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과 1-211화 (211/293)
  • 211.

    “전하!”

    문이 열리자마자 알렉스 바움쿠헨이 고함질렀다. 에드워드는 그가 달려와서 자신을 떼어 낸 뒤에야 그들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깨달았다. 멱살과 얼굴을 잡은 채 서로를 잡아먹을 것처럼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알렉스 바움쿠헨은 새끼를 지키려는 고슴도치처럼 에드워드를 노려봤다. 조프리는 바움쿠헨의 품에서 고개를 저었다. 그의 팔을 잡고 뭐라고 속삭였다.

    바움쿠헨은 적의 가득한 눈으로 에드워드를 보면서도 달려들지는 않았다.

    파이 공작은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서 그들을 보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조프리에게 잡혔던 옷깃을 손으로 문질러 폈다. 숨이 모자란 듯 어지러웠다.

    잡힌 곳보다 다른 곳이 아팠다. 뻐근하고 숨이 막혔다.

    “두 분 전하께 인사드립니다. 제가 너무 늦지 않아 다행입니다.”

    파이 공작이 말했다. 조프리가 한숨처럼 불렀다.

    “스승님.”

    파이 공작이 다가왔다. 에드워드는 공작을 막으려 했으나, 알렉스 바움쿠헨이 그 기색을 느끼고 반응했다.

    그는 에드워드의 움직임을 경계하고 있었다. 이 순간 조프리의 보호자는 에드워드가 아니라 바움쿠헨이었다.

    조프리의 기사.

    왕의 대전에 허락받지 않은 사람은 무장할 수 없다. 그러나 에드워드도 공작이 바움쿠헨을 뚫고 조프리에게 해를 끼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공작이 검을 소지하고 있고 바움쿠헨이 비무장일지라도 그랬다.

    그러나 조프리가 자신을 지킬 수 없다는 건 단순한 무력의 문제가 아니다.

    조프리는 귀족들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음흉한 족속인지 모른다. 파이 공작이 무엇을 위해 이곳에 왔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는 이기적인 요구를 할 것이다.

    에드워드는 그러기를 바랐다. 아까부터 그를 옥죄는 기분이 사라지지 않았다. 모든 것이 무너질 듯한 불안감이었다.

    몇 걸음 걸어온 파이 공작이 고개를 숙였다.

    “어리석은 신하가 전하께 죄를 청합니다.”

    조프리는 알렉스 바움쿠헨의 품에 안긴 채 그 말을 듣고 있었다. 기다리던 순간이라는 듯이.

    “무슨 죄요?”

    왕의 대전 한가운데서, 공작은 마치 왕을 대하듯 정중하게 말했다.

    “저는 전하께 이 나라를 위해 달라 말씀드렸으나, 저 자신은 그렇게 행동하지 못했습니다. 권력을 탐하지 않는 학자의 가면을 쓴 채, 저는 늘 안전한 곳에서 다른 이들에게 책임을 돌리기만 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전하께서는 저를 부끄러움도 모르는 자라고 생각하셨겠지요.”

    공작이 말하는 전하는 조프리였다.

    “입으로는 나라를 위한다 말했으나 실행하지 못했고, 뜻을 세웠으나 어그러지자 끝내 도망쳤습니다. 저와 다른 귀족들이 몸을 피한다면 그 피해는 누구에게 닥칠 것입니까? 전하의 전갈을 받고 생각했습니다. 강대한 셔벗을 앞에 두고 나라의 내분이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 것입니까? 어린아이도 아는 일을 외면하려 하였습니다.”

    “…….”

    “이대로 눈을 감고 육신의 안온만을 찾는다면 스스로 경멸하던 간신들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이 부끄러운 고개를 들고 다시는 하늘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에드워드는 공작이 조프리를 설득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공작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 반대였다.

    “주모자들을 잡는 데 협력하겠습니다.”

    파이 공작이 에드워드를 향해 말했다. 에드워드는 무시했다.

    “반역자를 어찌 믿겠습니까.”

    “제게는 합당한 벌이 내려지리라 믿습니다. 다만 목숨을 걸고 충심으로 간언한 신하의 말에 잠시나마 귀 기울여 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귀족들을 잡을 방법이 있나요?”

    조프리가 물었다.

    “생각한 방법이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말씀해 주세요.”

    “제 이름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전하께서 믿어 주신다면, 그들을 모아 보겠습니다.”

    “그들을 어떻게 처벌하면 좋을까요?”

    “죄인은 따를 뿐입니다.”

    파이 공작은 당황한 듯 답했으나, 조프리가 침묵으로 재촉하자 다시 입을 열었다.

    “그들의 힘을 온전히 손에 넣으면 틀림없이 이 나라에 힘이 될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해?”

    조프리는 에드워드를 돌아봤다.

    “귀족들을 어떻게 다룰 거냐고 물어봤잖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기사도 나왔겠다. 다 셔벗에 데리고 가도 되고…….”

    그는 대전 한가운데 서 있었으나, 더 이상 희생자로는 보이지 않았다.

    “에드워드?”

    그에겐 에드워드가 필요하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몰랐다. 조프리가 난처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꼭 셔벗에 가야겠어?”

    “누가 들으면 내가 되게 가고 싶어 하는 줄 알겠다.”

    조프리가 투덜거렸다.

    “그럼 나는 어떡해?”

    “…….”

    “내 보호조차 필요하지 않다고 하면, 난 어떻게 하면 돼? 너한테 뭘 줘야 해?”

    안정을 주고 싶었다. 조프리가 안정을 원하니까.

    어머니에게 자유와 안전을 주고 싶었던 것처럼.

    그게 욕심이라고 하면 에드워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야! 누가 너한테 뭐 해 달래? 지금까지 목이 터져라 말한 건 안 들었어?”

    조프리가 소리쳤다. 에드워드는 어안이 벙벙했다.

    “내 말 좀 들어! 멋대로 생각해서 저질러 버리지 말고, 내가 받고 싶은 걸 주려고 좀 해 봐!”

    * * *

    대화는 거기서 멈췄다. 병사가 급한 소식을 알렸다. 수도를 빠져나가려던 모 남작이 잡혔다는 것이다.

    남작은 평민들이 입을 법한 차림새였다는 듯했으나, 검문을 통과하진 못했다. 병사들은 귀족임이 분명한 남자가 어색하게 평민인 척하는 모습에 의아해했다.

    “이렇게 성질 급한 사람이 또 있을까요?”

    내가 묻자 파이 공작은 대답했다.

    “대다수일 겁니다.”

    “다들 바로 성문으로 달려갈 거라고요?”

    “조급해져 있기는 할 겁니다.”

    조급해져서 하는 일이 검문 통과라고?

    “스승님, 검문 통과해 보셨어요?”

    파이 공작은 대답하지 않았다.

    자랑은 아니지만 난 통과해 본 적 있었다. 아마 그런 경험은 에드워드도 못 해 봤을 것이다.

    “나보고 귀족들 상대해 보라고 했지?”

    정확히 이런 말이 맞았나? 아무튼 에드워드는 비슷한 말을 했다.

    “어떻게 하게?”

    “스승님의 이름을 이용해도 된다고 하셨잖아요.”

    “예.”

    파이 공작이 말했다.

    “도망친 귀족들은 혼자가 아닐 겁니다. 제 이름을 이용해 연락을 취하면, 하인을 통해 동태를 살피다 제게 답변하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예?”

    엄청 비효율적인 방법 아닌가?

    내가 당황하자 파이 공작이 물었다.

    “다른 방법을 떠올리셨습니까?”

    “스승님이 에드워드에게 투항했고, 덕분에 아무 처벌도 받지 않았다는 말을 퍼뜨리려고 했는데요.”

    “아무 처벌도 안 하겠다고?”

    에드워드가 싸늘하게 되물었다.

    “무슨 소리야? 당연히 거짓말이지.”

    “…….”

    파이 공작까지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아니, 반역자를 뭘 믿고 처벌을 안 해? 나야말로 당황스러웠다.

    “대신 잡힌 남작은 신문까지 이용해서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 알리는 거야. 남작의 죄목은…… 아직 사병을 움직여 공격한 것도 아니고, 반역이라고 하면 의혹만 살 테니까…… 왕족 시해 미수죄 같은 걸로 할까?”

    “왕족 누구?”

    에드워드가 물었다. 아까부터 제동을 걸고 싶은 건지 협조하는 건지 모르겠다.

    “나.”

    “…….”

    에드워드는 침묵하다 말했다.

    “백성들의 공분을 살 것 같긴 하네.”

    이상한 이유로 내 기사는 인기가 많았다. 숨어 있는 귀족들도 다 알게 될 만큼 기사가 퍼질 것이다.

    벌은 험하고 투항의 결과는 달콤하다면 다들 숙이고 들어오지 않을까.

    “어때?”

    난 에드워드에게 물었다. 정략은 잘 몰랐다.

    “좋은 생각 같아.”

    에드워드는 짧게 말했다. 그러더니 물었다.

    “저 밖에 있는 병사들은 뭐야?”

    “고용한 용병들.”

    이제야 묻다니. 내가 정말 자길 공격하려고 했으면 어쩌려고 그랬을까?

    “왕성 경비 너무 허술한 거 아니야? 여기까지 들여보내 줄 줄 몰랐는데.”

    “네 증표를 가진 사람을 가로막을 리 없잖아.”

    에드워드는 가라앉은 표정으로 말했다. 대답할 말이 없었다.

    “몇 명을 더 불러들여도 돼. 네가 부른 용병들로 네 궁을 채워도 좋아.”

    그는 밖으로 나가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곧 경비대장이 올 거야. 그에게 필요한 걸 명령해. 기자들이 필요하면 그들도 잡아들이라고 할게.”

    그가 이상할 정도로 순순해서 무서웠다.

    “내가 경비대장에게 명령하라고?”

    “원한다면. 네 용병들을 시켜도 되고.”

    “네 계획은…….”

    “네가 원하는 대로 해.”

    그가 말했다.

    난 다시 불안해졌다. 에드워드는 나를 보더니 멈췄다.

    “저녁 같이 먹을래? 할 얘기가 있어.”

    “응.”

    “들으면 네가 날 때릴지도 몰라.”

    “…….”

    들을 얘기는 거의 다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너 또 뭘 숨기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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