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과 1-28화 (28/293)
  • 28.

    도트가 에드워드에게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아야, 아프다. 그거 아파요. 에드워드 전하, 가위만 가져갈게요.”

    도트가 애 달래듯 말했다.

    에드워드의 멍한 눈이 도트를 향했다. 열에 들떠서 느린 움직임으로 에드워드는 가위의 위치를 도트에게 맞추고 있었다. 가위 끝이 위협적으로 흔들렸다.

    진짜 뭐 하는 거야?

    “하지 마. 물러나.”

    내 말을 듣고 도트가 멈칫하는 순간 에드워드의 가위가 허공을 갈랐다. 도트가 좀 더 접근했으면 다쳤을 것이다.

    에드워드가 멍하니 내 쪽을 바라봤다.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식은땀이 났다.

    위험한데.

    “와, 왕자님. 왕자님께서 저를 살려 주셨어요.”

    도트가 숨을 헐떡였다. 감동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지금 그게 문제야? 앞이나 좀 봐라.

    에드워드가 눈을 깜빡였다.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하고 벽에 등을 부딪혔다.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들렸다. 에드워드는 그 와중에도 도트가 철천지원수라도 되는 듯 시선을 떼지 않았다.

    “제압할까요?”

    도트가 물었다. 도트는 에드워드나 조프리보다는 나이가 많았지만 그래 봤자 내가 살던 곳의 중학생 정도였다.

    내가 물러나라고 말하려는데 그레이가 끼어들었다.

    “앞을 보세요.”

    에드워드가 움찔거리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니, 진짜 무섭다고. 에드워드가 좀비처럼 일어나는데 도트는 맹하니 나나 쳐다보고 있었다.

    “도트, 뒤로 물러나. 어서.”

    “네?”

    “나 보지 말고! 에드워드에게서 멀어져.”

    “왕자님이 에드워드 전하께 접근하려고 하시는 거 아니죠?”

    도트는 불신하며 내 말을 따르지 않았다.

    위험한 게 뻔히 보이는데 그런 짓 하는 건 너밖에 없거든.

    도트의 목소리에 에드워드가 반응했다. 가까이서 들리는 큰 소리에 반응하는 것 같았다.

    정말 좀비 같잖아? 에드워드가 팔을 휘둘렀다.

    “도트, 엎드려!”

    도트가 침대 밑으로 풀썩 엎드렸다.

    눈앞의 적이 사라지자 에드워드는 멍해졌다. 눈을 굴려 찾는가 싶더니 아무도 보이지 않자 고개를 숙이고 기침했다.

    “죄, 죄송합니다. 왕자님…….”

    “조용히 해.”

    도트가 뭐라고 하려기에 말렸다. 방이 조용해졌다. 에드워드는 벽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잠든 건가?

    에드워드의 손에 아직 가위가 잡혀 있어서 방심할 수 없었다.

    “……도트, 왜 그러고 있어?”

    도트가 바닥에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엎드리라고는 했지만 저렇게 불쌍하게 엎드릴 필요는 없었는데?

    도트는 울먹한 얼굴로 물었다.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제게 화나셨어요?”

    아니, 대체 왜? 당황스러웠다.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애를 괴롭혔나?

    “너한테 왜 화가 나?”

    에드워드 앞에서 어물거린 건 좀 답답했지만.

    에드워드를 깨울까 봐 큰 소리를 낼 수 없었다. 난 엎드려서 도트에게 다가갔다.

    “앗, 왕자님.”

    도트가 당황했다. 난 그를 일으켰다. 도트는 착한 시종이어서 왕자가 일으키는 데 버티는 짓 같은 건 못 했다.

    “제게 화나신 거 아니에요?”

    “내가 왜 너한테 화를 내?”

    “하지만 엎드리라고……. 제가 건방지게 왕자님의 뜻도 모르고 행동해서…….”

    “무슨 소리야? 네가 위험했잖아. 에드워드가 가까운 상대한테 반응하는 것 같아서 그랬어.”

    “왕자님!”

    도트가 매달렸다. 또 감동한 모양이었다.

    도트의 감동 포인트는 알 수가 없다. 그래. 네가 좋다니 됐다.

    사실 에드워드를 데려와서 이 사달을 낸 건 나지만.

    도트를 달래고 있는데 무언가 침대 위로 툭 떨어졌다. 가위였다. 에드워드의 몸이 침대 헤드에서 미끄러졌다. 정신을 잃은 듯했다.

    난 기절한 에드워드에게서 가위부터 뺏었다.

    손이 많이 가는 어린애였다. 사람을 못 믿는 건지. 에드워드는 상대가 도트여서 경계한 게 아니었다. 누가 접근했어도 그랬을 것이다.

    예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위험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에드워드를 재워선 안 됐다. 자더라도 약은 먹고 자야지. 난 주변의 위험한 물건을 치우라고 도트에게 지시한 뒤, 침대로 접근했다.

    그때까지도 그레이는 내 뒤에 서 있었다.

    “씻으러 안 갔어? 시중들 사람이 필요해?”

    “아니요. 필요 없어요……. 뭐 하시려는 거예요?”

    “약 먹이잖아. 안 씻을 거면 이리 와서 에드워드 좀 일으켜 볼래?”

    “네?”

    도트는 화분을 옮기고 있었다. 아픈 에드워드에게 화분을 집어 던질 힘이 있을 것 같진 않지만, 난 에드워드가 가위를 뺏을 줄도 예상 못 했다. 낑낑대며 화분을 끄는 도트를 부르긴 뭐했다.

    “뭐 해? 빨리.”

    재촉하자 그레이가 다가왔다. 그가 에드워드에게 두 팔을 뻗었다. 어색한 자세였다. 한 번도 사람 부축해 본 적 없나?

    “에드워드 전하, 실례할게요.”

    이런 소리나 하고 있었다. 물론 에드워드가 그 말을 듣고 괜찮다고 대답해 줄 리는 없었다.

    난 그냥 에드워드의 겨드랑이에 손을 집어넣고 쑥 들어 올렸다. 에드워드의 허리께를 어색하게 잡고 있던 그레이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도움도 안 되는데 혼자 할까.

    그레이가 받아 온 물약을 숟가락에 따랐다. 에드워드의 입을 벌려야 하는데, 내가 아는 방법은 한정되어 있었다.

    “에드워드. 에드워드, 잠깐만 눈떠 봐. 힘들면 입만 벌려. 이거 삼키자.”

    “뭐 하시는 거예요?”

    그레이가 성가시게 굴었다. 난 약을 따른 숟가락으로 에드워드 입술을 찌르고 있었다. 에드워드가 얼굴을 찡그렸다. 이러면 성가셔서라도 입을 벌리게 되던데.

    에드워드가 신음했다. 섬세한 눈썹이 일그러지고 속눈썹이 떨렸다.

    “괴로워하시잖아요!”

    “너나 나 괴롭히지 말고 뭣 좀 해 봐……. 네가 먹이든지. 팔 떨어지겠다.”

    숟가락이 무거웠다. 내가 달고 있는 팔이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숟가락이 무거울 수 있을까? 어린아이의 몸이란 놀랍도록 허약했다.

    그레이가 얼떨결에 숟가락을 받았다.

    “저, 에드워드 전하, 입을 벌려 주세요. 약만 드실게요. 아니, 쓰러지시지 말고……. 조프리 전하? 에드워드 전하 넘어가시는데요? 조프리 전하!”

    “에드워드!”

    십년감수했다. 에드워드는 뒤통수를 벽에 박을 뻔했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난 가까스로 에드워드의 머리를 붙잡고 있었다.

    “헉……. 헉…….”

    그레이는 물약을 이불에 쏟았다. 그가 너무 놀라서 달래 주려고 했다.

    “괜찮아. 그대로 붙잡고 있어.”

    내 목소리도 떨렸다. 그레이가 덜덜 떨며 말했다.

    “에드워드 전하 돌아가신 거 아니죠?”

    “아니야. 숨 쉬어.”

    “하지만 안 일어나시는데요?”

    “내 말이.”

    나도 보고 있어. 상황 알아.

    그 후로 한참을 씨름했다. 에드워드를 간질여도 보고 찔러 보기도 하고. 강아지 약 먹이듯 에드워드의 입술을 벌려 보기도 했다. 그러다 그레이가 물릴 뻔하고…….

    끝내 에드워드에게 약을 먹이는 데 성공했을 때, 난 그레이와 악수라도 할 뻔했다. 나와 그레이가 흘린 진땀을 합치면 1리터는 될 것이다.

    에드워드는 찡그린 얼굴로 입을 다셨다. 약이 쓴 모양이었다. 침대 위에 엎어진 그레이가 보였다. 마찬가지로 나도 늘어져 있었다. 일어나기 싫었다.

    하지만 이대로 있으면 시트에 땀이 밸 것이다. 그레이의 검은 머리카락에서 땀이 반짝였다.

    “씻고 갈 거지?”

    “아니요?”

    그레이는 청개구리 본연의 자세로 돌아간 듯했다.

    “진짜 그 꼴로 나가게?”

    “……잠깐 신세 지겠습니다.”

    두 번 안 권할 생각이었는데. 그레이는 확실히 머리가 좋았다.

    도트는 물수건으로 에드워드의 몸을 닦고 있었다. 저 서비스가 내게도 필요했지만, 지금 도트를 귀찮게 했다간 그레이의 한심하다는 눈초리를 받겠지.

    그레이와 다른 욕실로 들어가서 씻었다. 깨끗해진 그레이는 조프리의 옷을 입고 나왔다.

    빌려 입은 옷인데도 어색함 없이 맞았다. 같은 옷을 조프리가 입었을 때보다 더 멀끔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조프리와 그레이는 키와 체격이 비슷했다. 에드워드가 우리보다 키가 약간 컸다. 먹는 거야 조프리가 훨씬 잘 먹고 살고 있으니 유전자 때문일 것이다. 왕도 에드워드의 어머니인 로제 부인도 키가 크고 늘씬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에드워드? 일어날 때까지 재우다가 간단히 뭐 먹여야지. 깨는 거 보고 갈래? 자고 가도 되고.”

    “아니요.”

    그레이는 에드워드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얘는 에드워드를 걱정하는 건지 아닌지 모르겠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