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비비탄 - [9]
운전하는 동안 이도혁은 뒷좌석의 허풍개를 흘긋거렸다.
사람들 앞에서 절세고수를 이겼다. 그러고도 웃음 한 번 짓지 않는 것을 이도혁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참으로 영광스러운 승리였지 않은가?
‘나는 롤에서 팀원한테 칭찬 한마디 들어도 온종일 그 채팅 내용 떠올리며 히죽거리는데.’
아까는 피곤해서 기뻐할 여유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싸움이 끝난 지 수십 분이 흐른 지금조차 허풍개는 계속 웃지 않았다.
고진철의 치료를 끝낸 뒤, 허풍개는 자신의 몸에 침을 찔러넣고는 등받이에 기댄 채 앉아있었다. 피곤하다 못해 우울해 보였다.
“왜 그래? 지금 뒤늦게라도 히죽거리면 못 본 척해줄게.”
이도혁이 애써 장난스럽게 말을 걸어보았더니 무덤덤한 대답이 돌아왔다.
“왜 히죽거려요.”
“이겼잖아? 구경꾼들 사이에 환호가 터질 땐 내가 다 자랑스럽던데······”
“무림 깡패가 기업 회장 이긴 게 뭐 그리 자랑스럽다고.”
또 그놈의 무림 깡패 소리. 참으로 듣기 싫었지만 이도혁은 차마 화낼 수는 없었다.
“그럼······ 고진철? 이 할아버지 구한 건?”
“그게 뭐.”
짜증스러운 목소리에 이도혁은 살짝 겁을 먹고 말았다. 저도 모르게 존댓말이 튀어나오기 시작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사람 하나 살린 일이잖아요? 박 회장 그 사이코가 데려가서 뭔 짓을 할지 몰랐으니까. 충분히 기뻐할 만한 일 같은데?”
허풍개가 한숨 쉬었다.
“깡패 두목 새낄 구한 거지. 세상에 해로운 일이요.”
“그래도······”
“그게 다야.”
이도혁은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왜 자꾸 자기가 한 일을 비하해요? 그냥 기뻐하거나 자랑스러워하면 안 되나?”
허풍개는 사람들 앞에서 패배했음에 박 회장이 자신에게 분노했으리란 사실, 박 회장이 한국은 물론 물론 모산파에도 큰 영향력이 있음을 고려하면 그에게 밉보인 이 상황이 상당히 ‘쫄린다’는 사실을 구구절절 설명하지는 않았다.
약한 모습을 내보이길 꺼리는 사파인 아닌가. 양아들 이풍에게도 고민 상담 따윈 해본 적이 없다.
또한 자신이 적극적으로 사람 목숨을 살리는 건 그것이 가치 있게 느껴져서가 아니라는 사실, 그저 타인의 죽음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나머지 누군가 죽게 내버려 두자니 속이 쓰라려서 어쩔 수 없이 움직일 뿐이라는 사실 또한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허풍개는 느낀 바를 간추려서 짧게 말했다.
“가치 없는 일이었으니까. 왜, 당신도 언젠가 협객이 되고 싶다고 했나?”
“예.”
“저번에도 말한 것 같은데. 좋은 일 하고 싶으면 소방관이나 해요. 그게 진짜 이 시대의 히어로지. 협객이 뭐라고 보람을 느껴.”
“무적비비탄 선생님은······”
“무적비비탄이라고 다르게 느끼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허풍개도 그렇지.”
“예?”
“협행하면서 그게 가치 있다고 느낀 적은 거의 없어.”
허풍개 의사와 무적비비탄, 그 위대한 협객들의 팬으로서 이도혁은 욱했다.
“허풍개 의사님이 우리 할아버지 구해준 거 아십니까?”
“당신 할아버지를?”
이도혁은 열띤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자신의 할아버지의 일화를 설명했다. 일제 강점기, 젊은 시절 이도혁의 조부는 동네 마약상들에게 끌려갔다.
이도혁의 증조할머니가 울며불며 구해달라 사정했고, 허풍개 의사는 당시 별로 고수가 아니었음에도 목숨의 위기를 무릅쓰고 그를 구하러 나섰더랬다.
“마약상 소굴에서의 사투 끝에 기어이 구해내는 데 성공하셨는데, 그때부터 허풍개 의사님께선 위명을 떨치기 시작하신······”
허풍개는 피곤하고 우울한 와중에도 저 머저리의 환상을 깨줄 의향이 있었다.
“혹시 조부님 성함이, 이혁도 씨 되시나?”
이도혁이 반색했다.
“맞아요. 아시나?”
허풍개가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할애비도 마약상이었어.”
“예?”
“그 마약상들이 무고한 사람을 끌고 간 게 아니라 자기 구역에 함부로 들어온 경쟁자를 제거하려 했을 뿐이라고.”
이도혁이 눈을 껌벅거렸다.
“어······ 그랬어요?”
“그래요. 그 협행에도 의미가 없었어.”
자기 조상의 정체에 충격받기를 내심 기대하며, 허풍개는 이도혁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나 창문과 백미러에 비친 이도혁의 얼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평소의 태평한 얼굴 그대로 물어오는 게 아닌가.
“의미가 없긴 왜 없어요?”
“마약상 하나 살린 게 세상 어디에 이로운 일이길래 의미가 있습니까.”
그리고 이도혁은 조금도 고민하는 기색 없이, 마치 평소에 생각하던 내용 그대로를 말하는 것처럼 바로 말했다.
“내가 살아있잖아요.”
허풍개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뭔 소리야.”
“그때 돈 벌어오시던 할아버지가 살아남으신 덕분에 증조할머니가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었어요. 옛날에는 마약상이셨는진 모르지만 이후로는 쌀가게 운영하시면서 빈곤한 동네 사람 많이 도우셨고요.”
쌀가게라, 그런 소식은 못 들었는데.
하기야 마약 파는 놈이 이후로 어찌 사는지에 관심이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다 어느 집 도와주다 거기 딸이랑 연분 생겨서 결혼하셨죠. 덕분에 아버지도 낳을 수 있었고, 저도 태어났어요. 그러니까 허풍개 의사님은 마약상을 구한 게 아니라 미래의 아버지이자 할아버지를 구한 겁니다. 그 아들과 손자를 구한 거고요.”
이도혁이 말했다.
“그분의 모든 협행에는 가치가 있었어요. 내가 그 증거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무적비비탄의 모든 협행에도 의미가 있었고요.”
허풍개가 뭔가 말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이도혁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니까 비하 좀 그만했으면 좋겠어요. 나야 뭐 협행을 한 적도 없고 할 능력도 없으니까, 진짜 협객의 심정을 이해할 순 없지만······”
허풍개는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미 밤이 되었지만 야경이 밝았다.
오색의 빛깔이 번뜩이는 도시를 배경으로, 정확히 뭐라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는 표정이 비쳤다. 허풍개는 황급히 제 얼굴을 무표정하게 바꾸었다.
허풍개가 심호흡했다. 호흡을 골라 뭔지 모를 감정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동요한 티를 내지 않은 채 일부러 비꼬았다.
“허풍개가 여기 있으면 참 보람차기도 하겠군요. 기껏 구해낸 누군가의 손자가 깡패가 되고 싶어 하니.”
“아니, 왜 자꾸 깡패 타령이야? 그리고 스승이며 사조를 존칭도 없이 부르면······”
이도혁도 슬슬 참기 힘든지 뭔가 따지려던 차였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흘긋 보니 박 회장의 전화였다. 허풍개가 말했다.
“대신 좀 받아봐요. 난 지금 온몸에 침 꽂혀 있어서 움직이기 뭐하니까······”
이도혁은 시키는 대로 했다.
휴대전화를 열자 들려온 박 회장의 목소리는 잔뜩 성이 나 있었다.
「야, 너 이 자식아!」
“전 무적무적자가 아니라······”
이도혁이 대답했는데, 흥분해서인지 박 회장은 그 목소리를 바로 분간하지 못했다.
「이풍이냐? 그럼 니 양애비한테 전해라. 효심 쥐뿔이라도 있으면 똑바로 전해. 네 양애비 반로환동하는 CCTV 영상 내가 갖고 있단 거! 방송국 습격한 그놈과 동일 인물이란 증거라고 검찰에다 보이면! 이 새끼 형기도 마치지 않았는데 다른 인물이랍시고 몰래 감옥 빠져나왔노라 까발릴 수 있단 거 똑똑히 전해!」
방금 나눈 대화 때문일까, 허풍개는 축 늘어져서 멀거니 있었다. 그래서 반응이 너무 늦었다.
“전화기 넘―”
수화기 너머에서 박 회장이 계속 외쳤다.
「그리고 이거 아나? 니 애비가 말 안 해준 거 같은데, 니 양애비 사실 허풍개야. 신분 세탁이 이번 한 번이 아닌 거지! 그러니까 니 양애비 수명 앞으로 십 년도 안 남은 셈이거든? 다시 빵에 들어가면 영영 못 나오고 그대로 죽는 거야. 이번은 넘어가지만······ 앞으로 처신 똑바로 하라고 전해!」
허풍개는 온몸에 꽂힌 침을 허둥지둥 빼냈다. 겨우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어서는 이도혁의 손에서 휴대전화를 뺏으려다 말았다. 이미 통화는 끝났다.
이도혁이 부릅뜬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허풍개가 한숨 쉬었다.
“무시해요.”
“아니······”
“저 인간도 나이 먹어서 치매 걸린 거야. 그리고, 도혁 씨?”
“예?”
“이풍 그 양반한텐 말하지 마요.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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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광이 재벌의 습격으로 난장판이 되었던 촬영장이 복구되는 일은 없었다.
죽은 사람은 없었지만 다친 사람은 많았다. 여전히 병원에서 치료받는 사람 또한 많았다. 그 모두가 치료를 마친다고 하더라도 영화 촬영에 복귀할 것 같지는 않았다.
결국 영화 촬영이 취소된 가운데, 감독은 허풍개에게 마지막으로 차 좀 마시자고 요청해왔다.
허풍개는 거절하려 했지만 결국엔 받아들였다.
이딴 영화나 만들려 했던 걸 보면 무림맹에 뭔가 약점이 잡혀있는 것 같은데, 절세고수 무적무적자에게 뭔가 부탁하려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뭔 부탁을 해올진 모르겠지만 일단 들어는 줘도 되겠지.
그리고 허풍개와 마주앉은 감독이 꺼낸 말은 뭔가의 부탁이 아니었다.
감독은 사과를 했다.
“영화가 이렇게 돼서 정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김보영 씨를 섭외한 제 잘못이에요. 일이 이렇게 될 줄은······”
감독의 말에 허풍개가 대답했다.
“그 사과를 왜 저한테 합니까. 자문료도 다 받았으니 영화 제작이 더 안 되어도 저한텐 손해가 아닌데요.”
사과를 하려거든 스폰서한테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감독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전 무적비비탄 선생님의 제자께 사과를 드리는 겁니다. 스승께 힘이 못 돼드려서요.”
“그건 또 뭔 소립니까.”
“그 여자를 영화에 출연시키면 무적비비탄 선생님이 억울하게 옥살이하신단 걸 어필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랬더니 영화 자체가 엎어질 줄은 몰랐어요. 박 회장 진짜 미친 새끼.”
허풍개가 눈을 몇 차례 감았다 떴다.
“무림맹 요구로 제작에 참여하신 것이 아닌가?”
“영화 주제야 무림맹에서 제시했어도 감독을 자처한 건 접니다.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요? 저 무적비비탄 선생님의 팬이라고······”
“그 말 안 믿었죠.”
무례한 말에도 감독은 그저 웃었다.
“하기야 게임 원작 영화 만들면서 그 게임 감명 깊게 즐겼다고 해놓고 게임 만렙도 안 찍어본 감독들 있죠. 팬이라 주장하는 가짜 팬들. 전 아닙니다. 진짜 팬이에요.”
“왜?”
“어릴 때 납치당한 적이 있어요. 무적비비탄 대협께서 구해주셨고.”
함께 차를 마시고 있던 이도혁이 눈을 크게 떴다. 하여간 무적비비탄은 납치당한 애새끼들을 참 많이도 구했다. 이 자리에만 그중 둘이나 있다니?
감독이 말했다.
“그분 옥살이 마치고 나오시면 그때 구해준 놈, 참 잘 크지 않았습니까? 하고 여쭙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하게 돼서 참 유감이에요.”
허풍개는 조금 뜸 들인 끝에 입을 열었다.
“그런 영화 안 만들어도 잘 컸다고 할 겁니다.”
“그럴까요?”
“당연히.”
감독이 웃었다. 허풍개는 평소 버릇대로 무표정하게 있으려다가, 결국에는 억지로나마 웃어 보였다.
자리가 파한 뒤, 이도혁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어때요, 좀 흐뭇하지 않아요?”
“내가 왜 흐뭇해.”
이도혁이 뭔가 한마디 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허풍개가 눈을 부라리자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여전히 참기 어려운 것일까. 이도혁이 움찔하면서도 입술을 우물거리던 그때였다.
한 노인이 허풍개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 용무 끝나셨는지······”
기어이 이도혁이 입을 다물었다. 허풍개의 표정이 굳어있었다.
이도혁은 원래 하려던 말이 아닌 다른 질문을 꺼냈다.
“강 어르신이랑 안 좋은 일 있었어요?”
“이제부터 생길 예정이지.”
허풍개는 면목이 없는 듯한 표정으로, 그래도 기어이 부탁하고 말겠다는 듯 호텔 앞에 서 있는 강준만을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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