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세기 반로환동전-44화 (44/103)
  • 협객 허풍개 - [2]

    녹림의 고수 양태자는 식은땀을 흘리며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옛날에 흥미 삼아 무적비비탄의 데이터를 보았다. 그 탄지공의 탄속과 비현실적이기로 유명한 도탄을 떠올렸다.

    자신이라면 어찌 대응할지 당시에 미리 생각해둔 바가 있다.

    무적비비탄이 장갑을 낀 채로 날리는 BB탄의 탄속은 어찌어찌 육안으로도 볼 수 있을 정도라던가? 그걸 그냥 쳐냈다가는 기괴한 도탄을 그리고 만다. 그러는 일이 없도록 손으로 붙잡아버리는 게 제일이다.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날아오는 BB탄을 두 눈에 힘을 주고 쳐다보았다.

    빌어먹을. 무적비비탄이 아니라 무적무적자라서 그런가. 데이터보다 훨씬 빠른 느낌이다. 그나마 그동안 영약을 허투루 먹은 것은 아니라서 보이긴 보인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아야 했다.

    큼지막한 손바닥을 그것을 향해 휘둘렀다······ 붙잡았다!

    “잡았―”

    그러나 그 손에 갇히기 직전 BB탄은 손바닥에서 튕겨나갔다. 탁.

    BB탄은 저 멀리 날아가더니, 구석에 서서 총을 들고 있던 녹림도의 가슴에 명중했다.

    녹림도의 몸이 빳빳하게 굳었다.

    BB탄에 맞지 않은 녹림도들도 그 몸이 굳었다. 경악과 긴장으로 인한 신체 반응이다.

    그러기는 양태자도 마찬가지라서 심호흡으로 심신을 달래야 할 지경이었다. 무적비비탄을 상대할 때 저런 일이 벌어진다고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당해보니 충격을 받은 탓이다.

    어지럽다. 정신적으로, 시각적으로도 그렇다.

    부서진 창틈으로 BB탄이 계속해서 날아오기 시작했다.

    “몸 가려!”

    녹림도들은 몸을 웅크리고, 탁자 따위로 몸을 가려가며 저항했지만 오래 그럴 수는 없었다. 한 명씩 한 명씩 그 몸이 마비되었다.

    양태자는 이를 악물었다.

    긴장을 어떻게든 해소하고 싶은 걸까. 두 명의 부하가 잔뜩 몸을 웅크린 채 지껄이고 있었다.

    “괜찮아. 맞아도 안 죽어······.”

    “죽는 게 문제가 아니라 빵 들어가는 게 문제지, 새끼야······.”

    말하느라 입을 벌린 남자의 입에 BB탄이 날아갔다. 그는 BB탄이 들어간 목을 움켜잡더니, 그 몸이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이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자신을 포함해 둘뿐이다.

    양태자는 손도끼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양태자는 몇 달 전 무림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고진철과 무적무적자의 대결을 봤을 때 고진철의 대응이 병신 같다며 비웃었더랬다.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고진철이 그랬듯 양태자도 몸을 허우적거리면서 손에 든 손도끼를 필사적으로 휘둘렀다. 어떻게든 BB탄이 제 몸에 닿지 않기 위해서만 발악해야 했다.

    그러다 지치고 말았다. 그 팔의 움직임이 BB탄의 탄속을 따라잡지 못한 순간, 기어이 BB탄 하나가 몸에 닿았다.

    그 몸이 부르르 떨리더니, 양태자는 축 늘어졌다.

    벽에 등을 기댄 채, 눈동자만 힘없이 앞을 향했다.

    대체 어찌 그럴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 모든 것을 문 너머에서도 다 볼 수 있는 모양이다.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렸다.

    무적무적자가 방에 들어왔다. 그리고 양태자는 두 눈을 껌벅이며 제 몸을 확인했다.

    목 아래로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지만, 어쨌건 호흡하여 숨 쉴 수는 있었다. 소리를 낼 정도는 아니어도 입 또한 우물거릴 수는 있었다.

    자신의 임무를 떠올렸다.

    어금니에 끼워둔 캡슐을 깨물었다.

    *******

    허풍개는 숨을 헐떡이고 있는 세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중 한 여자는 팔에 총을 맞았다. 출혈과 혼란 탓에 어지러울 뿐, 생명에 지장은 없어보였다. 그제야 속으로 안도할 수 있었다.

    허풍개에게는 그녀에게 다가가려다 멈칫했다.

    특유의 예리한 청각으로 한 놈의 숨소리가 달라진 것을 포착했다. 그쪽에 시선을 돌렸다.

    “아, 으······.”

    이쪽에 총구를 겨눈 양태자가 보였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방아쇠를 당기려다 들킨 것이 당혹스러운 걸까.

    그러나 당혹스럽기는 이쪽도 마찬가지다.

    분명 점혈 된 것을 기의 움직임을 통해 확인했는데 어떻게?

    정확히는 알 수 없어도 짐작은 가능했다. 양태자의 입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내출혈, 그러나 플라스틱 BB탄에 맞았다고 내장이 다칠 리는 없다. 스스로 한 짓이다.

    점혈을 풀기 위해 자기 몸의 기혈을 뒤튼 모양이다. 저건 또 뭔 사술(邪術)인가.

    대체 무슨 이득이 있길래 이렇게까지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경악스러울 뿐이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허풍개는 그저 물끄러미, 뭘 하는지 보겠다는 듯 양태자를 바라보았다.

    서로 간에 대화는 없었다.

    양태자는 떨리는 눈으로 이쪽을 쳐다보더니, 기어이 방아쇠를 당겼다.

    그리고 허풍개가 바닥을 박찼다.

    *******

    도교에서는 인간의 운수가 선악에 달렸다고 가르친다. 인간이 악하게 살면 질병과 불행이 들이닥쳐 그 생명이 빠르게 끝난다고, 선하게 살면 생명의 위협을 받는 일 없이 장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대에 이르러선 믿는 사람이 거의 없는 주장이요, 허풍개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 가르침대로라면 아내보다 자신이 선하기에 이 나이까지 살아있다는 것인데 그게 어디 말이라고.

    그렇듯 하늘은 무심하여 인간의 수명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니 자신의 목숨은 자신이 챙겨야 한다. 이 나이까지 살아오며 얻은 지론이다.

    그래도 가끔은 자신의 목숨을 하늘에 맡길 때가 있다.

    이 손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가 없을 때, 그럴 때는 기어이 하늘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 포기하고 가만히 서서 제 운명을 하늘에 맡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손을 바삐 움직이기 위해서는 그래야 한다.

    총알들이 다가온다.

    제 아무리 절세고수인들 그것들을 두 눈으로 볼 수는 없다. 노래방 조명에 반사된 잔상만을 겨우 볼 수 있을 뿐이다. 허풍개는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느낀다.

    그래도 아예 무력하게 당하지는 않는다.

    허풍개는 허리를 굽힌 채 달리며 태극권의 수류식을 펼쳤다. 다가온 그것들을 직감적으로 느끼고는 손을 움직였다.

    저번에 터득한 건곤대나이는 큰 도움이 되었다. 그 묘리를 응용하여 세 발이나 연달아 흘려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상대방은 여유가 넘친 나머지 딱 세 발 쏘고 만족하는 절세고수가 아니었다. 겁에 질린 양태자의 손가락은 방아쇠를 꾹 당긴 채 놓지를 않았다.

    분당 700발을 쏠 수 있는 기관단총에서는 총알이 계속해서 쏟아져나왔다.

    기어이 한 발의 총알이 옆구리를 스친다.

    격통이 머리를 잠식한다.

    이런 종류의 고통에는 도저히 익숙해질 수가 없다. 그래도 견디는 법은 어찌어찌 익혀냈다. 백이십 년을 살며 얻은 공부라고는 그것뿐이다.

    한 발짝 앞으로 더 나아갔다.

    그리고 총알을 맞았음에도 허풍개의 표정에 변화가 없자 양태자는 더욱 겁에 질렸다. 방아쇠를 당기는 손가락에 더욱 힘을 주었다. 개자식.

    이번에는 총알 한 발이 어깨를 뚫었다. 끔찍한 고통이 머리를 흔들었다.

    머릿속에 천둥이 울려 퍼진다.

    머리에서 몸통으로, 한 줄기 번개가 내리친다.

    그 번개는 아마도 고통의 형상화쯤 될 것이다. 그리고 또한, 내면에 깃든 신이기도 하다.

    낙뢰에 맞기라도 한 것처럼 끔찍한 고통이 온몸을 잠식한다. 그와 함께 머리, 즉 상단전에서 뻗어 나와 여러 줄기로 갈라진 번개도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번개는 손가락 끝과 발가락 끝에 이르기까지 온몸의 신경으로 퍼져나간다.

    워낙에 충격을 받은 탓일까. 세상이 느려지는 듯한 착각이 든다.

    아니, 어쩌면 착각이 아닐지도 모른다. 허풍개는 자신의 눈을 의심한다.

    그 눈에 날아오는 총알이 눈에 보인다.

    몸에 닿으려는 총탄 셋, 여전히 끔찍하게 빠르지만 어쨌건 보이기는 보인다. 심지어 몸도 약간이나마 빨라진 느낌이 든다.

    그중 총알 하나를 잡아서, 튕겼다.

    두 손가락이 움직이는 속도는 생각의 속도를 능가했다. 탁, 하는 소리.

    그 손가락이 튕겨낸 총알은, 기어이 뒤따라오던 총알 둘에 연달아 부딪쳤다.

    마지막으로 제 총마저 부서지자 양태자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제야 허풍개가 웃었다. 경악에 물든 상대방의 얼굴을 보니 머릿속에 희열이 가득 찼다.

    그로써 격통마저 느껴지지 않게 되자 머릿속 번개는 사라졌다. 그와 함께 시간의 속도도 돌아왔지만 이제는 상관없었다.

    아연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는 산적은 이제 저항할 의욕도 없어 보였다.

    허풍개는 다가가서 그 팔을 꺾었다.

    양태자가 쓰러져서 누워 피를 토했다. 어쨌건 죽는 것은 안 될 일이다. 허풍개는 미리 챙겨온 침을 꺼내 놈의 가슴에 꽂아 넣으며 전류도 살짝 흘려 넣었다.

    그러고서 고개를 돌렸다.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는 세 명에게 말을 건넸다.

    “괜찮습니까.”

    허풍개의 말에 한 아줌마가 대답했다.

    “예? 예······.”

    “나가세요. 짭새들한테 내가 도와주려 했다고 얘기 좀 잘해주고.”

    여자들을 내보낸 뒤, 허풍개는 자신의 몸을 살폈다.

    몸 여기저기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낭패감에 한숨 쉬었다.

    원래 계획은 빠르게 상황을 정리한 뒤 경찰이 오기 전에 도망치는 것이었다.

    지금 이 사건은 녹림과 무림맹 간 항쟁의 일부 아닌가. 무림맹에 소속된 자신이 억류된 민간인을 구하고자 했다고 변명해봤자 판사의 눈에는 같은 무림 깡패로만 보일 것이다. 재판이고 뭐고 받는 일이 없는 것이 제일이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피를 철철 흘리는 지금 그러기는 글렀다. 설령 이 몸 상태로 도망치는 데는 성공하더라도 현장에 남은 혈흔은 어쩔 수가 없지 않은가.

    이젠 정말 하늘에 맡겨야 할 순간이다.

    허풍개는 쓰러지듯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방금 자신의 상단전이 일으켰으리라 여겨지는 조화를 이해하기 위해, 명상에 잠겼다.

    창밖에서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

    뒤늦게 무장한 경찰들이 진입했을 때, 그들의 눈에 보인 것은 여기저기 쓰러져 널브러진 남자들과 방 가운데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은 한 젊은 남자의 모습이었다.

    현장의 사물은 여기저기서 부서지고 피까지 바닥에 고여있었다. 이 참혹한 현장과 눈을 감고 명상하는 수련자의 모습은 조금도 어울리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을 뇌가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경찰들은 두 눈을 부릅뜬 채 잠시 멍하니 서있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한 형사가 말했다.

    “뭐해? 빨리 수갑 채워.”

    *******

    이도혁은 부릅뜬 눈으로 TV를 보았다.

    「인천 경찰, 늑장 출동 (···)」

    「유서 깊은 양반가, 사건의 배후로 추정돼 (···)」

    방송국도 경찰도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그 어느 곳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듯, 횡설수설 난잡한 정보들을 토해내고 있었다.

    「민간인 세 명 무사 확인 (···)」

    이도혁은 방송에 스치고 지나간 한 남자를 보았다. 얼굴은 가려져 있었지만 누구인지 알아보기는 어렵지 않았다.

    *******

    허풍개는 사건의 중요 인물로 여겨졌으므로 치료를 받으면서도 격리되었다. 그래서 당장 TV를 볼 수는 없었지만, 세 가지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어제 아홉 시 뉴스에는 그날의 사건이 나왔으리라는 것, 그리고 오늘 아홉 시 뉴스에도, 내일 아홉 시 뉴스도 그 사건이 나오리라는 것.

    총기 사건 하나만 벌어져도 일대 비상령이 떨어지는 마당 아닌가. 하물며 이건 수십 년 전에나 벌어졌던 범죄조직들의 항쟁이요 민간인까지 휘말린 마당이다. 당분간 기삿거리가 부족할 일은 결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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