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과 1-8화 (8/293)
  • 8.

    난 내가 빼놓은 의자에 앉아서, 그의 앙상한 팔을 바라봤다.

    이 집안 사람들이 뼈대가 가는 편인 것 같긴 했다. 에드워드의 외모는 왕을 닮았는데, 왕은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이었다.

    왕도 어린 시절에 말랐을 것이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말랐다기보다 어디 아픈 아이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어제 남긴 쿠키가 접시에 담겨 나왔다. 큼직한 초콜릿 덩어리가 박힌 쿠키는 어제 막 구웠을 때처럼 맛있진 않았다.

    이 성에서는 뭐든 갓 만든 걸 먹을 수 있었다. 조프리가 되어 좋은 점은 꽤 많았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건 그중에서도 최고였다. 왕비님은 조프리를 위해 파티시에를 따로 고용했다.

    “마음껏 먹어. 차린 건 없지만.”

    이런 대사를 언젠가 해 보고 싶었다. 원래 이런 말은 상 한가득 차려 놓고 해야 빛이 사는 법이다.

    에드워드는 초대한 보람이 있는 손님이었다. 그는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상을 둘러보더니, 조심스럽게 쿠키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그의 표정이 순간 녹아내렸다.

    에드워드는 누가 훔쳐 갈세라 쿠키를 입에 털어 넣기 시작했다.

    “잠깐. 그거 다 먹을 거야? 에드워드?”

    에드워드는 내 말을 듣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는 쿠키를 입에 욱여넣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우물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안 그러면 내가 뺏어 갈 것처럼.

    “아니. 곧 샌드위치가 나올 테니까……. 과자로 배를 채우면 안 좋지 않나 하는 생각이……. 그냥 다 먹을래?”

    에드워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과자 더 가져다줄까?”

    그가 좀 더 크게 끄덕였다.

    나는 복도로 나갔다. 도트가 쟁반 가득 샌드위치와 간식을 가져오고 있었다.

    “방금 가져온 쿠키 더 있어?”

    “아니요. 더 드시게요?”

    안 돼요. 식사하셔야죠! 도트가 짐짓 엄한 표정을 지었다.

    “나 말고 에드워드 좀 챙겨 주게.”

    “앗, 네. 주방에 말할게요.”

    “어……. 그 쟁반은 나 주고 가고.”

    “네!”

    도트가 내게 쟁반을 넘겼다. 그는 발아래도 살펴보지 않고 주방으로 달려갔다.

    물론 그의 발아래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는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다 무섭게 엎어졌다.

    “……괜찮아?”

    “네!”

    도트가 기운차게 일어났다. 그는 새빨개진 얼굴로 “걱정 마세요!” 하고 외치더니 모퉁이 너머로 다시 달려갔다. 아니, 걱정 안 할 테니까 뛰어다니지 좀 마라. 이 게임에서 도트의 설정값은 무적인 게 분명했다.

    난 식탁에 쟁반을 내려놓았다. 에드워드는 샌드위치를 보더니 눈을 떼지 못했다. 햄과 치즈와 신선한 양상추, 토마토가 몇 층으로 겹겹이 쌓인 화려한 샌드위치였다.

    과자를 그렇게 먹어 놓고 바로 먹기에는 힘들 것 같은 샌드위치이기도 했다.

    “먹으려고?”

    에드워드는 갈망의 눈길로 샌드위치를 보더니, 가까스로 고개를 돌렸다.

    “아니.”

    아니, 먹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먹을래?”

    “응.”

    “다 먹을 수 있어?”

    “응.”

    난 내 몫의 샌드위치까지 에드워드에게 주고 먹는 모습을 감상했다. 에드워드의 뺨이 설치류처럼 부풀었다.

    보기만 해도 배불렀다.

    “주스도 마셔.”

    포도 주스를 잔에 따라 줬다.

    에드워드는 미지의 생물을 보는 것처럼 주스에 시선을 고정하고 잔을 두 손으로 들었다. 그가 눈을 감고 주스를 쭉 들이켰다.

    꿀꺽, 에드워드의 목젖이 넘어갔다.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맛있어.”

    “맛있어?”

    “응. 이런 건 처음 먹어 봐.”

    그럴 리가.

    에드워드는 쉬지 않고 잔 하나를 다 비웠다.

    ……정말로? 너 뭘 먹고 자랐는데?

    “이것도 먹어 봐.”

    작게 자른 초콜릿을 내밀었다. 에드워드는 한 조각을 입에 넣고 눈을 깜빡였다. 이내 그의 얼굴에 미소가 스쳤다.

    나도 한 조각 먹었다. 포도 주스의 맛이 혀에 남아 있어서, 그냥 달다는 생각만 들었다. 입안에서 굴리다 보니 초콜릿의 맛이 느껴졌다.

    에드워드가 나와 눈을 마주치고 활짝 웃었다.

    활짝이라고 해도 얼굴의 절반만 사용해 웃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본 표정 중 가장 밝았다.

    “마음에 들어?”

    “응.”

    “더 챙겨 줄게. 가져가서 먹어.”

    에드워드가 다시 웃었다. 이번엔 좀 불안해 보였다. 그가 눈동자만 움직여 문을 살짝 봤다.

    “오늘은 아무도 안 와?”

    “왜? 원래 이 시간엔 아무도 안 와.”

    “정말?”

    “내가 너한테 거짓말을 왜 해?”

    에드워드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구나. 다행이네.”

    뭐가 다행이라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알아들은 척을 했다. 에드워드에게 응, 그렇지, 라는 미소를 보이자 에드워드는 눈을 깜빡였다. 금색 속눈썹이 깃털처럼 팔락거렸다.

    난 도트에게 에드워드가 가장 좋아하는 게 초콜릿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도트는 검지와 엄지를 붙여 오케이 표시를 하고는 잠시 뒤 초콜릿을 포장해서 가져왔다. 난 그걸 에드워드에게 내밀었다.

    포장지로 싸서 리본으로 묶은 초콜릿 상자는 만화에나 나오는 크리스마스 선물 같았다. 어떤 어린애라도 받으면 기뻐할 만한.

    에드워드는 기뻐하지 않았다. 그는 초콜릿이 폭발물이라도 되는 양 조심스럽게 들어 올리더니 한참을 바라봤다.

    그가 물었다.

    “그렇게 미안해?”

    “응?”

    “나한테 미안해할 필요 없어. 약속만 지키면 돼. 나머지는 네가 무슨 짓을 하든 신경 안 쓰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내가 왜 미안해해?

    머리가 재빨리 돌아갔다. ‘조프리’는 에드워드한테 미안해해야지.

    “무슨 말이야? 당연히 미안해야지. 그거 뇌물이니까 받아. 화 안 풀리면 한 대 쳐도 돼.”

    에드워드가 기가 막힌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어쩐지 조프리 때문에 한 달이나 갇힌 애치고는 반응이 약하다 했다.

    “나도 한 달 동안 아무도, 안 만나는 건 무리겠지만. 나도 그동안 내 방이랑 교실만 오갔어. 한 달 더 그럴까? 그럼 화가 풀릴 것 같아? 아니면 나 교실도 가지 말까?”

    사실 수업 안 듣는 건 나한테 좋은 일 같지만.

    “조프리.”

    “응.”

    “너 이상해.”

    그 말 요즘 자주 들어.

    아무도 내게 열한 살의 조프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려 주지 않는다.

    나는 게임 속 미래의 조프리만 알고 있다. 에드워드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리는 소탈하고 다정한 2왕자.

    다정하다는 건 이런 느낌 아닌가. 유연호처럼 무언가를 선물하고, 챙겨 주고.

    나는 조프리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람들은 내가 이상해졌다고 말한다.

    “못 들었어? 낙마 사고의 후유증 때문에 조프리 왕자가 백치가 됐다는 소문.”

    “소문에 따르면 난 내 이름도 못 쓰는 바보야.”

    “음……. 쓸 줄 알아?”

    “그거 농담이야?”

    에드워드가 발끈했다. 이제 좀 어린애 같았다.

    “또 같이 점심 먹자.”

    나는 최대한 가볍게 말했다.

    “……그래.”

    에드워드가 대답했다.

    좋아. 오늘 분위기 좋다.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미리 얘기해. 주방장한테 전해 줄 테니까.”

    “사과파이.”

    아무거나 상관없다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에드워드의 대답이 빨랐다.

    “사과파이? 알았어.”

    “엄마가 구운 거.”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그건……. 무리지.”

    “농담이야.”

    에드워드가 방긋 웃었다.

    웃기지 마. 농담 아니잖아. 난 어린애가 저렇게 웃는 게 싫었다.

    방법이 있을 것도 같은데. 조프리는 부자니까. 심부름꾼을 보내서 에드워드의 어머니와 접촉하면…….

    그렇게 쉬웠으면 에드워드가 몰래 탈출하려고 안 했겠지.

    에드워드를 복도까지 바래다주고 내 방으로 돌아왔다.

    생각을 좀 해 봐야겠다.

    * * *

    그날 저녁 왕비님이 나를 찾아왔다. 왕비님은 나를 끌어안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 나의 왕자님?”

    “좋았어요.”

    “공부는 잘 됐어요?”

    “그럼요.”

    왕비님은 내 머리를 쓰다듬더니 물었다.

    “에드워드를 초대해 함께 점심을 먹었다고 들었어요.”

    “네…….”

    왕궁 소문이 빠르다지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 난 순진한 척 눈만 깜빡였다.

    “에드워드와 친하게 지내는군요.”

    “아니요?”

    아직은 아니다.

    왕비님은 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조프리 왕자, 이 어미가 왕자를 사랑하는 걸 알 거예요.”

    “네. 알아요, 어마마마.”

    “내가 하는 일은 모두 왕자를 위해서라는 것도 알고 있나요?”

    “네, 어마마마.”

    “에드워드와 거리를 두세요. 그대를 위해서예요. 약속할 수 있나요?”

    “왜요?”

    “그대의 안전을 위해서.”

    왕비님의 눈은 깊고 슬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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