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권.첫 판매 (3/225)

┃첫 판매

현성이 멍한 눈빛으로 고시원 천장을 바라보았다.

멀쩡하다는 말과 함께 119 구급대원들을 뿌리치고 고시원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결코 멀쩡하지 않았다.

아니, 멀쩡할 수가 없었다.

상의를 벗고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빨래판 같은 복근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 빨래판 같은 복근을 감싸고 있는 피부에는 검버섯이 잔뜩 피어 있었다.

‘미친.’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신의 남은 수명이 겨우 1년 반도 되지 않는다니?

스킬의 장인 스킬북을 다시 판매해 포인트로 바꾼다고 해도 비약 구매와 일반 등급 스킬북 습득으로 써 버린 포인트는 어쩔 수가 없었다.

이미 먹어 버린 비약과 익혀 버린 스킬을 어찌 다시 꺼내 팔 것인가?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판매 수수료 20% 때문에 현성의 남은 수명은 무조건 20%가 줄어들어 버린다.

‘포인트를 늘려야 해.’

이 모습으로는 가족들에게 갈 수도 없고 플레이어 등록을 할 수도 없다.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했다.

자신이 본래 나이로 되돌아가야 했다.

‘1년 반이라는 시간이 있어.’

이를 악물었다.

포인트를 모두 다 써 버리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이 낡고 비좁은 고시원에서 생을 마감할 뻔했다.

‘판매.’

판매만이 살길이었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은 생각해 둬야 했다.

‘포인트를 늘리기 힘들다고 판단되면 최대한 돈을 벌어서 어머니에게 전해 드린다.’

어머니에게는 원양어선이라도 탄다고 둘러댄 후 새로운 신분증을 발급받아 플레이어 등록을 한 뒤에 스킬의 장인 아이템을 팔고 사냥을 해서 돈을 벌어 전해 드리면 된다.

최고령 플레이어의 등장에 엄청난 이슈가 되겠지만 무슨 상관인가?

병으로 고통받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뒷수발로 고통받는 어머니와 누나.

그 세 사람의 인생이 잠시라도 행복해야 했다.

문제는 정말 잠시라는 점이다.

1년 반의 시간 동안 구매 등급을 전설 아이템인 엘릭서를 구할 정도로 많이 올리는 건 불가능하다.

설사 구매 등급을 올렸다고 해도 엘릭서를 구입할 포인트는 또 언제 모을 것인가?

현성이 새로운 신분으로 플레이어 등록을 한다고 해도 거액의 계약금을 받거나 길드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확률은 상당히 낮았다.

너무 고령이었으니까.

계약금은 받는다고 해도 소액일 수밖에 없었다.

길드의 지원을 받아 봐야 1년 반의 시간 동안 얼마나 강해질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솔로잉을 뛰는 것도 만만치가 않았다.

현성은 더 이상 포인트를 이용해 강해질 수 없다.

저레벨 구간에서 엄청난 광렙을 하겠지만 중저 레벨 구간으로 이동하기만 해도 그저 많은 스킬을 사용하고 조금 더 강한 플레이어에 불과했다.

사냥 도중 수십억짜리 아이템이나 스킬북을 습득할 확률은 더더욱 낮았다.

아버지가 완치되지 않으면 가족들은 다시금 가난이라는 수렁이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불치병 치료제인 엘릭서를 구입해 예전처럼 행복한 가정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엄청난 고소득을 올리는 랭커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1년 반의 시간 동안 그런 성과를 이루는 것은 불가능했다.

‘어떻게든 포인트를 늘려야 해.’

지금의 수명으로는 답이 없다.

수명을 더 늘려야 했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기는 했지만 현성은 살고 싶었다.

스물일곱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시한부 판정을 받은 상태로 삶을 마감하고 싶지 않았다.

‘방법은 그것뿐인가?’

고유 스킬인 ‘판매’를 이용해 아이템을 파는 것.

그럼 포인트를 벌 수 있다.

하지만 현성에게는 아이템이 없었다.

거기다 남은 시간이 1년 반도 채 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본래 계획은 고레벨 플레이어가 된 후 거액의 연봉을 아이템으로 바꿔 판매해 포인트를 모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계획은 무너졌다.

‘정석적인 아이템 판매로는 답이 없어.’

현성이 고시원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온갖 잡동사니가 쏟아져 나왔다.

예전에 사용하던 구형 스마트폰, 휴대용 게임기, 전역증, 군대 있을 때 사용하던 방수 시계 등등.

대학교를 다닐 때 사용했던 물품들이었다.

‘이게 팔릴까?’

아무런 능력도 없는 물품이다.

소위 말하는 일반 등급.

하지만 다른 일반 등급 아이템과 다르게 몬스터 사냥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거잖아.’

밑져야 본전이었다.

일단 그나마 깔끔해 보이는 휴대용 게임기를 들어 올렸다.

상당히 오래전에 구입한 구형이었다.

‘건전지가 어디 있지? 아, 여기 있다.’

달칵!

일단 새 건전지를 끼웠다.

띠리리리!

작은 소음과 함께 화면에 불이 들어왔다.

대전 격투 게임을 비롯해 추억의 오락실 게임 목록이 현성을 반겨 주었다.

‘일단은 잘 작동하는 것 같은데.’

테스트로 가볍게 게임을 플레이해 봤다.

상당히 잘 돌아갔다.

‘과연 가능할까?’

몬스터의 사체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사냥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반 등급 아이템.

아니, 판매창이 이 게임기를 아이템으로 쳐주기는 할지 의문이었다.

불안하긴 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상품 테스트를 끝낸 현성이 판매 물품 창을 눌렀다.

창이 확대되며 판매 목록이 올라왔다.

일단 등록되어 있던 스킬의 장인 스킬북 판매를 취소했다.

다행히 등록 취소에는 수수료가 없었다.

‘일단 한번 해 보자.’

-판매 물품을 등록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예를 눌렀다.

-판매 물품을 등록 창에 올려 주십시오. 물품이 판매되면 판매 금액의 20%를 수수료로 차감합니다.

“가능할까?”

현성이 비어 있는 판매창에 게임기를 넣었다.

그 순간 게임기가 방에서 말끔하게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게임기 모양의 작은 아이콘으로 변했다.

“성공했어.”

누가 살지 의문이 가기는 했지만 다행히 판매창에 등록하는 것은 가능했다.

-판매 가격을 올려 주십시오.

[XXX사의 휴대용 게임기 - 일반 등급]

-8기가바이트의 용량을 가지고 있다.

-현재 9,876개의 게임이 들어 있다.

“음…….”

얼마에 판매를 해야 할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인터넷 중고 장터에 올리면 끽해야 2~3만 원 정도 받을 사양이었다.

고심에 고심이 이어졌다.

“지금은 도박밖에는 방법이 없어.”

혹시 모르는 일이니 고가로 올려야 했다.

판매가 되지 않으면 나중에 수정하면 그만이다.

판매 취소를 할 때는 수수료가 들지 않으니까 말이다.

현성이 굳은 표정으로 판매 가격을 입력했다.

-판매가 : 99,999,999포인트

무려 스킬의 장인 스킬북 가격의 6분의 1이다.

1,157일이 넘는 수명이다.

누가 이딴 구형 게임기를 1,157일 치 수명을 주고 살까 싶기는 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올렸다.

“그래도 게임이 1만 개 가까이 들어 있잖아.”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현성이 미친 척하고 등록을 눌렀다.

“혹시 너무 비싸서 안 올라가는 건 아니겠지?”

-판매 물품 등록이 완료되었습니다.

“휴우!”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현성은 내친김에 구형 스마트폰과 구형 CD플레이어, 싸구려 선글라스, 태양열 충전 방수 시계 등등 원룸에 있던 잡동사니들을 모조리 올렸다.

가격은 모두 99,999,999포인트로 통일했다.

순식간에 10개의 판매창이 가득 찼다.

이제는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 * *

여마왕 게스피트가 요염한 자세로 화려한 옥좌에 앉아 구매창을 구경했다.

아름다운 각선미를 자랑하는 다리와 잘록한 허리 그리고 풍만한 가슴과 골반.

세상의 미를 모두 모아 놓은 것 같은 얼굴과 폭포수처럼 흩어져 있는 진한 흑발.

결정적으로 한번 보면 누구나 빠져들 수밖에 없는 칠흑 같은 눈동자.

하나 아름다운 외모와 다르게 그녀는 중간계와 천계에서 어둠의 학살자, 죽음의 미소, 흑발의 광녀 등등의 다양한 별칭으로 불리며 엄청난 악명을 떨치고 있는 마왕 중에 마왕이었다.

‘역시 매일 똑같은 물품만 올라오네.’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판매자 놈들이 어찌나 단합을 잘하는지 쓸 만한 아이템이나 스킬북, 비약 같은 건 모조리 가격이 똑같았다.

‘서로 경쟁심을 가지고 가끔 치킨 게임도 하고 그래야 시장경제가 살아나는 법이거늘.’

게스피트가 안타깝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하지만 그녀 역시도 자신이 판매 물품으로 등록한 전설 등급 아이템 마왕의 지팡이 가격을 절대 내릴 생각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 정도면 엄청나게 싼 거라고 생각했다.

게스피트는 도무지 변할 생각을 하지 않은 구매창에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유니크 물품 구매창으로 시선을 옮겼다.

유니크 물품 구매창은 등록된 아이템의 개수가 3자리 미만인 물품들만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특별한 건 없었다.

모두 가지고 있는 물품들뿐이었다.

게스피트는 희귀 물품부터 서서히 위 등급으로 시선을 옮기기 시작했다.

“응?”

그러다 화들짝 놀랐다.

갓 등급의 아이템 알람이 떴기 때문이다.

“어머, 이건 꼭 사야 해!”

게스피트의 눈이 번뜩였다.

갓 등급은 판매창에 최초로 등록된 아이템만이 올라갈 수 있는 등급이었다.

우주에는 일일 셀 수도 없는 수많은 차원이 존재한다.

당연히 각 차원에는 별의별 물건들이 다 존재했다.

게스피트는 수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고유 스킬 구매를 통해 각 차원에 존재하는 물품들을 수집했다.

넘치는 수집 욕구 덕에 게스피트의 마왕성 컬렉션 룸에는 마계에서 볼 수 없는 타 차원의 물품들이 넘쳐 났다.

하지만 방금 나타난 물품은 수천 년의 삶을 살아온 게스피트로서도 처음 보는 유니크한 아이템이었다.

판매창에 최초로 등록된 아이템.

그게 게스피트의 수집 욕구를 자극했다.

“싸다!”

무려 10개의 아이템이 올라와 있었는데 엄청나게 쌌다.

1개당 고작 99,999,999포인트밖에 하지 않았다.

1억 포인트도 하지 않는 저렴한 가격인 것이다.

난생처음 보는 진귀한 물건들이 고작 1억 포인트도 하지 않다니?

마계의 대표적인 쇼퍼 홀릭, 게스피트의 눈이 돌아갔다.

아이템의 공격력이나 방어력이 어떤지, 어떤 스텟을 올려 주는지, 어떤 부가 스킬이 있는지.

눈이 채 확인하기도 전에 구매 버튼을 눌러 버렸다.

그녀의 손은 눈보다 빨랐다.

* * *

-등록된 물품이 판매되었습니다.

-등록된 물품이 판매되었습니다.

-등록된 물품이 판매되었습니다.

……후략……

“응?”

판매 물품을 등록하고 이게 과연 팔릴까 하고 고민하던 현성의 귓가에 연속적으로 알림음이 들려왔다.

“상태창!”

재빨리 상태창을 호출했다. 그리고 판매창을 눌렀다.

-등록된 물품이 모두 판매되었습니다. 판매 대금을 수령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현성이 재빨리 예를 눌렀다.

-총 판매금 999,999,990포인트, 수수료 199,999,998포인트를 제외한 799,999,992포인트가 입금되었습니다.

“미친!”

현성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이런 걸 누가 살까 싶었던 물품들이다.

구매창에 있는 휘황찬란한 초고가의 희귀 등급 아이템에 비하면 쓰레기라고 칭해도 될 정도였다.

한데 팔렸다.

그것도 순식간에 완판되었다.

799,999,992포인트.

9,259일.

대략 25년 치에 해당하는 수명이 추가로 들어왔다.

“살았다.”

현성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떨어졌다.

그와 함께 실시간으로 변화가 느껴졌다.

검버섯이 퍼져 있던 피부가 팽팽하게 당겨지기 시작했다.

아직 주름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방금 전에 비하면 확실히 달라졌다.

스마트폰 앱을 활용해 자신의 얼굴을 바라봤다.

6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중년인이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확실해.’

포인트는 자신의 수명이었다.

방금 판매로 1년 반도 채 되지 않았던 수명이 26년으로 늘어났다.

‘부족해.’

아직 한참 부족했다.

본래 나이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아직 더 많은 포인트가 필요했다.

하지만 방금 전과 같은 초조함은 없었다.

‘팔렸어.’

그냥 팔린 것도 아니고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완판되었다.

물론 ‘왜?’라는 의문이 들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수명이 남아도는 쇼핑 중독자가 산 거든 누가 실수로 구매버튼을 눌러서 산 거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잃어버린 포인트를 복구할 수 있어.’

아니, 그걸 넘어서 더 많은 포인트를 얻어 지금보다 더 강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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