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과 1-192화 (192/293)
  • 192.

    에드워드는 조프리를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보면 틀림없이 그는 행복해질 것이다.

    그러나 두려움이 더 컸다. 그는 집무실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병사들이 끊임없이 소식을 전했다.

    조프리는 환자답지 않게 활동하고 있었다. 만날 사람이 뭐 그리 많은지 알 수 없었다. 왕성에 숨어 있던 조프리의 추종자들이 꾸역꾸역 방을 찾았다. 조프리는 싫은 기색 한번 없이 맞이했다.

    찾아올 만한 사람들을 다 만난 뒤에는 감옥에 갇혀 있는 자신의 기사를 찾으러 갔다.

    기절할 만큼 피곤할 것이다.

    조프리가 잠자리에 들었다는 소식을 병사가 전했다. 에드워드는 차를 두 잔 더 비웠다.

    그런 뒤에 일어났다.

    그는 확인만 할 것이다.

    조프리가 살아서 움직인다는, 더는 악몽을 꾸지 않고, 조금은 덜 고통스러워한다는 확인만 하고 나올 것이다.

    그는 그러려고 했다.

    조프리와 싸우려던 생각은 아니었다. 왜 만나기만 하면 싸우게 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에드워드는 그저 초조해서 견딜 수 없었다.

    ‘난 갈 곳이 없어.’

    조프리에게 그 말을 들을 때까지 몰아붙인 뒤에야 에드워드는 안심했다.

    조프리는 돌아갈 곳이 없어. 이곳에 남고 싶어 해.

    에드워드는 저열하고 비참했다. 조프리가 무너진 뒤에야 안심했다.

    절반짜리 안심이었다.

    조프리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그의 눈이 감기자, 에드워드는 다시 견딜 수 없었다.

    그는 그저 조프리가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다.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입술을 맞댄 순간 조프리는 눈을 떴다.

    기절시킬까?

    에드워드는 잠깐 고민했다.

    ‘날 좋아해?’

    ‘…….’

    ‘아까 내가 깨기 전에, 나한테 뭐 했어?’

    에드워드는 조프리를 미워한다.

    아니야.

    그는 조프리를…….

    조프리가 없으면.

    오래 품고 있던 욕망이었다. 그리고 에드워드에겐 시간이 없었다.

    조프리는 눈을 감고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를 원망하지 않고, 떠나지 않는다고 말한 조프리가 눈을 감고 있다. 에드워드를 허락한다는 듯이.

    에드워드는 자신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판단도 할 수 없었다. 조프리는 그의 품 안에 있었다. 그를 밀어내지 않았다.

    마치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내일 이야기하자.’

    잠든 조프리는 온기를 찾아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에드워드는 너무 큰 마음 때문에 몸이 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잠들 수 없었다. 이렇게 행복하고 두렵다니 믿을 수 없었다.

    그는 눈꺼풀을 손으로 눌렀다. 눈 안에 고여 있던 눈물이 흘러나왔다.

    조프리는 품속에서 떨고 있었다.

    여전히 악몽을 꾸고 있다.

    지켜 줄 사람이 필요해서, 조프리는 에드워드를 믿기로 했는지도 모른다.

    이유는 아무래도 좋았다.

    에드워드는 조프리를 지킬 것이다.

    조프리는 셔벗에 가지 않는다.

    누군가 집무실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조프리 궁에 붙여 놓은 병사들이 에드워드에게 말을 전했다.

    조프리의 측근들은 궁을 나서 각기 다른 장소로 향했다.

    한두 명이 아니라 일제히 조프리 곁을 비울 정도라면, 받은 명령이 있을 것이다.

    에드워드는 그 명령이 뭔지 알 것 같았다.

    부지런하다. 의식을 완전히 차린 뒤로, 조프리는 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책임져야 할 사람들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에드워드는 조프리의 측근들을 싫어하는 것이다.

    에드워드는 병사에게 무언가를 지시하려다가, 생각을 바꿔 기사들을 불렀다. 조프리의 측근 중엔 절대 말을 듣지 않는 불손한 기사도 있다.

    기사들은 명령을 받고 나갔다.

    에드워드는 책상에 앉아 셔벗의 첩보를 읽었다.

    * * *

    알렉스는 바움쿠헨 백작에게 현재 상황에 대한 말을 더 들었다.

    셔벗의 위협 때문에 귀족들이 갈라져 있고, 조프리 전하에게 압박이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내용이었다.

    아무튼 알렉스는 조프리 전하를 지켜야 한다는 말만 알아들었다.

    그건 알렉스가 제정신이 아닐 때라도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다.

    알렉스는 넋을 놓은 채 저택을 떠났다.

    사랑!

    천둥이라도 치는 것 같았다. 하늘이 열리고 누가 외치는 것처럼 그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가 가는 길마다 새가 날아가고 풀들이 춤을 췄다.

    사랑!

    알렉스는 무언가를 어깨로 치고 지나갔다.

    “죄송합니다.”

    상대가 당연히 넘어졌을 거라고 생각한 알렉스는 멍하니 사과했다. 한쪽 팔도 내밀었다. 잡고 일어나라고.

    상대는 넘어지지 않았다.

    그는 기사복을 입고 있었다. 여러 명의 기사가 알렉스를 둘러쌌다.

    알렉스는 뒤늦게 넋을 수습했다. 그러나 이미 포위되어 있었다.

    “에드워드 전하께서 찾으십니다.”

    기사가 말했다.

    “저는 그분의 기사가 아닙니다. 명령은 다른 사람에게 하라고 하십시오.”

    “바움쿠헨 경을 찾으셨습니다. 조프리 전하에 대해 논의할 일이 있다고 하십니다.”

    기사들이 긴장하는 게 보였다. 손이 검으로 가 있었다. 알렉스가 거부하면 덤빌 것이다.

    싸움은 필요 없었다. 조프리 왕자에 관한 일이다.

    알렉스는 기사의 뒤를 따랐다.

    로웰과 이델라는 약속한 자리에서 다시 만났다. 그들은 각자 이상한 이야기를 들은 참이었다.

    로웰은 그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는 하인’을 더 조사하고 싶었다. 무언가 있다.

    그들이 논의하려는데 정복을 입은 기사가 다가왔다.

    왕성에서 일하는 기사. 에드워드 왕자의 명령을 듣는 자다.

    로웰은 이델라 앞을 가로막았다. 기사는 그들에게 다가와 정중하게 고개 숙였다.

    “에드워드 전하께서 부르십니다.”

    “왜 그럴까요? 그분이 저희를 아실 것 같지 않은데. 저희가 따라가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나요?”

    로웰이 웃으며 말했다. 상단은 코앞이었다. 소리 지르면 하인들이 달려 나올 것이다. 기사 한 명에게서 달아날 만한 시간은 벌어 주겠지.

    “조프리 전하에 관한 일이라고 말씀드리면 올 거라고 하셨습니다.”

    기사가 말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로웰은 가고 싶어졌다. 그는 이델라를 바라봤다. 그녀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로 가면 된다고요?”

    로웰이 물었다.

    * * *

    커튼으로 빛이 들어왔다. 또 오후에 눈이 뜨였다.

    왕성에서 늦게까지 자는데도 무슨 말을 하는 사람이 없다니 이상했다.

    조프리의 일정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짜여 있었다. 아동 학대와 과보호를 넘나드는 게 왕비님의 교육 방식이었다.

    도트는 가장 큰 협력자였다. 커튼을 열고 아침에 나를 깨우고, 응원과 칭찬을 쏟으며 공부를 독려했다.

    “일어나셨어요?”

    도트가 물을 들고 왔다.

    “방문자는 없어?”

    “조금 전에 관리가 찾아왔어요. 에드워드 전하가 보내셨다던데요.”

    아침부터 왕비님 생각이 난 이유를 알겠다.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난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옆방에서 사람이 기다리는데 이렇게 마음 편히 몸단장을 하다니 정말 왕자 노릇에 익숙해졌다.

    옷시중을 받으며 다른 생각도 할 정도였다.

    어제 에드워드와의 대화는 찝찝했다는 생각 같은 거.

    에드워드는 내가 안전해질 거라고 말했다. 그건 내가 지금은 안전하지 않다는 말 같았다.

    그런데 내가 할 일이 없다고.

    그냥 방에 있으면 된다고?

    옆방으로 들어가자 젊은 관리가 내게 인사했다.

    “오래 기다렸어?”

    “아닙니다, 전하. 전하께서 왕비 전하의 궁을 살펴보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들었는데요.”

    “응. 언제든 가능해?”

    “예, 전하. 물론입니다. 조프리 전하께서 걷기 힘들어하신다고, 에드워드 전하께서 이동용 수레도 보내 주셨습니다. 혹시나 해서 가져왔는데, 잘됐네요!”

    관리가 활짝 웃었다.

    이동용 수레?

    그러고 보니 관리 뒤에 이상한 게 있었다.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의자처럼 생겨서, 위에는 밀 수 있는 손잡이가 달렸고 밑에는 조그만 바퀴가 여러 개 달려 있었다.

    휠체어가 아니라 정말로 이동용 수레였다.

    내가 쳐다보고 있자 관리는 당황하며 수레를 끌어 시범을 보였다.

    “보기보다 착석감이 아주 좋습니다. 어제 에드워드 전하의 지시로, 특별히 앉는 부분에 솜 처리를 해서 엉덩이도 배기지 않고요. 허리에도 부담이 안 간답니다.”

    그가 쓱쓱 손잡이를 끌자 수레가 엄청난 소리를 내며 굴러갔다.

    착석감이 문제가 아니었다. 타고 가면 어디서나 주목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농담이겠지?

    그러나 관리는 장난하는 것 같지 않았다. 도트는 앉는 부분의 쿠션감을 확인하더니 입을 벌리고 감탄했다.

    “이런 건 처음 봐요, 전하. 솔직히, 이건 꽤 괜찮네요!”

    “에드워드 전하께서 신경 많이 쓰셨습니다.”

    관리가 뿌듯해했다. 왜 이 사람이 자랑스러워할까?

    “그래……. 마음은 고맙다고 전해 줘.”

    “직접 전해 주시면 더 기뻐하실 텐데요. 두 분의 우애가 얼마나 깊은지 이번 일로 저희 관리들도 다 알게 되었으니까요! 사실 저는 당연히 두 분 전하께서 사이가 나쁘실 줄…….”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요? 왕자님 앞에서!”

    도트가 혼냈다. 관리는 풀이 죽어서 제안했다.

    “죄송합니다. 기분 상하시게 하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저, 원하신다면 에드워드 전하의 집무실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타는 건 기정사실인가?

    “음. 기분은 안 상했고, 그렇게 수고를 끼칠 순 없지.”

    “그 정도로 수고는요!”

    “걸어갈 거야.”

    관리뿐만이 아니라 도트도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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