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다리가 풀렸다. 알렉스가 나를 붙잡고 있었다. 심장이 달음박질쳐서 손끝까지 두근두근 뛰었다.
“왜 죽였어?”
“왜냐니? 습격자잖아.”
“아무것도 듣지 못했잖아. 누가 배후인지. 누굴 노렸는지.”
“물어봐야 해? 이미 알고 있는데.”
에드워드가 검을 수납했다.
그는 아카데미로 오는 길에도 습격받았다. 배후는 왕비님이었다. 이번에 그는 습격자를 추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미 알고 있으니까…….
알렉스가 에드워드를 가로막듯 움직였다. 에드워드는 개의치 않았다.
“나 다쳤어.”
그가 팔을 내밀었다. 장갑을 벗고 있었다.
희끄무레한 살갗이 시야에 비쳤다.
거짓말하지 마, 라고 생각하며 무심코 확인했다. 에드워드의 손아귀에서 피가 뚝뚝 흐르고 있었다.
“너 미쳤어? 다친 손을 왜 움직여?”
“아파.”
“당연히 아프겠지!”
손바닥이 깊게 베였다. 어떻게 하면 저런 부상을 입을 수 있는지 이해도 가지 않을 정도였다.
지혈할 걸 찾아 품을 더듬었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손수건을 빨겠다고 어딘가 쌓아 놓고 잊어버린 일이 떠올랐다. 알렉스를 돌아봤지만, 그가 가지고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에드워드, 손 올리고 있어.”
“무서워?”
“헛소리 말고 제대로 심장 위로 들고 있어. 지혈할 거 없어?”
“없어.”
에드워드는 손을 심장 위에 대고는 나를 빤히 쳐다봤다. 속이 터질 것 같았다.
난 화를 참고 물었다.
“부축 필요해?”
“아니.”
“좋아. 병원으로 가자. 아직도 병원 싫어?”
“아니.”
에드워드가 고개를 숙이더니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웃어?
“그런 걸 다 기억하네.”
“아는 병원 있어? 위치라든가.”
에드워드의 말은 무시하기로 했다. 얜 전부터 자기 상태는 신경 쓰지 않는다.
“아니.”
에드워드가 태평하게 대답했다.
그럴 줄 알았다.
“이곳부터 떠나는 게 좋겠습니다. 습격자가 더 있을지도 모릅니다.”
알렉스가 충고했다.
병원 위치가 궁금한 건 나뿐인가? 둘 다 나를 보고 있었다. 내 결정이 중요하다는 듯이.
아픈 사람은 에드워드고, 전력에 보탬이 될 만한 사람은 알렉스다.
결정자가 나야?
“에드워드. 치료받는 곳, 아카데미 의무실도 괜찮아?”
“응.”
에드워드가 1초 만에 대답한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었다.
내가 다친 게 아니다. 에드워드의 몸이다.
에드워드만 한 검사가 손을 다친다는 건 심각한 일 아닌가?
에드워드는 손가락을 쇄골께에 대고 있었다. 다친 손바닥은 보이지 않았고 흰 손등만 보였다.
끊임없이 흐르던 피가 눈에 선했다. 지금도 흐르고 있겠지.
내 수중엔 손수건이 없었다. 내 옷을 찢어 줄까 했지만 그림이 이상했다. 그건 너무 에드워드를 위하는 것 같은 행동이다.
“에드워드, 셔츠 찢어도 돼?”
“예?”
알렉스가 반문했다.
에드워드는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그가 이내 물었다.
“겉옷 벗을까?”
“아니. 내가 할게.”
에드워드의 겉옷을 젖히고 셔츠를 쥐었다. 방금 전까지 검을 잡고 있었는데, 그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왜 이래. 정신 차려.
“조프리.”
에드워드가 내 손등을 잡았다. 셔츠가 결을 따라 위로 찢어지며 흰 속살이 보였다. 단추가 툭툭 떨어져서 하나는 내 발등을 쳤다.
부드럽고 깨끗한 천이 내 손에 쥐어졌다.
“이거면 돼?”
“……응.”
셔츠를 둘둘 말고 에드워드의 손목을 잡자, 그가 손바닥을 위로 펼쳐 보여 줬다.
엄지 근육 안쪽이 베인 긴 자상이었다. 손의 오목한 부분에 피가 고여 손금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손을 날에다 대고 누른 듯했다. 깨끗하게 일자로 베였다. 맨손으로 검을 막기라도 한 걸까?
가슴이 서늘해졌다. 에드워드는 무사했고, 앞으로도 무사하겠지만.
그래도 이건…….
둥글게 만 셔츠로 에드워드의 손을 꾹 누르자 그의 맥박이 느껴졌다. 두근거리고 있다. 에드워드는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시선을 뗄 순간을 놓쳤다.
“아파?”
일부러 미간을 찡그리며 묻자, 에드워드는 미소 지었다.
“응.”
웃으며 할 얘긴가?
에드워드의 팔을 콱 잡아당겼다. “아.” 에드워드가 시선을 내렸다.
셔츠를 풀어 에드워드의 손목에 힘주어 감았다. 지혈법이 이게 맞나 모르겠다. 아마 맞을 것이다. 내가 잘못 배운 게 아니라면.
다친 손을 다시 에드워드 가슴 위에 포개 줬다.
“그러고 있어.”
알렉스는 주변을 경계하는 중이었다.
“아카데미로 돌아가자.”
“예, 전하.”
“카페는?”
에드워드가 헛소리를 했다.
“한 마디만 더 해 봐.”
진이 다 빠졌다.
에드워드는 우리 뒤를 천천히 쫓아왔다. 밝은 길로 들어서자 주변의 이목이 모였다.
이곳은 안전하다. 어깨 힘이 풀렸다. 에드워드의 얼굴은 살아 있는 증표라 사람들 사이에서 습격당할 일은 없었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에드워드 전하?”
“전하! 무슨 일을 당하신 겁니까?”
귀족들은 아카데미 학생일 뿐만 아니라 왕국의 충실한 귀족이기도 했다. 누가 봐도 큰일을 당한 듯한 에드워드를 내버려 두지 못했다.
큰 소란이 일었다. 에드워드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였다.
이대로 나랑 알렉스는 돌아가도 되지 않나? 에드워드는 안전해 보였다. 학생들은 병원을 안내해 주려고 했고, 어떤 가게도 호의를 베풀 의사가 있는 듯했다.
“조프리, 어디 가?”
에드워드가 불렀다.
“아프다고 했잖아.”
정말?
소음 속에서도 에드워드의 목소리가 잘 들리는 게 이상했다. 가느다란 실이 에드워드와 나 사이에 팽팽히 이어져 있는 듯했다.
“카페가 싫으면 의무실로 데려다줘. 다시 습격당할까 봐 무서워.”
에드워드가 실을 당겼다. 난 끌려가듯 인파 속으로 돌아갔다. 에드워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미소 지었다.
알렉스와 내가 길을 트자 학생들은 물러섰다.
에드워드는 우리 뒤를 졸졸 따라왔다.
경비원들은 아닌 밤중에 비상이 걸렸다. 아카데미 관계자들이 의무실로 따라왔다.
“누가 습격했는지는 아십니까? 어떤 놈들이 감히 신성한 아카데미에서 왕족을……!”
검술 강사가 분개했다. 에드워드는 사람들이 몰려들 때부터 안 좋은 표정이었다. 내 생각엔, 그가 조용히 쉬길 바랐다면 적어도 아카데미로 돌아와서는 안 됐지만.
“화낼 시간에 경비원들에게 묻는 게 어때. 왕자가 습격당할 시간에 어디서 뭘 하고 있었냐고. 그대가 아카데미 내 경비 담당이던가? 도시의 경비 책임자는 누구지?”
“아…… 접니다.”
갑옷을 입은 남자가 나왔다. 에드워드는 그를 위아래로 보다가 명령했다.
“나가.”
검술 강사와 경비대장이 나가자, 양호 선생님이 에드워드에게 접근했다.
“전하, 상처를 소독하겠습니다.”
에드워드의 얼굴에 짜증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나를 힐끗 보고 머리를 짚더니 연약한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조프리. 낯선 사람들을 물려 줘. 두렵고 피곤해서 몸이 떨려.”
“나는 괜찮아?”
어이가 없어서 묻자 에드워드는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말했다.
“물론이지. 혈육만큼 믿을 수 있는 존재가 또 있겠어?”
난 에드워드에게 연기를 가르친 선생을 해고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입으로는 다른 말을 했다.
“치료받는 동안 옆에 있을게.”
“네가 이미 치료했잖아.”
“다신 검 못 잡고 싶어?”
“아니.”
“네 상처 꿰매야 하는 거 아니야?”
“바늘과 실 있어?”
에드워드가 양호 선생님에게 물었다. 양호 선생님은 합리적인 대답을 하려고 했다.
“전하, 전문적인 조치는 의료인에게 맡기시는 게…….”
“내가 네게 의견을 물었던가?”
“있습니다, 전하.”
“그렇대, 조프리.”
에드워드가 고개를 까닥였다. 누가 두렵고 피곤하다고?
그런 사람이 여럿 보였는데 에드워드는 아니었다.
난 아카데미 관계자들을 내보냈다. 그들은 걱정하고 있었다. 습격받고 부상당한 왕자가 언제 화를 내며 그들을 처벌하려 들지 몰라서.
아카데미 도시의 관리는 원칙적으로 아카데미의 귀족들이 맡고 있다. 원작에까지 언급되는 사건을 이들이 못 막는 건 당연했지만, 에드워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알렉스가 문을 닫았다. 문 앞에 모여 있던 사람들도 그의 제지에 물러났다. 다친 왕자를 혼자 두고 물러났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그들은 더 곤란해질 것이다.
내가 신경 쓸 사안은 아니었지만.
이제 이 근처에 사람은 없다.
에드워드는 학생이 치료를 받을 때 앉는 동그란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는 의자를 반 바퀴 돌려 내가 선 방향을 바라봤다.
“이제 조용해졌네.”
“저 사람들을 처벌할 거야?”
“넌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에드워드가 웃으며 물었다.
“책임을 물어. 다시는 도시 내에서 이런 일이 없도록 해. 네가 다쳤잖아.”
“그렇게 말할 줄 몰랐는데.”
“그럼?”
“저 사람들도 사정이 있을 거라고 말할 줄 알았어.”
“내가?”
저 사람들의 사정을 무슨 수로 알고?
내가 진짜 조프리였다 해도 에드워드가 습격당한 일에 분노했을 것이다. 도시 내에서 왕자가 위협받았다. 반역죄는 3대가 멸족되었다.
너무 위험한 곳에 있다 와서 자기 보호 감각이 죽어 버린 모양이다. 에드워드는 무르다.
“내가 그렇게 말하면 사정을 봐줄 생각이었어?”
“아니. 처벌했겠지.”
무르다는 말은 취소다.
“왜 물어봤어?”
나 화나게 하려고?
“몰라. 치료해 줘.”
에드워드가 손을 내밀었다. 아까 상처를 보여 줄 때처럼.
“역시 아파? 그러게 양호 선생님은 보내지 말았어야지.”
“그 사람이 여기 있든 없든 상관없어. 내가 치료를 부탁한 건 너야.”
“내가 어떻게 해? 할 줄 몰라.”
나보고 생살을 꿰매라고? 생각만 해도 소름 끼쳤다. 의료법 위반으로 조프리를 잡아넣고 싶은 건가? 여기 의료법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까 보니까 잘하던데.”
“내가 네 살을 꿰맸어?”
“계속 피가 나, 조프리. 다친 사람이 알렉스 바움쿠헨이었어도 망설였을 거야?”
에드워드가 웃으며 물었다. 알렉스가 무뚝뚝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봤다.
“알렉스가 다쳤으면 양호 선생님께 부탁했겠지.”
“난 싫어.”
알아.
“많은 걸 바라는 것도 아니잖아. 사람들한테 습격자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고, 오늘 일은 조용히 지나갈 거야. 다친 것도 없는 일로 만들고 싶을 뿐이야. 난 아프고 지쳤어. 불쌍하잖아. 그 정도 도와주는 것도 어려워?”
에드워드는 조용히 말했다. 언제 저렇게 말을 잘하게 된 건가 싶었다.
난 에드워드 앞에 의자를 끌어 앉았다.
꿰맬 정도의 상처면 사람을 부르자. 에드워드는 알렉스에게 제압하라고 하고.
“손 줘 봐.”
에드워드는 언뜻 웃었다.
“습격자, 왜 죽였어?”
“아. 아파.”
“…….”
거짓말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