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로웰 몽블랑 같은 치들 때문에 조프리 왕자님께는 이상한 소문이 돌 뻔했다. 물론 사람들은 왕자님의 진심을 알았기 때문에 오해하지 않았다.
그렇다 해도 왕비는 화낼지 모른다. 소문의 불씨를 그냥 뒀다는 것만으로 분노할지도.
편지 대신 병사들이 오는 게 아닐까.
‘왕자 곁에 붙은 벌레도 떼어 내지 못하다니.’
어딘가 끌려가서 채찍질당하면, 왕자님을 보러 가지 못할 텐데. 그럼 왕자님이 걱정하시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빙그레 웃던 도트는, 하인의 부름을 듣고 일어났다.
“너한테 편지 왔어.”
“이리 줘.”
상상은 실현되지 않았다. 왕성에서 온 편지다. 그냥 바쁘셨던 건가.
도트는 편지를 읽었다. 그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 * *
골목에 침묵이 감돌았다.
에드워드는 입에서 손을 떼어 내더니 날 노려봤다.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 내가 밉고 원망스럽다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난 저 표정이 더 익숙했다.
“가. 너랑 더 할 얘기 없어.”
에드워드가 말했다.
내가 너무 못된 짓을 해서 곁에 둘 수 없다는 듯이.
누구 마음대로?
“또 다신 보지 말자고 하려고?”
“뭐?”
“이번에 내가 꺼져 주면 어떻게 되는데? 또 날 미워하고 끔찍해하다가, 이용할 때 되면 부르려고?”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정말 몰라?”
왜 몰라? 네가 했던 짓인데. 지금도 하고 있잖아.
“육 년 전에, 네가 말했잖아. 다신 네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난 네 말 잘 들었잖아. 너랑 약속한 건 안 어기잖아. 먼저 깬 건 너야…….”
울컥 치밀어서, 소리 지르지 않기 위해 초인적인 인내가 필요했다.
난 에드워드가 영원히 나를 미워할 거라고 생각했다. 기대를 품게 만든 건 너였잖아.
에드워드는 조용했다. 고개를 들자, 눈을 크게 뜬 그가 보였다.
“그래서 날 피한 거라고?”
“…….”
“내 말을 들어서?”
“아니면 뭔 줄 알았는데?”
조프리가 개자식이라 혼자 된 널 두고 피해 다니는 줄 알았어?
너 진짜 개자식이야?
“내 말이 너한테 그만한 영향을 준다고?”
너 진짜…….
에드워드가 달려들듯 물었다.
“파이 공작의 수업에 안 들어온 것도 그래서야?”
“내가 들어가면, 네가 수업을 못 듣잖아.”
“정말? 그래서라고?”
에드워드가 두 손으로 내 얼굴을 잡아서, 뒤로 물러날 수도 없었다.
믿을 수 없는 것처럼 에드워드는 내 뺨을 만지작거렸다.
“내가 부상당했을 때 얼씬도 안 했잖아.”
“그게 언젠데…….”
“나 사고 났을 때.”
“몰라, 그런 거…….”
“뭐야.”
에드워드는 눈을 짜증스럽게 뜨더니 초조한 듯 물었다.
“왜 출정식 땐 안 나왔는데?”
“네 무운을 기원하는 자리에 나보고 왕비님과 시녀들을 끌고 참여하라고?”
“그랬어야지.”
“저주라도 받고 싶었어?”
“어차피 왕비궁에선 저주하고 있었을 텐데. 넌 나왔어야지. 날 보는 마지막 자리일 수도 있었잖아.”
에드워드가 차갑게 말했다. 스스로 억지 부리는 건 알고 있을까?
“너 봤어.”
“어디서?”
“동쪽 탑에서. 너 보여.”
“진짜? 봤어?”
에드워드가 의심했다.
“내가 무슨 옷 입고 있었는지 말해 봐.”
“그딴 걸 어떻게 알아…….”
“무슨 말 타고 있었는지는 알아?”
“몰라…….”
백마였어? 백마는 타지 마라.
“아는 게 뭐야?”
에드워드가 정말 궁금한 것처럼 물었다. 그가 날 끌어안지만 않았어도 무슨 말을 했을 것이다.
“정말? 날 버린 게 아니었어? 왕비 때문에 날 놓은 게 아니야? 정말이야? 널 믿어도 돼?”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에드워드가 쉴 새 없이 물었다.
밀어낸 건 너였으면서, 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너 진짜 뭐야?
맥이 탁 풀렸다. 억울한데 무슨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울면서 화내는 것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
“난 너한테 버려진 줄 알았어…….”
어깨가 축축해졌다. 난 망설이다가, 에드워드의 등을 도닥였다. 에드워드는 싫어하지 않았다. 더욱더 매달렸다.
바람이 골목을 통과했다. 등의 땀이 서늘하게 식어서,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에드워드와 단둘이 골목길.
위험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에드워드가 나를 해칠 거라는 생각은 더는 들지 않았다.
“너 날 얼마나 구제 불능이라고 생각한 거야?”
“…….”
에드워드는 대답이 없었다.
그래. 엄청 생각한 것 같긴 하다.
“너도 나한테 나쁜 짓 했잖아.”
“…….”
“알렉스 어떻게 할 거야?”
“풀어 줄게.”
“네 짓 맞네.”
“…….”
불리할 때 입 다무는 것 좀 그만해라.
“나 너랑 약속 지켰어. 이델라랑도 아무 사이 아니야.”
“정말?”
자기 궁금할 때는 또 입을 연다.
넌 진짜 다른 사람이었으면 엄청 얄미웠을걸.
“약속해. 나 너랑 한 약속 잘 지키잖아.”
“아니잖아. 어긴 거 있잖아.”
“억지 부리지 마…….”
“진짠데.”
에드워드가 고개를 들었다. 그새 눈물이 말라서 얼굴이 말짱했다. 하지만 거리가 가까운 탓에, 속눈썹이 젖은 게 보였다.
에드워드는 의심이 많다. 그럴 만한 상황에서 자랐다. 난 그걸 알고 있다…….
한숨이 나올 것 같다.
“알고 보면 오해일걸.”
“정말?”
“물어봐. 다 해명할 수 있어.”
“정말?”
에드워드는 계속 물었다. 그가 뭘 물어볼지 알 만했다. 왕위 관련한 거라든가, 사업이라든가, 뭐 그런 거겠지.
“그렇다니까.”
“그럼, 나랑 잘래?”
뭐?
“같이 잘래? 궁금한 얘기가 많아.”
에드워드가 속삭였다. 코앞에서 젖은 속눈썹이 깜빡였다.
나도 에드워드에게 궁금한 게 많았다.
왜 갑자기 날 무시했어? 못되게 굴었어?
정말로 날 죽이려고 했어?
왜 입 맞췄어?
우리 화해한 거야?
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골목을 빠져나갔다.
* * *
축제 거리는 사람이 정말 많아서, 혼자 걸을 때와는 난이도가 달랐다.
일행을 잃어버리기 쉬운 공간이었다. 다들 어떻게 같이 다니는 거지? 물어볼 것도 없이, 다들 손을 잡고 있었다.
앞서 걷던 에드워드가 나를 돌아봤다. 그러더니 손을 내밀었다.
잡으라는 건가?
손을 올리자, 에드워드는 깍지를 끼고 끌어당겼다.
“잃어버릴 것 같아서.”
그가 말했다.
사람이 많긴 했다.
어디선가 펑 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잘못 쏘아 올린 폭죽이 오후의 하늘을 희미하게 밝히고 있었다.
그 아래에서 풍선 하나가 둥실 떠올라 하늘로 사라졌다.
“어! 조프리 전하! 두 분 만나셨군요? 다행이에요!”
아까 봤던 학생이 몇 부 남지 않은 신문 뭉치를 품에 안고 활짝 웃었다. 아까 내가 인사는 했던가?
“응. 고마워. 축제일에 고생하네. 교대는 안 해?”
“이제 하려고요. 제 몫을 다 배포해서요.”
“벌써?”
“날개 돋친 듯 팔리던데요! 역시 전하의 이슈를 첫 면에 둔 게 주효했나 봐요! 전하께서는 지금 아카데미 돌아가세요?”
“응.”
“돌아가시면, 꼭 전하 기사를 읽어 주세요! 기숙사장이 정말 신경 써서 기사를 썼거든요.”
“뭔데?”
에드워드가 나를 끌어당기며 물었다.
“신문.”
“관리용?”
“아니, 평민 대상이야. 대단하지?”
말 한 마디에도 학생은 기뻐했다. 정작 에드워드는 별 반응이 없었지만.
에드워드는 신문을 한 부 받고는 나를 다른 길로 데려갔다. 저만치 멀어져 있는 내게, 학생이 큰 소리로 인사했다.
“저희는 전하 편이에요! 두 분 전하께서 사이가 안 좋다거나 그런 말은 안 믿어요! 손잡고 축제 구경 하실 정도로 사이좋으신걸요! 헉, 다음 기사 이걸로 써야겠다.”
아니,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그러는 동안 에드워드는 1면 기사를 읽고 있었다.
“이 신문 발행인들이랑 친해?”
“아니?”
“멀리 두는 게 좋겠는데.”
에드워드가 말했다.
‘조프리 전하의 사람들을 곁에서 제거하고 있어요.’ 로웰의 말이 떠오르려는데, 에드워드가 신문을 내밀었다.
1면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조프리 전하의 박애주의: 그 심층 비밀을 파헤치다!
이게 뭔데?
에드워드는 눈으로 계속 신문을 읽고 있었다.
“조프리. 남자 애인이 여섯, 여자 애인이 둘이라는 게 사실이야?”
“아니?”
“안 친하게 지내는 게 좋겠지?”
“원래 안 친해.”
기숙사장이 뭘 신경 썼다는 거야? 이상한 기사만 썼는데.
“이런 걸 배포하다니 불온 세력 같은데. 정리할까?”
에드워드가 무서운 소리를 했다.
“그 기사 내가 부탁한 거야.”
“왜?”
“너랑 다투기 싫으니까.”
“나랑 다투려고가 아니라?”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