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과 1-167화 (167/293)
  • 167.

    알렉스 바움쿠헨은 조사실에 앉아 있었다. 경비대는 그가 어릴 적 가장 두려워하던 장소 중 하나였다.

    나이 많은 원생들은 이곳에 끌려오면 끝이라고 말했다. 그 원생들이 어느 날 사라지면, 알렉스는 그들이 ‘끝났거나’ 아니면 어딘가 팔렸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라진 사람이 유능한 원생이었다면 전자일 확률이 높았다. 그러니까 알렉스도 ‘끝난다면’ 경비대에서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의 인생이 완전히 뒤바뀐 어느 날 이후로, 알렉스와 경비대의 악연은 사라졌다. 일방적인 인연이었지만 알렉스에게 그건 대단한 일이었다.

    경비대의 병사들은 기본적으로 군인이어서, 나라의 영웅인 바움쿠헨 백작을 몹시 존경했다. 백작이 지나갈 때마다 그들은 바짝 군기가 들었다. 백작이 킬킬 웃으며 ‘봤냐? 봤어?’ 하며 옆구리를 찌르지만 않았어도 알렉스는 양부를 존경했을 것이다.

    왕자와 떨어져 조사실로 들어가며 알렉스는 불안감을 느꼈다. 어린 시절 트라우마에서 기인한 불안감은 물론 아니었고, 왕자를 혼자 두는 데서 오는 불안이었다.

    그는 애초에 외출이 내키지 않았다.

    옛 지인이 찾아온 건 기뻤으나 왕자를 모시는 시간이었다. 때를 못 맞추지 않는가.

    지인이 누군지 알게 되었을 때는 그 기쁨마저 사라져서 미뤄 둔 빚을 갚았다는 해방감 말고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그 지인인 잭이 문제가 되어 알렉스는 조사받고 있었다. 경비대에 신고하고 죽일 걸 그랬다고 알렉스는 후회했다. 이렇게 귀찮아질 줄 알았다면 도시 법규에 맞게 행동했을 텐데.

    물론 알렉스는 아카데미 도시의 규율 같은 건 몰랐다. 그가 아는 건 ‘전장에서 상관의 지시에 불응하는 자는 즉결 처분’ 따위였다. 알렉스는 그렇게 복잡한 곳에서 살아오지 않았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 겉보기에는 진중한 청년 기사였기 때문에, 조사실에 들어온 병사는 ‘왜 그러셨습니까. 이것참, 경도 곤란하게 되었네요.’ 하고 알렉스의 걱정까지 해 주며 나갔다.

    이어서 경비대장이 들어왔다. 그는 알렉스가 설명 들은 것보다 일이 꼬였다는 얘기를 길게 풀어서 했다.

    그는 서류로 책상을 치고 손으로 턱을 괴는 등 분위기를 잡았다.

    “이해하셨습니까?”

    경비대장이 물었다. 알렉스는 대답 대신 아까부터 신경 쓰이던 걸 물었다.

    “왕자 전하께서는 밖에 계십니까?”

    “……혹시 반역죄라는 말을 못 들으셨습니까?”

    “들었습니다.”

    “음. 그렇군요…….”

    “전하께서 계시기엔 이곳이 편한 곳이 아닐 텐데요.”

    “전하께서는 가셨습니다.”

    경비대장은 정말 그게 궁금하냐는 듯이 쳐다봤다. 네 처지는 안 궁금하냐는 눈빛이었다.

    알렉스는 알아채지 못했다. 알아챘어도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혼자 보내셨습니까?”

    “특별히 호위를 원하지 않으셔서…….”

    알렉스는 이 경비대장이 불충한 자라고 판단했다.

    그때 밖이 소란해졌다. 경비대장을 찾는 듯했다. 병사 한 명이 조사실의 문을 두드렸다.

    “왕성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직접 확인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조사가 끝나지 않았으니 자리를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경비대장은 알렉스에게 경고하고 나갔다. 그가 손짓으로 병사들을 조사실에 배치하는 게 보였다.

    지시를 받은 병사 셋이 안으로 들어왔다. 나머지는 문밖을 지켰다.

    “왕자 전하께서는 무사히 돌아가셨나?”

    “아마 그러시지 않을까요?”

    알렉스는 안에 들어온 병사에게 물었다. 그리고 이 병사도 불충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하께서 기숙사에 계시는지 확인 후 보고해라.”

    “예? 어, 저희가요?”

    알렉스는 병사를 노려봤으나 그런다고 병사에게 없던 충성심이 생기진 않았다.

    “전하께서 멀리 계시지 않겠다고 하셨으니까, 이 근처 카페를 찾아보면 계실 것 같습니다.”

    “근데 이거 말해도 돼?”

    병사들이 저희끼리 얘기했다.

    그때 문밖에서 쾅 소리가 나더니 조용해졌다. 경비대장이 복도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다들 모여! 비상이다! 빠진 놈들은 뭐야?”

    “휴식 시간이라…….”

    “휴식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당장 불러와! 들어오라고 해!”

    “예!”

    알렉스를 감시하던 병사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알렉스만큼이나 그들도 귀 기울여 듣고 있었다.

    “2왕자 조프리의 행방을 찾아. 신변을 구속해라.”

    “구속? 왕자 전하를 말입니까?”

    “그래. 서둘러! 도주할 시간을 주지 마라!”

    “예!”

    군화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그들이 나가자, 복도 너머는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뒤처럼 조용해졌다.

    알렉스를 지키던 병사들이 서로를 쳐다봤다. 아카데미 도시는 치안 좋고 평화로운 곳이다.

    무슨 일이지? 신변 구속이라니, 왕자에게 할 말이 아니지 않은가?

    의문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알렉스는 팔의 구속을 풀고 병사 한 명의 머리를 잡았다. 병사가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알렉스는 병사의 머리를 무기 삼아 나머지 두 명의 머리를 망치처럼 두드렸다.

    실내라 병사들은 투구를 벗고 있었다. 제압은 쉬웠다. 알렉스는 기절한 병사에게서 무기를 빌려 허리에 찼다.

    그는 복도로 나갔다. 그가 통행인처럼 너무 자연스럽게 행동해서 복도를 지키던 다섯 명의 병사들은 바로 반응하지 못했다.

    알렉스는 가장 앞에 있는 두 명의 머리를 검집째로 후려쳤다. 그들이 비명을 지르며 물러서자, 발로 가슴을 밟아 뒤로 밀쳤다.

    병사들은 뒷걸음질 치던 그대로 뒤에 있던 동료들에게 밀쳐졌다.

    쓰러진 병사들이 좁은 복도를 막았다. 알렉스는 군홧발로 병사들을 차 기절시켰다.

    그가 이런 소란을 피우는데도 달려오는 인원이 없었다. 알렉스는 모퉁이를 주시했다. 한 명 있기는 했다.

    경비대장이 벽 뒤에 숨어 있었다. 알렉스는 그의 멱살을 잡고 끌어냈다. 그대로 머리 위로 들어 올리자, 경비대장은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버둥거렸다.

    “왕자 전하를 구속하겠다는 게 무슨 뜻이지? 대답해라.”

    경비대장이 발버둥 쳤다. 뭐라고 컥컥거렸으나 제대로 된 대답은 아니었다.

    왕자 전하께 불충한 데다 입 무거운 반역자였던가? 알렉스가 그를 던져 버리고 나가려는데, 경비대장이 가까스로 고함을 쳤다.

    “말, 말할 테니까! 이것 좀!”

    알렉스는 손을 놓았다. 경비대장이 바닥으로 쿵 떨어졌다. 나무 바닥에 기침과 숨을 토해 내던 경비대장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알렉스가 겨눈 검날을 맞이해야 했다.

    알렉스는 초조했다. 더는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어서 말해. 전하께서는 어디 계시냐?”

    * * *

    로웰은 왕자의 명령을 듣고 상단으로 돌아갔다. 몽블랑 상단주는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그 옆에서 직원이 외쳤다.

    “도련님이 돌아오셨어요!”

    “내가 그 자식을 의자에 묶어 놓고 24시간 감시를 하든가 해야지!”

    “도련님이 오셨다니까요!”

    “그놈 너희가 내보내 준 거 아니지? 그놈이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게 다 너희들이 싸고돌아서…….”

    “아, 좀 보세요!”

    직원과 싸우던 제이커 몽블랑이 정문을 쳐다봤다. 그는 머리를 쥐고 있던 손을 떼고 눈을 번뜩였다.

    “로웰 이노오옴! 네가 도망을 쳐?”

    “아버지. 하인들 좀 빌려주세요.”

    “네가 네 죄를……. 뭐?”

    “빨리요. 급해요. 사람 하나 찾아야 해요.”

    로웰의 급한 분위기가 전염돼서, 제이커는 심각하게 물었다.

    “누굴 찾는데?”

    “이델라 에클레어라고, 리본으로 올려 묶은 머리카락에, 갈색 머리, 갈색 눈동자, 보통 아카데미 교복을 입고 다니는데…….”

    “상단 하인들을 네 연애 싸움에 동원하지 마라!”

    “그런 거 아니라고요!”

    “아니긴 뭐가 아냐?”

    내 신뢰도는 왜 이따위지? 로웰은 짜증스러웠으나, 침착하게 말했다.

    “전하께서 찾는 사람이에요. 급하다고 하셨어요.”

    “2왕자 전하?”

    “네.”

    “넌 또 나가서 그분은 언제 만나고 왔어? 이러다 왕비님께 찍히기라도 하면, 너는, 너는……. 유언장에서 이름을 빼 버릴 줄 알아라!”

    “그러시든가요!”

    “뭐?”

    제이커는 유언장을 들먹이는 협박은 자주 쓰지 않았다. 로웰의 형제들은 정말로 로웰에게 한 푼도 주지 않고 내쫓을 만한 인사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제이커의 말을 들으면 기뻐 날뛸 게 분명했다. 제이커는 로웰에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

    로웰이 유언장 문제에는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것도 한몫했다.

    그런데 로웰이 먼저 말하고 있었다.

    “유언장에서 이름 빼는 값으로 직원들 하루 빌려주시는 거죠. 급해요. 지금 빌려 갈게요.”

    하인들을 빌린다는 게 어느새 직원들로 바뀌어 있었다. 제이커는 미간을 좁혔으나 로웰을 막아서진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로웰은 하인과 직원들을 불러 모았다.

    “이델라 양이요? 어느 범위를 수색하면 됩니까?”

    “이쪽은 제가 맡을게요.”

    “찾아서 도련님께 데려가면 되나요? 어디 계시게요?”

    “분수대……. 알겠습니다.”

    제이커 몽블랑은 팔짱을 끼고 쳐다봤다.

    직원들은 로웰을 왜 이렇게 좋아한단 말인가? 로웰은 진심이란 말인가? 이제부터 집안일 안 돕겠다고 나서면 어쩌지?

    아버지의 걱정을 뒤로하고 로웰은 거리로 나섰다. 어차피 앞으로 왕자의 일에 개입하지 못하게 될 건 명약관화했다. 그렇다면 쓸 수 있는 자원을, 쓸 수 있는 때까지 활용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가 골목에서 뛰쳐나온 이델라와 마주한 건 얼마 후의 일이었다.

    이델라는 다친 곳 하나 없이 무사한 데다, 어디 구속된 것 같지도 않았다. 왕자는 왜 그렇게 다급하게 찾았을까?

    로웰은 의아함을 느꼈으나 이내 호의적인 미소를 만들었다.

    왕자가 좋아하는 사람.

    가슴이 찌릿찌릿했다.

    “에클레어 양. 왕자 전하께서 찾고 계세요.”

    “전하께서? 저는…… 이미 마주쳤어요.”

    이델라는 불안한 얼굴이었다. 잘 모르는 사람에 대한 경계도, 로웰 같은 미남에게 보일 만한 반응도 아니었다.

    로웰이 표정을 굳히고 물었다.

    “무슨 일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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