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과 1-56화 (56/293)

56.

자기 궁을 싫어하던 에드워드가 떠올랐다. 머리가 죄는 듯 아팠다. 이마에 손을 대고 생각했다.

에드워드의 침실도 나와 같은 곳일까?

난 후문으로 들어갔다.

“왕자님?”

도트의 안내는 필요 없었다. 난 이 구조를 알고 있다. 조프리의 궁과 비슷한 정도가 아니었다. 똑같았다.

에드워드의 침실로 가는 동안 나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침실 문을 열었다.

“에드워드?”

누군가의 침실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삭막한 방이었다. 관리하는 손길이 닿지 않은 듯 먼지가 앉아 있었다.

이곳에서 에드워드가 잔다고? 생활한다고?

그럴 리 없었다.

침대 하나가 덩그러니 있는 넓은 침실을 보다가 복도로 나갔다. 복도를 지나가며 문 하나하나를 열어 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이 성에서 에드워드가 생활하고 있기는 한가?

에드워드는 아플 때도 자신의 궁으로 돌아가기 싫어했다.

에드워드가 어디에 있지?

‘궁에 있기 싫으면 여기로 와도 돼.’

에드워드의 비밀 장소.

“따라오지 마, 도트.”

“왕자님?”

정신없이 폐궁으로 달려갔다. 에드워드가 혼자 있을 것 같아서.

수풀을 헤치고 들어갔다. 머리카락이 나뭇가지에 엉키고 뺨이 따가웠다. 이윽고 샛문이 드러났다. 에드워드가 요령껏 열던 철문은 내 손으론 열리지 않았다. 문 아래쪽을 어떻게 만져서, 이렇게 손을 집어넣으면…….

무언가가 내 손을 베었다. 화끈한 통증이 손바닥까지 번졌다.

눈이 욱신거렸다. 왜 안 열리는 거야. 에드워드를 혼자 두면 안 되는데. 에드워드는 계속 혼자였는데.

흙먼지가 피와 함께 엉겨 붙어 더러워진 손을 빼냈다. 주먹을 쥐고, 철문을 두드렸다.

둔탁한 소리가 났다. 이 소리가 홀까지 들릴지 알 수 없었다. 에드워드가 먼지 속에 있을 것 같았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곳에서.

“에드워드! 에드워드, 여기 있어?”

심장이 쿵쿵 울렸다. 주먹 쥔 손이 아프다가, 이내 고통도 희미해졌다. 주먹으론 들리지 않아. 몸을 철문에 부딪쳤다. 철문을 칠 때마다 머리가 울렸다.

에드워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철문에 몸을 기댔다. 힘껏 달린 것처럼 심장이 뛰고 어지러웠다.

목이 말랐다.

여기가 아니면, 에드워드는 어디 있지?

먼지 탓인지 내 궁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참 기침이 나왔다. 땀이 흐르고 코가 나왔다. 난 훌쩍거리며 걸었다. 머리가 멍했다.

“이제 오세요, 전하?”

응접실에 그레이 크래커가 앉아 있었다.

“그레이!”

“반가워하시네요.”

그레이가 의외라는 듯 말했다. 말투에서 적의가 느껴졌다.

그레이에게 차를 대접했는지 쟁반을 든 시종이 대기하고 있었다. 난 시종을 내보냈다. 그레이가 눈썹을 올렸다.

“시종까지 내보내시고.”

“에드워드는 어디 있어?”

며칠 만에 보는 그레이였다. 그가 에드워드를 데리고 나갔다. 에드워드의 행방을 알 사람은 그밖에 없었다.

“걱정되세요?”

“당연하잖아.”

“에드워드 전하께서도 그러시더라고요. 조프리 전하가 걱정하실 거라고. 전 그렇게 뻔뻔한 분은 아닐 거라고 말씀드렸는데.”

그레이가 신랄하게 말했다. 그는 적의를 숨길 생각도 하지 않았다.

첫날의 그레이가 떠올랐다. 조프리의 병문안을 와서 속을 긁어 대던 그가.

“예전에 왕자님은 유치한 분이긴 해도 악랄한 분은 아니었잖아요.”

그레이는 지금 시비를 걸고 있었다. 그렇다기보다 화를 내고 있었다.

신경이 곤두섰다.

“나 너랑 싸우고 있을 시간 없어. 에드워드 너랑 있어? 괜찮아?”

“괜찮으실 리가 없죠. 가족이 살해당했는데.”

“뭐?”

“부인의 로켓은 어디서 누구에게 받으셨나요?”

눈앞이 깜빡거렸다. 그레이가 무슨 오해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사실은 반대였다. 심장이 너무 뛰고 있어서 숨이 막힐 정도였다. 로제 부인이 사고를 당했다고 들었을 때, 나도 생각했다. 사고일 리 없다고.

“아니야.”

“…….”

“왕비님이 아니야.”

도트는 내가 슬퍼한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느낀 건 완전히 다른 감정이었다. 난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일이 일어났을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에드워드는 불쌍한 아이인데 더 불쌍해졌다고 생각하려고 했다.

에드워드를 찾아서 위로해 줘야지. 다른 생각 할 수 없게.

에드워드는 어리고 나를 믿고 있으니까.

구역질이 나왔다.

표정 관리 같은 건 할 수 없었다. 그레이의 혼란스러운 얼굴을 보고 표정 관리를 했어야 했다는 게 뒤늦게 떠올랐다.

“괜찮으세요, 전하?”

그레이가 확인하듯 물었다. 그 목소리가 웅웅거리는 것처럼 들렸다. 그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손은 왜 그러세요? 다치셨어요?”

“에드워드는 어디 있어?”

“만나러 가시게요? 그러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지금 전하께서는 쓰러지실 것 같아요.”

“난 멀쩡해. 에드워드는 혼자 있을 거 아냐.”

“예.”

“왜 넌 에드워드 곁에 없는 거야?”

그레이가 나를 붙잡았다. 뭐 하는 건가 생각하다가, 난 그가 날 부축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레이 크래커 소공작은 그래선 안 되니까요.”

그레이의 단정한 얼굴이 가까이 있었다.

“넌 에드워드의 친구가 아니었어?”

“친구? 글쎄요. 예전의 조프리 전하는 그걸 싫어하셨죠.”

예전의 조프리는 에드워드를 미워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에드워드의 마음이었다.

난 에드워드를 만나야 했다.

“에드워드는 어디에 있어?”

난 다시 물었다. 그레이가 묘한 눈으로 날 쳐다봤다.

“에드워드 전하는 궁에 계세요.”

그가 말하는 곳은 에드워드의 궁이 아니었다.

조프리의 궁이었다.

에드워드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 * *

오후의 햇살이 후원의 정자를 비췄다. 꽃나무가 휘감은 기둥 사이로 에드워드가 보였다.

한 걸음을 뗄 때마다 입이 말랐다. 난 장미 덤불을 지나쳤다. 손차양으로 햇살을 막았다. 햇살이 너무 강했다. 에드워드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계속 다가갔다. 발을 움직였다. 에드워드의 얼굴이 보일 때까지.

심장이 두근거렸다.

에드워드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는 모습을 꼼짝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미동 없이 앉아 있는데도 그는 인형처럼 보이지 않았다. 평소의 멍하고 생각 없어 보이는 표정이 아니었다.

얼어붙은 불꽃이 떠올랐다. 분노가 너무 커서 얼어 버린 듯한…….

어느 순간 난 걸음을 멈췄다. 그의 모습이 가까워지지 않았다.

에드워드가 일어났다. 그가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목이라도 졸리는 것 같았다. 그가 내 멱살을 잡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에드워드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얼음이 깨졌다.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가 나를 지나쳤다. 나는 숨도 쉴 수 없었다.

“괜찮아?”

에드워드는 더 멀어지지 않았다. 내가 그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

“…….”

에드워드가 고개를 저었다.

“미안해…….”

어째서인지 난 사과했다.

에드워드의 속눈썹이 젖어 들었다. 그는 조용히 울었다. 얇은 입술이 맞물리고, 그 위로 눈물이 길을 만들었다.

내겐 어떤 계획이 있었는데 그 순간엔 떠오르지 않았다. 그에게 할 수많은 말들이 있었는데.

난 에드워드에게 사과했다. 에드워드의 눈물이 내 가슴을 적시고 있었다. 그는 내 어깨에 이마를 대고 울었다. 손바닥 아래로 마른 날개 뼈가 들썩였다. 그는 주체할 수 없이 울었다. 나는 그가 이대로 쓰러져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에드워드의 손이 내 가슴 위로 올라왔다. 그가 나를 밀쳐 냈다.

“욕심내선 안 되는 거였잖아. 괜찮지 않았잖아.”

“…….”

“너한테 위로받아선 안 되는 거잖아.”

깃털 같은 힘이었다. 그런데도 난 밀려났다.

“가.”

“에드워드.”

“보고 싶지 않아. 네가 사라졌으면 좋겠어.”

“어디로?”

“평생 볼 수 없는 곳으로.”

하지만 날 찾아온 건 너잖아.

내가 제대로 서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했더라? 우는 에드워드에게. 불쌍한 어린애한테.

왕비님.

난 에드워드가 원하는 대로 했다. 정원을 빠져나가 에드워드가 날 볼 수 없는 곳까지 달렸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경비병이 나를 제지하려고 했다.

“비켜.”

경비병이 내 얼굴을 알아보고 물러섰다.

나는 왕비님의 궁으로 들어갔다.

“조프리 왕자? 이 시간에 무슨 일이에요?”

왕비님은 차를 마시던 중이었다. 생화로 장식된 티 테이블 주위로 시녀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에게서 좋은 냄새가 났다. 나는 뜨겁고 괴로운 곳에 있었는데 갑자기 시원한 그늘 아래로 들어온 것 같았다.

“왕비님이 보고 싶으셨던 거죠?”

“뛰어오셨나 봐. 여기 앉아서 쉬세요, 왕자님.”

“차를 한잔 드릴까요? 과자는 어떠세요?”

시녀들이 웃으며 권했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지 않았다.

“어마마마께서 그러셨어요?”

왕비님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허리를 펴고 미소 지었다. 아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는 것처럼.

“무슨 말을 하는 건가요, 왕자? 수업은 어떻게 된 거예요? 재미가 없었나요? 교사가 나빴던 걸까…….”

왕비님이 손을 내밀어서 난 다가갔다. 부드러운 손이 내 이마를 만지고 머리카락을 넘겨 줬다.

따듯하고 부드러운 손이었다. 처음에 이곳에 떨어졌을 때도 그렇게 생각했다. 눈물 날 정도로 다정한 손이라고.

“뜨거워? 왕자, 몸이……. 다쳤잖아요? 세상에, 피가 나잖아!”

“에드워드의 어머니를 왕비님이 죽이셨어요?”

왕비님의 손이 떨어졌다. 다정하게 아들을 걱정하던 얼굴 그대로 눈만 커졌다.

“그게 사실이에요? 대답해 주세요.”

“왜 화를 내나요?”

왕비님은 엉뚱하게 물었다. 속이 뜨거워졌다.

“왕비님!”

“왜 그렇게 나를 부르지?”

왕비님은 답을 묻는 사람처럼 나를 보고 주위를 둘러봤다. 시녀들은 끼어들지 못하고 뒤로 물러서 있었다.

왕비님의 손이 테이블을 짚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찻잔을 들어 올렸다. 잔은 허공에서 미끄러졌다.

쨍그랑!

산산조각 난 파편이 내 발치로 튀었다. 왕비님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망할.

뜨거운 게 위로 올라가서 눈까지 아렸다. 난 눈을 세게 감았다.

이건 망했다. 일말의 희망도 사라졌다.

“조프리 왕자. 화내지 말아요. 왜 내게 화를 내지? 그런 적이 없었는데.”

“대답해 주지 않으실 거예요?”

왕비님은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겁에 질려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왕자도 나를 미워하게 됐나요?”

“왕비님…….”

시녀들이 왕비님을 부축했다. 왕비님은 아무 말도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게 왕비님께서 저지른 짓이라면 전 왕비님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난 그곳을 빠져나갔다.

조프리? 내 아가?

뒤에서 왕비님의 비명 같은 부름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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