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과 1-207화 (207/293)
  • 207.

    모든 일이 생각대로 진행되면 세상에 실패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에드워드가 준비하는 전쟁이 내전이야?”

    “어떻게…….”

    “…….”

    에드워드와 그레이는 귀족들의 속셈을 알고 있었다.

    파이 공작은 반란군의 수장을 세우기 전에 내부 단속부터 해야 했다.

    난 이델라가 보낸 기자를 불렀다. 그레이에게 준비된 병력이 대단하다는 사실을 알려 주려 했지만, 역시 통하지 않았다. 수많은 기사를 읽고도 그레이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제대로 읽었어?”

    “예……. 제가 놓친 게 있나요?”

    이미 대비를 하고 있나?

    “바움쿠헨 백작이 사병을 이끌고 수도로 올라오고 있다는 것도?”

    혹시나 싶어 바움쿠헨 백작을 언급하자, 그레이는 반응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난처한 기색이 드러났다.

    심지어 그 대비가 바움쿠헨 백작이었다!

    난 이미 계획이 유출된 반란군의 수괴가 된 셈이었다.

    반란 계획을 알고 있다면, 대비하는 것도 간단하다. 정규군이라면 당연히 반란군을 각기 섬멸하거나 한곳에 모아 소탕하려 할 것이다.

    “귀족들은 셔벗과의 전쟁을 반대한다며. 에드워드가 말했잖아. 귀족들의 반발을 억누를 만한 지휘관을 왜 수도 밖으로 보내? 수도를 일부러 비운 것 같잖아.”

    “슬퍼하지 마세요, 전하. 전하께서 생각하시는 그런 일이 아니에요. 전부 말씀드릴게요…….”

    어?

    * * *

    “전하께서 예상하신 대로, 이건 에드워드 전하의 함정이에요. 에드워드 전하께서는 출전하기 전에 후방의 위협을 정리하고 싶어 하셨어요.”

    그레이는 말했다.

    “외부의 적이 생기면 보통 내부의 혼란은 정리된다고 하지만, 비스코티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오히려 그 반대 상황이라고 할까요. 외부의 적을 두고, 내부의 누가 불온 분자인지 가려내는 거죠.”

    그 불온 분자와 손잡고 온 나로서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레이는 뭐라고 생각했는지 변명했다.

    “저희 아버지도 뭐, 문제가 있지만……. 크래커 가문은 곧 제가 이어받을 테니까요.”

    “아, 그래…….”

    재상이 은퇴한다고? 나이가 많긴 하지만, 은퇴할 정도였나?

    그가 대전에서 창백해져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설마 에드워드 때문은 아니겠지.

    “맹세드릴 수 있어요. 내전은 일어나지 않아요.”

    그레이가 부드럽게 말했다. 아까부터 왜 아이 달래듯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울리지도 않는데.

    “어떻게?”

    “병력이 도착해도 왕성은 열리지 않을 테니까요. 성안에서 병사들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귀족들은 쉽게 잡아넣을 수 있겠죠.”

    “…….”

    이게 그레이 입에서 나온 말인가?

    아니…….

    “그래도 돼?”

    심증만으로 반역자를 잡아넣을 수 있었다면 왕은 진작 나를 잡아먹었을 것이다. 귀족들은 개인이 아니라 한 영지의 주인이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증인이 있나?

    귀족 중에 누군가 배반했다면 말이 된다. 아무리 에드워드라도 증인 없이 막 나갈 리 없다.

    “왜 안 되겠어요? 잡아 놓고 심문하면 한두 명은 틀림없이 겁에 질려 털어놓을 텐데요.”

    “…….”

    고문하겠다는 거잖아!

    “왕성을 포위한 병력은?”

    “바움쿠헨 백작이 퇴로를 막을 거예요.”

    내전 안 한다며!

    그레이는 난처한 듯 나를 보더니 안경을 벗어 앞주머니에 넣었다.

    “귀족 병력은 성을 공격하고 싶어도 못 할걸요. 안에선 주인이 인질로 잡혀 있고, 밖으로는 퇴로가 가로막혔는데요. 머리가 있는 지휘관이라면 항복하겠죠.”

    “머리가 없으면?”

    난 무심코 물었다.

    “위험 분자를 후방에 두고 전쟁하는 것보다 낫겠죠.”

    그게 뭐야!

    난 파이 공작만 과격한 반란 분자인 줄 알았는데 에드워드는 한술 더 떴다.

    “반역자들만 처형하면 비스코티는 평화로워질 거예요. 후방은 안전해지고, 에드워드 전하께서는 마음 편히 셔벗으로 가실 수 있겠죠.”

    그레이는 대화를 하는 내내 내 앞에 앉아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가 내 눈을 들여다보더니 얼굴을 찡그렸다.

    “그런 표정 하지 마세요. 마음에 안 드시겠지만, 필요한 희생이란 것도 있으니까요. 이게 최소한의 희생이에요.”

    “필요한 희생이 어디 있어? 그 귀족들의 가문은 그럼, ‘아,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군요.’ 하고 가만히 있겠어?”

    “가만히 있지 않으면요? 전력의 반은 이곳에 있는데요.”

    그레이는 냉소적으로 말했다.

    “그자들이 남은 전력을 연합해서 에드워드 전하께 맞설 수 있는 자들이었다면 위험하다고 판단했을 거예요. 하지만 그럴 자들이었다면 애초에 셔벗에 고개 숙이지 않았겠죠.”

    그건 맞는 말이었다.

    “그 불온 분자들을 가만둬서 다른 사람이 고통받는 것보다 나아요. 에드워드 전하께서는 그렇게 판단하신 거겠죠.”

    그레이는 그러면서 나를 봤다.

    “전하께서 마음 아파하실 줄 알았어요. 하지만 전하, 이 반란은 전하와 상관없어요. 아시죠?”

    “정말?”

    그레이는 당황을 숨겼다.

    “물론이죠.”

    물론 이 반란은 나와 큰 상관이 있었다.

    애초에 내가 원인이잖아.

    그레이가 떠났다. 그때까지 침묵을 지키던 로웰이 물었다.

    “전하, 내전이 일어날 걸 미리 아셨어요?”

    “아니.”

    “방금 대화는 뭐예요? 이미 알고 계셨던 것처럼…….”

    “파이 공작에게 들었어. 반란군을 이끌고 왕성을 포위할 테니, 나보고 에드워드를 협박하는 걸 도와 달라던데.”

    “예?”

    로웰이 당황했다.

    “잠깐만요. 아무리 상인들이 신의 없다지만, 귀족들은 상인들보다 더한데요. 설마 셔벗과 전쟁하기 싫어서 반란을 일으키는 거예요? 와.”

    “파이 공작은 왕자님을 가르치신 적이 있어요.”

    도트가 순진하게 말했다. 욕하라고 장작 넣는 건가?

    “그것도 제자를 협박해서? 세상에.”

    로웰이 혀를 찼다. 알렉스는 내 손을 주물러 주기 시작했다. 지금은 필요 없는데.

    “대비가 되어 있어서 다행이네요. ……잠깐만요, 전하. 그럼 전하께서 받은 제안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거절하고 오신 거죠?”

    “수락했어.”

    “예?”

    “제안이 아니라 협박이었고.”

    알렉스가 제안했다.

    “역시 죽이고 올까요?”

    “아니.”

    지금이야말로 의미가 없었다. 알렉스가 아무것도 안 해도 파이 공작의 신변은 위태로울 것 같은데.

    공작은 사병을 소유하고 있지 않았다. 아마 가장 먼저 발각될 반란 세력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다른 귀족들이 잡혀 들어가면 반드시 이름이 불릴 사람이었다.

    그가 에드워드에게 잡히면, 그가 한 협박도 효용을 잃는다.

    처음부터 에드워드보다 파이 공작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에드워드를 반란 세력으로 협박한다는 건, 파이 공작이 무슨 짓을 꾸미는지 에드워드에게 고백한다는 뜻이니까.

    난 파이 공작의 반란군이 정말로 왕성을 점령하게 둘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내 선택조차 필요 없었다.

    내전을 종식하면 에드워드는 말한 대로 출전할 것이다. 내 의견과는 아무런 관계 없이. 그가 정한 대로.

    내전이 나와 상관없다고? 나를 상관하지 않는 건 에드워드다.

    난 그가 나와 왕비님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기회도 없을 것이다.

    나를 보낸다는 편한 방법이 있는데 왜 다른 방법을 선택하는지.

    정말로 나를 위해서라면, 왜 내 의견을 물어보지 않아?

    에드워드를 강제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찾아올 것 같지 않다…….

    “로웰, 귀족들 참석 여부 확인 안 했지?”

    “뭐를요? 내전이요?”

    내전도 참석한다고 말하나?

    “장례식 말이야.”

    “식이 치러질 날은 공지 했는데요…….”

    로웰은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관리들에게 맡겨서. 정중하게 참석 여부를 물어봐. 내가 신경 쓰고 있으니 제대로 확인하라고 전해 주고.”

    “예, 전하.”

    로웰은 지금 그게 중요하냐는 표정이었다.

    “다른 귀족들은 관리들에게 맡기고, 파이 공작은 네가 만나.”

    “네……. 무조건 참석하라고 할까요?”

    “아니. 편지만 전하면 돼.”

    역시 반란 세력의 수괴가 되어봐야겠다. 내 의지로 에드워드의 적이 되려는 건 처음이었다.

    에드워드를 믿을 수 있나?

    그 질문은 내게 소용없었다. 믿고 싶은 거니까.

    여기까지 오니까 내 마음을 모를 수도 없었다. 그냥 에드워드를 믿으려는 핑계를 찾아서 이리저리 헤매고 다닌 것뿐이다.

    마음의 추가 한곳에 머물지 않았다. 난 에드워드를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에드워드는 나를 설득하거나, 아예 배반해야 했다.

    그는 그렇게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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