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과 1-168화 (168/293)
  • 168.

    “왕자 전하께서, 에드워드 전하와 대화하시겠다고 저를 돌려보내셨어요.”

    이델라가 에드워드와 함께 있었다고? 그래서 왕자가 급하게 찾았단 말인가? 이델라는 명백히 조프리의 주변 인물이다.

    “분위기가 안 좋았어요.”

    이델라는 계속 말했다. 그녀의 큰 눈이 로웰을 향했다. 침착한 인상이다. 그러나 지금은 겁에 질려 있었다.

    그녀의 불안감이 로웰에게 옮아왔다.

    “두 분이 어디 계셨죠?”

    “이쪽이에요. 하지만…….”

    이델라가 망설였다.

    로웰은 알아들었다. 그로는 안심이 안 된다는 뜻이다. 끼어들 신분도 힘도 없다.

    괜찮았다. 부족한 건 다른 사람에게 빌리면 되지 않는가?

    로웰은 그녀를 분수대로 데려갔다. 몽블랑의 하인들이 모여 있었다. 로웰의 도주를 막던 근육질의 힘 센 장정들이었다.

    이델라의 얼굴이 한결 밝아졌다. 그녀가 내심 ‘저 사람들이라도 에드워드 전하를 막을 수 있을까’ 따위를 고민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면, 로웰은 좀 더 다급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로웰에겐 독심술이 없었고, 그는 에드워드가 조프리를 해치지는 않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기에 에드워드는…… 조금 이상한 방식이지만, 조프리를 아끼는 듯했다. 로웰의 추측이 옳다면.

    하지만 싸움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이델라는 돌려 말했지만 ‘분위기가 안 좋다’는 건 다른 의미로 해석되지 않았다. 두 왕자가 다툰다면, 다치는 쪽은 조프리다.

    일행은 달려서 두 왕자가 싸우던 골목으로 향했다. 그 모습이 병사들의 눈에 띄었다.

    “거기, 잠깐! 이리 와 봐!”

    “예?”

    병사들은 정식 무장을 갖추고 있었다. 평소처럼 대강이 아니라 투구까지 쓴 모습이었다.

    병사를 무시해서 좋을 일은 없었다. 로웰은 조급한 마음을 숨기고 웃으며 다가갔다.

    거리가 좁혀지자, 병사들도 몽블랑 상단의 아들과 그 하인들의 얼굴을 알아봤다. 다급히 도주하는 모양새라 붙잡았으나 왕자와 관계없는 일행이었다. 병사들의 표정이 풀렸다.

    “공무 중이세요? 공사다망하십니다. 어쩐 일로 이렇게 바쁘신 거예요?”

    로웰은 친근하게 다가갔다. 몽블랑 상단과 병사들은 친분이 있었다. 오고 가는 뇌물 속에 다져진 우정이라 효과가 좋았다. 병사들은 여느 때처럼 불평했다.

    “아니, 이 인파 속에서 누굴 찾아 오라잖습니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경비대장은 제가 쫓아내 놓고…….”

    “그러니까. 그것도 까마득한 윗사람을 우리만으로 어떻게 강제하라는 건지. 나중에 처벌받으면 자기가 대신 목 잘릴 건가?”

    “찾으시는 분이 어떤 분인데요? 저희가 봤을 수도 있잖아요.”

    로웰은 이상한 직감에 사로잡혀 물었다.

    “누구냐니, 그야 2왕자 전하…….”

    “야!”

    다른 병사가 입단속을 했다. 그러나 로웰은 필요한 부분을 이미 들었다.

    그는 주위를 둘러봤다. 축제 인파가 거리에 가득했다.

    모르고 봤을 땐 그들이 모두 놀러 온 사람처럼 보였다. 지금은 인파 속에서 번쩍이는 투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병사들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으음, 그것참 힘드시겠네요. 저희가 도움 될 일 있으면 뭐든 말씀하세요.”

    로웰은 적당히 상대하고 병사들을 보냈다.

    불안감이 극에 달해서, 머리가 차가워졌다. 이델라가 데려간 골목에 왕자들은 없었다.

    * * *

    그레이 크래커는 뜻밖의 인물로부터 방문을 받았다. 반곱슬머리에 한량처럼 생긴 로웰 몽블랑은 평소의 느긋한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살기등등한 얼굴이었다.

    “왕자 전하는 어디 계시죠?”

    조프리 왕자의 행적이 묘연해진 지 일주일째였다. 그레이는 이미 경비대의 방문을 여러 차례 받았다.

    그레이의 행적은 투명했고 그의 신분은 그보다 더 훌륭했으므로 그가 의심을 사는 일은 없었다.

    왕비의 사망 소식이 아카데미에 알려지면서, 조프리 왕자의 실종은 덮였다. 어머니의 죽음에 충격받은 왕자가 행방을 감춘 게 아니냐는 소문으로 번졌고 학생들은 왕자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경비대장은 그레이에게 언제 마지막으로 왕자를 봤냐고 물었다. 그레이는 축제 첫날 아침이라고 대답했다. 그레이에게 감히 묻는 용감한 학생들에게도 그렇게 답해 주었다.

    겉으로 보기에 그레이는 냉정하게 사태에서 거리를 두고 있는 듯했다. 그는 슬퍼하지도 걱정하지도 않았다.

    학생들은 그레이가 조프리의 룸메이트라는 걸 알면서도 그가 왕자의 행방을 알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왕자와 그레이는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누가 알고 있겠는가? 알렉스 바움쿠헨?

    왕비의 죽음은 지엽적인 의문을 덮어 버렸다.

    바움쿠헨의 후계자가 경비대에 조사받으러 갔다는 사실도 덮어 버려서, 학생들은 혀만 차고 있었다. 왕자가 돌아와 장례를 치러야 할 텐데.

    왕비를 사랑하지 않는 귀족들도 국장이 절차대로 진행되길 바라고 있었다. 그게 도리 아니겠는가? 무엇보다 그래야 셔벗의 심기도 거스르지 않을 터였다.

    사태가 급박해진 건 수도에서 소문이 넘어오면서부터였다.

    병사들이 찾고 있는 건 가엾은 조프리 왕자가 아니다. 반역자인 조프리다.

    ‘조프리 전하가?’

    ‘설마…….’

    소문을 접한 사람들이 수군거려서 아카데미 도시는 평소보다 조용할 지경이었다.

    그레이는 편지를 구겼다. 재상은 조프리 왕자의 행방을 묻고 있었다. 아버지도 모르는 것이다.

    어째서?

    에드워드 왕자는 조프리 왕자를 데리고 왕성으로 귀환한 지 오래였다. 그런데도 재상이 모른다…….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조프리 왕자를 마지막으로 본 날 이후로, 그레이는 제대로 된 판단력을 유지할 수 없었다.

    재상은 이렇게 된 이상 조프리의 신분을 박탈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했다. 재상은 정갈한 필체의 소유자였는데, 그의 편지에는 곳곳에 잉크가 튀어 있었다.

    ‘준비?’

    그레이는 그런 계획을 들은 적 없었다!

    파이 공작은 조프리를 반역자의 아들로 만드는 방법은 약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는 조프리를 향한 지지가 너무 단단하다.

    그 지지의 뿌리를 없애자.

    백성들이 사랑하는 조프리 왕자가, 실은 왕자가 아니었다면 어쩌겠는가?

    파이 공작은 왕비의 부정을 폭로할 생각이었다.

    ‘조프리 왕자는 왕의 친자가 아니다, 그 증인을 셔벗에서 데려왔다.’ 그렇게 주장하고 공작이 준비한 사람을 재판정에 세울 계획이었다.

    왕비는 스스로를 변호할 터이나, 왕을 독살하려 한 악독한 여자의 말을 누가 믿겠는가?

    그레이는 조프리가 정말로 왕의 친자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재상과 파이 공작이 그레이가 모르는 곳에서 이미 합의를 보았다는 사실이다.

    ‘조프리 왕자의 존재는 이 나라에 해가 된다.’

    이 계획은 정말로 통할 수 있었다. 조프리 왕자는 재판을 통해 ‘왕자’조차 아니게 될 수 있었다!

    그레이는 편지를 읽으면서 속이 메슥거렸다.

    그러나 왕비가 죽지 않았는가?

    사고라는 말이 그레이는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믿음과 관계없이, 사고로 인한 죽음은 언제나 음모론의 씨앗이 된다.

    이는 재상과 파이 공작도 예상한 바가 아니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수상쩍은 죽음을 맞이한 왕비.

    이로써 셔벗의 개입에 대비한 명분은 모두 헛것이 됐다. 셔벗은 분노할 것이다.

    그리고 조프리 왕자는 어떻게 되는가?

    그레이는 왕비의 사고 소식을 전하러 에드워드의 방으로 달려갔다.

    그곳에 조프리 왕자가 있었다. 조프리 왕자는 기절한 채였다. 어째서인지 그 밑에 왕자의 시종이 함께 기절해 있었다.

    에드워드는 시종을 발치에 두고 내려다봤다.

    ‘조프리를 왕성으로 데려가겠어.’

    그레이는 살기라는 것을 태어나서 처음 느꼈다. 그 방만 공기의 밀도가 달랐다.

    그레이는 아무 말 못 하고 조프리 왕자를 마차에 숨기는 데 협조했다.

    기절한 조프리는 축 늘어져서 무거웠다. 그의 살이 몸에 닿을 때마다 그레이는 오싹해서 견딜 수 없었다. 조프리 왕자는 이미 죽은 사람 같았다.

    ‘전하를 데려가서 어쩌시려고요?’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부터 심장이 계속 두근거렸다.

    에드워드는 그 마차를 타고 왕성으로 향했고 며칠이 흘렀다.

    수도에선 반역죄에 대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조프리 왕자와 관계된 장소를 샅샅이 수색했다. 왕자와 한 번이라도 대화했던 사람들은 빠짐없이 조사받았다.

    그 와중에도 로웰 몽블랑은 미친 사람처럼 왕자를 찾아다녔다. 그가 얼마나 평소와 달랐는지 상태가 이상해졌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조프리 왕자를 이상한 길로 빠뜨린 한량이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레이 자신보다 훌륭하지 않은가?

    로웰의 머리는 헝클어진 데다, 반듯한 얼굴엔 수염 자국이 보였다.

    그는 그레이와 어울릴 부류의 인간이 아니었다. 이 순간 전까지, 그들은 제대로 눈도 마주친 적 없었다. 그런데도 로웰은 그레이에게 희망을 걸고 찾아온 것이다.

    주어진 일이 있을 때, 그레이는 계획대로 행동하기만 했다. 거기에 사적인 감정이 끼어들 틈은 없었다.

    그러나 계획은 이미 어그러졌다. 그레이는 스스로를 주체할 수 없었다.

    조프리 왕자는 살아 있는가?

    자신이 왕자를 사지로 밀어 넣은 건가?

    “알렉스 바움쿠헨은 그쪽이 보호하고 있나?”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는데요. 왕자 전하의 행방을 알고 계신다면…….”

    그레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시치미를 떼던 로웰이 말을 멈췄다.

    “데리고 있지?”

    “…….”

    “안내해. 전하의 행방을 알려 줄 테니. 그자가 필요하다. 서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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