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과 1-272화 (272/293)
  • 272.

    난 이성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아무리 봐도 이상한 소식이었다. 에드워드는 성안에 사는 애다.

    왕은 병석에 누웠고 나는 외국에 나가 있다. 왕국에 혼자 남은 왕자를 노리고 습격이 날아드는 건 알았다. 하지만 성벽 안에서 습격당한다고 왕자가 실종되진 않는다.

    에드워드는 자기를 따라다니는 기사들이 장식용 병풍이라도 된다는 것처럼 말했지만, 정말 그렇진 않을 것이다.

    적어도 도움 요청을 하러 달려갈 순 있을 거잖아.

    에드워드가 수도 성벽 안에서 습격당했다면 내게 닿아야 할 소식은 실종이 아니라 부상이어야 했다. 그보다 더 심한 상태라고 해도, 비스코티의 중신들은 내게 부상이라고만 알리고 싶어 할 것이다…….

    실종은 뜬금없다.

    도트는 병사를 통해 들어온 급보라고 말했다. 발신자는 파이 공작이었다.

    “어떻게 하죠, 왕자님?”

    나는 나보다 더 안절부절못하는 도트를 진정시켰다.

    “좀 더 자세한 상황을 알아봐. 상황이 이상하잖아. 전달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겠지.”

    오류는 없었다.

    며칠을 기다려, 나는 더 자세한 설명이 담긴 서신을 받아 볼 수 있었다.

    -에드워드 전하께서는 행방이 묘연해진 상황입니다. 북방의 이민족들은 왕국에 교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명예와 존중을 알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그랬다면 전하를 포로로 잡고 왕국과 협상하려 했겠지요. 전하께서 어떤 상황에 처해 계시는지 알 방도가 없으니, 의견도 모이지 않습니다. 연일 대전에서는 여러 파벌로 나뉘어 다투고 있는 형편입니다. 전하를 구출하러 가는 것도, 사자를 보내는 것도 제게는 권한이 없습니다. 조프리 전하, 귀환하십시오. 이미 제가 월권을 휘두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후일 기꺼이 처벌받겠습니다.

    “…….”

    파이 공작은 왕족이었다. 왕성에 억류되어 있었지만, 신분이 신분이라 그를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부재중이다. 파이 공작이 일선에 나서도 아무도 막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비스코티 궁인들이 그렇게 강단 있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 아닌가.

    이미 반란을 도모한 적 있는 사람에게 왕권을 쥐여 주고 있다.

    왕성에 모인 귀족들의 면면을 떠올렸다. 에드워드를 구출하러 갈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에드워드를 구한다면 공을 세우는 게 되겠지만, 북방 국경 분쟁은 비스코티의 오랜 골칫거리였다. 바움쿠헨 백작과 에드워드가 명성을 얻은 것도 분쟁의 승리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두 사람 외에는 모두 실패했다는 소리다.

    에드워드를 구하는 건 어렵고, 왕성에 남아 있는 건 쉽다.

    에드워드가 죽어 주기라도 하면 권력은 왕성의 파이 공작이 쥐게 된다. 남아서 그의 눈치를 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귀족들이 생각할 만한 것들이 차례로 떠올랐다.

    왕이 어떻게 됐는지 공작이 알던가?

    그는 왕의 형제였다. 사이가 좋았는지는 모르겠다. 상태를 짐작은 하고 있겠지만, 왕자들이 왕의 죽음도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면 좋아하진 않을 것이다.

    바움쿠헨 백작이 말했다.

    “좋지 않군요.”

    “나도 알아.”

    “아니요. 북방 이민족들이 에드워드 전하를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전하는 모르실 겁니다. 에드워드 전하께서 잡혔다면 그자들이 자랑하지 않을 리 없습니다. 제 말은 비스코티의 움직임이 좋지 않다는 겁니다.”

    에드워드가 잡혔다면, 오히려 그의 행방은 쉽게 알려졌을 거라는 뜻이다.

    “에드워드는 무사하다는 거야?”

    “무사하시더라도 곧 안 그렇게 되겠죠. 행방이 묘연하다는 게 보급도 척후도 없이 고립됐다는 뜻 아닙니까? 그런데 후방에서 지원이 없다고요? 멀쩡한 군대도 못 버틸 겁니다.”

    충돌이 있던 군대라면 더더욱 버틸 수 없다.

    에드워드가 사라진 건 친정을 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국경까지 나가서 자기 자신을 별동대 삼아 들이받았기 때문이다.

    이 자식은 왜 자기 몸을 안 아끼지?

    “왜 그렇게 조급하게 움직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와 같이 국경에 있을 때와 달라진 구석이 없지 않습니까? 그땐 전하께서 원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바움쿠헨 백작이 말했다.

    에드워드는 더 이상 나와 경쟁할 필요가 없다. 그가 공명심을 탐하는 성격이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았다.

    그가 조급해했다면. 평소라면 하지 않을 바보 같은 선택을 했다면, 그 이유는…….

    ‘내가 갈게. 기다려.’

    주먹으로 벽을 내리쳤다. 돌벽은 꿈쩍도 안 했고 내 손만 아팠다.

    다시 내리치기 전에 알렉스에게 손목이 잡혔다. 팔을 빼내려고 해도 움직이지 않았다.

    “놔.”

    “전하.”

    알렉스는 말을 듣지 않았다.

    “안 할 테니까 놔.”

    벽을 때려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그냥 화풀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난 충분히 냉정했다.

    “돌아가자.”

    “안 돼요, 전하.”

    그레이가 말했다. 그가 반박할 줄 알았다.

    “왜?”

    난 알면서 물었다.

    “비스코티 분위기를 아시잖아요. 좀 더 상황을 지켜본 뒤에…….”

    “언제까지? 에드워드에게 무슨 일이 생길 때까지?”

    그레이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에게 할 말이 떨어진 건 아니었다.

    “아니요. 전하의 위치가 확정될 때까지요. ……적어도 이 셔벗에서.”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 아무 보호도 받지 못할 상황에서 비스코티로 가지 말라는 소리다.

    하지만 그게 언제지?

    셔벗의 분위기는 좋았다. 셔벗 왕은 결과에 관계없이 비스코티와 협약을 맺어 양국의 우정을 증명하기로 했고, 내겐 왕을 도운 대가를 따로 지불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시험이 끝난 뒤에.

    셔벗이 안정을 찾은 뒤에 나를 챙기겠다는 소리다.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땐 급할 게 없었고, 난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세 번째 시험을 치르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고?

    너무 늦다.

    난 이 상태로 웃으면서 셔벗 귀족들과 만날 자신은 없었다.

    “왕성이 비었어.”

    돌아가려면 지금이었다.

    내 입국을 막을 만한 사람이라면 파이 공작일 텐데, 내겐 그의 인장이 찍힌 친서가 있었다.

    에드워드를 구해야 했다. 그레이 머리가 잘도 돌아간다는 건 안다. 그래도 에드워드가 실종된 이유는 모를 것이다.

    파이 공작은 자신이 국정을 주관하고 있다는 듯 말했다. 그가 에드워드를 구하겠다는 결정을 내려도 문제였다.

    북방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낸 지휘관은 둘뿐이었는데, 그중 한 명은 행방을 알 수 없고 다른 한 명은 내 곁에 있었다.

    바움쿠헨 백작이 말했다.

    “예, 돌아가셔야죠. 왕성은 비었고,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분은 전하뿐이니까요.”

    뜻밖의 말이었다. 난 놀라서 그를 쳐다봤다.

    그레이는 신경이 곤두선 듯했다.

    “전하께 위험을 자처하란 말씀이십니까?”

    “각하야말로 무언가 착각하시는 게 아닙니까? 믿을 수 없는 자들이 어떤 음해를 했든, 전하께서는 비스코티의 왕자이십니다.”

    백작은 그렇게 말하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기 말에 자기가 놀란 듯했다.

    “예. 현재 비스코티 군에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분은 전하뿐이십니다.”

    백작이 말했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지 아시는 겁니까?”

    “예. 뭐 제가 미쳤겠습니까? 전하, 알렉스가 전하를 호위할 겁니다. 기사들을 이끌고 가장 빠른 길로 출발하십시오. 저희가 뒤따르겠습니다.”

    백작은 비스코티 왕성을 기습하기라도 하라는 듯이 말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도 작전에는 찬성이었다.

    “알렉.”

    “예, 전하.”

    알렉스는 바로 달려 나갔다. 기사들을 준비시킬 것이다.

    “전하!”

    그레이가 말했다. 그러나 이견을 가진 사람은 그뿐이었다. 로웰은 이델라와 무슨 말을 하더니 말했다.

    “저희는 남을게요. 승마엔 자신도 없고, 걸음만 늦어질 테니까요. 각하께서도 그러시는 게 낫지 않겠어요?”

    그가 그레이에게 제안했다.

    “전하!”

    그레이가 다시 불렀다.

    좋은 생각이다.

    “그래. 그게 낫겠네. 너 말 잘 못 타잖아.”

    “전하께서 그걸 어떻게 아세요?”

    “내가 왜 몰라?”

    그레이가 말 위에서 두 시간은 버틸 수 있던가?

    그가 말 타는 꼴을 별로 못 봤으니 아마 힘들 것이다. 그레이는 자기 자랑할 기회를 놓치지 않는 성격이어서 잘하는 건 남들도 다 알 수 있게 보여 줬다.

    난 셔벗 왕에게 귀국하겠다고 알렸다.

    비스코티의 혼란을 알릴 필요는 없었다. 셔벗 왕은 에드워드의 실종을 이미 아는 듯했다.

    난 그에게 관문을 통과할 수 있는 증표 하나만 달라고 부탁했다.

    셔벗 왕은 수락했다.

    “다른 도움은 필요 없니?”

    “예.”

    “셔벗의 기사들은 날래고 용맹하니 도움이 될 텐데.”

    동맹에게 병사들을 지원해 주겠다는 제안이었다.

    지금 비스코티에 셔벗군을 끌어들이라고?

    셔벗군을 이끌고 성벽 밖에 서 있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 혼자 가도 들여보내 줄지 모를 지경인데, 비스코티에서 잘도 환영하겠다.

    비스코티는 엉망이었다. 셔벗군이 입성만 하면 비스코티 왕성은 셔벗 왕의 차지가 되지 않을까.

    얼마 전까지 그 나라에 살던 내 감상이니 믿어도 좋았다. 파이 공작이 괜히 왕성을 포위하느니 했던 게 아니다. 그런 게 가능할 만큼 나라가 엉망이다.

    물론 이런 소리를 할 순 없었다.

    “괜찮습니다.”

    “그러니?”

    셔벗 왕은 걱정스러운 얼굴이었으나 더 제안하지는 않았다.

    침묵하는 표정이 왕비님과 닮았다고 느꼈다.

    그 길로 알렉스와 합류했다. 기사단은 전원 무장한 채 준비하고 있었다.

    외성을 벗어난 뒤로는 미친 듯이 달렸다. 이틀 걸릴 거리를 하루 만에 주파하는 식이었다. 오래 안장에 앉아 있던 엉덩이와 허벅지엔 감각이 없었다.

    셔벗 왕은 비스코티 국경에서 셔벗 수도까지 몇 개의 큰 성을 거쳐 돌아왔다. 왕의 행렬이 지나려면 평탄하고 넓은 도로가 필요했다.

    비스코티로 다시 돌아가는 길은 반대였다.

    거의 직선 행로를 찾아서 우리는 산길을 주파했다.

    이상을 느낀 건 협로를 통과할 때였다.

    좁은 길을 지나느라 기사들은 앞뒤로 긴 행렬을 유지해야 했다. 말이 피워 내는 흙먼지 탓에 눈이 뻑뻑했다.

    눈을 감았다 뜰 때였다.

    “저기 조프리 왕자가 있다! 얼굴이 하얀 어린놈이다!”

    “와아아아!”

    방향을 알 수 없는 곳에서 함성이 들리더니 말의 비명이 협곡을 덮었다.

    앞에서 달리던 말이 뒤엉키고 쓰러지면서 나도 중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

    “전하!”

    알렉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가 내 말의 고삐를 쥐고 있었다. 그 힘이 억지로 말을 쓰러지지 않게 지탱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말이 몸부림을 쳤다.

    활이 말을 쐈다. 상황을 인지하기 무섭게 난 바닥으로 떨어졌다. 알렉스가 나를 따라 뛰어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전하! 걸으실 수 있겠습니까? 이쪽으로!”

    억센 팔이 나를 잡아챘다.

    눈에 땀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풀잎에 뺨이 베이고, 머리카락이 눈을 찔렀다. 팔다리가 얼얼하고 목이 메었다. 알렉스에게 이끌려 정신없이 달렸다.

    뒤에선 비명이 멀어지고, 몇몇의 고함 소리만 들렸다. 내게 팔을 뻗는 기사를 알렉스가 베어 넘겼다. 기사의 얼굴이 붉은 선이 그어지더니 그는 뒤로 고꾸라져 죽었다.

    “돌아보지 마십시오!”

    난 알렉스의 말을 따랐다. 앞만 보고 달렸다.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은 게 기적이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

    무성한 나무가 사라지고 앞이 트였다.

    절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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