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
에드워드를 따라온 북방의 병력은 두 갈래로 갈라져 한쪽은 셔벗과의 국경으로 향했고 다른 쪽은 수도에 머물렀다.
왕은 에드워드가 원한다면 제 병사들을 내어주겠지만, 에드워드는 왕을 믿지 않았다. 왕은 누구도 지키지 못한다. 에드워드는 자신의 것이 필요했다.
에드워드의 병사들은 왕으로부터 폐궁에 있는 조프리를 보호했다. 방법은 거칠었으나 그것은 분명 보호였다. 조프리를 해하려는 세상으로부터의.
그러나 조프리는 탈출했다. 에드워드는 피가 식었다.
도망자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드물었다. 왕이 관문을 막았기 때문에 에드워드는 큰길을 따라 병력을 보내고 자신은 샛길로 향했다.
그의 병사들은 바움쿠헨 성으로 들어가는 사람을 차단할 것이다. 신분을 숨긴 왕자가, 조프리가, 에드워드보다 더 빨리 도달할 리 없다…….
그렇게 믿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다. 조프리가 영영 손 닿을 수 없는 곳으로 가 버린다고 생각하면.
조프리는 달아나지 못했다. 그러나 상황은 그 이상으로 나빴다. 에드워드는 엇갈렸고 조프리는 왕성으로 호송됐다.
에드워드가 대전에 들어섰을 때 본 건 검을 든 왕과 무릎 꿇은 조프리였다. 피에 젖은 조프리는 난해한 무늬를 띤 옷을 입고 있는 듯했다. 에드워드는 해석이라도 하듯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 다음 일은 기억나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미친 듯이 조프리를 안고 나왔다. 품 안에 안은 몸이 축 늘어져서 움직이지 않았다. 차갑고 소름 끼치게 가벼웠다.
에드워드가 지나가는 길마다 피가 점점이 떨어졌다. 에드워드의 발이 그것을 밟아서 밑창의 무늬가 복도에 남았다.
자국마다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품 안에서 조프리가 죽어 가고 있었다. 조금씩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에드워드는 그만한 공포를 알지 못했다. 그가 조프리를 죽이는 것 같았다.
왕의 주치의가 끌려왔다. 에드워드는 피를 닦지도 않은 검을 바닥에 던져 놓았다.
“살려 내.”
“조프리 전하?”
“어서!”
조프리는 눈을 뜨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머리를 움켜쥐었다.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차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볼 수 없었다.
조프리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며 떠나지 않았다.
‘이제 난 아무것도 없어. 만족해?’
에드워드는 자신이 울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없었다.
“치료는 끝났습니다. 하지만 피를 너무 많이 흘리셔서, 의식이…….”
“살아 있게만 해.”
왕의 주치의는 고개를 흔들었다. 어렵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설명하려다 에드워드의 얼굴을 보고 놀랐다.
에드워드는 알지 못했다. 그는 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주치의의 목을 베어 버리려고 생각하다가 실행 전에 멈췄다.
사람을 죽이는 건 이렇게도 쉽다. 그러나 살리는 건 어렵다니 부조리한 일이다.
죽은 사람은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그 당연한 법칙이 새삼스레 두려웠다.
어린 시절 에드워드를 절망시킨 일이 다시 반복되려 하고 있었다.
그때 에드워드는 자신이 어머니의 죽음에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다는 데 절망했다. 어머니는 그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눈을 감았고 조프리는 그를 떠났다. 그의 소망은 힘이 없다.
그래서 에드워드는 힘을 가졌고, 행동했고…….
그의 소망이 조프리를 죽이는 게 아닌가?
에드워드의 흰 손은 피에 젖어 있었다. 말라붙은 핏자국이 눈물에 젖어 더럽게 얼룩졌다.
조프리는 그의 침실로 옮겨졌다.
침대 위에 누운 조프리는 그가 깔고 있는 침대보만큼이나 창백했다.
에드워드는 침대 옆에 앉아 조프리에게서 조금도 눈을 떼지 않았다. 속눈썹만 움직여도 알아볼 텐데. 조프리는 에드워드가 조금의 희망을 품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그러나 눈을 뗄 수는 없었다. 그가 시선을 떼면 조프리를 붙든 끈이 사라질 것 같았다.
시선에는 아무런 물리력이 없으며 조프리는 한 번도 에드워드에게 잡혀 준 적이 없다. 머리로 아는 사실을 에드워드는 묵살했다. 그를 지탱하는 건 막연한 열망이었다.
창밖으로 햇빛과 함께 소음이 들어왔다. 조프리의 방은 넓고 빛이 잘 드는 곳에 있었다. 궁의 위치는 광장과 가까웠다. 조프리는 백성들을 사랑했으니 그들이 즐거워하는 소리를 듣는 것도 좋아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소음은 비명에 가까웠다.
비명이 커지고 있었다. 에드워드가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아도 들렸다. 궁인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자 궁인은 창백한 얼굴로 ‘폭도들’이라고 대답했다.
“폭도?”
“조프리 전하를 살려 내라고…….”
치료는 끝났다. 그러나 조프리의 몸이 살아 있을 뿐이었다. 의식을 되찾지는 않는다.
에드워드는 살아 있는 조프리를 바라봤다. 가끔 겁이 나면 미친 사람처럼 조프리가 숨을 쉬는지 확인했다. 미약한 숨이 얼굴에 닿으면 그제야 안심했다.
에드워드는 조프리에게 바라는 게 많았다. 실은 하나밖에 없었다. 내 곁에 있어 줘. 나를 떠나지 마.
누구보다 나를 중요하게 생각해 줘.
내가 그러는 만큼.
“조프리, 사랑받는구나.”
뻐근한 눈을 깜빡이자 맑은 눈물이 아래로 떨어졌다. 에드워드는 신경 쓰지 않았다.
조프리가 사랑받는 게 싫었다. 그는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그들에게 모두 다정했다.
모든 사람에게 다정할 수 있다는 건, 결국 누구도 특별하지 않다는 뜻이다. 에드워드는 조프리의 소중한 사람을 모두 없애고 싶었다. 그 사람들은 에드워드에게서 조프리를 빼앗아 간다.
봐. 결국 너를 이렇게 만들었잖아.
그러나 조프리를 움직이는 게 저 많은 사람들이라면, 에드워드는 그들을 용인할 수 있었다.
궁 안까지 들릴 정도로 사람들이 외치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창문을 닫지 않았다.
“돌아와, 조프리.”
궁인이 방문자를 알렸다. 에드워드는 무시했다. 문밖에서 소란이 일더니 고함 소리가 들렸다.
“에드워드 전하! 밖으로 나오셔야 해요. 지금 막지 않으면 전쟁이 일어나요. 조프리 전하께선 전쟁을 막기 위해 돌아오셨잖아요! 그분이 하신 일을 헛되게 만들 셈이세요?”
그레이 크래커의 목소리였다. 에드워드는 그레이의 고함을 처음 들었다.
“쫓아낼까요?”
병사가 물었다. 에드워드는 침묵했다. 그는 자신을 믿지 않았다. 그는 비이성적이며 충동적이다.
저 밖의 사람들은 조프리의 짐이다. 그러나 조프리가 그들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면, 그를 돌아오게 할 수 있는 건 그들이 아닌가?
조프리가 사랑하고 조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
에드워드가 문을 열었다. 그레이는 이마까지 붉어진 얼굴로 병사들을 털어 냈다. 그가 몸을 낮춰 간청했다.
“백성들을 진정시키고 셔벗의 사신을 만나세요. 이 전쟁을 막아요. 조프리 전하께서 돌아오실 수 있게.”
* * *
왕성으로 간 조프리 왕자가 중태에 빠져 일어나지 못한다는 소문은 바움쿠헨령까지 전해졌다.
바움쿠헨 백작은 왕성에 사람을 보냈으나 답신이 없었다. 왕자와 만나게 해 줄 수 있고 없고를 답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왕자가 살아 있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알렉스 바움쿠헨과 왕자의 시종 도트는 왕성으로 떠났다.
로웰은 그들을 탓하지 않을 셈이었다. 소식을 들은 순간 그도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다. 왕자가 떠났다는 걸 확인한 뒤로 로웰은 그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떨쳐 낼 수 없었다.
왕자는 이상했다. 그가 이상하다는 걸 로웰은 알고 있었다. 생각 없는 바움쿠헨이 눈치채지 못했더라도 로웰은 알았어야 했다. 왕자가 어떤 결심을 하고 있는지.
‘어떤 선택을 하시든 저는 전하를 따를게요. 전하만 생각하세요.’
그렇게 말했을 때, 로웰은 조프리 왕자를 외국으로 피신시킬 생각을 하고 있었다.
누구도 조프리 왕자를 모르는 곳, 왕국의 전쟁 소식 따위는 들리지도 않는 먼 곳으로 가서, 왕자가 행복할 수만 있게.
망상이다. 왕자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늦었고 알렉스와 도트는 목숨을 걸고 왕성으로 향했다. 조프리 왕자는 공식적으로 아직 반역자였다. 그를 만나겠다는 행동이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어린아이도 알 것이다.
로웰은 죽을 생각은 없었다. 왕자를 만나려다 죽기라도 한다면 왕자가 잘도 칭찬해 줄 것이다.
그는 수도에 도착하자마자 그레이를 찾았다. 크래커 공작 저택은 벽돌담이 쳐진 요새 같은 건물이었다. 병사들이 삼엄하게 경비를 서고 있었다. 수상한 자는 접근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로웰은 마차에서 내려 모습을 가다듬었다. 세 치 혀를 움직이는 건 그의 특기였다.
그때 모자를 쓴 남자가 그곳을 지나가며 쓰레기를 담벼락 안으로 던지는 모습이 보였다.
미친 건가? 로웰은 눈을 의심했다. 크래커 공작의 사병들이 남자를 쫓아 달려왔고 남자는 달아났다.
그러나 반대편에서 또 소란이 일었다. 누군가 저택 안까지 들리도록 욕을 하는 듯했다. 그쪽은 모자를 쓴 남자와 달리 달아나지 못하고 붙잡혔다. 비명이 들렸다.
병사가 로웰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너도 소란을 피우러 왔느냐고 의심하는 얼굴이었다. 로웰은 재빨리 호감 가는 미소를 지었다.
“크래커 소공작의 아카데미 친구입니다. 로웰이 찾아왔다고 하면 알 겁니다.”
“도련님의 친구분이십니까? 안에서 기다리십시오. 연락을 취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로웰은 안으로 안내받았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그레이가 응접실로 들어왔다. 그는 창백하고 눈 밑이 검었다. 며칠 잠을 설친 사람 같았다.
로웰은 용건을 말하려고 했다. 그레이가 손을 까딱였다. 로웰이 아니라 뒤에 서 있던 사병들에게 보내는 신호였고, 그들은 로웰을 양쪽에서 붙잡았다.
“뭐, 뭡니까?”
로웰이 발버둥 쳤으나 그레이는 듣지 않았다.
“찾는 수고를 덜었군. 왕성으로 데려가.”
“예.”
사병들이 로웰을 끌고 갔다. 로웰은 마차에 태워져 왕성으로 끌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