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과 1-116화 (116/293)

116.

배후를 알고 있으니까, 습격자를 살려 둘 필요가 없다는 건 이상한 말이다.

쓸모가 없으니까, 사람을 죽인다…….

표현을 대체해도 그랬다. 에드워드가 어떤 사람이고 그의 성품과 도덕성이 어떤지는 둘째 치고서라도.

살아 있는 습격자는 쓸모 있다.

나만 해도 습격자를 이용할 방법을 세 가지는 찾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하는 거 맞아?”

“예, 전하.”

알렉스에게 조언을 받아 처치를 마쳤다. 상처는 어두운 골목에서 봤던 것만큼 심하지 않았다.

정말로 깊게 베였다면 에드워드가 멀쩡히 헛소리를 지껄이지도 못했을 것이다. 에드워드의 무서운 점은 심각한 상황에서도 이상한 짓을 한다는 거지만.

에드워드는 붕대가 감긴 손을 위아래로 움직여 보더니 고마워, 하고 인사했다.

하필이면 다친 곳이 오른손이다. 필기하기 어렵겠다.

전에 손을 다쳐 봐서 알고 있었다. 필기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전반이 불편해졌다. 도트가 없었다면 지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카데미는 개인 시종 출입 금지여서, 에드워드는 도와줄 사람도 없었다.

“내가 불쌍해졌어?”

에드워드가 물었다.

뭐라고 했냐? 내가 불쌍해하던 사람은 나였다.

악업 쌓기 같은 걸 하고 있는 기분이다. 일상생활 전반의 불편함과 습격에의 불안을 느끼며 에드워드는 조프리에게 악감정을 쌓겠지.

“당분간 아카데미 밖으로 나가지 마. 혹시 모르잖아.”

난 구급함을 닫았다. 알렉스가 원래 있던 자리로 구급함을 가져갔다.

“걱정되면, 수업 피하지 마. 나랑 계속 같이 들어.”

에드워드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흰 얼굴에 옷은 너덜너덜한 채, 한 손에 붕대를 감고 있는 에드워드는 처연해 보였다.

마음이 약해질 것 같다.

“싫어.”

“…….”

에드워드가 나를 노려봤다.

심장이 뛰는 게 느껴졌다. 불안정한 박동이 밖에서도 들릴 것 같았다. 에드워드가 정색할 때마다 그랬다.

그가 계속 나를 그렇게 대했다면 불안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에드워드가 자꾸 웃어서, 그가 웃는 것도 웃지 않는 것도 불안해졌다. 가슴이 내려앉고 어쩔 줄 몰랐다.

어린 시절처럼 다시 친해지고 싶어?

거짓말.

난 문을 열고 나가려다가 에드워드에게 돌아갔다.

“에드워드, 이 습격 사건의 범인이 왕비님이라고 생각하지?”

“뭐?”

“날 이용하고 싶지? 그래서 이러는 거잖아.”

에드워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눈만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해. 날 방패로 삼아. 재고 떠볼 필요 없어. 얼마든지 이용해. 어디든 데리고 가, 널 보호해. 그리고 이런 건 그만둬.”

“이런 거?”

“그렇게 웃는 거.”

에드워드의 얼굴이 멍해졌다.

“내가 웃는 게 싫어?”

그런 건 아니지만.

“응.”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그럼 어떤 게 좋은데?”

“내 말 들었어?”

에드워드는 멍하니 생각했다.

“널 이용하라고.”

“그래.”

“앞으로 날 피하지 않겠다는 거야?”

“그럴게.”

“수업도 같이 듣고, 언제나 함께하고, 내 곁에 있어 주겠다고.”

그렇게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맥락은 비슷했다.

“응.”

“그 대가로 난 웃지 않고.”

에드워드가 정리했다.

“응…….”

뭔가 이상한데.

“좋아. 그렇게 해.”

에드워드는 의자에서 일어나 몸을 쭉 폈다. 그가 성큼 다가와서 손을 뻗었다.

난 눈을 깜빡였지만, 그뿐이었다. 에드워드의 손이 내 뺨을 살짝 만졌다.

간지러운 접촉이었다.

꽉 막힌 가슴이 다른 의미로 뛰었다. 불안인지 뭔지 모르겠다.

에드워드는 더는 웃지 않았다. 거의 까맣게 보이는 눈동자로 나를 응시했다.

그가 말했다.

“약속했어.”

“…….”

“내가 안전하게 해 줘.”

“……응.”

에드워드의 손이 떨어졌다. 그가 물었다.

“그럼 디저트 먹으러 갈까?”

“응?”

이상한 말이지만 난 현실에서 미래의 불안을 느껴 본 적은 없었다.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어떻게든 됐다. 실은 어떻게 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당장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한 건 조프리가 되어서부터였다. 그는 안락한 성에서 살고 있었지만 난 이미 그 애에게 닥칠 불행한 미래를 하나 알고 있었다.

그 미래는 불길한 유언처럼 착실히 실현되기까지 해서 난 언제나 다음 날이 불안했다.

“알렉.”

“예, 전하.”

“방금 대화 어떻게 들었어?”

알렉스는 소매를 붙잡고 늘어져도 날 밀어내지 않았다. 그는 내 편이다.

아까 사람들을 쫓아내서 복도는 텅 비어 있었다. 알렉스는 기둥처럼 거대해서 기대고 있어도 될 것 같았다.

그의 등에 이마를 대고 두근두근 뛰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두 분 전하께서 화해하신 것 같았습니다.”

이마로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

“예, 전하.”

알렉스는 망설이다 물었다.

“두 분은 전에 싸우셨습니까?”

“아니. 내가 일방적으로 잘못했어. 그래서 에드워드가 화났지.”

“…….”

“에드워드가 날 용서할 것 같아?”

“제 대답이라도 괜찮으시다면, 예, 전하. 물론 그러실 겁니다.”

알렉스의 등이 웅웅 울렸다. 그곳에 귀를 대고 있었다.

“알렉.”

“예, 전하.”

“계속 내 곁에 있어.”

알렉스는 그러겠다고 맹세했다.

하지만 알렉스가 언제나 내 곁에 있는 건 아니어서, 혼자 방으로 돌아오자 다시 불안감이 엄습했다. 텅 빈 방은 어두웠고 사람이 다녀간 흔적도 없었다.

문을 다시 열고 알렉스를 부를까 생각했다. 같이 자 달라고 부탁하면 알렉스는 들어줄 것이다.

어린애 같은 소리다.

그레이가 필요했다.

그에게 에드워드와 내가 화해한 것 같으냐고 물으면 그는 언제 두 분이 싸우시긴 했냐고 물을 것이다.

그레이의 빈정거리는 어투를 상상할 수 있었다. 방에 아무도 없는데도 십 분쯤 잔소리를 들은 기분이 됐다.

만약 도트가 있었다면 무조건 내 편을 들어 줬겠지.

조프리의 침실은 기숙사 방보다 몇 배는 넓었지만, 그곳이 텅 비었다는 생각은 자주 할 일이 없었다.

그곳엔 도트가 있었다. 내가 모두 나가 있으라고 말할 때 그 모두에 도트는 포함되지 않았다.

내가 잠들지 못하면 도트는 따듯한 차와 물수건을 내와서 내가 다 마실 때까지 기다렸다. 따듯한 물수건으로 목을 닦아 주고 다시 잠들게 했다.

새삼스레 도트가 나를 지극 정성으로 돌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트.”

불러도 안 나오겠지만.

그때 방 안에서 두둑, 하는 소리가 들렸다.

“…….”

착각인가?

타이밍이 절묘했다. 내 부름에 대답이라도 한 듯했다. 그럴 리 없겠지만.

이 방엔 나밖에 없었고, 기숙사 방음이 아무리 안 된다지만 옆방 사람이 대답했을 리도 없었다.

애초에 평범한 사람들은 손톱으로 벽을 긁는 듯한 소리를 내서 대답하지 않는다.

내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누구 있어?”

다시 둑, 하고 벽이 긁혀서 머리끝까지 쭈뼛 솟았다.

“알렉!”

“전하?”

301호의 문을 열어젖히자 알렉스가 옷을 갈아입다 말고 나를 맞았다.

“내 방, 내 방에……”

“예.”

“있잖아…….”

알렉스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내가 얘를 몇 살부터 봤더라?

“아무도 없어.”

“예?”

차마 귀신이 나왔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소름 끼치는 소리가 귀에 달라붙어 있는 것 같았다. 귀를 문지르며 의자에 앉았다.

“로웰은?”

“아직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전하.”

알렉스는 얼떨떨한 듯 대답했다.

“혼자 자면 심심하지 않아?”

“예?”

“나랑 같이 잘래? 혼자 자면 심심하잖아. 내 방에 아무도 없고, 그레이도 오늘 안 들어올걸. 걔 원래 잘 안 들어오는데.”

“예?”

“싫어?”

“명하시면 따르겠습니다. 하오나 전하, 아카데미의 소문은 무섭다고 합니다.”

알렉스는 셔츠 손목 단추를 다시 채웠다. 거의 넘어왔다.

“다 잠들었는데 무슨 소문? 귀족들은 꿈꾸면서 소문내는 능력도 있어? 내 침대에서 자면 그레이도 뭐라 안 할걸.”

“예?”

뭐가 ‘예?’야?

“싫어?”

“아닙니다, 전하.”

알렉스는 왕자가 억지 부리는 데 당해 내지 못했다.

그의 옷장에서 편한 옷까지 챙겨서 내 방으로 돌아왔다. 거대한 토템 같은 기사를 방에 두니 안정감이 달랐다.

알렉스는 씻고 나오겠다며 머뭇거리다 욕실로 들어갔다. 얘가 문 하나 사이를 두고 사라진다고 또 귀신이 나오진 않겠지.

샤워기 물소리가 안정감을 줬다. 알렉스는 따끈따끈해져서 나왔다.

땀을 흘린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씻고 올게. 먼저 잘래?”

“기다리겠습니다, 전하.”

알렉스는 내가 몇 번 말한 뒤에야 내 침대 위에 앉았다.

매트리스는 남자 둘이 누워도 부족할 크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둘 중 한 명이 집채만 한 몸집을 가졌다면 얘기는 달라져서, 조금 좁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레이 침대를 빌리면 화내겠지.

수학여행 같은 기분이었다. 자주 가 본 건 아니지만. 밤새 끙끙대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유연호에게 깔려 있던 일이 떠올랐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응.”

“무슨 일이 일어난대도 제가 전하를 지키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뭐한테서? 귀신?

다시 생각해 보니 에드워드였다. 알렉스가 조심스레 나를 포옹해서, 위로하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몸은 단단했다. 힘을 주어 끌어안지 않아도 그게 느껴졌다. 알렉스는 강한 기사였다. 난 안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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