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과 1-219화 (219/293)
  • 219.

    “전부 몇 명이야?”

    “앗. 수는 모르겠어요, 왕자님. 하지만 방에 다 들어오기 힘들 것 같아 복도를 비워 놓긴 했어요!”

    도트가 말했다.

    복도까지 찬다고?

    기자는 새로 생긴 직업 중 가장 인기 많은 직업일 게 분명했다. 수입이 괜찮나?

    응접실 안 공간이 얼마 남지 않자, 문 앞은 병목 현상이 일어났다. 소리 없는 암투 끝에 몇 명이 더 들어왔다.

    “악!”

    소리가 아예 없진 않았다.

    비명을 지른 사람을 무심코 봤다가, 난 그레이를 건드렸다. 나 기숙사장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보이는 것 같은데.

    그레이는 인상을 쓰고 있었다. 놀란 것 같진 않았다.

    진짜 기숙사장이야?

    왜 여기 있어?

    아카데미가 수도에서 멀지는 않지만, 기자들을 찾자마자 달려올 정도로 가깝진 않을 텐데.

    어쨌든 중요한 건 아니었다. 난 기자들을 향해 말했다.

    “나를 믿고 이렇게 모여 줘서 고마워. 그대들의 도움이 필요해서 불렀어.”

    “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전하.”

    “당연한 말씀입니다.”

    내가 생각한 분위기가 아닌데. 기자들은 경계하고 내가 설득하는 상황이 될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기자들 표정이 좋았다.

    난 방심하지 않고 준비한 말을 했다.

    “이번 일이 해결되면 그대들은 나라에 공을 세우는 셈이야. 에드워드는 그대들의 공을 잊지 않고 상찬할 거야.”

    기자들의 수배령도 풀릴 거라는 뜻이다. 내 기사 때문에 수배당했던 것 같은데, 내가 아량이라도 베풀 듯 말하는 것도 웃기지만.

    “전하께서 저희를 불러 주신 것만으로 기쁩니다.”

    “저희가 보탬이 된다고 생각해 주셨군요…….”

    그런데 기자들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뭐지?

    “응. 그대들의 충정은 익히 알고 있으니 말이야.”

    “아아, 정말로…….”

    “감격입니다, 전하. 전하께 심려를 끼친 일이 무엇입니까?”

    “저희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분위기가 영…….

    곁눈질로 구석을 살펴보니, 기숙사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왜인지 기뻐하는 것 같다. 저 안경과 수염은 변장인가?

    “그렇게 말해 주니 기쁘군.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까. 얼마 전 습격을 당했어.”

    일순간 응접실이 싸늘해졌다.

    “이미 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치진 않았어. 배후로 몇 명의 귀족이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지. 사실이 아니길 바랐지만……. 그들은 음모가 들켰다는 걸 깨닫자마자 몸을 숨긴 듯해. 저택을 급습했지만 행방을 찾을 수 없더군.”

    “저희가 그자들을 잡겠습니다!”

    누군가 소리쳤다. 눈이 마주치자, 그 기자는 얼굴이 붉어졌다.

    아니, 경비병도 못 찾는 걸 무슨 수로 잡겠다고…….

    그런데 그 기자가 시작이었다. 사방에서 기자들이 손을 들었다. 자신들이 그 범인을 잡아 바치겠다는 것이다.

    “그런 자들이 전하께서 계신 수도에 살아 숨 쉬고 있다니, 믿을 수 없습니다.”

    “저희가 돕게 해 주십시오.”

    싸움을 잘하나? 그렇게 안 보이는데.

    “응. 마음은 고마워. 하지만 잡는 건 됐어.”

    “아…….”

    기자들이 아쉬워했다. 의욕이 과한데.

    그들이 이상한 짓을 벌이면 내가 곤란해졌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일을 해야지. 기사를 써 줘. 내가 부탁하려던 건 그거야. 수도를 빠져나가는 자들은 철저히 검문하고 있어. 아직 범인들은 수도에 남아 있을 거야. 그들을 잡으려고 해……. 아마 단서가 있겠지. 경비병들은 눈치채기 힘들지만, 어쩌면 평범한 사람들이 알고 있을지도 몰라. 자기가 뭘 아는지도 모르겠지만, 단서를 얻으면 깨달을 만한 것들 말이야.”

    “아…….”

    기자들은 다시 탄성했다. 반응이 좋은 사람들이다. 내 말도 이해해 주는 것 같다.

    “그게 기자가 하는 일이잖아.”

    초심자가 뛰어다닌다고 귀족들이 잡힐 리도 없고.

    “전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저희가 해야 하는 일은 그런 것이지요.”

    기자들이 밝은 얼굴로 말했다. 직업에 자부심을 갖는 건 좋은 일이다.

    “자세한 일은 내 충실한 친구 그레이 크래커 소공작과 내 스승인 파이 공작이 들려줄 거야. 그들은 귀족들의 음모를 듣고 내게 말해 준 사람들이야. 내가 목숨을 맡길 정도로 신뢰하는 사람들이지. 이들이 내 목숨을 구했어.”

    난 입에 발린 말을 잔뜩 해서 두 사람을 띄워 줬다.

    파이 공작의 얼굴이 더 안 좋아졌다. 저래서야 계획대로 할 수 있나?

    상태가 좋았어도 잘했을 것 같진 않지만.

    파이 공작은 연기 따위 못하는 인물이었다. 그건 그레이도 마찬가지다.

    인선 잘못한 거 아닌가?

    그때 그레이가 입을 열었다.

    “예. 귀족들의 끔찍한 작태를 두고 볼 수 없어……. 전하께 음모를 고하였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말씀드리기 전에, 전하께서는 명민한 판단력으로 이미 모든 계획을 꿰뚫고 계셨죠. 전하의 지성이 놀라울 뿐입니다. 저희가 전하께 보탬이 된 부분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누를 끼치지 않았나 죄송스러울 뿐입니다.”

    “…….”

    저 사람 그레이인가?

    누가 그레이의 영혼을 밀어내고 몸을 차지한 거 아냐?

    파이 공작이 그레이를 보더니 말했다.

    “전하께서는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시는 분이지만, 이는 지성이라기보다 품성의 영역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오…….”

    내가 귀를 의심하고 있는 동안, 기자들은 감탄했다.

    그들은 두 사람의 현란한 말솜씨에 마음이 움직인 듯했다. 열심히 받아 적어 갔다.

    다음 날 수도 내 모든 신문의 첫 면이 같은 기사로 도배됐다.

    -조프리 전하 피습! 범인 도주 중!

    * * *

    플랑베 부인이 방문한 건 그날 저녁이었다.

    로웰은 내게 알현을 요청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바로 왕비님의 시녀이며, 내게 꼭 하고자 하는 말이 있다고.

    “저는 모르겠어요. 제가 판단할 바가 아닌 것 같아요…….”

    로웰은 그녀를 소개하고 나갔다.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플랑베 부인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왕비님의 시녀를 보면, 시녀들 한가운데 서서 나를 바라보는 왕비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긴 드레스 자락이나 들고 있던 부채, 햇살이 가득한 정원 같은 것.

    “전하께 인사드립니다.”

    “부인.”

    쓴웃음이 나왔다.

    “왜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지?”

    부인의 걱정대로 왕이 멀쩡하고 악의를 가지고 있었다면, 그녀 역시 무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 그런 기사를 내려는 거야?”

    그녀 개인만이 아니라 비스코티도 위험해질 기사다. 그녀가 지키려 한다는 조프리도 위험해질 것이다.

    난 부인이 변명하리라 생각했지만, 그녀는 오히려 가까이 다가왔다.

    “전하께 근거를 만들어 드리려고요.”

    “근거?”

    “전하께서 셔벗에서 돌아오시지 않아도 될 이유를요. 누구도 전하의 귀환을 재촉하지 못하게 될 거예요. 앞으로 전하의 신변에 위협이 생긴다면, 그 범인을 폐하로 의심하겠죠. 폐하께서는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실 거예요…….”

    그런 이유로 모두를 위험에 빠뜨린다고?

    직관적인 판단이다. 막무가내이기도 했다.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방법이다…….

    지금 내 가까이 왕비님을 연상시키는 사람이 둘 있는데, 하나는 왕비님의 원수고 한 명은 시녀라니 이상한 일이었다.

    “난 폐하를 뵙고 살아남았어. 그리고 지금은 나라를 안정시키고자 하고 있지. 부인의 행동은 내 노력을 무산시키는 거야.”

    “이번 피습도 폐하께서 꾸미신 일일 거예요!”

    플랑베 부인이 주장했다.

    물론 난 범인을 알고 있었다. 내가 꾸민 일이니까.

    그녀가 날 걱정한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난 그녀를 돌려보내고 싶었다.

    난 슬픔이 사람의 판단력을 어떻게 흐리는지 알고 있었다. 부인이 왕비님을 위해 슬퍼하길 바랐다. 하지만 그녀가 그 외의 행동을 하도록 두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제 말을 들으셔야 해요. 폐하께선 그런 분이에요.”

    부인은 두 팔로 스스로를 끌어안았다. 추운 듯 떨고 있었다.

    “그날, 왕비님을 모신 궁인이 있어요. 다른 시녀가 보호하던 그 궁인을, 지금은 제가 데리고 있어요.”

    왕비님이 사고당한 그날.

    “그 궁인, 지금 어디 있어?”

    “제 저택에요.”

    부인은 궁인을 데려오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억지로 끌어내도 왕성으로는 가려고 하지 않았고, 결국 부인은 혼자 올라오는 수밖에 없었다.

    그 궁인은 왕비님과 같은 마차에 타지 않았다.

    왕비님은 갑자기 나들이를 결정했고, 궁인들은 가벼운 짐만을 챙겨 왕비님과 함께 출발했다.

    그리고 플랑베 부인이 보호하고 있는 궁인, 왕성에 남았던 그 궁인이 왕비님이 빠뜨린 짐을 발견했다. 누군가 짐을 가져가지 않으면 모두 매질을 당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왕비님을 뒤늦게 따라갔고…….

    플랑베 부인은 그에게서 모든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내게 말하고 있었다. 왕을 피해 도망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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