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과 1-12화 (12/293)

12.

“여기가 로제 부인 댁이 아닌가요?”

“내가 로제란다.”

부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그레이는 뭐라고 더 말하려고 했지만, 에드워드가 그를 잡아끌었다.

“가자.”

“얘, 정말로 날 찾아온 게 아니니?”

부인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에드워드는 돌아보지 않았다.

우리는 마차로 돌아갔다. 문을 닫자마자 그레이가 물었다.

“왕자님, 어째서…….”

“엄마랑 떨어진 건 내가 세 살 때 일이야.”

세 살?

“헤어질 때 엄마가 너무 울어서, 한번 만나고 싶었어. 괜찮은지.”

에드워드는 멍한 얼굴이었다.

“봤으니까 됐어.”

에드워드는 늘 멍한 편이었다.

하지만 그는 바보가 아니었다. 멍한 건 겉모습일 뿐이다. 그는 세 살 때 어머니와 떨어진 순간을 기억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뭐가 됐어? 넌 네 어머니를 못 만났잖아.”

에드워드가 눈을 깜빡였다.

“만났어. 방금 그 부인이 내 엄마야.”

“나도 알아. 누가 그런 얘길 하재? 부인은 네가 너인 걸 모르잖아.”

“상관없어.”

“아니, 있어. 너 진심이야?”

도대체 어떤 머리를 가져야 세 살 적 일을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에드워드는 다른 의미로 멍청한 게 분명했다.

기회는 늘 있는 게 아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수도 있다.

나만 해도 그랬다. 언제나 집에 돌아가서 엄마와 늦은 저녁을 함께 먹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가서 말해. 네가 에드워드라고. 궁에서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고. 보고 싶었다고.”

“싫어.”

“왜?”

“엄마를 괴롭히기 싫어.”

대체 무슨 소리야?

“지금 잘 지내고 있잖아. 날 떠올리게 만들기 싫어. 또 울리고 싶지 않아.”

그렇게 말하는 에드워드는 아주 어린애 같기도 했고 나보다 어른 같기도 했다.

“자주 나와서 만나면 되잖아? 내가 도와줄게. 그레이도 도와줄 거야.”

그레이가 나를 쳐다봤다. 눈을 찡그리고 있었다. 왜 멋대로 말하느냐는 듯이.

“안 돼. 위험해.”

에드워드가 눈을 깜빡였다.

“뭐가?”

오늘 우리에게 위험한 상황은 소매치기 정도밖에 없었다.

“내가 위험해. 난 살아 있어야 돼.”

그 말은 정말 이상하게 들렸다.

“당연히 살아 있어야지.”

에드워드가 날 봤다. 하얗고 멍한 얼굴이었다.

“응. 엄마가 내 부고를 듣게 할 순 없으니까.”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난 에드워드가 틀렸다고 생각했다. 기회가 오늘 한 번뿐이라면 에드워드는 더욱더 로제 부인을 만나야 했다.

하지만 에드워드를 설득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억지로 에드워드를 부인 앞으로 끌고 간다고 해도, 에드워드가 행복해질까? 부인은 틀림없이 자기 아들을 보고 싶어 할 거라고 믿지만, 중요한 건 에드워드의 생각이었다.

에드워드가 불쌍했다. 동정하지 않으려고 해도 마음이 쓰였다. 에드워드는 엄마를 보고 싶다고 했는데, 그 엄마는 에드워드를 너무 어릴 적에 잃어버려서 열한 살이 된 에드워드와 자신의 아들을 연관 짓지도 못한다.

짜증난다. 너 바보 아냐? 누가 너한테 그런 것까지 신경 쓰래. 넌 어린애잖아.

에드워드에게 화를 내게 될 것 같았다.

그레이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는 에드워드의 친구고, 커서도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에드워드를 돕는다.

나보다는 그레이가 에드워드에게 도움이 될 거다.

뜻밖에도 그레이는 창밖을 보고 있었다. 에드워드 말을 신경 쓰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의 대화와는 상관없는 사람처럼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럼 돌아갈까요?”

우리가 조용해지자 그레이가 물었다.

“넌 의견 없어?”

“에드워드 전하를 따르는 게 제 의견이에요.”

그레이는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말투로 대답했다.

“돌아가죠, 더 늦어지기 전에. 에드워드 전하의 목적은 달성했으니까요.”

* * *

마차가 왕성에 도착했다. 그레이의 마차는 검문을 받지 않아서, 성을 나갈 때처럼 문제없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에드워드는 시종의 이목을 피해 움직이는 데 능숙했다. 내게 이 시간대엔 정원 쪽으로 돌아가면 아무도 안 만날 거라고 알려 주고 먼저 떠났다.

나와 도트는 정원을 통해 내 방으로 돌아갔다. 정원에는 사람이 없었지만 내 침실 앞에서 시종 한 명과 마주쳤다.

“왕자님? 왜 밖에…….”

“아, 여기 있었네. 왕비님께 좀 다녀올래? 내가 뵙고 싶어 한다고 전해 줘.”

“예? 예.”

시종은 도트가 내 옆에 있는데 왜 자길 시키는지 의문인 듯했으나 군말 없이 떠났다. 그는 왕비님이 저녁 식사를 함께하자고 권했다는 전갈을 갖고 돌아왔다.

나는 옷을 갈아입느라 식사 시간에 조금 늦었다. 내가 식당에 들어서자 왕비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맞았다.

“나의 조프리 왕자.”

왕비님이 나를 끌어안았다. 난 조프리가 된 것처럼 왕비님을 마주 안고, 왕비님의 뺨에 입을 맞췄다.

도트의 반지 얘기를 하려면 적당한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까?

“어머나. 내 왕자님이 오늘 왜 이럴까?”

말없이 왕비님의 품에 파고들자 왕비님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마와 정수리에 입을 맞췄다.

왕비님은 조프리를 걱정하고 있었다. 왕비님의 표정을 보며 마음을 정했다. 죄를 고백하는 것부터 하자.

왕비님은 응석을 받아 줄 준비를 마친 듯 보였다. 왕비님의 얼굴에 동정과 이해의 빛이 어렸다.

“무슨 일 있군요? 세상에, 마음 아파라……. 이 어미에게 말해 봐요.”

“어마마마…….”

“그래요, 조프리 왕자.”

“제가……. 잘못했어요. 죄송해요.”

“괜찮아요. 이 어미가 다 해결해 줄게요. 무슨 일인가요?”

왕비님이 부드럽게 말했다. 원하는 대로 되고 있는데 당황스러웠다. 왕비님의 양육 방식은 좀 이상했다. 무슨 잘못을 했는지 말하지도 않았는데 왕비님 안에서는 해결이 돼 버렸다.

잘못을 했으면 혼나야 하는 거 아닌가. 설마 지금까지 조프리는 혼나 본 적이 없나?

난 왕비님의 눈치를 보다 말했다.

“저 몰래 성 밖에 나갔다 왔어요.”

“왕자!”

왕비님의 안색이 변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언제 그랬어요?”

“오늘……. 너무 궁금해서, 낮에 잠깐……. 어마마마?”

“다친 곳은 없나요? 누구한테 해코지라도? 세상에, 어쩌면 그런 일이. 왕자가 성문을 통과했는데 경비병이 알아채질 못하고…….”

“어마마마!”

왕비님은 내 몸을 구석구석 살펴보려 했다. 소매를 걷고 셔츠를 올리고 야단이었다. 이러다 옷을 다 벗길 기세였다. 나는 왕비님의 품에서 벗어났다.

“아니에요, 경비병들은 아무 책임도 없어요. 그런데 제가 나갔다가 소매치기를 당해서…….”

“뭐라고요?”

왕비님은 거의 기절할 것처럼 보였다. 나는 왕비님을 부축해 의자에 앉혔다.

“조프리 왕자, 절대로, 다시는 성을 나가면 안 돼요. 알았어요? 절대로 위험한 일은 하지 않는 거예요. 조프리 왕자라도, 왕자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면 이 어미는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약속해요, 어서!”

왕비님이 내 팔을 붙잡았다. 팔에 멍이 들 게 분명했다.

“죄송해요…….”

“왕자에게 큰일이라도 생기면 나는……. 대체 누가 왕자를 충동질했나요? 누가 왕자를 수행했죠?”

나는 잠깐 망설였다. 도트는 내 시종이었고 그의 업무는 내 곁에 있는 거였다. 하지만 왕비님의 흉흉한 기세를 보니 그가 없었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 듯했다.

하지만 내가 한발 늦었다. 도트가 왕비님의 발치에 머리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왕비님! 제 잘못이에요!”

“일어나렴.”

왕비님이 말했다. 도트가 벌벌 떨며 일어섰다.

몸을 숙이지 않아도 손이 닿는 위치에 도트의 얼굴이 있었다.

왕비님이 팔을 치켜들었다. 맞는다, 고 느끼는 순간 난 왕비님의 팔을 붙잡았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모를 정도로 가는 팔이었다.

왕비님은 차마 조프리를 매달고 도트를 때릴 생각은 하지 못했다.

“쓸모없는 것.”

왕비님은 새파란 눈으로 도트를 쏘아보더니 나를 다시 끌어안았다.

“이곳에 시집와서 내게 좋은 일이라곤 없었어요. 단 하나, 왕자만이 이 어미의 기쁨이었답니다. 조프리 왕자, 알고 있죠? 자신을 소중히 하세요. 그대는 왕이 될 사람이에요.”

왕비님이 속삭였다.

“네, 어마마마…….”

“음식이 식겠군요. 어서 들어요.”

왕비님이 생긋 웃으며 나를 놓아줬다. 그리고 웃음기 없는 얼굴로 도트에게 지시했다.

“넌 식사 후에 날 따라오렴.”

“예.”

도트는 바닥에 엎드린 채였다. 그의 몸이 떨리는 게 보였다.

“어마마마, 도트는 저 때문에 억지로 나간 거예요. 저 혼자는 보낼 수 없다며 따라왔어요. 도트에겐 아무 잘못도 없어요.”

“왕자, 왕자는 아직 잘 모르는군요. 윗사람의 잘못은 아랫사람이 제대로 보필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랍니다.”

왕비님이 상냥하게 말했다. 미치겠네.

“도트는 제 시종이에요. 도트가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건 제 명령 때문이에요. 제가 도트의 주인이니까. 아닌가요?”

“그래요. 주인을 제대로 모시지 못한 시종에게는 벌이 필요하겠죠. 다음에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처벌을 한다면 제가 해요! 도트의 주인은 저예요. 어마마마라도 제 시종을 마음대로 하실 수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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