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과 1-16화 (16/293)
  • 16.

    에드워드는 훌쩍 말에 올라탔다. 시범을 보인다며 먼저 연무장을 한 바퀴 가볍게 달리더니 말에서 내려 내게 고삐를 넘겨줬다.

    난 그가 어떻게 했는지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휙 올라가더니 아무렇지 않게 말을 다뤘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말은 거의 성인 크기만 했다. 난 말 위에 올라가려면 받침대가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올라간 거야?”

    “어떻게?”

    에드워드는 어떻게 숨을 쉬냐는 질문을 받은 사람처럼 반응했다.

    “밟고 올라가면 되잖아?”

    말의 옆구리쯤에서 등자가 대롱거렸다. 내가 보기에 밟고 올라갈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에드워드는 나랑 키가 비슷했다.

    너 어떻게 올라갔냐?

    “저걸?”

    “응.”

    “…….”

    “…….”

    에드워드와 나는 서로를 잠시 쳐다보고 있었다.

    도트가 발돋움으로 쓸 의자를 가져왔다. 나는 의자를 밟고 말 위에 올라탈 수 있었다.

    엉덩이 밑에서 꿈틀거리는 근육이 느껴졌다.

    내가 생물을 타고 있어.

    바닥이 까마득했다. 떨어지면 죽을까? 저번엔 안 죽었지. 이번에도 그렇게 운이 좋을까?

    높이 올라오니 불길한 생각만 들었다. 내 원래 몸이라면 몰라도 조프리의 어린 몸은 떨어져서 목이 꺾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말은 아직 움직이지 않았다. 난 숨도 조심스럽게 쉬었다. 내 숨소리를 신호로 알아듣고 말이 움직일까 봐. 말이 걷기라도 하면 난 틀림없이 떨어질 거였다.

    “훌륭하세요, 왕자님. 위풍당당한 자태세요!”

    “예, 아주 잘하고 계십니다!”

    도트와 마구간지기가 옆에서 박수를 보냈다. 저걸 응원이라고 하는 걸까? 에드워드가 둘을 보더니 손뼉을 짝짝 부딪쳤다.

    “멋지다, 조프리.”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하지 마!”

    순간 말이 진저리 쳤다. 난 고삐를 잡아당길 뻔했다. 대신 말의 갈기를 쥐고 매달렸는데, 다행히 말은 더 날뛰지 않았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말은 겁이 많아. 너무 큰 소리 내지 마.”

    에드워드가 태평하게 말했다. 너 때문이잖아!

    “나 떨어질 것 같아.”

    난 최대한 침착하게 말하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대답이 없었다. 난 너무 침착해서 내 진심이 전해지지 않았나 싶어 다시 말했다.

    “진짜로. 말이 지금 떠는 것 같은데, 원래 그래?”

    “떠는 건 너야. 겁먹지 마. 말이 알아채니까.”

    “사람 마음이 말처럼 쉬운 줄 알아?”

    난 이미 겁먹었다고.

    그리고 원래 사람은 울지 말라고 하면 더 운단 말이야. 더 겁나잖아.

    “말이 알아채면 어떻게 되는데?”

    “좋지 않지.”

    “그런 말은 나도 하겠다.”

    스위티는 지금껏 겪어 온 대로 착하고 순한 말이어서 아직 날 떨구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문제일 것 같았다.

    나는 내가 느낄 만큼 떨고 있었으니까.

    머리 한구석에서 묘하게 냉정하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예전에 말을 본 적도 없고 타 본 적도 없지만, 겁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머리 쓰는 일은 못해도 몸 쓰는 일은 자신 있었다. 따로 운동하는 게 없어도 체육은 잘했고 힘도 좋았다.

    결국 승마도 몸을 쓰는 일이다. 왜 이렇게 겁이 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

    농구할 때 공만 잡으면 떨어뜨릴 걱정부터 하는 유연호도 아니고.

    “왕자님, 힘드시면 내려오세요! 승마 따위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아요!”

    “그럼요, 마차를 타시면 되니까요.”

    도트와 마구간지기가 호들갑을 떨었다. 마구간지기는 며칠 전부터 도트랑 함께 나 하는 꼴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둘이 죽이 잘 맞았다.

    응원 고맙네. 덕분에 의욕이 생겼다.

    “떨어진다고 죽진 않겠지?”

    “고삐만 안 놓치면.”

    에드워드가 대답했다.

    “한번 떨어져 봐서 알잖아. 사람은 생각보다 튼튼해.”

    “위안이 된다.”

    내가 투덜거리자 에드워드는 조금 웃었다.

    “그럼 천천히 걷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

    한 시간 뒤 나는 말을 타고 달리고 있었다.

    사람에겐 육감이란 게 있어서 자길 보는 시선을 귀신같이 알아챈다. 어쩐지 뒤통수가 간지럽더라니. 난 고개를 돌렸다가 우릴 훔쳐보던 시종을 발견했다.

    “거기 서!”

    시종의 모습이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낯이 익은 시종이었다. 나는 그를 성내에서 종종 봤다. 내가 성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는 길에 마주친 시종도 저 사람이었다.

    그는 에드워드와 내가 연무장에 함께 있는 걸 목격했다. 그러자마자 몰래 이동하는 모습이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거기 멈춰 봐.”

    내가 불렀다. 시종은 무시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시종이 왕자의 부름을 무시하고 도망치는 상황이다. 휴식 시간이라 고용주랑 엮이고 싶지 않은 거라는 가능성도 있었지만, 난 그보다 확률 높은 선택지를 알고 있었다.

    또 왕비님인가?

    뭐 이건 전방위 감시 사회도 아니고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사방에 CCTV가 달려 있던 예전이 오히려 더 사생활을 보장받았던 것 같다.

    사람의 발은 말보다 빠르지 않다. 난 곧 시종을 따라잡을 거였다.

    예정된 미래보다 난 다른 쪽에 신경이 쓰였다. 이 속도로 달리는 중에 고삐를 잡아당겨도 될까? 말이 발작하지 않을까? 얼마만 한 세기로 어떻게 잡아당겨야 얘가 얌전히 설까. 지금부터 속도를 줄여야 하나? 속도는 어떻게 줄이는 거지?

    그러다 시종을 지나쳤다. 시종은 헉헉거리며 지금껏 왔던 방향으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똑똑하다.

    시종은 내가 말을 잘 못 다룬다는 것을 알아챈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가 달려가는 방향에선 에드워드가 다가오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시종과 거리를 좁히고는 말에서 뛰어내렸다. 난 달리느라 그 뒤의 일을 보지 못했다.

    내 말이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가속도가 붙고 있는 게 내 착각이었으면 좋겠는데.

    말은 앞만 보고 달렸다. 큰길로 들어서자 궁인들이 날 알아봤다.

    “왕자님?”

    “왕자님!”

    말이 빨래 바구니를 휙 뛰어넘었다. 나는 균형을 잃을 뻔했다. 순간적으로 몸을 말 등에 바짝 붙이자, 바람에 휘날리는 갈기가 내 얼굴을 때렸다.

    성벽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말은 뜻밖에 주어진 자유를 포기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활짝 열린 성문이 코앞이었다. 나가기만 하면 말은 영원히 자유의 몸이었다.

    말의 걸음이 깃털처럼 가벼웠다. 정말 낙마라도 해야 하나? 이대로 탈주하면 누가 날 구해 주지?

    말이 더 가속도를 얻기 전에 떨어지자고 생각했다. 주변에 사람이 좀 적어지면.

    심장이 터지기 직전의 폭탄 같았다. 낙마하는 나랑 부딪히면 그 사람도 같이 터질 거였다.

    히히힝!

    사고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졌다. 말이 급정거를 함과 동시에 내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세상이 한 바퀴 돌더니 나는 말 앞으로 튕겨져 나가고 있었다.

    “꺄아아악!”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그 상황에서 떠오른 건 에드워드의 목소리였다.

    ‘떨어진다고 죽진 않겠지?’

    ‘고삐만 안 놓치면.’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난 고삐를 쥔 채 떨어졌다.

    “와, 와, 왕, 왕자님!”

    염소수염을 단 남자가 내 위에 있었다. 남자의 마르고 창백한 얼굴과 콧구멍이 보였다. 머리가 빙글빙글 돌았다. 아프고 얼이 빠지고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난 뭔가를 쥐고 있었다.

    “왕자님, 괜찮으십니까?”

    남자가 무엄하게도 내 몸에 손대려고 했다.

    분노와 거부감이 머릿속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감히!”

    내가 외치기 전에 채찍질 같은 고성이 울렸다. 얼굴이 벌겋게 된 도트였다.

    “떨어져라! 경비대장!”

    도트는 염소수염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난 그가 화내는 모습을 처음 봤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지?

    정신이 들자 몸의 감각이 돌아왔다. 엉덩이며 발이 욱신거리고 팔이 떨어져 나갈 듯 아팠다.

    하지만 그 외에는 멀쩡했다. 에드워드 말이 맞았다. 낙마 사고 정도로 사람은 죽지 않는 모양이다.

    “그만해, 도트. 왜 그렇게 화를 내? 걱정해 준 사람한테.”

    “하지만 왕자님, 저 사람이 감히 천한 손을…….”

    뭐?

    도트는 금방 착하고 순진한 시종으로 돌아와서 내 옆에 무릎 꿇었다. 난 그의 부축을 받아 일어났다.

    사지를 뻗어 봐도 잘 움직였다. 아프긴 했지만 참을 만한 정도였다.

    오히려 몸보다 정신의 충격이 컸다. 천한 뭐? 너 뭐라 그랬냐?

    “괜찮으세요? 의원을 부를까요? 당장 궁으로…….”

    아니, 너 방금 캐릭터성 붕괴되지 않았어? 내가 잘못 들었나? 도트의 헌신적인 태도 때문에 헷갈렸다.

    그리고 경비대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왜 천한 사람이야?

    경비대장은 내 시선을 받자마자 이마를 바닥에 찍었다.

    “죄송합니다!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전하!”

    “네?”

    너무 당황해서 존댓말이 나왔다. 난 누가 이상하게 여기기 전에 그를 일으켜 세웠다.

    “왜 그래? 걱정해 줘서 고마워. 일어나. 내가 나 일으켜 주려고 했다고 처벌하는 정신 나간 왕자처럼 보여?”

    열한 살 먹은 조프리가 그렇게 폭군이었다면 옆에 시종들이 남아났을 리 없다. 도트만 해도 조프리에게 지극정성이지 않은가. 성인이 된 조프리는 아예 신분을 무시하고 사람을 사귀고 다니는 캐릭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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