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
그 애가 내게 자신의 몸을 줬다. 누가 뭐래도 받아 버렸다. 물릴 수도 없다. 내가 조프리 비스코티다.
하지만 에드워드가 저렇게 말하면 뿌리부터 부정당하는 것 같다.
그가 내 존재의 근간이었으니까. 이 세계가 내게 게임이었을 때, 그는 내 게임의 유일한 공략 대상이었으니까.
“난 어디로도 못 가.”
버려진 기분이 들었다. 내게 돌아와 달라고 말한 사람은, 마치 나를 누구보다 바라는 것 같던 사람은 너였잖아.
네가 나를 불렀잖아.
내 곁에 있던 사람이 네가 아니야?
난 에드워드가 나를 만나러 올 줄 알았다. 내가 깨어나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나를…….
에드워드가 내 위로 쓰러졌다. 윽 소리가 날 것 같았다.
“어디로도 가지 않겠다는 거지? 내 곁에 있겠다는 거지. 내가 아쉽다는 거지.”
에드워드가 나를 끌어안았다. 어리둥절할 정도로 열렬한 태도였다. 거대한 곰 인형처럼 안겨서, 그의 숨소리를 들었다. 그가 얼마나 안도하고 있는지 느껴졌다.
“내가 기뻐해도 돼? 내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뜻이라고 이해해도 돼? 내가 네게 중요하다는 거지. 죽기 전에 아까울 정도로는 생각났다는 거지?”
눈은 예쁜데 목소리는 낮았다. 협박하는 건지 애원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둘 다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응.”
“그럼 됐어.”
뭐가?
“네가 다시 나를 떠나지 않겠다면. 그거면 돼.”
속이 찌르르 녹아내렸다.
비참한 기분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내가 가겠다고 해도 에드워드가 놓아줄 것 같지 않다.
“네가 살아 있어. 내 품 안에 있어. 악몽을 꾸는 것 같아.”
에드워드의 말이 이상했다.
“좋은 꿈이 아니라?”
“악몽이야. 꿈에서 깨면 살아갈 수 없으니까……. 이게 꿈이면 어떡하지, 조프리.”
다른 문제가 있을 것 같은데 에드워드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뭐. 이야기 할 시간은 언제든 있을 테니까.
긴장이 풀리자 다시 졸려졌다. 겹친 몸으로 에드워드의 심장 소리가 들렸다.
“꼬집어 줄까? 아파 보면 이게 현실이라고 알걸.”
“꿈은 원래 아프잖아.”
너 무슨 꿈을 꾸는 거야?
“같이 자도 돼? 눈을 뜨고 가장 먼저 네 모습을 보면 안심할 것 같아.”
에드워드가 말했다.
뭐 어려운 일이라고.
난 침대 헤드에 두 겹으로 깔려 있던 베개 하나를 빼서 옆자리에 놓았다. 에드워드는 내가 움직이는 동안에도 내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내 허리를 안고 찰싹 달라붙어 있다가, 그 상태로 함께 침대 위로 쓰러졌다.
금발이 베개 위로 흐트러졌다. 나를 올려다보는 에드워드는 죄책감이 들 정도로 어려 보였다. 난 그에게 이불을 덮어 주고 옆에 누웠다.
“조프리.”
“응.”
“조프리.”
“…….”
“자?”
아니.
대답했던 것 같다. 대답하자고, 생각은 했다.
내일 얘기하자고.
에드워드가 열병을 앓았을 때, 우리가 이 침대에서 벗어나지도 않고 카드 게임을 하고 수다를 떨며 함께 잠들었던 것처럼.
우리는 언제든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에드워드가 내 가슴 위에 머리를 올렸다. 그는 심장 소리를 확인하는 듯했다. 그러더니 내 코밑에 손을 댔다.
호흡을 확인하고 있다.
눈꺼풀이 무거웠다. 아무것도 보지 못해도, 그가 얼마나 불안정한지 알 수 있었다. 에드워드가 다시 내 이마를 짚었다.
열을 확인하는 걸까?
하나의 의식 같았다. 끊임없이 확인하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되어 버릴 것처럼 에드워드는 초조해했다.
눈을 뜨고 그를 안심시켜 주고 싶었다. 열은 미열일 뿐이다. 오늘 내내 있었지만 의사도 심각한 건 아니라고 말했다.
에드워드의 입술이 이마에서 뺨으로 미끄러졌다.
순간 물을 맞은 듯 정신이 깼다. 난 벌떡 일어나 에드워드의 팔을 잡아챘다.
에드워드는 내게 입을 맞추고 있었다.
“에드워드, 날 좋아해?”
“…….”
“아까 내가 깨기 전에, 나한테 뭐 했어?”
‘사랑을 해.’
유연호의 말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사랑을 혼자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이상한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이걸 말한 거였을까?
“꿈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
에드워드가 물었다.
“꿈?”
난 꿈과 현실을 구별할 수 있다.
고개를 모로 기울여, 에드워드에게 다가갔다. 느린 속도로. 그가 원한다면 언제든 피할 수 있게.
에드워드는 피하지 않았다.
건조한 입술이 닿았다. 한숨을 쉬기도 잠시, 뒤통수가 붙잡혔다. 에드워드가 내 입술을 삼켰다. 부드럽게 몇 번이나 입술을 빨아들이고, 깊게 입을 맞췄다.
무게 중심이 뒤로 기울어졌다. 난 베개에 파묻힌 채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에게 맞추고 싶었지만,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내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 나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런 게 사랑이라면 가지고 싶었지만 정말로 욕심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어쩌면.
나도 그걸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악몽 같아.”
천국 같다고 말했어도 이상했겠지만, 에드워드는 그렇게 말했다.
그는 한숨을 쉬었고, 탄성했고, 내가 무슨 말도 할 수 없게 계속 입을 맞췄다.
머리가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날 언제부터 좋아했어?”
“글쎄.”
에드워드와 빈틈없이 맞닿은 채 그의 체온을 느꼈다.
내 곁에 있어야 잠들 수 있다고 말해 놓고 에드워드는 눈 감을 생각을 안 했다. 내가 잠들 때까지 나를 구경하고 있을 셈 같았다.
“열두 살?”
마주치는 눈이 깜빡이지도 않고 나를 쳐다봤다. 손으로는 내 손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네가 무서울 만큼 다정했잖아. 매일 벽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 견딜 수 없게 무서웠는데.”
“내가 무서웠다고?”
“안 그런 적이 없었어.”
에드워드의 속삭임이 한숨처럼 들렸다.
“너는? 조프리. 넌 괜찮았어?”
“나는 네가 있어서 좋았는데.”
에드워드가 있어서 안심됐다. 거짓말이 아니다.
그가 언젠가 나를 죽일 거라는 생각은, 그 미래를 피하면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연결됐다.
행복하게 살 수 있어.
내가 내 미래를 바꿀 수 있다.
에드워드의 표정이 변해 가고, 그가 나를 받아들였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좋았다. 조금씩 좋아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이곳은 내가 있던 곳과 완전히 다른 곳이고, 에드워드는 다른 생물이다. 내 현실은 내가 어떻게 해도 나아지지 않지만, 이곳에선 다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에드워드는 이렇게 말도 안 되게 생겼잖아. 너무 게임 캐릭터잖아.
이곳이 꿈인지 현실인지 내가 게임에서 살아가고 있는 건지. 혼란스러워서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때 에드워드의 존재는 안도감을 줬다.
처음부터 그랬다.
에드워드가 내게 위로를 얻게 할 생각이었는데 내가 그에게 위로받았다.
“정말?”
“정말.”
에드워드는 꾸물꾸물 아래로 움직이더니 내 가슴에 이마를 딱 붙였다. 얇은 옷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가 숨을 내쉬는 게 느껴졌다. 귀엽긴 한데 배가 간지러웠다.
팔뚝에 소름이 돋았지만, 에드워드에게 그만하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내 심장 소리가 듣고 싶은 것이다. 내게 붙어 있으면서도 나를 확인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에드워드가 좋았다. 내게는 그런 사람이 필요했다.
그가 나를 확인할 때마다, 내가 이곳에 있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에드워드는 나를 사랑한다는 거지.
부끄러운 기분이 든다. 그리고 솔직히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다.
손으로 내 눈, 코, 입을 문지르자, 에드워드가 가슴팍에 기댄 얼굴을 들어 나를 봤다.
“왜?”
“네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고.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
“응, 조프리.”
에드워드가 다정하게 대답했다.
반짝이는 얼굴이 도무지 형제에게 은밀한 감정을 품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내 얼굴은 조프리잖아?”
“그렇지?”
무슨 말인지 이해 못 한 것 같다.
“나를 보면서 입 맞추고 싶다고 생각했어?”
“아닐 것 같아?”
에드워드가 쑥 올라오더니 쪽 소리 나게 뽀뽀했다. 웃으며 새가 부리를 콕콕 쪼듯이 입 맞췄다. 그러더니 본격적으로 물고 빨기 시작했다.
증명해 달라는 뜻이 아니었는데.
나에겐 형제가 없지만, 형제가 갑자기 달라진다고 이러고 싶진 않을 것 같았다.
생각을 하고 싶은데, 속이 간지러워서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뭐가 궁금해? 내가 정말 너를 사랑하는지? 어떻게 하면 믿겠어?”
에드워드의 손이 허리를 쓸며 내려갔다. 배를 꾹 누르는데 이상한 소리가 나올 것 같았다.
역시 에드워드는, 으음, 아……?
“잠깐, 에드워드. 알겠으니까!”
에드워드는 내 온몸에 입을 맞출 기세였다. 입술이 목을 타고 내려와서 눈앞이 깜빡였다. 발가락이 움츠러들었다. 쪽쪽거리는 소리를 견딜 수 없었다.
“입 맞추고 싶지 않았을 것 같아?”
“아니.”
“뭐가 더 궁금해?”
말하면 뭐든 대답해주겠다는 듯이 에드워드가 눈을 빛냈다.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난 사랑을 모르지만, 사랑에 빠진 사람은 이럴 것 같았다.
에드워드는 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고 그건 나 때문인 것 같았다.
“일단…….”
“응, 조프리.”
“자자.”
“…….”
에드워드는 약간 뚱해져서 내 가슴 위에 머리를 얹었다.
그가 무거워서, 미열에 들뜬 머리가 따라서 가라앉았다.
다만 감각이 개화하는 것처럼 그의 숨결이 느껴졌을 뿐이다. 얇은 셔츠 너머로 그의 입술이 느껴졌다. 가슴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는 부드러운 체온이.
“정말 자?”
에드워드가 확인했다.
응. 진짜 자. 기절할 것 같아.
간지러운 것 이상으로 몸이 예민해졌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피로가 나를 삼켜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