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과 1-112화 (112/293)

112.

다시 기침이 터져 나왔다.

“창문을 더 열까?”

“아니.”

초봄의 공기가 폐부로 들어왔다. 기침은 목에서 쇠 냄새가 날 즈음 멈췄다.

마른침을 삼켰다. 수십 번 눈을 깜빡였을 것이다.

흐린 시야가 명료해지고 에드워드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표현하자면 다정하다고 말해도 좋을 듯한 미소였다.

상황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럼 창문을 닫을까?”

에드워드는 배려하듯 물었다.

“연기가 다 못 빠져나갔어.”

목에서 쇳소리가 나갔다.

“네가 떨고 있잖아.”

“추워서가 아니야.”

“그러면?”

몰라서 묻는 걸까?

“손 놔주면 안 돼?”

에드워드는 놓지 않았다. 손목을 비틀어 빼내려 하자, 에드워드는 손목을 잡은 손을 창에 몰아붙였다.

느슨하던 손아귀가 수갑처럼 손목을 옥죄었다.

“…….”

손이 얼얼했다. 손등으로 차가운 유리가 느껴졌다. 머리부터 등까지 유리에 기댄 채, 창과 에드워드 사이에 꽉 끼었다.

손목에 감각이 없었다.

내가 왜 떨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에드워드가 나를 내려다봤다.

힘으로는 에드워드를 이길 수 없다. 조프리와 에드워드의 체격이 엇비슷하던 시절에도 힘으로는 그를 상대할 수 없었다.

에드워드는 변명이라도 하듯 말했다.

“놓으면 나갈 거잖아.”

“나랑 뭘 하고 싶은 거야? 너 진짜 왜 이래…….”

“화났어?”

“내가, 너한테?”

“도망가고 싶은 줄 알았는데, 지금은 화난 것 같아.”

에드워드는 화를 돋우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난 그에게 화나지 않았다. 이 자리를 피하고 싶을 뿐이다.

“화내는 게 낫다.”

에드워드가 말했다.

머리끝까지 열이 올랐다.

눈이 아플 정도로 에드워드를 노려봤다. 그는 웃고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정말 기쁜 듯이 웃고 있어서 아연해졌다.

“정말 왜 그래? 뭘 하고 싶은 거야? 내가 싫어하는 게 좋아?”

“싫어? 내가?”

에드워드의 속눈썹이 움찔 떨렸다.

나도 모르게 같이 떨었다.

가슴께가 바늘에라도 찔린 듯했다.

“내가 싫은 거야, 아니면 내가 너랑 같은 수업을 듣는 게 싫은 거야?”

“…….”

“아니면 같은 공간에 있는 게?”

알면서 이랬던 걸까?

물론 그랬겠지.

공기가 가득 찬 풍선을 끌어안고 있는 기분이었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다.

접근하지 말라고 했던 건 너잖아. 널 두렵게 만든 것도.

“난 네가 안 그랬으면 좋겠는데.”

에드워드가 멍하니 말하더니 고개를 숙였다.

“응. 안 그랬으면 좋겠어.”

얜 내가 멍청이로 보이는 걸까?

위협하고 떠난 사람이 돌아와서 웃으며 접근하는데, 아무런 위화감도 느끼지 못하면 사람으로서 뭔가가 결여된 걸 거다. 위기의식이나 눈치 같은 게.

짐승도 자기를 걷어찬 사람은 피하는데.

길들여진 개도 아니고. 부른다고 다가가는 배알도 없는 인간이 어디 있어?

“조프리. 내가 싫어졌어? 그러면 슬플 것 같은데.”

“그럴 리가 없잖아…….”

난 밸도 없는 인간이다.

“나한테 뭘 바라는 거야?”

에드워드에게 다시 물었다. 속으로 한 것까지 합하면 백 번은 물었을 것이다.

“아무것도.”

거짓말하지 마. 넌 거짓말하면 다 티 나.

그레이는 이런 것도 말해 주지 않고 뭐 한 걸까?

에드워드가 눈을 깜빡였다.

“바라는 게 있다면…… 응. 다른 사람들과는 식사하러 갔잖아.”

내가 언제? ……저번에 그거?

“나랑도 먹자고 하면, 먹을래?”

에드워드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유리알처럼 푸른 눈이 나를 바라봤다.

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정신이 돌아왔다. 내가 뭘 하고 있었지?

뒷문이 부서져라 열리고 알렉스가 뛰어 들어왔다.

“전하? 여기 계십니까? 전하!”

알렉스는 다급히 들어와서 멈칫했다. “불이 어디에…….” 하며 들어오던 경비원이 그의 팔에 가로막혔다.

에드워드가 내 손목을 놓아줬다. 손이 유리창에서 미끄러졌다.

어깨까지 저렸다. 정전기라도 이는 듯했다. 피가 통하지 않다가 한꺼번에 내달리는 기분이었다.

알렉스는 에드워드를 무엄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불을 꺼졌고, 위협은 없다. 알렉스는 상황을 확인하더니 성큼성큼 다가와서 나와 에드워드 사이를 가로막았다.

“전하.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아니.”

알렉스의 안색이 변했다.

“손목이…….”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에드워드가 불을 껐어.”

“그렇군요.”

“생명의 은인이야.”

“그렇습니까?”

알렉스는 에드워드를 노려보고 있었다.

교직원과 경비원은 에드워드에게서 상황을 전해 듣는 중이었다. 에드워드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나를 돌아봤다.

“조프리. 저녁이야.”

그가 미소 지었다.

알렉스가 무슨 뜻이냐는 듯 나를 쳐다봤다.

나도 몰라.

난 진짜 멍청한 게 아닐까?

* * *

기숙사실로 돌아가자 그레이가 교복을 벗고 있었다. 그는 나를 보고 등을 돌렸다.

기숙사엔 언제 돌아온 거지. 할 말이 많았지만 지금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뭐야, 그레이잖아.”

“……그게 인사세요?”

그레이가 다시 나를 돌아봤다.

“넌 그런 인사라도 했어?”

“예. 제가 무례했네요.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어디 나가?”

그레이는 내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되물었다.

“얼굴이 왜 그러세요?”

“내 얼굴?”

손으로 얼굴을 만져 봤다. 눈은 두 개고 코는 하나였다.

“문제없는데.”

“거울을 보세요.”

그레이가 옷장 문을 열었다. 벽면에 붙은 거울에 전신이 비쳤다.

유령이라도 본 듯한 얼굴이었다. 멍청해 보였다.

알 바인가.

“어디 가세요?”

“저녁 먹으러.”

“알렉스 바움쿠헨이랑?”

“아니.”

“새로 사귄 친구들과 함께하는 자리라면 조심하세요. 저번처럼 또 취해 들어오지 마시고. 도대체 얼마나 드셨던 거예요? 식전주도 입만 축이시는 분이.”

그레이가 잔소리했다.

“술 안 마셔.”

“그러세요.”

“에드워드랑 나가.”

그레이는 갑자기 조용해졌다.

“누구랑요?”

“에드워드 비스코티.”

“그러시군요.”

단추를 잠그는 그레이의 손길이 빨라졌다. 난 그의 뒤에 섰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옷장 거울에 비친 나를 보고 소스라쳤다.

“거기서 뭐 하세요?”

“나한테 할 말 없어?”

“무슨 말이요?”

“요즘 에드워드 상태가 안 좋다거나, 기억에 문제가 생겼다거나, 다른 영혼이 씌었다거나…….”

“그건 전하 바람이시겠죠!”

“내 상태가 안 좋다거나.”

“전하께서 언제는 상태가 좋으셨나요?”

“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충격받아서 되묻자, 그레이는 바쁜데 귀찮게 하지 말라며 나가려고 했다. 그가 책을 옆구리에 끼고 문으로 향했다.

누가 나가지 말래?

“조심하세요.”

그레이는 내키지 않는 얼굴로 그렇게 말하더니 나가 버렸다.

문이 쾅 닫혔다.

누굴? 에드워드를?

애매하게 경고하고 나가지 마. 무섭잖아.

뭘 조심해야 하는데?

육하원칙에 따라 제대로 말해 주든가.

더 불안해졌다.

에드워드는 여섯 시 정각에 기숙사 문을 노크했다.

알렉스가 문을 열었다.

에드워드가 미소를 지으려다가 멈칫하는 게 보였다. 그의 시선이 알렉스의 어깨를 넘어 침대에 앉은 내게 닿았다.

“안녕, 조프리.”

“안녕, 에드워드.”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처럼 인사하고, 에드워드는 삐딱하게 알렉스를 쳐다봤다.

“저녁 식사 일행이 더 있는 줄 몰랐는데.”

“다른 사람들이랑 그랬던 것처럼, 이라고 말했잖아. 상대가 누구든 알렉스를 빼놓고 식사하러 간 기억은 없는데.”

“제가 있으면 곤란하십니까?”

알렉스가 에드워드에게 물었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기울였다.

“아니. 그럴 건 없지.”

“수행하겠습니다.”

알렉스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이렇게까지 기사처럼 굴 거 있나 싶었지만, 난 손을 잡고 일어났다.

알렉스는 내 뒤에 섰다.

보호받는 기분이다.

에드워드는 빙그레 웃고 있었다. 기분 좋아 보이진 않았다.

그가 알렉스와 함께하는 식사 자리 같은 걸 바라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난 에드워드와 단둘이 식사하는 그림을 바라지 않았다.

“뭐, 좋아. 먹고 싶은 거 있어?”

“아니.”

에드워드는 생각에 잠겼다.

“좋아하는 음식은?”

“딱히 없어.”

뭘 먹든 넘어가겠어?

“지금까지 먹어 보지 못한 거나 궁금한 음식.”

“없어.”

“길거리 노점상도?”

그런 건 흔한 음식이잖아.

내가 드라마 속 재벌3세야?

“기억 안 나? 너랑도 먹었었잖아.”

에드워드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동시에 같은 기억을 떠올렸을 것이다.

도트의 반지를 잃어버린 날.

아니. 로제 부인을 만나러 간 날…….

에드워드는 웃음기 없는 얼굴로 말했다.

“맞아. 그랬었지.”

괜한 말을 했다.

에드워드는 앞장서 걸었다.

“그럼 가면서 찾아볼까?”

“응.”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말자.

내 목을 조르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주먹을 잠깐 쥐고 말았다.

아카데미를 빠져나갈 때까지 에드워드는 말이 없었다.

“노점 음식을 드셔 보셨습니까?”

알렉스가 놀란 듯 물었다.

“응. 그러고 보니, 그날 너도 만났네.”

“예?”

도트의 반지를 가져간 소매치기.

그가 알렉스였다.

그때는 그 소매치기가 내 기사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사람은 변하고,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

에드워드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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