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과 1-162화 (162/293)
  • 162.

    “호외요! 신문 읽어요! 왕자 전하에 대한 최신 소식! 수도 유행! ‘비스코티는 현재’ 코너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아카데미 도시 최초의 신문! 이미 왕성 관리들은 읽는다? 조프리 전하도 읽는 그 신문! 앗, 조프리 전하?”

    인파 속에서 누군가 나를 알아봤다. 난 대강 고개를 끄덕였다. 품 안 가득 신문을 안고 있던 학생이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방금 에드워드 전하도 뵈었는데. 두 분 축제 구경하시는군요? 맞다, 저희 창간호가 나왔어요! 전하 방에도 꽂아 놓고 왔는데 아직 못 읽으신…….”

    “에드워드를 봤다고?”

    고개가 휙 돌아갔다.

    “예, 예, 전하! 이쪽으로 지나가셨어요. 신문 드리고 싶었는데, 데이트 중이셔서 방해하면 안 될 것 같아서요!”

    “고마워.”

    그가 가리킨 방향으로 달렸다. 인적 드문 골목이다.

    심장이 점점 차가워져서, 손이 저릿저릿했다.

    어두운 골목에, 에드워드가 있었다. 이델라의 손목을 잡고 강압적으로 끌어당기는 에드워드가.

    “지금 뭐 하는 거야?”

    둘 사이를 가로막고, 이델라를 뒤로 당겼다. 숨이 턱 끝까지 찼다.

    “이델라. 이리 와.”

    “전하? 어떻게 여기에…….”

    이델라를 훑어봤다. 다친 곳은 없다.

    늦지 않았다.

    “너 뭐 하려고 했어?”

    “화내는 거야?”

    에드워드가 멍하니 물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이델라, 돌아가. 에드워드랑 할 말 있어.”

    분위기를 살피던 이델라가 내 옷자락을 잡았다. 괜찮은지 망설이는 표정이다.

    착한 애지만, 이런 태도는 좋지 않다.

    “가.”

    단호하게 손을 떼어 내자, 이델라는 고개를 끄덕이고 달려갔다.

    그녀의 모습이 사라졌다.

    에드워드는…….

    그의 그런 표정은 지금껏 본 적 없었다.

    “다 됐어?”

    에드워드가 물었다.

    “…….”

    “할 얘기가 있다며?”

    “…….”

    “하자. 얘기.”

    그가 픽 웃었다.

    그래. 할 얘기가 있다. 난 내 발로 에드워드를 따라서 골목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 * *

    “알렉스 바움쿠헨은 어디 뒀어?”

    에드워드가 물었다.

    입이 말랐다. 난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알잖아.”

    “그런가? 요즘 어울려 다니던 상인 아들은?”

    “지금부터 돌려 말하기 그만하자.”

    잘라 말하자, 에드워드의 눈썹이 올라갔다.

    “좋아.”

    “네 오해부터 풀게. 나랑 이델라는 아무 사이도 아니야.”

    뭔가가 내 이마를 훔쳤다. 에드워드가 손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땀이 흐를 정도로 찾아 헤매다가, 위험인물과 함께 있는 걸 보고 돌려보냈는데? 아무 사이 아니야?”

    “아니야.”

    “나를 보자마자 하는 소리가 ‘그녀와 아무 사이 아니야’인데, 아무 사이 아니라고?”

    “아니야. 아니니까 아니라고 하는 거야. 각서라도 쓸까?”

    “너랑 무슨 사이라도 되면, 내가 어떻게 할 것 같았어? 알렉스 바움쿠헨이나 로웰 몽블랑에게처럼?”

    자기 입으로 인정했다. 두 사람에게 무슨 조치를 취했다고.

    “아니야.”

    “돌려 말하지 말자며, 거짓말은 해도 되는 거야?”

    표정에서 티가 났을 것이다. 조프리는 몸을 다루는 일엔 적성이 없다.

    “좋아, 그럼 무슨 사이야? 아무 사이도 아니고 포옹하는 사이? 울면 걱정하고 시야에 안 보이면 애타게 찾는 사이야?”

    잘 빈정거린다.

    “그 부분이 오해라는 거야.”

    “정말? 그럼 뭐야? 아, 그거야? 사연 있는 사람이던데. 너무 불쌍해서 동정하게 된 사이?”

    이런 일이 예전에도 있었다.

    알렉스 때.

    내가 그때 뭐라고 했더라?

    “인간적인 동정심이야. 너라도 도왔을 거잖아.”

    에드워드는 뒷말은 무시했다.

    “그럼 몇 년 뒤엔 그녀도 네 곁에 있겠네.”

    알렉스 얘기다.

    정말 잘도 비꼰다!

    “맹세라도 해? 백 명쯤 증인을 불러 두고 서약이라도 할까? 왜 사람 말을 못 믿어?”

    “나보고 널 믿으라고? 널?”

    에드워드가 비웃었다. 처음으로 표정이 생겼다. 기뻐해야 하나?

    “내 손발을 다 잘라 뒀으면서 뭐가 불안해? 언제든 네가 나한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거 알아. 이번에 제대로 알았어. 그래도, 솔직히 반역은 심했잖아. 알렉이 정말 어떻게 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네 전우이기도 하잖아.”

    목소리를 부드럽게 낮췄다. 내가 짐승이었다면 배라도 내보였을 것이다.

    에드워드는 응하지 않았다.

    “공정한 조사를 받겠지. 죄가 없으면 풀려나고, 죄가 있으면 벌받을 거야. 아무래도 신분이 신분이니만큼 극비리에 조사받겠지만. 너도 진행 과정을 모를 수 있겠네. 어쩌면 수도까지 올라갈지 모르고. 아바마마께서 저번 습격에 관심이 많으시니까.”

    “에드워드.”

    “바움쿠헨 백작을 별로 안 좋아하시지. 그래도 알렉스 바움쿠헨은 네 호위이니…… 좋게 봐주시지 않겠어?”

    그럴 리 없다. 왕이 조금의 호의도 느끼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우리 둘 다 알고 있다.

    “너 농담이지……. 하나도 안 웃겨.”

    “너랑 유머 감각 비슷하다고 생각한 적 한 번도 없어.”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개자식아, 라는 말이 나갈 것 같다. 입술을 물고 참아 냈다.

    “왜 자꾸 입술을 깨물어.”

    에드워드의 표정에 다시 균열이 생겼다.

    “신경 쓰이잖아…….”

    뭐가?

    얘가 화내는 부분은 예전부터 이해할 수 없었다!

    “나한테 화났으면 나한테 풀어. 다른 사람 끌어들이지 말고!”

    “예를 들어 이델라 에클레어는 끌어들이지 마라?”

    “꼬아 듣지 좀 마! 무슨 말이 하고 싶어? 나랑 대화를 하고 싶긴 해?”

    “너랑 대화해서 뭐 하겠어?”

    본색이 나왔다. 기가 막혀서 말이 잊힐 지경이다.

    “이델라 에클레어가 얼마나 불쌍해? 불쌍해서 결혼이라도 할 셈이야?”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그럼 그 여자 때문에 나한테 화내지 마!”

    에드워드가 버럭 외쳤다. 심장이 쿵 뛰었다. 에드워드가 내 양어깨를 잡았다. 어디로도 갈 수 없게 붙잡고, 그가 말했다.

    “누구보다 소중하다고, 행동으로 보이면서 어떻게 믿으라는 거야? 사람을 속이려면 성의가 있어야지. 적어도 눈앞에서 이 꼴을 보이진 말았어야지!”

    그는 불같이 화냈다. 난 얼어붙을 지경이었다.

    에드워드의 눈에 뭔가가 비쳤다.

    에드워드가 울고 있었다.

    그가 얼마나 배신당했는지 떠올랐다. 그렇게 배신당해서. 주변에 그를 보살피고 편이 되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이 자라서.

    이제야 사랑을 하는데.

    “아니야, 아니야. 정말이야.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잖아. 나는 아무 감정 없어…….”

    “그래. 좋아하지 않는 게 좋을걸. 네가 그녀와 이어질 일은 없을 테니까.”

    에드워드가 조용히 말했다.

    그 뒤의 일은 사고 같았다.

    멱살이 붙잡혔다. 몸이 앞으로 끌려갔다. 부딪힌다고 느끼기 무섭게 입술에 뭔가가 닿았다.

    거의 이가 부딪힌 게 아닌가 싶게 아팠다. 입이 얼얼하고, 그 다음에는 축축했다.

    눈물이란 건 정말로 짜다는 생각을 했다.

    그 외에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었다. 이게 뭐지? 진공 상태에서 내 심장 뛰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끝이었다.

    에드워드가 멱살을 놓았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에드워드도 의도한 바가 아니다. 그의 표정을 보고 알았다.

    그는 자기가 당한 것처럼 입술을 가리고 있었다.

    * * *

    도트는 편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왕성에서 와야 할 연락이 있다.

    그는 스파이는 아니었다. 왕자 전하를 배신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기사의 맹세를 한 적은 없었지만 그는 자신이 왕성의 어떤 기사보다도 왕자에게 충성하고 있다고 믿었다.

    왕비님은 왕자 전하를 걱정하신다.

    과거의 어느 날, 조프리 왕자의 비밀을 알게 되었을 때. 왕자가 실은 왕의 소생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도트는 맹세했다. 왕자를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겠다고.

    그의 왕자님은 마음이 여리고 다른 사람을 너무 생각해서 스스로는 돌보지 않는다.

    에드워드 왕자는 장성해 조프리 왕자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도트는 에드워드 왕자에 대한 군부의 충성을 느끼고 소름이 돋았다.

    ‘누가 누구를 걱정해.’

    왕비가 그날 했던 말은, 도트의 기억에 남아 아직까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조프리 왕자님은 에드워드를 걱정할 때가 아니다.

    그러나 왕자의 성품은 에드워드를 외면하지 못했다. 심지어 책임감과 죄책감마저 느끼는 듯했다.

    어쩔 수 없다. 그런 왕자님이니까.

    도트가 모시는 왕자님은, 어려서부터 손이 많이 가고 늘 도트를 필요로 했다.

    왕비는 왕자를 걱정하고 있었다.

    도트도 왕자님을 걱정하고 있다.

    왕비에게 도트가 연락을 취하는 건, 배신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공조다.

    왕비는 일정한 간격으로 도트에게 서신을 보냈다. 왕비의 친필 서한을 받는 영광은 수도 귀족도 누리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며칠째 왕비의 연락이 없었다. 도트는 이유를 추측하고 있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