는 버튼을 이것저것 만져 보았다.
번쩍!
그때 아주 약한 빛무리가 솟구쳤다.
“오! 빛을 내는구나!”
신기했다.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 아이템이 빛을 내다니?
이런 진귀한 물건은 난생처음이었다.
거기다 다른 버튼을 누르자 숫자가 계속해서 바뀌었다.
단순히 시간만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기능이 있었던 것이다.
‘기물은 기물이니 꽤 귀한 것이로구나.’
방금 전 후회의 감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녀는 나머지 물품들도 열심히 탐구하기 시작했다.
“응?”
그러다 한눈에 봐도 명품의 자태를 뽐내는 물건을 발견했다.
길쭉한 네모 모양의 물건.
“XX폰?”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호기심에 이리저리 살펴보다 버튼을 눌렀다.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버튼을 길게 눌렀다.
그 순간 유리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모바일 데이터]
모바일 데이터를 사용하면 정액제 및 무료 서비스가 아닌 경우 데이터 이용 요금이 부과됩니다.
-모바일 데이터를 사용하시겠습니까?
‘무슨 뜻인지 모르겠구나.’
읽을 수는 있어도 뜻을 알 수가 없었다.
일단 예를 눌렀다.
-네트워크 등록에 실패하셨습니다.
“으흠.”
고운 이마가 일그러졌다.
그녀는 일단 다른 아이콘들을 클릭해 보았다.
그녀도 판매와 구매를 고유 스킬로 가지고 있는 상점 사용자였고, 덕분에 터치가 익숙했다.
아이콘을 누르자 유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오프라인 상태입니다.
절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뭘 좀 해 보려고만 하면 안 된단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이것저것 눌러 보았다.
뜻이 이해되는 글도 있었고 아닌 글도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어머!”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유리에 자신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아이템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거울로 변하는 마법이 걸려 있는 건가?’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데 마법을 시전하는 게 신기하기는 했지만 그게 다였다.
‘이건 뭐지?’
자신의 얼굴이 비친 유리 아래에 무언가가 있었다.
[보정 효과]
-없음, 눈 확대, 슬림, 피부 변경, 박피, 주름 개선, 잡티 제거.
‘이게 무슨 뜻이지?’
의아한 마음에 눈 확대를 눌러 보았다.
그 순간 화면에 비친 자신의 눈이 커졌다.
‘더 예뻐진 것 같은데?’
다른 버튼들을 눌러 봤다.
보정 효과가 들어간 스마트폰 앱이 그녀의 얼굴에 소위 말하는 포토샵 효과를 넣기 시작했다.
그러다…….
찰칵!
실수로 중앙에 있던 카메라 버튼이 눌리며 그대로 그녀의 얼굴을 찍어 버렸다.
얼떨결에 셀카를 찍게 된 고금제일인 백화신검의 뺨이 붉게 달아올랐다.
뭔가 자신이 아닌 것 같았다.
가슴이 두근거리며 묘한 고양감이 전신을 휩쓸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현성이 아니었다면 평생 봉인되었을 백화신검의 셀카 본능이 깨어났다.
찰칵! 찰칵!
가식이 한가득 담겨 있는 자뻑 충만 셀카의 향연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