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과 1-182화 (182/293)
  • 182.

    “왜 날 안 찾아왔어? 내가 깨어났다는 얘기 못 들었어?”

    “들었어.”

    “그런데 왜?”

    “네가 깨어 있을까 봐.”

    이게 무슨 대답이지?

    “계속 아프길 바랐어?”

    “아니.”

    가벼운 한숨이 닿았다. 에드워드가 물었다.

    “가까이 가도 돼?”

    그는 이미 내 침대 곁에 있었다.

    “응.”

    “더?”

    “응.”

    에드워드는 더 가까울 수 없을 정도로 바짝 다가왔다. 그의 눈동자는 빛이 없는 곳에선 검게 보였다. 숨이 막힐 정도로 짙고 검은 눈동자가 나를 기적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이상한 느낌이었다. 에드워드는 두려워하면서도 눈을 떼지 못했다. 내가 아주 잘 드는 검이 된 것 같았다. 그를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을 줄 수 있었다.

    원래 이런 느낌이었나?

    이렇게 숭배받듯 응시당하면서, 난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을까.

    “만져도 돼?”

    “응.”

    칼날에 손을 대도 된다고 허락한 기분이 들었다. 에드워드는 다시 얼굴을 찡그렸다.

    그가 갑자기 허리춤의 검을 풀어 내 손에 쥐여 줬다. 손에 단단한 검집이 잡혔다. 뭐지? 고개를 드는데 그에게 끌어안겼다.

    에드워드의 숨이 목을 간지럽혔다.

    “난 비무장이야. 언제든 불안하면 찔러.”

    그가 말했다.

    미친 소리 하지 마. 대답하기도 전에 그가 말을 이었다.

    “위협을 느끼지 않아도, 찌르고 싶으면 찔러. 저항하지 않을게.”

    “나보고 널 찌르라고?”

    “혹시 너 자신을 찌르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나한테 해. 넌 어차피 남이 아픈 걸 보더라도 네가 더 아파하잖아.”

    내가 무슨 말을 듣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품 안의 에드워드가 떨고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그가 나를 단단하게 옭아맸다.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에드워드의 얼굴을 볼 수 없는 건 물론이었다.

    “이제 말해도 돼. 날 왜 붙잡았어?”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난 네가 가장 먼저 나를 찾아올 줄 알았어.

    왜 그렇게 생각했냐면, 네가…….

    “왜 날 안 찾아왔어?”

    여기서 나한테 입 맞췄잖아.

    에드워드의 답을 듣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는 이번에는 순순히 대답했다.

    “네가 날 원망하고 있을까 봐.”

    “내가?”

    “왕비님의 일은 내가 하지 않았어.”

    미움받을까 봐 상대를 마주하지도 못하는, 그런 마음을 나는 알고 있다.

    “알아.”

    “안다고?”

    “날 구하러 달려왔잖아. 폐하를 네가 막았어. 폐궁에 나를 가둔 것도 살리려고 그랬던 거지. 넌 정말로 날 해치려고 행동한 적은 없어.”

    “…….”

    왕은 그때 정말 악당 같았다. 마지막에 자신의 악행을 전부 고백한다는 점까지 포함해서 그랬다.

    “그런 네가 왕비님을…… 어마마마를 해쳤을 리 없어. 그렇지?”

    목소리가 떨리지 않길 바랐다. 에드워드를 믿는다. 믿을 것이다.

    에드워드는 침묵했다.

    그 침묵이 길어져 신경이 바늘처럼 가늘어졌을 즈음, 에드워드는 나를 옥죄던 팔을 풀고 고개를 들었다. 구름이 걷히고 달이 그의 얼굴을 비췄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어떻게 원망하지 않을 수 있지? 넌 왕비를 사랑했잖아. 네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는데. 누구에게든 책임을 묻고 싶지 않아?”

    그가 내 손을 끌어당겼다. 이제 내 손은 검을 쥔 채 에드워드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그럴 수 있어. 어렵지 않아. 좀 더 고통을 주고 싶다면 이 아래를 찔러. 네 힘이라면 한 번으로 죽지 않아. 난 꽤 고통스러울 거야.”

    “하지 마!”

    “검집을 제거해야지.”

    에드워드가 충고했다. 손아귀 힘이 너무 셌다. 그는 한 손으로 검을 잡고 있었는데, 나는 두 손으로 검을 당겨도 내게로 끌어올 수 없었다.

    이 자식은 내가 환자라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가 기어코 검집을 뽑아냈다. 검날이 번뜩였다. 이렇게 소름 끼치는 빛은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그게 내 손에 들려 있다는 게 가장 두려웠다.

    에드워드가 당장이라도 내 손을 움직여 자신을 찌를 것 같았다. 나는 검을 놓으려고 했다. 하나 에드워드의 손에 붙잡혀서 자루를 놓을 수도 없었다.

    에드워드가 갑자기 멈췄다. 그는 무언가 생각하는 듯했다.

    “왕비는 너를 왕으로 만들고 싶어 했지. 바람을 들어줄 기회야.”

    까만 눈과 마주쳤다.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 그래도 싫어? 그래.”

    에드워드가 손을 놓았다. 그가 고개를 숙였다.

    그와 힘겨루기를 하느라 몸은 흠뻑 젖었다.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난 검을 바닥에 던져 버리고 에드워드의 멱살을 잡았다.

    “너!”

    “유연호가 누구야?”

    에드워드가 물었다. 심장이 떨어지는 듯했다.

    “조프리 비스코티.”

    “…….”

    “조프리?”

    에드워드는 확인하듯 불렀다.

    대답할 수 없었다. 그는 확신하고 있었다.

    “네 이름이 아니야. 그렇지?”

    “어떻게…….”

    어디서?

    누구에게도 들을 일 없다고 생각한 이름이었다. 에드워드는 몸을 반쯤 일으켰다. 무릎을 꿇은 채 내게 다가왔다. 난 뒤로 넘어졌다.

    침대 헤드에 머리를 찧기 전에 에드워드가 손을 뻗었다. 그대로 그의 손에 머리를 찧었다. 꽤 세게 부딪혔을 것이다. 에드워드는 신음도 내지 않았다.

    난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조프리. 그렇게 행동하면 궁지에 몰린 사람 같아.”

    에드워드는 이상하게 냉정했다.

    “어디서 들었어?”

    “네가 불렀잖아. 약을 먹일 때. 예전에 네가 말했었지. 넌 다른 사람이라고. 말에서 떨어져서 사람이 바뀌었다고. 농담이라고 생각했어. 네 농담은 형편없으니까. 그때 넌 다 말했는데.”

    그런 말을, 에드워드에게 했었다.

    기억났다.

    등이 축축해진 게 느껴졌다. 난 얼마나 생각 없는 사람일까? 과거의 내 자신이 놀라웠다. 끝도 없이 어리석은 짓을 잘도 저질렀다.

    이곳이 내 현실이라고 생각하기로 한 지 24시간은 지났나?

    반역자고 뭐도 아니고, 아예 내가 ‘조프리’가 아니란 게 밝혀지면 난 어떻게 되는 거지?

    “네가 조프리가 아니라서야? 왕비의 일에 이성을 잃고 분노하지 않는 건.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너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아무렇지 않게 죽어 버릴 수 있는 건.”

    “아니야…….”

    누가 아무렇지 않았다는 거야?

    난 죽을 듯이 두려웠다. 곧 죽을 걸 알면서도 공포감에 죽어 버릴 것 같다고 생각했다.

    “경우가 다르잖아. 네가 한 짓이 아닌데, 널 찌르는 게 어떻게 복수가 돼? 그게 증명이 돼? 내가 조프리 비스코티라는.”

    “그럼 누구라면 죽이고 싶어? 누구에게 복수하고 싶지? 마지막 순간에 누가 떠올랐어?”

    에드워드는 나를 깔고 올라탄 채 고개를 숙였다. 얼굴이 가까워졌다.

    “네게 중요한 게 있기는 해? 없잖아. 넌 언제든 다 버리고 갈 수 있잖아.”

    눈을 보고 알았다.

    에드워드는 나를 협박하는 게 아니다. 누구보다 지금 상황을 두려워하고 있는 건 에드워드다.

    누군가를 협박하는 사람의 눈동자가 저렇게 떨릴 리 없다.

    내가 조프리가 아닐까 봐. 그래서 조프리가 가진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을까 봐.

    그를 두고 가 버릴까 봐.

    “네가 그렇게 우는데, 다른 사람 생각이 나겠어?”

    에드워드가 멈칫했다.

    그때 그의 목소리는 처참했다. 그런 목소리를 들으면 누구라도 잠들지 못할 것이다.

    ‘사랑을 해.’

    왜 갑자기 유연호의 말이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에드워드의 까만 눈이 보였다. 우리 자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복수할 대상은 네가 아니라 왕이잖아. 뭘 원하는 거야? 나한테 미움받고 싶어? 이상한 소리 그만하고 내려와.”

    “조프리.”

    에드워드는 내려오지 않았다. 내 얼굴을 만지며 시선을 맞추려고 했다.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왜 그렇게 불러? 네 말대로, 난 조프리가 아닌데. 왕비님이 사랑하던 그 애는 아니야. 그 애에게 내가 이 몸을 받았어. 낙마 사건 이후 네게 접근하고, 전과 다른 사람처럼 군 건 나야. 당연하지, 다른 사람이니까.”

    조프리의 몸에 들어온 이후 그의 기억을 조금씩 받았다. 그의 꿈을 봤다.

    태어났을 때부터의 기억을 영화처럼 이어서 본 건 아니다. 드문드문 끊긴 장면이었다. 꿈속에서 난 꼭 조프리가 된 것처럼 생각하고 느꼈다.

    그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싫어했는지.

    그렇게 많은 기억을 봤는데, 열한 살의 조프리는 어땠는지 알 수 없었다. 가까운 기억은 공백이었다. 그는 왕비님을 절대 실망시키지 않으려는 아이였는데, 왜 열한 살의 조프리는 왕비님께 서먹하게 굴었을까?

    그가 왕비님을 버렸으니까. 내게 맡기고 도망쳤으니까.

    조프리의 기억을 가장 자주 꿈꾼 건 열한 살 때였다. 긴 시간을 지나 그의 꿈을 다시 꿨다.

    마지막으로 꾼 조프리의 꿈은, 그 장례식에서의 기억은…….

    그걸 조프리의 꿈이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건 내 꿈이었다. 내 기억의 공백이었다.

    조프리 비스코티는 왕비님이 에드워드를 학대하는 걸 알고 있었다. 그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행해지는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조프리는 견디지 못했고, 왕비님을 피했고, 그런데도 왕비님의 기대를 충족하고 싶어 했다.

    단 하나라도 좋았다. 에드워드를 따라잡으면 어마마마도 만족하실 거야. 에드워드에게 끔찍한 짓을 하지 않으실 거야.

    나만 잘했다면 어마마마는 나쁜 사람이 아닐 수 있었는데.

    조프리는 낙마했다. 그 애는 실패했고, 다시 시도하고 싶지 않았다.

    영원히 도망치고 싶었다.

    바보 같은 이야기다. 정말이지 나 같다.

    자기와 똑같은 사람에게 몸을 넘기고 가 버리다니 바보 같다는 생각밖에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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