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세기 반로환동전-69화 (69/103)
  • 모산파 허풍개 - [2]

    찰나의 순간에 대체 몇 발이나 발사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요즘에는 일 분에 천 발을 넘게 쏟아붓는 단기관총이 허다하다. 아마 저 총도 그런 종류일 것이다.

    이때 리우이가 눈을 감지 않은 것은 이 상황에 뭘 해보겠다는 의무감이 아니라 그저 지난 훈련의 성과에 불과했다.

    총구에서 불이 뿜어져 나온 그때, 리우이는 강남제일검을 보았다. 놀랍게도 그는 이 상황에 정말 칼을 뽑아내고는 휘두를 준비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배신이나 저지르고 온 애송이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실력이 좋군. 지금 이 총알 앞에서는 결국 다 의미 없어지겠지만.

    이미 총알들은 총구를 떠났고 왜도 한 자루로 뭘 해보기는 늦어도 너무 늦었다.

    그리고 리우이는 허풍개의 등을 보았다. 그가 앞을 가로막는 것을 보았다.

    리우이는 분명 주변의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음에도, 허풍개가 여기 도달하는 중간과정을 보지 못했음을 깨닫고는 놀랐다.

    총알이 발사될 때까지만 해도 분명 저 옆좌석에 앉아있다가 이 앞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저게 말로만 듣던 이형환위(移形換位)인가? 하지만 그게 말이 되나?

    이어서 또다시 중간과정이 생략된 것처럼 빠르게, 허풍개의 양손이 움직였다.

    리우이는 그것을 자세히 보고자 눈에 힘을 주었다. 그 손이 서로 얽히며 태극을 그린 것 같은데, 잔상이 남아 얼추 볼 수만 있었을 뿐 자세히 보지는 못했다.

    그리고 또다시, 결과만이 남았다.

    일 초 동안 수두룩하게 쏟아낸 총알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공중에서 여러 개 불꽃이 튀었을 뿐 여기 닿는 총알은 하나도 없었다.

    “악······!”

    이어서는 손등에 구멍이 뚫린 자객의 비명만이 울려 퍼졌을 뿐이다.

    리우이가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서야 겨우 중얼거릴 수 있었다.

    “정말 백 년 만에 나온 고수였군. 이게 뭔, 어떻게?”

    허풍개가 말했다.

    “그냥, 아주 잠시 평소보다 빠르게 움직인 거요.”

    “그리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고?”

    허풍개는 이건 원래 몸 어딘가에 도끼나 총알이라도 박혀야 발동되는 재주였지만 몸의 기가 정순해진 이후로는 스스로 쓸 수 있게 되었다든가, 뇌에 상당히 무리가 가는 일이라서 싸움 내내 이럴 수는 없다든가 하는 설명을 굳이 하지는 않았다.

    허풍개는 쓰러져서 신음하는 자객에게 다가가 그 상태를 살폈다.

    방금 자신은 날아온 총알을 되돌려줌으로써 양쪽 손등을 뚫어버렸는데, 그 이상의 상처는 없었다.

    ‘죽을 일은 없겠군.’

    그 사실을 확인하고서야 허풍개는 만족했다. 제 좌석으로 돌아가서는 자신을 돌보기로 했다. 허풍개가 손바닥을 펼치자 리우이가 기겁했다.

    “자네?”

    역시 저 모든 총알을 상처 없이 막아낼 수는 없는 모양이다. 그 손바닥에 총알이 네 발이나 박혀있었다. 하도 표정이 변화가 없어서 정말 아무 상처도 나지 않은 줄 알았는데.

    리우이는 뒤늦게 구급차를 부르려다 말았다.

    다음 순간, 허풍개가 손바닥에 박힌 총알들을 맨손으로 죄다 뽑아버렸을 때 리우이는 다시 한번 기겁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총알이 뽑혀나간 손바닥에서 피가 아니라 웬 스파크 같은 게 피어오르는 걸 보고서 리우이는 뭔가 말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너무 말이 안 되는 걸 보면 뭔가 제대로 된 반응을 할 수도 없는 법이다.

    허풍개가 물었다.

    “그래서, 이 친구 어쩔 겁니까. 잡아가서 흉수를 파헤칠 겁니까?”

    리우이는 여전히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허풍개의 손바닥을 뚫어져라 쳐다보다 말고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조금 생각하더니 뒤늦게 대답했다.

    “자네, 누구 죽는 꼴 못 보던가?”

    “예, 마음 수행 때문에.”

    “그럼······ 나도 그러지. 자네 찜찜하지 않도록 그냥 놓아주겠네.”

    허풍개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저건 또 정상적인 반응이 아닌데? 자신이 제 목숨을 노린 놈을 살려주는 일이야 많았지만, 아예 놓아주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었지 않은가.

    과연 강남제일검이 보기도 이상한 일이었던 모양이다. 그가 칼을 뽑아 든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선언했다.

    “똑바로 처리해야죠. 손 더럽히기 싫으시면 제가 하겠습니다.”

    허풍개가 눈을 부라렸다.

    “닛뽄도 집어넣어요.”

    강남제일검이 히죽 웃었다.

    “왜, 이놈의 왜검이 그리 보기 싫은가? 사조가 독립운동가셔서 그런가 본데, 그리 보기 싫으면 말로 하지 말고······”

    저 또라이 새끼. 허풍개는 한숨 쉬고 싶은 걸 참으며 말했다.

    “환도든 커터칼이든 그냥 뽑지 말라고. 그리고 자꾸 닛뽄도 지적하면 발끈하는 것 좀 그만두면 안 되나? 화산파 검술에 왜검 쓰는 유파 있어서 그거 쓰는 거 뻔히 아는데.”

    강남제일검이 눈을 껌벅였다.

    “알고 있나?”

    “왜검 쓰는 검술이야 무예도보통지에도 있지. 독립운동가 중 몇 명도 왜검 휘두르고 다녔는데 닛뽄도가 어떻다고 뭐라 할 이유가 있나.”

    강남제일검은 뭔가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정말로 칼을 칼집에 넣더니 짧게 중얼거렸을 뿐이다.

    “아, 그래.”

    저 사이코가 왜 갑자기 얌전해진 걸까. 허풍개는 의아하면서도 신경 쓰지는 않았다.

    리우이에게 물었다.

    “누가 시켰는지 알아보지 않아도 됩니까?”

    리우이가 대답했다.

    “알아서 뭐 하겠나? 애초에 짐작 가는 곳이 너무 많은데. 화산파에 엿 먹이려는 경쟁 문파일 짓도 있고, 나 돌아오는 걸 싫어하는 화산파 놈 짓일 수도 있고. 얼마 전에 우리 회장님한테 공격당한 한국 무림맹 짓일 수도 있고, 또······”

    뒷말은 삼켜졌다. 허풍개는 그 말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굳이 지적하지는 않았다.

    리우이가 한숨 쉬었다.

    “누가 그랬는지 알아내봤자 귀찮아질 뿐이야. 어차피 이제 화산파에 틀어박혀서 반쯤 은거한 채로 지내려는데 굳이 일을 만들고 싶지 않네.”

    허풍개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나 노린 것도 아니니 뭐, 맘대로 해요.”

    “고맙네. 굳이 나서준 거랑 목숨 구해준 것도 정말 고맙고. 사례는 굳이 거절할 생각이 없지?”

    “주시면 받지.”

    리우이는 허탈하게 웃었다.

    “하여간, 명국에 돌아왔다는 사실이 체감되는군. 한국에선 대기업 회장 무공 사부에 화산파 출신인 날 건드리려는 놈이 없었는데. 여기서야 뭐······”

    확실히 이미 기차는 명국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허풍개는 창밖으로 이국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산맥이며 그 밑에 흐르는 강 따위는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 무엇보다 먼저 백련교 사원이 눈에 들어왔다. 그 편액에 태양과도 같은 연꽃 문양은 당당하게도 크게 새겨져 있었다.

    수백 년 동안 숨어 지내 온 비밀결사는 이제 없다. 십이억 인구의 절반이 추종하는 거대 종교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양옆의 사원은 각각 불교 사원과 도교 사원이었는데, 그 둘은 마치 백련교 사원을 호위하듯 우뚝 서 있었다.

    이 셋이 바로 명국과 무림을 대표하는 세 종교였다.

    확실히, 백련교는 중원을 정복했다. 이 땅의 다른 이들을 제거하는 게 아니라 그들을 흡수하거나 제 밑에 받아들여 모두의 맹주가 되는 방식으로.

    기차가 멈춘 것은 그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허풍개는 기차 안에서의 수련을 그만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기차에서 내린 그 순간이었다.

    ““無敵無籍者!””

    자신의 별호가 연호되는 이 상황에, 그리고 승강장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환영인파를 보고서 허풍개는 눈을 크게 떴다.

    무림인인 자신을 알아보고 사람들이 환호하는 상황은 이미 연변에서 겪었다. 그것은 조선족 자치구인 연변이 명국 문화권이라, 명국인이 그러듯 조선족들도 무림인들을 좋아하기 때문이던가?

    그리고 여기가 바로 명국이었다. 무림의 본고장, 무림이 곧 최고의 사업이요 엔터테인먼트인 나라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無敵無籍者!”” ““無敵無籍者!””

    *******

    당신이 보통 사람이라면, 명국은 별로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니다.

    치안은 끔찍하고 지역사회에서 편의점 하나를 운영하기 위한 허가를 받으려 해도 공무원은 대놓고 뇌물을 요구한다. 그러고서 동네의 지역유지 노릇하는 방회에 바쳐야 할 보호세는 시민이라면 마땅히 바쳐야 할 세금 취급이다.

    이에 대해 신고하거나 항의할 기관이나 중앙정부 따윈 없다. 그와 같은 지방의 부패를 관리 감독해야 할 황실은 통치에 관여하지 않는 것을 가장 큰 미덕으로 여기게 된 지 오래다.

    이 나라에는 제대로 된 스포츠팀도 거의 없다. 야구는 아예 구단조차 운영되지 않으며 축구나 복싱 따위 스포츠의 인기도 일반적인 나라들만 훨씬 못하다. 명국인들은 초인들의 스포츠인 무공을 버려두고 왜 그따위 ‘시시한’ 것들을 봐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당신이 기독교 신자라면 더욱 끔찍하다. 길거리에서 전도라도 하려다간 어딜 감히 서방 제국주의의 선봉장 노릇을 하려 드냐며 매국노 취급을 받을 수 있다.

    힌두교 신자나 이슬람 신자라면 그나마 좀 나을지 모르지만, 그쪽 사원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무림인이라면, 심지어 당신의 실력이 꽤 좋다면 당신은 명국에서 어딜 가든 존중받을 수 있다.

    무림 고수인 당신은 여기서 최고의 스포츠맨이다. 당신은 동네 혹은 한 지역의 유력자이며, 그저 체내에 기가 많고 칼을 잘 휘두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당신은 의사 면허자며 사법고시 합격자와 비슷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

    실제로 당신의 무공에 근거해 은행은 당신에게 기꺼이 대출해줄 것이다.

    한국에서 무림인이 이런 대접을 받은 것은 오륙십 년대만의 일이었다. 선진국에 다다른 이후로는 아니었다. 이제 한국의 무림인들은 다른 나라의 무림인들과 비슷한 대우를 받고 있다.

    돈 많고 요술을 부려대는 깡패 취급 말이다. 재벌들의 스승 노릇을 하며 그 사회적 지위가 높은 무림인도 물론 있지만, 그들은 수가 워낙 적어 사회의 인식을 개선하지는 못한다. 한국에서 무림인들은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 숨어다녀야 한다.

    사람들의 시선이 얼마나 신경 쓰이는지, 얼마 전까지 한국의 무림인들은 목검이나 차고 다니지 않았던가? 도검소지증이 있다면 칼 정도는 지닐 수 있지만, 차고 다니다가는 검문을 당하는 까닭이었다.

    그러나 이 명국에서는 칼을 차고 다닌다는 이유로 경찰이 붙잡고는 주소와 행선지를 묻는 일 따윈 없다. 관무불가침이 관습헌법으로 존재하는 듯한 이 나라에서는 결코.

    허풍개는 그 사실을 승강장을 거쳐 역 밖으로 빠져나가는 순간 바로 실감할 수 있었다.

    ““無敵無籍者!””

    자신을 향해 환호하는 인파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승강장을 가득 채우다 못해 그 바깥과 역 밖에도 환영인파가 꽉 차 있었는데, 그 모두가 이 절세고수 하나를 맞이하러 나온 것이었다.

    얼마 전 무적무적자와 박 회장의 대결이 유투브에 영상으로 올라왔으며 그 조회수가 불과 며칠 만에 수억에 도달했다는 사실, 한국 무림인들 사이에서 나돌던 폴란드 천마와의 대결이나 번개를 내리치는 영상 또한 명국에 전해졌으며 그 영상들은 그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는 사실을 허풍개는 잘 알지 못했다.

    무적무적자라는 별호를 알고 있는 명국인보다 모르는 명국인이 훨씬 적다는 사실도, 명국인 대부분이 그 절세고수가 모산파에 가게 되었음을 알고 있으며 그 사실이 공중파 뉴스에 나왔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無敵無籍者!””

    귀가 찢어질 듯한 환호 속에서 겨우 사람 하나를 찾아낼 수 있었다.

    “오셨어요? 저기까지 나가서 맞이하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모산파 박애진이 허리를 꾸벅 숙여왔다.

    이 모든 상황이 부담스러웠던 허풍개는 황급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얼른 갑시다.”

    박애진과 함께 차에 올라타기도 고역이었다. 그 앞에는 이미 일단의 무리가 대기하고 있었는데, 다름 아닌 기자들이었다.

    한국에선 무림인을 취재하려는 기자들이라면 주로 범죄 관련이기 마련이다. 무적비비탄으로서 기자들에게 마이크를 들이 밀어진 바 있는 허풍개는 내심 움찔했다.

    그러나 명국에서는 무림이 스포츠와 비슷한 역할이다. 그 사실이 명국인인 박애진은 익숙한지 그녀는 기자들을 마다하거나 꺼리지 않았다.

    박애진은 기자들 앞에 당당하게 걸어가서는 마이크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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