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과 1-208화 (208/293)
  • 208.

    수도는 활기가 돌았다. 외성 밖에 모이기 시작한 병사들이 사신단에 합류한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그 병력의 규모는 크지 않았으나, 수도 사람들의 시선을 묶어 둘 만했다.

    사람들은 성문을 지키는 경비병의 수가 두 배로 늘었다는 사실엔 주목하지 않았다. 성 안팎을 오가는 수많은 파발도 마찬가지였다. 셔벗과 갈등이 시작된 이래, 사람들은 파발에 익숙해졌다. 거리를 지키는 경비병이 늘어난 것에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왕성은 조용했다.

    고요를 깨는 소란이 인 건 정오가 지나서부터였다. 수도 거리에서 말을 달리는 병사들 때문에 사람들은 시선을 찌푸렸다.

    “무슨 난리래?”

    “왕성에 무슨 일 났나?”

    말은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서 귀족들의 저택으로 각기 들어갔다.

    그로부터 한 시간 뒤, 각 저택에서 마차가 준비됐다. 귀족들은 급한 소집에 응해 마차에 올랐다.

    한낮이 지난 시간, 귀족들의 마차가 하나둘 왕성으로 들어갔다. 회의에 참석할 귀족들은 대전으로 향한 것으로 보였다.

    에드워드는 귀족들이 출발했다는 보고를 받고 대전으로 향했다. 그의 뒤로 일단의 정예병이 따랐다.

    회의 시작 시간은 지났다. 그러나 에드워드가 늦게 들어간대도 불만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의 병사들은 대전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통로와 문에 각기 배치됐다.

    에드워드가 걷는 걸음마다 병사들이 빠져나갔다. 통로가 하나씩 봉쇄됐다.

    그는 멍하니 걸으면서 피로한 눈을 감았다. 잠이 부족해 머리는 둔하면서도 몸이 예민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그때와 다른 것은, 에드워드에게 누군가를 해칠 힘이 있다는 점이었다.

    예전에 그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죽여야 했다. 그러나 그건 타인에게 운명을 맡기는 어리석은 짓이었다.

    비극의 싹은 제거하는 게 옳지 않은가?

    그의 몸은 복도가 너무 조용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러나 멍한 머리가 정보를 늦게 처리했다.

    비상으로 소집된 귀족들이 대기하고 있다면, 정숙을 유지한대도 이렇게 조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전의 중앙문 앞에 서서, 에드워드는 문을 지키는 병사를 바라봤다. 병사는 당황한 듯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일이지?”

    “저, 전하. 귀족들이 입실하지 않았습니다.”

    에드워드가 반응하지 않자, 병사는 말을 이었다.

    “하인들이 대신 와서는, 주인이 아프다며 전하께 사죄의 말씀을 올리겠다고…….”

    에드워드는 망설이지 않았다. 귀족들이 도망칠 시간을 주어선 안 된다.

    그가 뒤돌아서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리려던 순간, 중앙문이 열렸다.

    안에서 문을 연 남자는 알렉스 바움쿠헨이었다.

    “들어오십시오. 전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에드워드는 잠이 깨는 것을 느꼈다. 그의 시선이 대전 한가운데 서 있는 조프리에게 고정됐다.

    어째서 조프리가 저곳에 있을까.

    그 질문보다, 에드워드는 섬뜩한 공포를 느꼈다.

    저곳에 조프리가 쓰러져 있었다. 귀족들이 수없이 드나든 공간인데도 에드워드는 그 기억을 지울 수 없었다.

    다른 기억으로 덧칠하고 싶었지만, 몇 번을 밟고 지나가도 잊히지 않았다.

    “조프리.”

    조프리가 돌아봤다.

    에드워드는 안도를 느꼈다. 조프리가 살아 있다. 아직 안전하다.

    * * *

    로웰은 제대로 일을 진행한 듯했다. 파이 공작과 다른 귀족들은 회의에 나타나지 않았다.

    한두 명은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파이 공작의 설득 능력이 좋은 듯했다. 아니면 애초에 회의 참석을 싫어하거나.

    텅 빈 대전은 차갑고 넓었다. 난 한가운데 서서 주변을 둘러봤다.

    떨리던 몸이 멈췄다. 나쁘지 않다.

    복도 끝에서부터 군화 소리가 들렸다. 여러 명이 내는 소리인데도 마치 하나처럼 들렸다. 그 소리가 북처럼 가슴을 뛰게 했다.

    에드워드는 손이 맵다.

    갑자기 떠올랐다. 난 에드워드에게 멱살도 잡혀 본 적 있고 맞아 본 적도 있는데, 당시에는 별일 아닌 것 같아도 흔적이 크게 남았다.

    알렉스가 문을 열었다.

    “들어오십시오. 전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에드워드가 다가왔다. 그의 뒤로 병사들이 보였다. 수가 몇 명이지? 한눈에 셀 수 없었다.

    알렉스가 문을 잡고 나를 돌아봤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응.”

    “무슨 일 생기면 소리 지르십시오.”

    에드워드가 괴물이야?

    “여의치 않으면 발을 구르십시오. 그래도 들어오겠습니다.”

    “알았다니까.”

    알렉스가 문을 닫자, 병사들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대전에는 나와 에드워드뿐이었다.

    에드워드와 대치 상태는 내가 원해서 만든 적이 없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지금부터 내가 할 짓이 가장 이상했지만.

    “에드워드, 회의 시간 아니야?”

    “맞아. 그런데 귀족들은 없고…… 네가 있네.”

    그가 천천히 말했다.

    “응. 귀족들은 왕성 밖으로 나갔거든. 내가 검문 통과하는 법을 조언했어. 경험자잖아.”

    난 단을 올라갔다. 에드워드를 따라 옥좌에 건방지게 기댔다.

    내가 반역자가 되었을 때 무릎 꿇고 있던 자리가 바로 보였다. 첫 경험이 초라해서, 위협적인 반역자는 어떤 느낌인지 모르겠다.

    “귀족들을 네가 대피시켰다고?”

    “그레이가 알려 주던데. 네가 귀족들을 어떻게 잡을지. 비상소집으로 귀족들을 모으고, 방심한 사이에 정리할 거라고.”

    “그래서 네가 놓아줬다고?”

    에드워드는 믿을 수 없는 듯했다. 난 턱을 치켜들고 그를 내려다봤다.

    “왕성은 포위될 거야. 귀족들이 내게 왕관을 바치겠대. 네 병사들에게 감시받으면서 살기 싫어. 더 이상 불안해하기도 싫고. 내 궁인데, 내가 주인이 아니야…….”

    뒤에 이어진 말들은 다 진심이었다.

    내 연기력이야 시원찮지만, 반란 세력은 진짜였다. 난 에드워드가 내 멱살을 잡아도 이해할 수 있었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숙였다. 통할까?

    그는 미소 짓고 있었다.

    “네가 귀족들을 놓아줬다고? 그럴 리 없지.”

    난 뭐가 문젤까?

    * * *

    모리스 파벨은 셔벗으로 귀국했다. 그는 본래 조프리 왕자를 데려오기 전까지는 비스코티를 떠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왕의 부름에는 어쩔 수 없었다.

    셔벗의 필리프 왕은 검은 머리카락과 검고 짙은 눈썹을 가진 미남이었다. 여동생은 선이 가는 미인이었으니 함께 서면 보기 좋은 오누이였다.

    모리스는 젊은 나이에 명성을 얻어 밀라네 공주를 가르치게 되었다. 그녀와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젊은 필리프 왕이 지나가며 신기하다는 듯 두 사람을 바라보곤 했다.

    나중에 모리스가 물어보니, 왕은 그렇게 공주와 잘 지내는 사람은 그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필리프 왕과 밀라네 공주는 사이 나쁜 오누이가 아니었다. 두 사람이 크게 틀어진 건 결혼 때문이었다.

    “왕자는 어떻던가?”

    “알려진 대로 평판 좋은 분이었습니다. 잡일 하는 궁인까지 왕자를 흠모하는 것 같더군요.”

    “건강 말일세. 크게 다쳤다고 들었는데.”

    필리프 왕은 나무라지 않았으나 모리스는 당황했다.

    왕이 모리스를 비스코티에 보낸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밀라네 공주와의 관계를 회복해 보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가 조프리 왕자를 살피는 것이었다.

    모리스는 당연히 왕이 업무에 대해 물었다고 생각했으나 아니었다. 그는 필리프 왕의 이런 성품을 존경하고 있었다.

    “제가 떠나올 때만 해도 회복기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무사히 완치하셨으리라 믿습니다.”

    “그렇군. 그래서……. 만나 봤나?”

    “직접 뵙지는 못했습니다. 폐하께서도 아시다시피…….”

    필리프 왕은 고개를 저었다. 그 일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모리스는 고개를 숙였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닮았던가?”

    “예.”

    모리스는 왕자의 초상화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속까지?”

    “모르겠습니다.”

    왕이 미소 지었다.

    “사랑받는 왕자이니 비스코티에서도 놓아주고 싶지 않겠지. 그 아이가 그곳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면 상관없네. 그저 한번 보고 싶을 뿐이야.”

    “아니요. 그 나라에 조프리 전하를 두어선 안 됩니다.”

    모리스가 단정했다.

    “1왕자가 그 아이를 경계하고 있나?”

    “예. 또한 그곳의 귀족들이 하는 행태가 불온하기 짝이 없습니다. 무도한 나라입니다. 폐하, 부탁드리오니 다시 한번 사신을 보내 왕자를 보내길 청해 주십시오.”

    모리스가 보기에 그 나라의 귀족들은 한 번 더 재촉하면 왕자를 보낼 터였다. 무도한 귀족들. 그리고 왕이 쓰러지자 대번에 권력을 틀어쥔 젊고 야심만만한 왕자까지. 비스코티는 위험한 나라다.

    “공작들이 좋아하지 않겠군.”

    필리프 왕은 오랜 기간 후계자가 없었다. 그가 후계를 지목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 명의 공작은 서로를 견제하며 왕의 충신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왕은 나이 들어가고 있고, 후계자의 자리를 더 오래 비워둘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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