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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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2.

    18. 에드워드 외전(2)

    그 뒤로 일어난 일들은 이상했다.

    “왜 같이 가 주겠다는 거야?”

    에드워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조프리는 되레 에드워드의 질문에 놀란 듯했다.

    “약속했잖아.”

    “왕비님한테 혼날 텐데.”

    “우리 들킬 거야?”

    “아니.”

    “그런데 왜 혼나겠어?”

    조프리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고는 활짝 웃었다.

    보는 사람까지 따라서 웃게 되는 미소였다. 에드워드는 조프리가 그렇게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이상해. 에드워드는 생각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너무 이상해서 어디가 어떻게 이상한지도 알 수 없었다.

    가장 이상한 건 물론 조프리였다.

    어깨의 힘이 빠졌다.

    “그러게. 안 들키면 되지.”

    조프리가 에드워드를 빤히 쳐다봤다. 에드워드는 자신도 조프리를 저렇게 파고들듯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했다.

    조프리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같이 점심 먹을래?”

    에드워드는 멍청해진 기분이었다. 이것도 함정인가? 예측할 수 없었다.

    “그래도 돼?”

    “당연하지.”

    조프리가 다시 웃었다.

    에드워드는 식사 내내 누군가 뛰어 들어오지 않을까 긴장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식사는 맛있었고 조프리는 무서울 정도로 다정했다.

    조프리까지 포함된 일행은 무사히 성 밖으로 나갔다. 에드워드는 머리끝이 곤두설 정도로 긴장해서 어머니를 만났다.

    어머니가 더 이상 울지 않고 건강하게 지내는 모습을 봤는데도 에드워드는 훈육관에게 맞거나 근신 처분을 받지 않았다.

    조프리와 점심 식사를 계속하게 됐을 뿐이었다.

    조프리의 식단은 이제껏 상상해 본 적도 없을 정도로 호화스러웠다. 영양과 맛을 고려한 다양한 메뉴가 매일 새롭게 식탁에 올랐다.

    무엇보다도 스위츠는 눈을 의심할 지경이었다. 보기만 해도 침이 넘어갔다. 얼려서 굳힌 초콜릿이나 생크림과 시럽이 가득 올라간 베이글은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혀가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맛있어?”

    조프리가 물었다. 에드워드가 고개를 끄덕이면, 그 메뉴는 다음에 더 화려한 버전으로 식탁에 올랐다.

    조프리는 무슨 속셈일까?

    에드워드가 좁은 세계에 갇혀 있을 때 음식은 하루를 연명하기 위해 섭취하는 것 이상이 되지 못했다.

    조프리 때문에 에드워드는 쓸데없이 많은 메뉴를 알아 가고 있었다.

    맛있는 걸 먹으면 다음에 또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

    누군가의 온기가 닿으면, 또다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됐다.

    조프리가 건들기 전까지 에드워드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는데.

    에드워드는 눈을 떴다. 열은 내렸고 목의 통증도 사라졌다.

    창밖이 희미하게 밝아지고 있었다.

    몸이 가뿐해졌는데도 가슴팍이 무거웠다. 내려다보니 부드러운 팔이 옥죄듯 에드워드를 끌어안고 있었다.

    팔의 주인은 잠든 채였다. 순진한 얼굴이 조용히 잠에 빠져 있었다.

    사실 조프리는 하는 짓만큼 교활하게 생기지 않았다.

    조프리는 에드워드가 그에게 기대하게 만들었다.

    거기까지였으면 좋았을 텐데.

    조프리는 에드워드를 걱정한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로켓을 가져와 에드워드에게 내밀었다.

    누가 거부할 수 있을까? 에드워드는 아니었다.

    에드워드는 그렇게 현명한 사람인 적이 없었다.

    조프리의 손은 따듯했고 절대로 에드워드를 밀어내지 않았다.

    “욕심부려도 돼?”

    내가 마음껏 욕심을 부려도 넌 받아 줄 거야?

    에드워드는 자기 안에 얼마만큼의 탐욕이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는 가난했고 텅 비어 있었다.

    얼마나 더 원하게 될까?

    “그런 게 욕심이라면 마음껏 부려.”

    조프리가 대답했다.

    그는 정말 그래선 안 됐다.

    “에드워드 전하, 진정하고 들어 주세요. 로제 부인의 시신이 발견됐어요. 수도로 올라오고 있어요……. 전하, 듣고 계세요? 제 목소리 들리세요?”

    그레이의 목소리가 웅웅거렸다.

    에드워드는 단어와 문장을 들었다. 각각의 단어가 이어지지 않았다. 흩어진 구슬처럼 굴러다녔다.

    “왜?”

    그가 물었다. 목에서 나오는 게 자신의 목소리 같지 않았다. 입이 멋대로 질문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머리를 울리고 있었다.

    “마차 사고라고 했어요.”

    “사고?”

    “길가에 시신이 버려져 있는 것을 농부가 발견했다고…….”

    “시신?”

    멍청하게 되묻는 에드워드를 붙잡고 그레이는 인내심 있게 말했다.

    “부인이 살던 곳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이라 무연고 시신으로 화장될 뻔했대요. 부인을 모시던 하녀의 신고로 뒤늦게 신원이 확인됐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셨어?”

    “예, 전하. 충격이 크시겠지만…….”

    어머니. 사고?

    죽음.

    구슬이 하나의 실로 꿰어 맞춰졌다. 에드워드는 멍청하게 엄마가 죽었구나 생각했다. 현실감이 없었다. 바닥이 멀었다.

    하지만 엄마는 건강했는데.

    아. 사고랬지.

    하지만 엄마는 건강했어. 다 같이 봤는데.

    사고라잖아.

    하지만…….

    언젠가 다시 만나면, 내가 에드워드라고 말하겠다고.

    다시 만날 수 없어.

    에드워드의 눈에서 눈물이 툭 떨어졌다.

    어떡해? 조프리.

    엄마가 죽었어.

    조프리는 에드워드를 그렇게 만들어선 안 됐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에드워드가 그를 가장 먼저 생각하도록.

    조프리를 기다리면서 에드워드는 계속해서 생각했다.

    어떡해, 조프리.

    난 어떡해?

    에드워드는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끊임없이 눈물이 흐르고 목이 메었다.

    신음도 울음소리도 입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입을 벌리면 매달리게 될 것 같았다.

    그는 위로가 필요한데. 위로해 줄 수 있는 건 조프리밖에 없어서.

    “에드워드.”

    조프리가 정원으로 들어왔다.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나를 찾아다녔어.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는 에드워드를 걱정하고 있었다.

    네가 미워.

    다리에 힘이 풀렸다. 추운 곳에 있는 것처럼 몸이 떨렸다.

    조프리를 지나쳤다. 그는 에드워드를 붙잡았다. 에드워드는 울지 않으려고 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에드워드가 가진 건 그의 몸뿐이었는데. 자기 통제에는 자신 있었는데.

    얼어붙은 것처럼 굳은 뺨이 녹아내렸다. 눈물이 뜨거웠다. 화상이라도 입을 것 같았다.

    조프리에게 우는 얼굴을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숙였다. 입술이 떨렸다. 입술을 깨물었다. 조프리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조프리가 그의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욕심내선 안 되는 거였잖아. 괜찮지 않았잖아.”

    “…….”

    “너한테 위로받아선 안 되는 거잖아.”

    ‘사고가 아닐지도 몰라요. 아버지의 말씀으로는……. 에드워드 전하, 듣고 계세요? 저번에 보여 주셨던 펜던트를 조프리 전하께서 가져다주셨다고 하셨죠.’

    듣지 않아도 에드워드는 그레이가 하려는 말을 알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멍청해지려고 여러 해 노력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으니까.

    에드워드는 조프리가 원망스러워서 견딜 수 없었다.

    그는 유일한 가족을 잃었는데. 조프리는 그가 조프리에게 위로받지도 못하게 만들었으니까.

    “가. 네가 사라졌으면 좋겠어.”

    “……어디로?”

    “평생 볼 수 없는 곳으로.”

    조프리가 떠나야 했다. 에드워드는 그럴 수 없었으니까.

    금방이라도 조프리에게 매달리고 싶은 걸 참고 있었으니까.

    조프리는 머뭇거렸다. 그의 흰 손이 에드워드를 놓았다.

    그가 등을 돌렸다. 조프리는 정말로 가 버렸다.

    에드워드를 혼자 남겨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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