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과 1-161화 (161/293)

161.

로웰은 번개처럼 움직였다. 정신없이 따라가자 뒤에서 건장한 직원들이 우리를 쫓았다.

“도련님! 도련님! 야!”

“너네 자꾸 속마음 내뱉을래?”

로웰은 돌아보고 욕하다 넘어질 뻔했다.

“너 도망치는 중 아냐?”

“예, 맞아요! 앗, 전하께서는 왜 여기 혼자 계세요? 저 찾아오셨어요? 바움쿠헨 놈은요?”

“방금 놈이라고 했어?”

“말실수예요! 경이라고 했어요.”

정말?

달리는 데 생각은 필요 없었다. 정신없이 달리다 보이는 카페로 들어갔다. 인파에 휩쓸려 몽블랑 상회 직원들은 우리 행방을 놓친 듯했다.

로웰은 차가운 음료를 두 잔 주문하고 땀이 흐르는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마침 전하를 찾아갈 생각이었어요. 아무래도 이상해서요.”

“나도 널 찾고 있었어. 알렉스가 경비대에 잡혀간 거 알아?”

“뭐라고요?”

로웰은 깜짝 놀랐다.

“뭐 때문에요?”

난 짧게 요약해서 말했다. 로웰이 이마를 문질렀다.

“아……. 이거…… 저 알 것 같은데요. 전하, 그 노예가 왜 찾아왔고 어떻게 됐는지 알렉스 바움쿠헨에겐 직접 못 들으신 거죠?”

“그냥 잘 만나고 왔다고 했는데. 다른 일 있었어?”

나를 두고 로웰에겐 말했다고? 둘이 룸메이트긴 한 모양이다.

“그 노예 죽었어요.”

“……왜?”

아니, 그보다 네가 어떻게 알아?

“바움쿠헨이 죽였어요. 그 노예가 전하를 배반하라고 충동질해서. 시체 처리를 제가 했으니까 알아요. 도망 노예인 줄은 몰랐지만. 알았으면 경비대에 연락했을 텐데.”

“잠깐만. 정리가 안 되는데. 나를 배반하라고 했다고? 알렉스의 옛 지인이?”

로웰은 어깨를 으쓱했다.

“저도 정확히는 몰라요. 바움쿠헨이 그렇게 말했어요. 그리고 전 그 노예가 바움쿠헨을 만나러 어떻게 왔는지도 알 것 같아요.”

“어떻게?”

“전하, 파벨이 고국으로 돌아간 건 아세요?”

로웰이 갑자기 화제를 바꿨다. 두 사람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난 대답했다.

“아니.”

“아버지 쪽으로 소식이 왔어요. 파벨레 상송이 ‘돌아간다’고 직접 연락한 건 아니지만요. 파벨이 아카데미로 올 때, 상송 집안에서 저희 상단에 자금을 맡기고 아들을 부탁했거든요. 그 돈이 빠져나갔어요. 직원이 창구에서 파벨에게 돈을 건네주고 제게 연락했어요. 제가 그 녀석 담당이라.”

“아, 그래. 파벨이 돌아간 게 왜?”

이상하긴 했다.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학생이 학기 중에 갑자기 집에 가야 할 일이라면 상상할 수 있는 게 몇 가지 있다. 집안의 중대사.

하지만 파벨은 악역 엑스트라다. 게임 속에서 맡은 역할이 더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창구 직원이 말하길 파벨의 상태가 이상했다는 거예요. 어딘가 몸이 불편한 사람처럼 행동하고, 주변 눈치를 봤다고. 아시잖아요, 그 녀석 성격. 그럴 인간이 아닌데. 그리고…… 파벨과 동행한 사람이 있었대요.”

로웰이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들으면 내가 아는 사람일 거라는 듯이.

예감이 나쁘다.

“누구?”

“그레이 크래커 소공작. 두 사람이 함께라니 그림 정말 이상하죠.”

“…….”

“파벨이 아카데미에서 영향력은 좀 잃었지만, 여전히 상송의 적자라는 건 변하지 않잖아요? 명문의 자제, 그것도 모리스 상송의 외아들. 인맥 과시용으로 좋은 친구잖아요. 그리고 파벨은 명실상부 전하의 추종자였고요. 전하께선 안 좋아하셨지만요.”

“그래서?”

로웰은 한숨을 쉬고 말했다.

“전 에드워드 전하가 전하의 곁에서 힘이 될 사람을 치우고 있다고 생각해요. 전하께선 형제를 믿으시지만…… 에드워드 전하께 양보하겠다고 생각하고 계시지만.”

“에드워드는 아니라는 거지. 내 적이라고.”

로웰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알렉스 바움쿠헨이 만난 노예, 전하께서는 옛 지인이라고 하셨죠. 그 사람은 바움쿠헨을 설득하려고 했어요. 전하 곁에서 떨어지라고. 그리고 그게 실패하자…… 이렇게 된 거죠. 전 에드워드 전하께서 바란 그림 같은데, 전하께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로웰은 조심스럽게 말을 고르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조프리에게 ‘해를 끼치고 싶어 한다.’ 그걸 직접 말하지 않기 위해.

“전하 곁에 있는 사람들 중에 누구보다 눈에 거슬리는 건 알렉스 바움쿠헨일걸요.”

“…….”

“괜찮으세요, 전하?”

“내가 안 괜찮을 게 뭐가 있어?”

사실 안 괜찮지만.

속이 차가웠다. 얼음 덩어리 하나가 폐에 들어와서 숨 쉴 때마다 오싹한 둔통을 주는 것 같다.

경비병 한 명이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선 건 그때였다. 카페 종업원이 겁을 먹고 다가갔다.

“경비대에서 오셨나요? 저, 주인어른을 불러 드릴까요?”

“됐다. 손님으로 왔으니 조용히 협조하면……. 전하, 전하!”

젊은 경비병은 엄중한 태도로 종업원을 상대하다가,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고개를 끄덕여 접근을 허락했다. 경비병이 재빨리 다가와서 속삭였다.

“바움쿠헨 경이 좀 심각한 사안에 연루된 것 같습니다. 아, 원래 선배가 오기로 했는데 사태가 이상해지니까 괜히 저한테 떠넘겨서……. 아니, 그래도 곧 풀려나실 겁니다! 아무렴 그 노예가 반역 죄인들과 연관 있기로서니 바움쿠헨 경이 반역죄로 처벌받겠습니까?”

“반역?”

로웰이 숨죽여 되물었다.

경비병은 딱딱한 얼굴로 로웰을 쳐다봤다.

“헉. 로웰 몽블랑? 이자가 들어도 되는 일이었습니까, 전하?”

“…….”

심장이 말 그대로 쿵쾅쿵쾅 뛰었다. 로웰의 말에 따르면 알렉스가 갇힌 건 ‘알렉스 루트의 고난’ 따위가 아닌 셈이다.

그렇다면 알렉스 사건은 어디까지 흐를지 모른다. 반역죄는 삼족이 처형이다. 일이 이렇게 커지면…….

알렉스가 곁에 없으면 어떻게 도망치지, 혼자 도망쳤다가 나중에 연락을 해야 하나, 아까 전까지 하던 고민은 태평한 거였다.

와, 이런 망할.

“솔직히 이델라 에클레어 양에게 무도회 파트너 신청을 한 건 치졸한 행동이 아니었나 싶은데……. 또 저를 떼어 내는 방법으로는 조프리 전하의 행실 단속을 맡기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으셨겠어요? 그래서요, 전하. 제가 생각하기엔 에드워드 전하께서는…….”

로웰이 뭐라고 말했다.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이름 하나가 귀에 박혀서 속이 메슥거렸다.

이델라.

에드워드 베드엔딩에서 죽는 건 조프리 하나가 아니다. 이델라와 조프리가 함께 살해당한다.

청혼까지 받았다면, 이델라는 에드워드가 좀 이상한 분위기에서 불러내도 따라 나갈 것이다.

사람 없는 골목으로.

“로웰, 이델라 어디 있는지 알아?”

“예? 저 방금 전까지 상단에 갇혀 있었는데요?”

“몰라?”

대답도 듣지 않고 의자에서 일어서자, 뒤에서 로웰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만요, 전하! 어디 가세요? 전하! 전하?”

이델라가 위험하다.

조프리가 도망쳐야 한다면, 이델라도 마찬가지였다. 아카데미로 달렸다. 턱 끝까지 숨이 찼다. 여자 기숙사에서 이델라의 행방을 묻자, 여자 기숙사장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데이트하러 나갔는데요. 남자 기숙사까지 가서 에드워드 전하를 불러 외출했다고, 지금 온 아카데미가 떠들썩……. 전하?”

돌아서다 로웰과 부딪혔다. 고꾸라지는 몸을 로웰이 받았다. 그러려고 시도는 했던 것 같다.

같이 균형을 잃고 넘어져서 로웰은 엉덩방아를 찧고 난 그 위로 엎어졌다.

“괜찮으세요, 전하?”

난 멀쩡했다. 지금은.

“안 괜찮은 건 이델라지…….”

“에클레어 양이 왜요? 무슨 일이에요, 전하? 제가 도울게요. 제게 상의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로웰이 내 손을 가져가 흙과 모래를 털었다. 그는 까진 손바닥을 찡그린 얼굴로 쳐다봤다.

“로웰. 사람을 풀어 줘. 이델라를 찾아야 돼. 에드워드랑 같이 있어. 도시 골목…… 여기서 아주 멀진 않을 거야. 하지만 인적이 드문 곳. 조용하고 외진 곳에 있을 거야. 서둘러야 돼. 빨리.”

“예. 그럴게요. 같이 가실 거죠?”

“아니, 난…… 먼저 좀 찾아볼게.”

“예, 전하.”

로웰은 두 번 묻지 않고 움직였다.

에드워드가 갈 법한 장소. 게임 속 그 골목.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 봐도 어딘지 알 수 없었다. 일러스트를 보고 어느 골목인지 맞히라는 건 무리다. 내가 엄청난 게임광이었다고 하더라도 힘들었을 것이다.

결국 내가 더듬어 갈 곳은 에드워드가 전에 식사를 함께하자며 데려간 길목뿐이었다.

분수대와 이어진 중앙대로는 축제가 한창이라 어디나 사람이 가득했다.

이 길이었나? 이곳이 맞나?

내가 잘못 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찾지 않을 수도 없었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기억과 길을 대조했다.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때와 달리 지금은 낮이었다. 낯설고 달라서, 기억을 쥐어짜도 내가 나를 믿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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