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무슨 말을 들은 건지 모르겠다. 이델라가 어떻게 알았지?
그보다, 충분히 고생했다는 건 뭐야? 에드워드랑 결혼하면 더 고생할 거라는 소린가?
“보통 왕자랑 결혼하는 것도 고생이라고 말해?”
“전하께서도 왕자님이시잖아요!”
정확히는 공주의 아들이었다. 아직도 습관처럼 왕자라고 불리고 있긴 한데.
이델라는 진지하게 설득했다.
“게다가 전하께서는 보통 왕자님도 아니시잖아요. 셔벗처럼 크고 부유한 국가의 후계자이신걸요! 조건으로 따지면 전하보다 더 좋은 분이 어디 있겠어요? 게다가 전하께서는 이렇게 멋지시고, 인품도 훌륭하시잖아요.”
웃기려고 하는 얘기일까? 이델라는 진심 같았다.
“인물로 에드워드랑 겨루라고?”
“사실 전 결혼에 상대방의 외모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가 아닐까 싶은데요!”
이델라가 태도를 바꿨다. 방금 내 외모를 칭찬하지 않았나?
“에드워드는 미셸 에이드도 잡은 기사잖아.”
“그건 훌륭하지만요, 결혼 상대로는 실력보다 인품이 더 중요하니까요!”
“동맹을 돕기 위해 바로 달려올 만큼 신의 있잖아.”
이델라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니까요. 그분이 그러실 분이 아닌데 왜 그러셨을까요! 전하를 손에 넣을 기회라고 직감하시지 않았을까요?”
에드워드의 평판은 왜 이럴까?
보통 나쁜 짓을 열 번 해도 착한 짓을 한 번 하면 ‘이 사람은 사실 좋은 사람일지도’ 하지 않나?
셔벗 성을 구하면서 에드워드는 이델라의 목숨도 구했다. 악행 백 번도 용서해 줄 만한 선행 같은데 이델라의 의견은 다른 모양이다.
“걔가 왜 그러겠어?”
황당해서 되묻자 이델라는 눈이 더욱 커져서 나를 쳐다봤다.
“……전하, 에드워드 전하의 이상형이 어떻게 된다고 하셨죠?”
그녀가 갑자기 물었다.
“엉뚱한 사람?”
“그렇군요! ……왜 그러실까요?”
생각해 보니 이델라는 에드워드를 경계할 만했다. 에드워드를 그녀를 이용한 적 있었다.
사실 에드워드는 아무나 이용하긴 하지만, 직접 이용당한 처지에서 ‘저 사람은 원래 저렇구나’ 하기도 힘들 것이다.
“원래 에드워드는 계산을 안 해. 조건보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가 더 중요하거든. 걔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이 별로 없어서, 아니, 사람이라기보다……. 걔 인생에선 걔 자신도 별로 중요하지 않을걸?”
그래서 애가 자기 돌볼 줄을 모른다. 말하다 보니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와아…….”
불쌍해할 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이델라의 표정은 점점 안 좋아졌다. 그녀가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전하 이상형은 어떻게 되세요?”
내 이상형?
“생각해 본 적 없는데.”
“그렇군요! 굳이 비유하자면요?”
꼭 대답해야 하는 모양이다. 무슨 함정인가?
이델라도 나도 난처해하면서 서로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내가 여기서 잘못 대답하면 뭐가 되는 거지?
에드워드는 사방에 티를 내고 다니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난 아니었다. 아직 고민해 보겠다고 말했을 뿐 결정하지도 않았다.
대답을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드워드를 닮기는커녕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동물이라면…….
“유니콘?”
“아, 안 돼…….”
이델라가 하얗게 질려서 알렉스를 쳐다봤다.
알렉스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전하께서는……. 미남을 좋아하시는군요.”
어?
“죄송합니다. 저는……. 제가 더 정진을…….”
어?
이델라가 비틀거리는 알렉스를 부축해서 나가자, 방에는 로웰만 남았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머리에서 손을 떼고 쓴웃음을 지으며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전하께서는 언제부터 에드워드 전하가 형제가 아니라는 걸 알고 계셨어요?”
이상한 질문이었다. 지금 해야 할 질문인지도 잘 모르겠다.
난 에드워드가 어디까지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는지 궁금한데…….
하지만 로웰이 허튼 질문을 할 사람도 아니어서 난 솔직히 대답했다.
“처음부터.”
이곳에서 눈을 떴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에드워드는 내가 이곳에서 가장 먼저 본 사람이었다. 무서울 정도로 예쁜 어린애가 눈앞에 있어서, 이곳이 정말 낯선 곳이라고 느꼈던 기억이 난다.
“아, 처음부터…….”
로웰은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웃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전하께는 에드워드 전하가 기준이었겠네요. 미인계가 안 통하는 이유가 있었어요.”
나한테 그런 걸 쓴 사람이 있었나?
“제가 왜 눈치를 못 챘는지 모르겠어요. 전하께서 그분께 모든 신경을 기울이시는 건 알고 있었는데요. 선입견에 눈이 멀었나…….”
로웰은 자책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나도 공격하는 이상한 상황이었다. 적어도 난 들으면서 견딜 수 없는 기분이 됐다.
하지만 그건 내 기분이었고, 로웰은 웃으며 물었다.
“그분의 어떤 면이 좋으셨어요?”
“…….”
난 변명하려다 말았다.
“좋아하는 것처럼 보여?”
“네.”
역시 그렇게 보이는 모양이다. 연애 레벨로 따지면 로웰은 나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어서 숨기는 것 자체가 부질없었다.
“너도 내가 이상한 선택을 하는 것 같아?”
모든 사람이 소식을 접하자마자 한달음에 달려와 뜯어말리고 있다.
에드워드의 목적이 나를 몰아가는 거였다면 방법을 잘못 잡았다. 오히려 시험에 들게 하고 있다.
“아니요. 그렇진 않아요.”
뜻밖에 로웰이 말했다.
“에드워드 고발하러 온 거 아니었어?”
“그랬지만요. 전하께서 그분을 좋아하시잖아요.”
“…….”
로웰은 나를 잠시 보더니 웃었다.
“전 전하께서 원하시는 건 말리지 못하니까요. 그렇더라고요. 전하께서 필요로 하는 건 뭐든 드리고 싶어요. 그분이 전하께 필요하다면 어쩔 수 없죠.”
산뜻한 상황 정리여서 난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에드워드를 필요로 하냐면, 물론 그렇다.
사실 난 에드워드가 어이없는 짓을 하며 돌아다니는 것도 별로 화나지 않았다. 좀 기가 막히고 왜 저러나 싶을 뿐이었다.
출전 준비는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더 중요한 일이 있잖아.
자기 목숨이 걸려 있는데 신경도 안 쓰는 것 같다. 헛짓거리 하다가 부상이라도 당해서 돌아오면 그건 화날 것 같은데…….
“그보다 전하, 저 상단의 셔벗 지부를 맡게 되었는데요. 낙하산이라 직함은 없지만 그럴듯한 걸로 곧 하나 만들려고요. 그러고 나면 전하 뒤에 세워 두셔도 볼만할 거예요.”
로웰이 화제를 돌렸다.
볼만한 걸로는 이미 충분하지 않나? 로웰은 내가 미셸에게 측근들을 외모로 뽑는 인간 취급 받은 건 모르는 모양이다.
아무튼 잘된 일이었다.
“가업을 잇는 거야?”
“부업이죠. 본업은 전하의 비서니까요.”
로웰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 말은 로웰이 내 곁에 남을 거라는 뜻이었다.
그가 알렉스처럼 무릎 꿇고 맹세를 한 것도 아닌데 비슷한 약속을 받은 기분이었다.
로웰이 나를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아, 저 정말 충신이 되어 버렸나 봐요. 제가 이런 사람이 아닌데 말이에요.”
“충신이 나쁜 거야?”
“아니요. 나쁘진 않은 것 같아요. 그게 문제여서요. 제가 누구의 총애를 바라지 않고 움직이는 사람이 아닌데요.”
“총애해 줄게.”
난 약속했다.
로웰과 몽블랑 상단은 공신이었다. 이쯤 공을 세우면 사실 어떤 대접을 해 줘도 괜찮기 마련이었다.
왕족들이 신하를 어떻게 총애하는지는 나도 모르지만.
로웰이 총애를 등에 업고 이상한 짓을 할 사람도 아니었다.
그가 활짝 웃었다.
“아, 정말……. 이상하네요. 나쁘지 않아요. 좋네요.”
난 때마침 그가 후계자의 이름을 등에 업고 할 수도 있는 일이 떠오르긴 했지만 말하지 않았다.
로웰은 공사가 분명한 성격이어서 일할 때는 연애를 안 하는 듯했다. 내 앞에서 누군가에게 접근하는 모습은 본 적 없었다.
왕족의 비서라는 건 할 일이 원체 많은 직책이기도 했다.
그게 아니라도 그가 내 이름에 먹칠할 일을 할 것 같진 않았다.
로웰은 방을 나가기 전 내게 말했다.
“반지는 걱정하지 마세요. 마음에 들어 하실 만한 걸로 준비할게요. 제가 책임자니까요. 전하께야 뭐든 잘 어울리겠지만요.”
“…….”
어?
로웰이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상한 얘기 하느라 정작 가장 중요한 변명을 못 하지 않았나? 내가 말한 이상한 선택은 결혼이 아니었다.
에드워드를 좋아하는 게 이상하지 않으냐는 거였는데…….
하지만 로웰은 이미 납득하고 나갔다.
에드워드가 열심히 때고 있는 굴뚝에 내가 장작을 던지는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