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세기 반로환동전-73화 (73/103)
  • 건달 정진영 - [2]

    이풍은 멍하니 서서 제 형님을 바라보았다. 방금 일어났다는 일이 도무지 실감나지 않았다.

    “바람이가 끌려갈 뻔했다고?”

    이풍의 물음에 허풍개가 대답했다.

    “그랬다니까.”

    “이게 대체 무슨 일이요? ”

    허풍개가 핀잔했다.

    “이런 일 있을 것 같으니까 보디가드 붙여두라고 했지.”

    “그건 너무 과하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대체 어떻게 알고 막았······”

    “내가 니 알아서 잘할 거라 믿었을 거 같냐. 몇 달 전부터 오가장에다 바람이 주변에 사람 붙여두라 부탁해뒀다. 얼마 전엔 고진철한테도 똑같은 요청해놨고.”

    이풍은 문밖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열세 명이나 되는 무림인들이 사무소안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저 인간들이 다?”

    “다섯은 오가장에서, 여덟은 무림맹에서 파견한 거야. 나중에 가서 감사해라.”

    이풍은 경황이 없는 듯 더듬더듬 말했다.

    “그래, 그래야죠. 그 전에 우선 형님한테 먼저······ 정말 고마워요. 애비가 해야 할 걸 대신해줬네.”

    허풍개가 혀를 찼다.

    “고맙긴 지랄. 나 노리고 인질 잡으려던 건데, 내 탓이지 뭘.”

    “그러고 보니 노래방에서 웬 산적 놈이 총질 했댔나? 대체 구자성이 형님을 왜 노리는 거요? 형님 조진다고 새로운 사업장을 얻는 것도 아니고······”

    이풍의 물음에 허풍개가 대답했다.

    “오래 살려고.”

    “형님 조진다고 그놈 수명이 늘어요?”

    “는다더라. 나도 얼마 전에 안 방법이 있는데······ 그래서, 바람이는?”

    “따뜻한 코코아 먹이고 쉬게 하고 있어요.”

    “그래도 혼자 두면 안 되지. 가서 달래줘.”

    이풍이 눈매를 좁혔다. 그 눈길이 바닥에 향했다.

    “형님, 지금부터 저 새끼 조질 거 아니요?”

    정진영이 포박되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허풍개도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저 새끼, 심문해야지 물론.”

    이풍이 이를 갈았다.

    “분명 형님이 저놈 위험하다고 경고해줬는데, 워낙 열정 있어 보이고 해서 계속 사무소 드나들게 내버려 뒀더니······ 이러려고 매일 찾아왔다 이거지? 저 좆같은 새끼, 저놈 조지는 상황에 딸 잡혀갈 뻔한 애비가 가만있어서야······ ”

    허풍개가 손을 휘저었다.

    “지랄 말고 가라.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그래도요.”

    “가서 바람이나 달래주라고.”

    이풍은 한참을 주저한 끝에 방을 나섰다.

    허풍개가 정진영 앞에 쭈그려 앉았다. 정진영의 얼굴을 보았다. 억울하다는 듯이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입에 붙여둔 테이프를 떼어주었다. 그러기 무섭게 정진영이 나불거리기 시작했다.

    “저, 저 여기 일부러 접근한 거 아닙니다!”

    “그럼?”

    “진짜, 진짜 이 동네에서 잘해보려고 했어요. 존경하는 대협이랑 같은 동네에서 일하고 싶었고······”

    “알아.”

    긍정의 대답에 희망을 느낀 걸까? 정진영이 애써 히죽 웃어 보이며 말했다.

    “저, 정말로 대협을 존경합니다! 저번에 오가장에서 뵌 이후로 대협께서 나오는 뉴스 다 챙겨봤어요. 모산파 갔다 오신 것도 다 알아요!”

    그리고 허풍개는 물끄러미 정진영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어쩌라고. 너 조지지 말라고?”

    정진영이 입 다문 가운데 허풍개가 중얼거렸다.

    “애새끼 납치해서 총 겨누려던 새끼가, 어딜 감히 뻔뻔하게.”

    “협박하려고 그런 거지 죽일 생각은 없었습니다. 정말이에요! 제가 왜 그러겠습니까? 저 바람이랑 친합니다! 그리고 인질 죽으면 인질범도 좆되는 거 뻔히 아는데 제가 왜······”

    정진영의 말을 허풍개가 끊었다. 혼잣말하듯 말했다.

    “칠팔십 년 대에, 무적비비탄이 납치된 애새끼들 꽤 많이도 구했지. 일곱 명인가 구했을 거야.”

    왜 갑자기 저런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해서 정진영은 눈만 껌벅였다. 허풍개가 계속 말했다.

    “무적비비탄이 누구 죽어 나갈 일이 아니고서야 사람들 시선 끌 일엔 잘 나서지 않았는데. 그런 일엔 왜 마구 나서댔을 거 같냐.”

    “그분이 워낙 애들을 좋아하셔서······”

    “납치범들이 애새끼를 죽이니까. 납치 그거, 속 편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냐. 부모는 돈을 안 주고, 바깥엔 경찰들이 돌아다니지.

    쫄려서 미치겠는데 잡아 온 애새끼는 얌전히 있질 않아. 빽빽 울어대면서 화장실 가고 싶다고 징징대. 가뜩이나 스트레스받는 상황에 애새끼가 그러면 납치범이 어쩔 거 같냐.”

    “저는, 잘······”

    “애새끼한테 분노를 느끼기 시작하지. 스트레스가 폭발해. 결국 애새끼를 죽여버려. 그러고는 경찰에 잡히고선 억울한 목소리로 말하는 거야. ‘죽일 생각은 없었어요······’.”

    허풍개가 침구에서 침을 빼냈다.

    “그래서 난 강간범이나 살인마만큼 납치범이 혐오스럽다. 단순히 애새끼를 죽여서일 뿐만 아니라, 그래놓고 자신을 그리 나쁜 놈이 아니라 생각해서 더욱.”

    길쭉하고 굵은 침이었다. 그 끝이 조명을 받아 번뜩이자 정진영이 마른침을 삼켰다.

    “네가 그보다 나은 놈 같지는 않군. 변명도 똑같은 걸 보니. 그래서 네 형님, 어디 있지?”

    “제······ 형님이요?”

    “그놈이 시켰잖아. 순순히 불면 그나마 당장 아플 일은 없을 거다.”

    정진영은 한참이나 입을 우물거린 끝에 말했다.

    “말 못 해요.”

    허풍개가 이죽거렸다.

    “아주 의리가 있으시군. 그렇지? 애새끼나 납치하는 새끼가. 아무리 봐도 그게 범죄자 의형 팔아먹는 것보다 훨씬 흉악한 일인데.”

    방문이 벌컥 열렸다. 이도혁이 들어와서는 여기 두 명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허풍개는 그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침을 찔렀다.

    “하여간 깡패 새끼들은 웃겨. 뭐가 제대로 나쁜 일인지 분간을 못 해. 지들만의 세상에서 살아서 그런가.”

    정진영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이도혁이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정진영의 허벅지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허벅지를 파고든 침에서는 스파크가 피어올랐고, 그 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감히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침을 더 꽂았다 빼기를 몇 차례 반복하자 정진영의 입에서는 피와 침이 줄줄 흘러내렸다.

    허풍개가 물었다.

    “이제 말할 생각 좀 드나?”

    그리고 정진영이 보인 반응은 허풍개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정진영이 입을 우물거렸는데, 말하려는 게 아니라 침을 뱉으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결국 실패하더니 말했다.

    “말 안 해, 새끼야.”

    그러더니 억지로 웃는 게 아닌가.

    기괴하다 못해 비현실적인 반응이었다. 현실의 인물이 아니라 웬 창작물의 등장인물이나 보일 법한 반응 말이다.

    이도혁은 문득 이 상황이 영화 같다고 느꼈다. 저놈의 반응도 그렇고, 조폭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상황 아닌가.

    정진영 또한 그리 느끼고 있음을 이도혁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영화 같은 이 상황에 도취 되었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고문에 굴하지 않고서 내놓은 자기 대사를 스스로 근사하게 여긴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충분히 그럴 만했다. 저놈이 얼마나 많은 조폭 영화를 보았는지, 거기 얼마나 심취했는지 이도혁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무협 소설과 영화에 심취한 것처럼······.

    한편 허풍개는 무표정했다.

    “자신이 자랑스럽나?”

    그 물음에 정진영이 뇌까렸다.

    “그렇다면 어쩔 건데, 새끼야······”

    허풍개가 담담하게 말했다.

    “할 일 해야지.”

    이후로 벌어진 것은 잔인한 조폭 영화에서도 웬만하면 생략하고 넘어갈 장면의 연속이었다.

    이도혁은 의료용 침이 이렇게 잔인한 물건일 수 있을 줄은 처음 알았다.

    이도혁은 이 상황을 겁쟁이처럼 외면하고 싶지 않았지만, 정진영의 요도 구멍에 침이 꽂힐 때는 기어이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이때 정진영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정진영의 눈이 까뒤집혔다. 오줌과 피와 침이 한 데 섞여 바닥에 흘렀다.

    이도혁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도혁은 이 사태에 자신 탓이 크다고 느끼고 있었다. 정진영이 이 사무소에 드나들도록 허락받은 것은 자신의 친구인 덕이 아니던가.

    그 와중에 제 친구를 감싸는 것은 절대 해선 안 될 짓이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기어이 입을 열고 말았다.

    “저 새끼 정신 잃은 것 같은데, 깨어나면 차라리 제가 설득해볼까요?”

    허풍개가 이도혁을 바라보았다.

    이도혁은 변명하듯 서둘러 부연했다.

    “저 새끼 편들어주려는 건 아니고, 나쁜 경찰 착한 경찰 작전하려는······”

    “그럴 필요 없어요.”

    “그래도, 저놈 형님 위치 빨리 알아내야 하잖습니까. 여러 방법을 시도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허풍개가 혀를 찼다.

    “그놈 위치는 이미 알고 있어.”

    “알고 있다고요?”

    정진영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허풍개가 말했다.

    “모를 리가 있나? 이 새끼랑 그놈 주변에 사람들 얼마나 많이 붙여놨는데.”

    *******

    정진영에게서 전화가 오지 않자 김성진은 일이 실패했음을 알았다.

    미리 꾸려둔 짐을 양손에 들었다. 서둘러 명국으로 떠야 하리라.

    기껏 마련한 사업장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어차피 선금은 이미 받았으니까······.

    집을 나가기 위해 문을 연 순간, 김성진의 몸이 굳었다.

    일단의 무리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중 맨 앞에 선 여자의 얼굴을 김성진도 알고 있었다. 오가장 소가주, 오은림이었다.

    “니가 김성진이냐?”

    오은림의 칼집이 김성진의 가슴을 콱, 하고 찔렀다. 나자빠진 김성진의 등을 밟으며 그녀가 물었다.

    “그래서, 니가 내 아빠 죽였다고?”

    *******

    허풍개는 여기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오가장과 무림맹에서 나온 무림인들이었다. 자기들끼리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몇 달이고 웬 기지배 쭉 따라다니란 말 들었을 땐 대체 뭔 뻘짓을 시키나 싶었는데, 몇 달 내내 고생한 보람이 있네. 그래서······ 저놈이랑 저놈 형님이 진짜 마교도라고?”

    “그렇대.”

    “그걸 어찌 알고 대비하셨대?”

    “그냥 그놈들 본 순간 바로 아셨다는데.”

    “그래서 바로 그 새끼들이 일 저지를 것도 알았다고? 진짜, 절세고수는 사람이 아니네······”

    확실히 허풍개는 그날 금분세수식에서 두 남자를 본 순간 바로 오늘의 일을 대비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김성진이 마교도였기 때문이다.

    김성진이 어찌 기를 쌓았는지도 본 순간 바로 알 수 있었다.

    아편이나 광대버섯 따위를 잔뜩 복용하면 잡념이 전부 사라진 무아지경에 이를 수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명상을 통한 지극한 황홀경과 비슷한 상태다.

    그 상태에서 영약을 섭취하고 불가의 축기법(蓄氣法)을 운용하면, 명상을 깊이 수련한 승려가 축기하는 것과 같다. 아주 높은 효율로 체내에 기를 받아들일 수 있다.

    수련이 미천한 자들이 싼값에 내공을 쌓기 위한 마공(魔功)이다. 그런 식으로 수련하는 까닭에 마교의 말단들은 으레 마약 중독자다.

    또한 마약 물질은 체내의 기를 혼탁하게 만든다. 허풍개는 그 기를 볼 수 있었다.

    덕분에 그날 김성진을 보았을 때 허풍개는 그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으며, 그 순간 라나 레반도프스카를 떠올렸다. 그녀와 구자성이 동맹이란 사실도 바로 떠올렸다.

    구자성은 자신을 사냥하고 싶어 했다. 그러니 그 동맹인 마교 수괴의 수하들을 경계해야 하는 것도, 미리 대비를 해두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일이 잘 풀렸다니 다행입니다!”

    무림맹 위원 고진철이 사무소에 모습을 드러냈다. 허풍개가 물었다.

    “무림맹이랑 녹림이랑 아직 싸우고 있습니까?”

    고진철이 대답했다.

    “예? 예. 짭새들 눈깔이 무서워서 막 치고받진 못하는데, 사람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나름대로 전쟁 중인······”

    “거기 나 끼면 얼마 줄 겁니까?”

    고진철이 입을 크게 벌렸다.

    “녹림과의 싸움에 동참해주시겠다고요?”

    “이걸 그냥 넘어갈 순 없지.”

    허풍개가 선언한 순간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여기 모인 무림인들 모두가 절세고수의 참전이 의미하는 바를 알고 있었다.

    모든 무림인들이 허리 숙여 일제히 예를 표했다.

    그들의 중심에서 허풍개는 쇼파에 나른하게 앉아있었다. 그러던 중에 한 소녀와 시선이 마주쳤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이바람의 눈이 보였다. 무표정을 유지하다 말고, 허풍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풍 그 새끼, 자기 딸 돌보라고 보냈더니 뭐 하는 건가?

    *******

    이풍이 뒤늦게 달려와 문 앞에 서 있던 이바람을 데려갔다.

    이풍은 차마 언성을 높이지 못한 채 딸을 핀잔했다.

    “코코아 한 잔 더 타러 갔더니 대체 어딜 가?”

    이바람은 대답하지 않고 질문했다.

    “저 절세고수 오빠, 무림에서도 대빵급이랬지? 저 사람들이 다 저 오빠한테 허리 숙이던데.”

    “그래. 확실히 좆밥인 니 아빠랑 같이 일하기엔 너무 잘난 양반이다.”

    이풍의 대답을 듣는 둥마는 둥하면서, 이바람이 중얼거렸다.

    “좆나 멋있어.”

    “뭐?”

    중학생 딸이 노인을 향해 연애감정을 표출하는 줄 알았던 이풍은 순간 흠칫했지만, 다행히 그것은 아니었다.

    “나도 저렇게 될래.”

    “저렇게? 그러니까, 그 절세고수님처럼 될 거라고?”

    “응.”

    그러고 보니 그 양반, 직접 나서서 구해주기까지 했댔지. 그 모습이 중학생 소녀의 가슴을 울린 모양이다.

    평소라면 이풍은 그 장래희망을 열렬히 응원했겠지만 지금마저 그럴 수는 없었다.

    딸을 잃을 뻔한 상황이라 평소와는 다른 생각이 들고 있었다. 그래서 이풍은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일단 대학은 가야지?”

    이바람이 고개를 저었다.

    “아냐, 안 갈래.”

    “야, 인마······”

    “무림인 될 건데 대학이 무슨 소용이야?”

    이 순간, 이풍은 제 양아버지의 심정을 완벽히 이해할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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