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과 1-189화 (189/293)
  • 189.

    “먹여 주고 싶어.”

    에드워드는 이유를 말했다.

    대답이 안 됐다.

    “네가 허락해 주면 기쁠 것 같아.”

    그가 다시 말했다. 그러더니 미소 지었다.

    “기쁘다.”

    어?

    숟가락이 내 입 앞에 있었다. 나 대답했나?

    수프에서 김이 피어올랐다. 밀어내는 건 너무 큰 거절로 느껴졌다. 내가 에드워드한테, 어제 뭐라고 한 거지?

    우리 뭐 하고 있는 거지?

    일단 받아먹었다.

    수프는 몸을 데울 만큼만 뜨거웠다. 에드워드가 숟가락을 불어서 다시 내 앞에 내밀었다.

    “아, 해.”

    에드워드의 입술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색이 엷고 얇은, 모양 좋은 입술이다.

    쳐다보다가 에드워드와 눈이 마주쳤다. 그가 눈을 깜빡였다.

    “뜨거워?”

    “아니.”

    왜 이렇게 어색하지. 두 팔이 어색하고 내 자세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너도 먹어.”

    “너한테 먹여 주는 게 좋아. 예전에 네가 나한테 이렇게 해 줬잖아.”

    언제? 기억 못 한다고 날조하지 마라.

    “이젠 내가 해 줄 수 있네.”

    하지만 에드워드가 정말 기뻐하는 것 같아서 입을 열지 못했다.

    원래 얘랑 이렇게…… 어색했지만. 로제 부인의 사건 이후로는 줄곧 그랬다.

    에드워드에게 할 말이 있었는데 입이 열리지 않았다.

    우리가 마주 보고 분위기가 좋았던 적은 거의 없었다.

    무슨 말이든 하면, 원상태로 돌아갈 것 같았다. 내가 앞으로 할 얘기는 전부 분위기를 깰 만한 내용이었다.

    그릇이 바닥을 보일 때까지 난 받아먹기만 했다. 에드워드는 계속 웃는 얼굴이었다. 감개무량할 지경이었다. 에드워드는 정말 웃기기 힘든 애였는데.

    “에드워드. 하나 물어봐도 돼?”

    “뭐든 물어봐. 듣고 있어.”

    에드워드는 부드럽게 대답했다.

    사실은, 이게 에드워드의 진짜 모습일지도 모른다.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 자신을 억누를 필요가 없을 때의 에드워드는 저렇게 행동하는지도 모른다.

    “내게 왕비궁에 들어갈 권한이 있어?”

    “……물론이지. 내게 물어볼 것도 없어.”

    에드워드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궁을 돌보는 관리를 보내 줄까?”

    “응.”

    “오늘은 늦었으니까 내일 보낼게.”

    에드워드는 그러더니 내 어깨를 잡았다.

    “조프리, 망설이지 마. 그냥 물어봐. 네가 하고 싶은 건 뭐든 해. 내가 이뤄 줄 테니까.”

    진짜로, 감개무량했다. 에드워드는 말수도 없는 애였는데, 크더니 말도 유창해지고, 뚫린 입이라고 아무 약속이나 하고…….

    진심일까?

    하고 싶은 말이야 많았다.

    에드워드와 왕비님은, 조프리는 정적이었다.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지금 묻고 싶은 건.

    망설이고 있는데 에드워드가 먼저 질문했다.

    “그런데 조프리, 뺨에 입 맞춰도 돼?”

    “뭐?”

    “굿 나잇 키스 대신으로.”

    * * *

    알렉스는 수도의 바움쿠헨 저택에 도착했다. 그가 들어설 때부터 사용인들은 뭔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알렉스는 무던한 주인이었다. 표정도 무덤덤했는데 오늘은 무슨 생각에 골몰해서 사용인들의 인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실제로 알렉스는 고민에 잠겨 있었다. 가슴이 터지기 직전의 풍선 같았다. 그는 자신이 쓸모없다고 느꼈다. 왕자를 구하러 왕성으로 달려왔지만, 왕자가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만 들었다.

    왕이라도 처치하기 위해 달려들었으나 그가 한 번에 상대할 수 있는 상대는 열일곱 명 정도라는 사실만 알게 되었다.

    그는 무능하고 쓸모없었다. 조프리 왕자가 그에게 화를 냈다면 차라리 좋았을 것이다.

    왕자는 그러지 않았고 알렉스는 더 괴로워졌다.

    바움쿠헨 백작은 왕자가 스스로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럴지도 모른다. 에드워드와 협상해서, 조프리 왕자는 살아남았다. 왕자를 따르는 사람들도 지켜 냈다.

    왕자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라면 알렉스는 기뻐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그는 괴로울 뿐이었다.

    알렉스는 왕자에게 필요 없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단련하겠다는 알렉스의 다짐에 왕자는 ‘응원할게’라고 격려했다.

    알렉스는 기뻐졌다.

    이상하지 않은가? 알렉스가 왕자의 도움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가 왕자의 기쁨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주인과 주인의 명예를 지키는 존재가 기사 아닌가?

    왜 알렉스가 왕자에게 기쁨을 얻고 있지?

    이건 이상하다.

    전하 곁에 있으면 기쁘면서도 마음이 아프고, 곁에 없으면 하루 종일 전하 생각만 하고 있다.

    알렉스가 저택을 찾은 건, 백작이 한 말 때문도 있지만 그 자신의 고민 때문이기도 했다.

    스승님은 뭔가 답을 줄지도 모른다.

    “왔냐?”

    백작이 알렉스를 맞았다.

    백작 부인은 곁에 없었다. 영지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그 아가씨는 친구를 만나는 것 같더구나. 기분 전환이 필요할 것 같아서 너무 늦게 돌아오지 말라고 일러두고 보냈다.”

    “예.”

    알렉스는 백작이 왜 이델라 얘기를 꺼내는지 알 수 없었다.

    식탁에 앉은 사람은 알렉스와 백작뿐이었다. 하인들이 접시를 나르기 시작했다.

    알렉스는 갑자기 초조해졌다. 그는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전하 곁에 있거나 수련이라도 해야 했다.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뭐가 그렇게 급해? 전하께서 빨리 돌아오라고 명령하셨냐?”

    “별일 아니라면 일어나겠습니다.”

    “전하를 보낸 일로 아직도 화난 건 아니겠지.”

    “…….”

    백작은 당황했다.

    “정말로?”

    알렉스가 침묵한 건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왕자가 바움쿠헨 영지를 떠나기 전 ‘인사’한 상대는 아버지뿐이었다.

    아버지가 전하께는 더 믿을 만한 기사인 것이다.

    “스승님은 적이 점령한 성에서 전하를 구출하실 수 있습니까?”

    “뭐? 무슨 대답이 듣고 싶어서 묻는 거야?”

    바움쿠헨 백작은 투덜거리더니, “보통은 무리겠지.” 하고 말했다.

    무리인가? 스승님 같은 기사도 역시.

    “보통 기사라면 무리고, 나는 모르지. 시도는 안 해 봤지만. 너도 해냈으니 나도 할 수 있지 않겠냐?”

    “후.”

    알렉스는 상대를 하지 않기로 했다. 요즘 그는 우울했고, 부쩍 어른스러워졌다.

    “무슨 고민 있냐?”

    결국 바움쿠헨 백작이 물었다. 알렉스는 백작을 쳐다봤다. 방금 헛소리로 못 미더워졌으나, 백작은 훌륭한 기사였다.

    알렉스는 고민거리를 말했다. 자신은 너무 약하고, 빨리 더 강해지고 싶고, 그리고 왕자 전하는…….

    알렉스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백작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알렉스는 눈치채지 못했다. 이윽고 알렉스의 고민 토로가 끝났다. 백작은 머리를 긁적였다.

    “음…….”

    백작의 시선이 식당 이곳저곳으로 향했다.

    알렉스는 그제야 식사를 시작했다. 털어놓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백작은 먹지 못했다.

    “그러니까…… 네가 전하를 짝사랑한다는 거냐?”

    그가 조심스레 물었다.

    언젠가 아들의 연애 상담을 듣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뭐라고 할까, 아무튼 백작은 혼란스러웠다.

    “예?”

    그리고 알렉스의 혼란은 막 시작되었다.

    * * *

    로웰과 이델라는 시장으로 향했다. 이델라는 고민이 많은 듯했으나 로웰은 사실 그녀만큼 심각하진 않았다.

    그는 세상 대부분의 일이 이성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에드워드 왕자는, 이렇게 말하면 이상하지만.

    조프리 왕자와 복잡한 감정으로 얽혀 있다.

    둘은 특수한 관계인 셈이었다.

    정말로 조프리 왕자는 안전할지도 모른다. 누구도 에드워드를 경계하지 않았을 때 조프리 왕자는 그를 경계했다. 그리고 지금, 조프리 왕자는 에드워드의 문제는 해결된 것처럼 말했다. 무슨 조건이 걸려 있다 하더라도, 안전은 안전이라고 로웰은 생각했다.

    로웰이 이델라를 데려오지 않았던 이유는 분명했다. 수도는 위험했고 왕자는 그녀가 안전하길 바랄 테니까.

    왕자와 이델라의 눈치를 살펴보았으나, 둘이 로웰의 생각을 알아챈 것 같지는 않았다.

    사실 둘의 분위기도 로웰의 생각과는 조금 달랐다.

    원래 한차례 위기를 겪은 예비 연인은, 위기가 지나간 뒤에 얼싸안고 입 맞추는 게 규칙 아니던가?

    로웰은 둘이 못해도 포옹은 할 줄 알았다.

    뭔가 분위기가, 사랑이라기엔 온도가 다른 느낌이…….

    로웰은 어떻게 물어볼까 고민하다가 사과하기로 했다.

    “이델라 양. 죄송해요. 저희끼리 수도에 올라온 건, 이델라 양을 따돌릴 생각은 아니었어요. 전하께 소중한 분을 위험한 곳에 보낼 수 없어서 그랬어요.”

    “괜찮아요. 네? 소중한 분?”

    웃으며 답하던 이델라가 반문했다.

    “아닌가요?”

    로웰은 이델라의 반응을 살폈다. 로웰의 추측대로라면 그녀는 볼을 붉히거나 혹은 다른 징표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델라는 로웰을 약간 실망스럽다는 듯이 쳐다봤다.

    로웰은 당황했다.

    “제가 여자라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가요?”

    “아니에요. 성별 때문이 아니라…….”

    로웰은 조프리에게 흑심을 품은 남자를 둘이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변명해도 말이 이상해지지 않는가?

    “모든 사람이 연애를 하고 싶어 하진 않으니까요.”

    이델라가 어른스럽게 말했다.

    로웰은 모든 사람을 연애 관계로 엮는 실망스러운 인간 취급받았으나, 얼굴이 붉어지는 건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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