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과 1-107화 (107/293)
  • 107.

    에드워드가 나를 빤히 봤다.

    난 거짓말은 안 했다.

    “선물이 싫은 거야, 내 선물은 받고 싶지 않은 거야?”

    “전자라니까.”

    “괜찮아.”

    뭐가?

    “어쩔 수 없지.”

    에드워드는 그렇게 말하고 빙그레 웃었다.

    “다음 수업에서 봐, 조프리.”

    에드워드에게 너 도대체 왜 그러냐고 묻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난 말없이 실습실을 빠져나갔다.

    언제든 에드워드는 원하는 바를 드러낼 것이다. 나한테 토스트를 먹이고 싶은 게 속마음일 리는 없으니까.

    산적한 문제가 많았다. 폭탄을 해제하는 데, 가장 중요하고 위험한 선부터 건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일단은 로웰부터.

    로웰 몽블랑이 뭘 알고 있는지 알아야겠다. 나는 그를 아카데미 밖으로 불러냈다.

    “전하, 부르셨어요?”

    “가자.”

    “네? 어디로요?”

    나와 알렉스는 앞뒤로 로웰을 감쌌다. 빠져나갈 틈 없이 연행하자, 로웰의 생글거리던 얼굴도 약간은 곤란한 듯 변했다.

    학생들이 넘치는 거리를 빠져나가 외진 골목으로 들어섰다. 아직 불을 켜지 않은 술집과 사람 없는 카페가 보였다. 나는 골목 끝까지 걸어가서, 안이 텅 빈 카페를 하나 찾아냈다.

    “으음.”

    뒤따라오던 로웰이 신음성을 냈다. 그는 카페 분위기를 둘러보더니 이걸 어쩌지, 하는 미소를 지었다.

    그는 어떤 표정을 하고 있어도 느긋해 보이는 사람이었지만 난처해한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좀 더 난처해해도 괜찮았다. 로웰이 내 속셈을 얼마나 알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왕자가 사치스럽다는 게 남들 귀를 조심해야 할 만한 비밀은 아니지 않나?

    아닌가?

    이 세계의 감각은 아직도 좀 낯설었다.

    “실례할게.”

    카페 주인은 카운터에 머리를 대고 졸고 있다가 내 부름에 깼다.

    “방을 빌리고 싶은데. 안에 자리가 있어?”

    “예. 물론입니다. 방을 열어 드리겠습니다.”

    주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료는 뭐가 좋아?”

    “전 괜찮아요.”

    “저도 괜찮습니다.”

    로웰과 알렉스가 차례로 대답했다.

    카페 주인은 우리 눈치를 보다가 멈칫했다.

    ‘너네 방까지 빌리면서 음료 하나 시키려고?’라는 표정이었다.

    로웰도 카페 주인의 기분을 눈치챘다.

    “아, 이런, 포도 주스가 마시고 싶네요.”

    그가 말을 번복했다. 그는 알렉스를 쳐다봤다. 너도 음료 좀 시키라는 시선이었는데 알렉스는 로웰을 쳐다보기만 했다.

    “그래. 알렉스도 주스가 좋겠다. 나도 그렇게 부탁해.”

    내가 정리했다.

    원래 눈빛 대화 같은 미묘한 스킬은 사교계에서 몇 년 경험치를 쌓아야 얻을 수 있다.

    나도 익히는 데 오래 걸렸다. 검만 수련해 온 알렉스에게는 분야가 다른 기술이었다.

    “예. 포도 주스 세 잔 맞으시죠?”

    카페 주인이 대답했다.

    그는 우리를 방 앞으로 안내하고는, 재빨리 안으로 들어가 먼저 상태를 확인했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그가 웃으며 문을 붙잡았다.

    “들어오세요.”

    방에 들어가자마자 먼지 냄새가 확 풍겼다. 어? 괜찮은 방 맞나?

    카페 주인이 친절하게 웃고 있어서, 난 일단 소파에 앉았다. 무게를 크게 싣지도 않았는데 먼지가 풀썩 올라왔다.

    으음.

    기침은 참는 게 낫겠다. 기침하면 먼지가 사방으로 날아오를 것 같았다.

    오랫동안 안 쓰던 방 같았다. 청결 상태는 괜찮은지 모르겠다.

    같은 의문을 품었는지 로웰이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테이블을 닦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로웰이 카페 주인에게 손가락을 보여 줬다. 먼지가 붙어 있었다.

    “죄송합니다! 하하, 아니 매일 쓸고 닦는데 왜 먼지가……. 다른 방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다른 방은 상태가 괜찮을까?

    “됐어. 음료수만 가져다주고 들어오지 말아 줘.”

    “예, 그러면 걸레로 얼른 테이블만 닦고…….”

    “괜찮아.”

    먼지 좀 먹는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오래 대화할 생각도 아니었다. 로웰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의아할 뿐이었으니까.

    사람 많은 곳이 싫다니 기숙사는 안 되겠고, 누가 엿들을 위험이 있으니 아카데미 근처도 안 된다. 그래서 선택된 곳일 뿐이다.

    카페 주인은 음료수를 가져왔다.

    포도 주스 세 잔이 테이블 위에 올라갔다. 왠지 저 음료수에 아무도 손을 안 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난 주인이 복도를 빠져나간 걸 확인하고 문을 잠갔다.

    로웰이 애매한 미소를 띤 채 나를 올려다봤다.

    긴장한 건가?

    이게 긴장할 얘긴가?

    점점 의문이었다.

    “우리 할 얘기가 있었지.”

    “예, 전하.”

    “애기를 듣고 싶은데. 여긴 사람도 없고, 개방된 공간도 아니야. 카페 주인이 문 뒤에 귀를 대고 있는 것만 아니라면 누가 엿들을 일도 없어.”

    “문 뒤에 아무도 없습니다.”

    알렉스가 확인해 줬다. 그는 내 옆에 앉지 않고 뒤에 서 있었다.

    꼭 로웰을 추궁하는 분위기였다. 이 방은 조명이 밝지도 않았다. 덕분에 장승처럼 선 알렉스가 더 위협적으로 보였다.

    알렉스를 앉히는 게 로웰의 정신 건강에 좋겠지만, 이 먼지 쌓인 소파는 알렉스의 건강에 안 좋을 것 같았다.

    “이제 얘기할 수 있겠어? 전에 하던 말 계속 해 봐. 내가 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로웰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제가 입을 잘못 열면 큰일 나는 건가요?”

    “무슨 말을 하느냐에 달렸지. 네가 눈치 빠르고 영리한 사람이란 건 알고 있어. 그렇다고 해도 내 목적을 알아챌 줄은 몰랐는데…….”

    내 목적이 뭔데? 알고 싶으니까 말 좀 해 봐.

    폼을 잡고 있으려니, 알렉스가 내 뒤에 서 검을 철컥거렸다. 검을 날이 살짝 보일 정도로 뺐다 넣으면 저런 소리가 났다.

    로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알고 있겠지만, 이런 비밀을 캐낸 사람을 가만둘 순 없어.”

    내가 무슨 소릴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대체 뭔 비밀인데 사람을 가만둘 수 없지?

    로웰이 울상을 지었다.

    “전부 말씀드릴게요. 너무 그러지 마세요, 전하. 전하의 기사에게 검은 넣어 달라고 명해 주시면 안 될까요? 무섭다고요.”

    “알렉스.”

    “예, 전하.”

    알렉스가 위협을 멈췄다.

    “어떤 행동이 단서였어?”

    로웰은 머리를 마구 헝클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어떤 행동이랄 것도 없이…… 전하께서는 이윤엔 전혀 관심이 없으셨잖아요. 아무리 모험적인 투자를 하는 사람이라도, 근거 없이 그러진 않는다고요. 다른 사람이 보기엔 돈을 장작 대신 태우는 일이어도 그 사람에겐 믿음이 있는 거죠.”

    “믿음?”

    “예. 자신이 남들과는 다른 안목을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비밀스러운 정보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 꾀에 넘어가기도 쉬워요. 절박한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사기꾼의 원칙은 절박한 사람에게 접근하는 거잖아요? 시야가 좁아지고 조급해지면 말도 안 되는 소리에도 속아 넘어가니까.”

    “그럴 수 있지.”

    “흔한 일이죠.”

    “난 아니었고?”

    “예. 전하는 스스로의 안목을 믿는 분은 아니었어요. 사실 전하께서 선택한 사업들은, 정확히는 전하께서 고르신 것도 아니었죠. 그냥 목록에서 최악의 선택지를 짚으셨을 뿐. 죄송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려서.”

    로웰이 고개를 숙였다.

    “왜? 사실인데. 사과할 필요 없어. 계속해.”

    입이 말랐다.

    “전하께는 그 사업 내용이 중요하지 않았던 거예요. 성공조차도. 제 추측이 옳은가요?”

    로웰이 긴장한 미소를 지었다.

    들켰다.

    로웰은 내 진짜 속셈을 알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어?”

    난 로웰의 입을 막을 방법을 고민하며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다.

    그래. 알렉스가 로웰과 같은 방이니까, 여차하면 협박을…….

    로웰은 확신을 갖고 말했다.

    “전하께는 이윤도, 성공에 따른 명성도 중요하지 않았어요. 여기서부터 생각을 시작하니 달리 보이는 게 있더군요. 젊은 귀족들이 이상한 데 투자하는 일이야 있었지만, 전하 같은 거금을 들인 사람은 없었죠. 전하처럼 이상한 조건을 다는 분도 전 본 적 없어요. 그 조건이 결정적이었어요. 왜 이런 조건을 거셨을까?”

    역시. 그 조건은 너무 노골적이긴 했다. 도망가라고 써 놓은 수준이었으니까.

    그러니까 누가 봐도 조프리는 멍청해 보이지 않나? 실패하라고 고사를 지내는 꼴이잖아.

    그리고 그게 정답이었다.

    “네가 너무 합리적인 귀족을 만나 온 게 아닐까?”

    난 합리적인 의심을 제기했다. 이 세상엔 로웰처럼 눈치 빠르고 머리 좋은 사람만 살지 않는다.

    “아니에요.”

    로웰이 단호하게 말했다.

    맞는 것 같은데.

    “저는 아버지를 따라 수많은 나라를 돌아다녔고, 본격적인 투자 붐이 일기 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사업을 시작했다가 고꾸라지는 모습을 봤어요. 식탁의 주요 화제니까요. 몽블랑 상단의 데이터베이스는 상행과 투자에 관해선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해요.”

    “…….”

    “무엇보다 전하는 그 전에도 많은 기부를 하셨으니까요. 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그 사실을 몰랐다면, 전하께서 다른 젊은 귀족들이 하듯 투자놀이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전하께서는 부유한 분이니, 남들과는 다른 액수를 투자하실 수도 있는 거라고. 하지만 그 조건…… 노예 상태로 떨어진 평민들이 채무 청산을 할 수 있도록 선급금을 주신 건 굉장했어요.”

    로웰은 흥분해서 말했다.

    흐름이 불길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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