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과 1-194화 (194/293)

194.

로웰은 복도에서 알렉스를 마주쳤을 때부터 일이 쉽지 않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뭐가 문제인지 알렉스는 누구 하나 벨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 대상이 에드워드 왕자는 아니겠지. 로웰은 알렉스가 일을 칠 거라면 얼굴을 고치고 이름도 고친 뒤에 조프리 전하와 아무런 관련 없는 사람이 되어서 해 주기를 바랐다.

로웰이 알렉스를 붙잡았다.

“안에서 사고 안 칠 거지?”

“헛소리하는군.”

“거울 좀 보는 게 어때?”

“너나 봐.”

이 자식이랑 말을 하려던 내가 잘못이지.

로웰은 에드워드에게 대항해서 그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두 분 싸우시는 거 아니죠?”

이델라가 물었다.

“물론이죠.”

로웰이 대답했다. 알렉스는 답이 없었다.

“…….”

그들은 다시 싸우며 집무실로 들어갔다.

그곳엔 에드워드 외에도 그레이 크래커가 함께 있었다. 로웰은 그에게 좋은 감정이 없었다.

에드워드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소문내고 다니던 사람들. 그자들이 어디서 나왔을까?

로웰은 그 헛소문이 무슨 용도로 퍼지는지 알 수 없었다. 조프리 왕자에게 좋지 않으리라는 짐작만 들었다.

사람들은 기대를 배신당하면 분노하지 않던가.

현재 조프리 왕자는 숭배받고 있었다. 만일 그 기대를 배반한다면, 사람들은 왕자를 원수처럼 여길지도 모를 일이다.

설령 그것이 ‘왕자 혼자 전쟁을 막지 못했다’는 터무니없는 이유일지라도.

그렇다고 해도 티를 내는 건 초보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전하를 뵙습니다.”

“조사는 어떻게 돼 가?”

“예?”

“조프리에 대해 조사하고 있잖아. 소득은 어때.”

에드워드가 물었다.

로웰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문이 막혔다. 지금 그들이 대답해 줄 거라고 믿는 건가?

“전하께 보고하고 싶지 않은 것 같은데요.”

그레이 크래커가 말했다. 로웰의 마음을 그대로 말해서, 얌체처럼 끼어드는 그가 얄밉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로웰은 그에게 좋은 감정이 없었는데도.

“그렇겠지. 입이 무겁다니 잘됐군. 조프리에게도 그렇게 해.”

에드워드가 명령했다.

로웰은 정말로 할 말이 없었다.

아니, 그가 무슨 내용을 조사한 줄 알고? 애초에 그들이 언제부터 에드워드 왕자의 신하였단 말인가. 혹시 그가 모르는 사이에 에드워드 왕자가 즉위라도 했나?

로웰의 팔을 이델라가 잡았다. 그녀는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네. 그럴게요.”

“…….”

“하실 말씀은 그게 전부인가요?”

“조프리의 귀에 셔벗 얘기가 들어가게 하지 마. 셔벗을 생각할 틈도 없게 만들어. 조프리 궁의 시종들에게도 주의를 주고, 조프리가 쓸데없는 귀족들을 만나지 못하게 막아. 외출할 기분이 안 들게 안에서 놀아 줘.”

로웰은 혼란스러웠다.

점점 말이 이상해지지 않나?

“조프리 전하를 궁에 가두라는 뜻입니까?”

알렉스가 물었다.

에드워드가 턱을 만졌다. 뜻밖이라는 표정이었다.

“비슷하군.”

“그러지 않으면 전하를 해칠 겁니까? 전하께 무슨 짓을 할 생각입니까?”

알렉스의 손이 검으로 향했다.

공기가 팽팽해졌다. 로웰은 눈을 감을 뻔했다. 이 자식이 사고 칠 줄 알았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기사를 부르는 대신 그들을 둘러봤다.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조차 모르는군. 조사했다고 하지 않았나?”

“죄송한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아둔한 저도 이해할 수 있게 풀어서 설명해 주시면 안 될까요?”

로웰은 결국 참지 못하고 말했다. 상황을 따라갈 수 없었다.

문제는 그런 사람이 그 혼자가 아니라는 거였다. 이델라와 그레이는 영특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상황을 이해해서는 아닌 듯했다. 그들은 머리를 쓰려고 노력 중이었다.

에드워드가 설명했다.

“내가 출전하기 전까지 조프리를 보호하라는 말이야.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외부와 접촉하지 못하게.”

“예?”

“지금까지처럼 조프리를 보호해. 말이 어려운가?”

“잠깐만요. 출전하신다고요?”

로웰이 물었다. 주변을 봤으나 그레이도 놀란 얼굴이었다. 잘못 들은 게 아니다.

“그래.”

“왜요?”

“조프리를 보호하기 위해. 세 번째 말하는군.”

에드워드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로웰은 입이 벌어졌다. 에드워드와 조프리 왕자의 특별한 관계가 떠올랐다. 그게 어느 정도로 특별한지, 로웰은 확신하지 못했다.

하지만 에드워드가 출전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로웰은 자신을 의심하며 말했다.

“조프리 전하를…… 굉장히 아끼시는 것 같은데요.”

“응. 내가 그 애를 소중히 여기지.”

“예?”

로웰이 아는 에드워드는 조프리 왕자에게 최악의 위협이었다.

“너희 이상으로 그 애를 지키고 싶은 건 나라는 말이야.”

“예?”

에드워드는 한숨을 쉬었다.

“그 애가 내 목숨보다 소중해. 더 설명이 필요한가?”

“아니…….”

로웰은 주위를 둘러봤다. 지금 나만 이해가 안 되나?

알렉스는 검을 움켜쥔 채 고민하고 있었다. 미친 건가. 뭘 고민하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이델라는 왕자를 보는 거라곤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에드워드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레이 크래커는 팔짱을 낀 채 눈을 날카롭게 뜨고 있었는데, 입이 벌어져서 냉철한 인상은 아니었다.

여기에서 멀쩡해 보이는 사람은 에드워드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가 제일 제정신 아니었다.

내가 뭘 들은 거지?

* * *

식사를 하고 약을 먹고, 난 알렉스의 부축을 받아 궁을 나섰다.

알렉스는 내가 외출한다고 하자 망설였다.

“전하, 혹시 모르니까 안에 계시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나는데?

“앗. 왕자님이 쓰러지실지도 모르니까요?”

“예, 그렇습니다.”

“가능성 있는 일이네요!”

도트와 알렉스가 눈짓을 주고받는 장면을 본 것 같은데. 아니겠지. 알렉스는 눈짓 대화 같은 걸 못하니까.

“그렇다면 역시 이동용 수레를…….”

관리가 말했다.

“이동용 수레?”

“에드워드 전하께서 보내셨대요.”

도트가 알렉스에게 설명했다. 알렉스는 수레를 흉물처럼 쳐다봤다.

“어디로 외출하시는 겁니까? 혹시 사람을 만나러 가신다면, 제가 불러오겠습니다.”

“왕비궁에 갈 거야.”

“…….”

알렉스는 입을 다물더니,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는 표정으로 대안을 제시했다.

“제가 업어 드리는 건 어떻겠습니까?”

“다 필요 없어.”

하지만 내 뒤로 시종들과 병사들이 따라붙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쓰러지는 거랑 이 행렬이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지만, 행렬은 현재 진행형으로 훌륭한 효과를 보였다.

우리를 보고 궁인들은 길을 돌아가거나 자리에 멈춰 고개를 숙였다. 평소라면 나를 보고 다가왔을 귀족들은 내 뒤를 보고 깜짝 놀라 자리를 피했다.

행렬이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왕비님의 보호가 없는 조프리는 위태로운 왕자였다. 조프리를 지지하던 귀족들은 왕비님에게 선을 댔지 내게 접근하진 않았다. 애초에 나는 어렸고, 사교 행사는 거의 참석하지 않았으니까.

큰일을 겪은 지금은 눈치만 보고 있는 듯했다. 이미 대세는 에드워드에게 넘어갔다. 내가 친한 척이라도 하면 곤란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왕비님이라면…….

저런 귀족들을 감히 보아 넘기지 않았을 텐데.

내게 저것은 모욕이며, 내가 참아선 안 되는 일이라고 가르쳤을 텐데.

쓸데없는 생각이다.

난 그런 걸 좋아하지도 않았다.

왕비님 궁으로 가는 길은 한산했다. 수도에 일이 생기면 왕비님의 궁은 도움을 구하려는 귀족들로 북적였는데 지금은 오가는 궁인들만 보일 뿐이었다.

손님은 없었지만, 왕비님의 궁은 기억하던 모습 그대로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난 왕성을 오래 떠나 있지 않았다. 왕비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관리가 물었다.

“어디부터 둘러보시겠습니까? 장례 때 따로 부장하시고 싶은 물건을 알려 주시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장례? 부장?”

“이보세요!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도트가 화를 냈다. 시종들이 일제히 날카로운 눈으로 관리를 노려봤다.

관리는 당황했다.

“죄, 죄송합니다. 아니었군요! 저는 전하께서 돌아오셨으니, 당연히 미뤄 둔 장례를 준비하시는 줄 알고…….”

“말실수도 한두 번이죠! 왕자님, 에드워드 전하께서는 이리도 허술한 관리가 왕자님을 안내하고 있다는 걸 아실까요?”

“죄송합니다!”

관리가 연신 고개를 숙였다.

“아니, 장례 준비는 해야지. 틀린 말도 아닌데.”

내가 왜 놀랐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왕비궁이 춥게 느껴졌다.

“그대는 빈 궁을 관리하는 직책이 아니었나?”

“저, 저는 왕실 예무부의 관리입니다, 전하. 제가 왕비님의 궁을 관리했던 이유는, 그분의 장례 준비를 맡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군. 나라에 변고가 많아 그대 일을 하지 못했던 거군.”

“예, 예. 그렇습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난 장례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는 잘 알지 못해. 도움은 안 되겠지만.”

“예, 전하. 준비는 저희에게 맡겨 주시면 됩니다. 전하께는 더 중요한 일이 있으시니…….”

도트가 다시 관리를 노려봤다. 관리는 입을 닫았다.

중요한 일? 조프리는 상주인 셈이다. 중요하다면 중요한 일이었다.

이번에도 맞는 말을 했지만, 도트는 말의 옳고 그름으로 상대를 싫어하지 않는다.

왕비님도 그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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