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과 1-164화 (164/293)
  • 164.

    “내 평판이 내려가는데, 너랑 왜 다퉈? 조프리 왕자가 욕먹으면 넌 좀 편해지잖아.”

    “아. 그거.”

    에드워드는 한 손으로 재주 좋게 신문을 말더니 쓰레기통에 던졌다. 쓰레기가 잔뜩 쌓인 거리 쓰레기통 위에 신문 뭉치가 안착했다.

    다른 사람의 노력을 쉽게 버리는 애다. 뒤돌아봤지만, 다행히 신문을 나눠 준 학생은 이 광경을 못 본 듯했다.

    “그래서였어? 밤놀이며 이상한 데 돌아다니던 게.”

    “아니면 뭔 줄 알았어?”

    에드워드가 나를 잡아끌어서, 가슴 앞으로 당겼다.

    “여기서 사람들이 널 더 좋아하게 만들어서, 네가 어쩌려는 건지 궁금했어.”

    에드워드가 말했다.

    “나랑 같은 기사 읽은 거 맞아?”

    눈이 이상한가?

    에드워드는 뚱한 표정이었다.

    “하긴 넌 나 오해밖에 안 하지.”

    “아니야.”

    “그랬잖아. 전에 플랑베 부인 파티 갔을 때도…….”

    “아니야.”

    “뭐가 아니야?”

    우리는 말씨름을 하며 걷다가, 가판대에 있던 어린아이에게 솜사탕을 받았다. ‘와! 조프리 전하!’ 아이가 삿대질을 해서 가판대에 있던 상인이 기겁했다.

    아이에게까지 평판 관리를 할 수 없어서 못된 말은 안 했다. 대신 에드워드에게 솜사탕을 건네주자, 단걸 좋아하는 에드워드는 뚱한 채 솜사탕을 먹었다.

    봄을 지나 날은 점점 더워졌다. 오후 날씨는 초여름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공기가 뜨뜻미지근하게 끈적해서, 마주 잡은 손에 땀이 뱄다. 우리가 뭐 어린애도 아니고 인파에 휩쓸려 갈 리도 없는데. 에드워드는 놓을 생각을 안 했다. 그렇다고 내가 놓기도 뭐했다.

    우리는 아카데미 도착할 때까지 그러고 있었다. 길을 처음 걷는 어린아이들처럼.

    축제 거리에서부터 이어진 사람들의 행렬은 아카데미 주 도로까지 계속되어서, 주요 건물로 통하는 길목은 가판과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가득했다.

    풍선을 매달아 놓은 나무들을 지나 기숙사로 들어가자, 텅 빈 로비가 우리를 맞았다.

    우리는 계단으로 올라갔다. 그러는 동안 에드워드는 솜사탕을 다 먹어 치웠고, 그의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꼬치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왜 안 들어와?”

    에드워드가 문가에서 돌아봤다. 이 방이 어두웠을 때, 난 이곳에 들어간 적 있다.

    에드워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굴었다. 그러나 초조한 듯 눈을 깜빡이고 있어서, 그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때 나한테 왜 그랬어?”

    에드워드는 그때 지독했다. 내가 느끼기에는 조금 그랬다.

    나 때문에 불행하다고 했잖아.

    아직도 그래?

    “미안해.”

    에드워드가 말했다.

    “미안해. 그러니까 들어와.”

    “그때 진심이었어?”

    “아니.”

    “1초 만에 대답하지 마. 거짓말 같잖아.”

    “…….”

    정말 거짓말이야?

    덕분에 나도 조금 불행해진 것 같다.

    “너 거짓말하는 법 배워야겠다.”

    “이제 필요 없어. 너한텐 거짓말 안 할 거니까…….”

    “방금 했잖아?”

    “안 할게. 그러니까 이리 와.”

    에드워드가 착하게 말했다.

    문턱을 넘어 방으로 들어갔다.

    에드워드는 안도한 듯 나를 끌어안았다. 그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난 거짓말 안 할 거니까. 조프리, 너도 하면 안 돼.”

    “난 원래 안 해.”

    “거짓말. 그럼 그 여자는 뭐야? 또 아무 사이 아니라고 하지 마…….”

    에드워드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얜 거짓말은 못하는데 협박은 잘했다. 커서 뭐가 될까?

    이미 성년은 지났지만.

    “생일 축하해.”

    그러고 보니 축하 인사도 못 했다. 에드워드의 머리를 만져 주며 말하자, 그는 멍해지더니 이내 못되게 말했다.

    “그래. 이미 선물도 줬잖아. 그 여자 통해서. 역시 애인이야?”

    “…….”

    “남색 소문까지 내면서 감추려고 했잖아. 파벨레 상송은 철석같이 믿고 있던데. 널 싫어하는 입 싼 귀족에게 소문을 맡기다니,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잘 쓰잖아. ……아!”

    등을 찰싹 때리자 에드워드는 깜짝 놀랐다.

    눈이 동그랗게 된 게 귀엽다.

    천사같이 생겨서 못된 생각만 하는 것도 재주였다.

    “너 자꾸 화나게 할래?”

    “……또 화낼 거야? 그 여자 때문에?”

    에드워드가 또 협박했다.

    “아무 사이 아니라니까. 내가 네 애인을 왜 건드려?”

    “누가 내 애인인데?”

    에드워드가 미간을 좁히더니 내게서 몸을 뗐다. 이상한 반응이다.

    “이델라잖아.”

    “그 여자가 왜 내 애인이야?”

    “청혼한 거 아냐?”

    에드워드가 놀란 만큼 나도 놀랐다.

    뭐? 아니라고?

    그럼 이델라는 누구한테 청혼받았는데?

    “조프리. 무도회에 파트너로 참가한다고 다 사귀는 사이는 아니야.”

    먼저 침착해진 쪽은 에드워드였다. 그는 어린애에게 아이는 새가 물어다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설명하듯 다정하게 말했다.

    나도 알아.

    아니, 그러면 진짜 누구야? 공략 캐릭터 누구도 이델라와 접점이 없다.

    이델라가 활발히 데이트를 하던 상대는…….

    잊고 있던 남학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레온 브륄레.”

    “그게 누군데?”

    에드워드의 목소리가 다시 낮아졌다. 협박 그만해…….

    “너 이델라 뒷조사하지 않았어?”

    가정 형편이 어쩌고 못된 소리 했잖아.

    이델라랑 사귀는 사이가 아니었다면, 에드워드가 어디 가서 그런 얘길 들었을 리가 없다.

    에드워드는 불행히도 남을 아무렇지 않게 뒷조사하는 애로 커 버렸다. 왕성은 아이를 교육하기에 좋은 장소가 아니다.

    “아니?”

    에드워드는 뚱한 얼굴로 거짓말했다.

    “뻥 치지 마.”

    “조사는 했지만, 내내 따라다니라고는 안 했어.”

    그가 말을 바꿨다.

    “왜?”

    얜 왜 조사를 하다 말까? 그러니까 조프리도 오해하고 그러는 거 아니야.

    “여성을 하루 종일 따라다니는 건 범죄잖아?”

    에드워드가 찡그린 얼굴로 말했다.

    매너를 배우다 만 걸까?

    뒷조사부터 범죄였고, 남자라고 하루 종일 따라다녀도 되는 건 아니지만.

    에드워드는 왜 이렇게 이상한 애일까?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게임에서도 공략 못 했던 애를 지금 와서 공략한다는 게 무리였을지도.

    아니, 진짜 얘 공략은 어디서부터 망했던 거지?

    “이제 그 여자 얘기 그만해. 우리 할 얘기 많잖아.”

    에드워드가 나를 다시 끌어안았다. 그대로 침대에 주저앉아서, 나도 다리가 풀렸다. 에드워드의 몸은 어마어마하게 무거웠다.

    씻지 않고 누워도 되나?

    잔소리할 룸메이트가 없어서인지 에드워드는 신경 안 쓰는 듯했다. 그가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숨을 내쉬어서 목이 간지러웠다.

    “조프리, 어디 아파?”

    “아니. 왜?”

    “몸이 뜨거워. 열나는 것 같아.”

    너 때문에 열 받아서일걸…….

    대답해 주려는데 에드워드는 귀신같은 몸놀림으로 내 위에 올라탔다. 이마에 건조한 입술이 느껴졌다.

    그의 손이 내 가슴을 짚고 있었다. 그곳이 두근두근 울리는 게 스스로도 느껴졌다.

    “잘 모르겠는데.”

    에드워드가 고개를 갸웃했다. 두 다리 사이에 끼인 채 올려다본 에드워드는, 귀엽지도 순진해 보이지도 않았다. 거대하고 제압할 수 없는 상대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그가 내 셔츠 단추를 풀고 목과 가슴을 더듬는 동안, 난 멍하니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가 내게 이상하게 열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험하게 느껴질 만큼.

    벗어나려고 하면, 에드워드가 놓아줄까?

    에드워드의 속눈썹이 섬세하게 움직였다. 그는 내 몸의 열을 재고 있었다. 열을 재는 게 원래 이렇게 이상한 일인지 궁금했다…….

    “에드워드, 왜 손이 떨려?”

    “네 몸이 뜨거워서.”

    내 몸이 뜨거워서, 그렇게 쳐다보는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문이 쾅쾅 울렸다. 에드워드의 손이 멈췄다.

    최면에서 깬 기분이었다. 내 심장도 잠깐 멈췄을 것이다.

    “왕자님! 왕자님, 여기 계세요?”

    도트의 목소리였다.

    에드워드가 내 위에서 내려왔다. 다리에 걸려 있던 이불이 에드워드에게 깔려서, 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다. 난 일어나다 말았다.

    “도트? 무슨 일이야? 들어와.”

    내 꼴이 이상하게 보일 거라는 생각은 그 뒤에 들었다. 혼날 것 같은데.

    문이 거칠게 열렸다. 도트는 여기까지 뛰어온 듯했다. 가슴을 움켜쥐고 숨을 몰아쉬며, 그는 덜덜 떨었다.

    “와, 왕자님. 진정하세요.”

    “진정은 네가 해야 할 것 같은데?”

    도트는 고개를 흔들었다.

    “와, 왕비님이, 지금 왕성에서 소식이 왔는데, 급보가, 사고가, 아카데미로 오시던 길에……. 왕자님!”

    에드워드에게 붙잡혔다고 느낀 건 한순간이었다. 몸이 빙그르르 돌아갔다. 에드워드는 무표정했다.

    “조프리, 잠깐만…….”

    “…….”

    “잠깐 자고 있어.”

    그의 목소리만 들렸다. 누구의 심장인지, 너무 강하게 뛰고 있어서 온몸이 울렸다. 달라붙은 하나의 기관인 것처럼.

    뒷덜미가 아팠고, 어지러웠다.

    그 다음은 기억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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