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객 허풍개 - [1]
“박애진이 뭐래?”
“확답은 못하겠지만 힘내라네요.”
“사람도 좋네.”
“그러게요. 아, 이건 또 누구야. 운전하기도 바빠죽겠는데 누가 전화를 걸어?”
이풍이 전화를 받아보니 오은림이었다.
「안녕하세요. 오가장 소가줍니다」
“뭐요, 아가씨? 이거 아가씨 번호 아닌 거 같은데. 전화 안 받을까 봐 딴 사람 전화 빌렸나?”
오은림이 말했다.
「대포폰이에요. 원래 번호로 걸었다간 경찰 조사받을 때 그쪽에 문제 생길까 봐」
“배려 고맙네. 그래서, 뭡니까?”
「혹시 오가장 도울 맘 있는 거 아니죠?」
“글쎄······”
「도우러 나서지 마세요. 안 그러셔도 돼요」
이건 또 뜻밖의 말이다. 이풍이 헛웃음을 지었다.
“가주님께선 전화 걸어서 도와달라던데?”
「그거 정말 도움 바라서 그러신 거 아니에요」
“그럼?”
「당장 현장에 나가 있는 애들이야 전부 총 맞아 죽든 잡혀가든 상관 안 하실 거예요」
“몸값 비싼 애들은 안 보냈나 보네.”
「그래요. 현장 나간 애들이 어찌 될지는 문제가 아니에요. 사건 무마하는 게 문제지. 이번 일에 오가장이 모든 책임을 질까 봐 그게 무서운 거고요」
“아니, 그럼 우리 절세고수님도 같이 책임져달라고 불렀단 거야?”
「정확히는 무림맹이 같이 책임져주길 바라는 거죠. 절세고수가 이번 일에 끼어들면 무림맹도 도와줄 거라고 생각하니까.
무림맹에서는 폴란드 천마며 산적 두목이며 싸워야 할 절세고수가 둘이나 되는데 이쪽 유일한 절세고수가 경찰에 잡혀가면 큰일이잖아요? 그러니 절세고수도 얽히면 무림맹에서 사건 덮으려고 모든 수를 쓰리란 생각이죠······」
“아니 씨발, 이걸 무슨 수로 덮는다고?”
「맞아요. 그냥 발악이에요. 그러니까 휘말리지 마세요. 그냥 이쪽만 가라앉게 내버려 둬요」
휴대전화 너머 오은림의 목소리는 힘이 없는 걸 넘어 처연하기까지 했다.
“나도 그러고는 싶은데······”
달리는 차 안에서 이풍은 허풍개를 바라보았다.
허풍개는 그 시선을 애써 외면했다. 본인이 느끼기에도 지금 하려는 행동은 떳떳하지 못했다. 심지어 도덕적인 면에서도.
허풍개는 생각했다.
지금 현장으로 나아가는 것은 협행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공과격에 뭔가 적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불편해서 그렇다. 죽음에 신경 쓰는 강박 때문에.
자신의 죽음을 언제나 의식하는 나머지 남의 죽음에마저 지나치게 몰입해서 그렇다.
만약 그놈의 노래방에서 행인의 눈을 뽑아 장님으로 만드는 사이비종교 집단이 난리 치는 것이라면 경찰이 알아서 해결하게 내버려 뒀을 것이다. 무고한 사람들이 어찌 좆되건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필이면 누가 죽는 일이고, 손 닿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란 것이 문제다. 방관하자니 아예 자신이 그 죽음을 일으킨 기분이 드는데 그것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일이다.
하여간 그놈의 강박 때문에. 열일곱 살 적부터 이 뇌를 사로잡은 그놈의 정신병 때문에······.
차가 멈췄다.
노래방 주변을 살피고서 이풍은 깊은숨을 토해냈다.
“미쳤나. 순경 왜 두 명만 왔어?”
당장 주변 경찰서에서 부랴부랴 보낸 걸까. 하지만 고작 두 명 보낸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동인천 경찰들이 이 지경에도 각자의 사업에 몰두하느라 자리를 비우기라도 했던 걸까.
차량의 창문을 내렸다.
사건 현장에 웬 검은 차가 당도했음에도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노래방 주변은 이미 북적거렸기 때문이다.
분명 휴대전화 메시지로는 접근 금지 명령이 떨어진 것 같은데. 심지어 민간인이 총상을 당했다는 내용에도 불구하고 모여든 사람이 많았다.
웬 놈들은 카메라를 들고서 건물을 촬영하고 있었다. 유투버인지 스트리머인지 하는 사람들인 모양이다.
이풍이 보기에는 미칠 지경이었다.
“이거 씨발, 진짜 씨발······”
허풍개가 차에서 내렸다. 이풍이 물었다.
“순경 둘이 입구 막고 있는데 어쩔 거요?”
“창문으로 들어가야지.”
“창문으로?”
허풍개는 여기 오며 칼을 챙겨왔다.
몇 달 전에 대장간에 주문한 칼이었다. 아내가 준 그 칼을 본따 만든 칼들. 정말 마음속 칼의 형상과 일치하는 것이 중요했는지, 아내의 그 칼과 비슷하게도 의지만으로 잘 움직였다.
사건 현장에서는 검문당할 수가 있었으므로, 그 칼들을 차에 실어서 가져오지는 않았다.
허풍개는 노래방 앞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차량 아래에서 테이프로 붙어있던 칼 두 자루가 빠져나왔다. 두 칼은 스스로 비행하여 주인의 뒤를 따랐다.
이풍의 차량이 건물의 주변에서 맴돌았다. 허풍개와 뒤따른 칼 두 자루의 움직임을 가려주었다.
차를 다른 곳에 주차한 뒤 이풍도 따라나섰다.
“노래방은 3층이요.”
“그래.”
허풍개가 3층에 올랐다.
반대편 건물에는 사건이 벌어진 노래방이 있었다. 저기로 들어가야 했다.
“거리가 꽤 되네요. 뛰어선 못 가겠는데? 창문도 닫혀있는데 BB탄 던져선 부수기 힘들 거 같고······”
“알아.”
허풍개가 검을 바라보았다. 그와 동시에 마음 속 칼에 의념을 불어넣었다.
검이 창밖으로 비행했다.
바로 맞은편 창문을 향해 날아가지는 않았다. 칼은 사람들이 많이 없는 저 멀리 날아가더니, 엉뚱한 건물의 창문에 화살처럼 쏘아졌다.
칼날이 창문을 뚫었다. 유리가 폭발하듯 깨져나갔다.
“뭐야?” “뭔 소리······”
경찰은 물론 카메라를 든 사람들까지 허둥지둥 그쪽으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아직 몇 사람이 남아있었지만 그래도 상황은 나아진 셈이다.
허풍개가 다른 한 자루 칼마저 공중에 띄웠다.
이풍이 입을 열었다.
“어검비행이라도 하시게? 저번에 그거 못 한다고 했던 거 같은데······”
대답할 여유조차 없었다. 모든 것은 신속하게.
또다시 칼을 날렸다. 이번에 날아간 칼은 똑바로, 미사일처럼 날아갔다. 쉽게도 창문을 박살 내고 내부로 향했다.
칼자루 끝장식에 낚싯줄을 묶어두었다. 저 건물 내부로 줄이 연결되었다.
“오.”
이번에도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났다. 당연히 사람들이 몰려올 것이다. 그 전에 움직여야 했다.
한 줄기 낚싯줄을 밟고 허풍개가 움직였다. 바깥 사람들이 직접 보면서도 뭐가 뭔지 파악하기 어려울 만치 빠르게.
줄을 타고 달리는 그 속도는 육상선수가 지상을 달리는 것만큼이나 빨랐다.
깨진 유리창을 넘어 건물에 진입했다. 이제 이 칼은 필요가 없었다. 증거 인멸을 위해 건물 밖으로 날려 보냈다.
칼이 저 멀리 가버리는 것을 확인한 뒤 허풍개는 빠르게 건물 안을 걸었다.
그 발소리에 웬 무리가 반응했다.
열한 명이 일제히 총구를 겨누며 외쳤다.
“누구야!”
허풍개는 내심 흠칫했지만, 그러나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가장 분들입니까.”
“누구냐고······”
소리치던 오가장 무인은 눈을 크게 떴다.
그는 몸값 책정도 되지 않은 하수 중의 하수였지만 그래도 명색이 무림인 아닌가. 요새 무림에서 가장 유명한 절세고수를 못 알아볼 수는 없었다.
“무적무적자 대협?”
“그래요.”
“여긴 왜?”
“도우려고. 저기 민간인도 잡혀있다는데 맞습니까.”
“예? 예······”
생각지도 못한 지원에 희망이 생긴 걸까. 입가에 미소를 지으려는 오가장 무인에게 허풍개가 말했다.
“여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나가요.”
“예?”
“밖에 순경들 있어. 가서 자수해.”
“자수요?”
“그럼 뭐, 튀려고?”
“어떻게 들어오셨는진 몰라도 여기 들어오셨잖습니까? 아마 몰래 들어온 거 같은데, 저희한테도 방법 알려주시면······”
“저기 반대편 건물로 점프.”
허풍개가 가리킨 건물을 보고 모두 눈을 크게 떴다.
허풍개는 빠르게 말했다.
“못 하면 나가서 자수나 해요. 상황 더 안 좋아지는 거 싫으면 빨리.”
재촉해도 모두 서로를 바라볼 뿐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
허풍개가 윽박질렀다.
“어서.”
그 어조는 전혀 협박조가 아니었지만, 그 목소리에는 초저주파가 흘러나왔다. 고수 특유의 살기다.
“어서.”
허풍개는 도망치듯 건물을 내려가는 오가장 무인들을 바라보았다.
한 패거리는 처리했으니 이제 다른 패거리만 처리하면 된다.
여기는 노래방 복도였다. 노래방은 여러 방으로 나뉘어있었다.
그중에서 굳게 문이 닫힌 방을 보았다.
저 방 안에서 녹림도들이 농성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 방을 향해 외쳤다.
“오가장 놈들 떠났습니다. 녹림 분들도 빨리 나와요.”
방에서는 대답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허풍개는 저 방 너머의 녹림도들이 이쪽을 엿보고 있음을 알았다. 눈을 반쯤 감고 저 너머의 기를 느껴보니 벽 너머 저들의 움직임이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계속 있으면 더 좆돼. 빨리 나와요. 잡고 있다는 민간인 풀어주고.”
예의 민간인들도 그 기가 보였다. 자세를 보니 묶여있는 것 같자 허풍개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대체 노래방 건물에서 어찌 줄을 마련한 것인가?
“자수해야 형기도 줄고 당신네 두목도 살아. 당신네 두목이랑 같이 좆되고 싶어서 이러나? 그게 아니면 빨리 나와.”
그 말에도 방 안의 녹림도들은 방에서 나오거나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각자의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을 뿐이다.
물건에는 기가 없다. 그래서 놈들이 뭘 꺼냈는지는 볼 수 없었지만 물건을 쥔 자세를 보건대 총기일 터였다.
끝까지 항전하려고? 대체 왜?
허풍개는 저들의 반응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살짝 열린 창틈으로 오가장 무인들이 떠난 것도 보았을 것이다. 그 와중에 뭘 얻겠다고 저런단 말인가. 민간인들을 인질 삼아 무사히 떠나기로 할 셈인가?
대체 뭘 하려는지, 뭔 생각인지는 몰라도 상황이 급하다.
저들의 꿍꿍이를 알아차리고자 머리를 굴릴 틈도, 설득에 오래 나설 틈도 없다.
이제 해야 할 일은 진압뿐이다.
허풍개가 손짓했다. 앞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날린 칼을 여기 불러와두었다.
문에 달린 반투명한 창을 향해 예의 칼을 날렸다.
‘탕!’ 방 안에서 총성이 울렸지만 허풍개는 신경 쓰지 않았다.
문 앞에서 창을 부수고 있다 생각하여 쏴버린 모양이지? 하지만 칼은 알아서 파괴를 거듭할 뿐이었다.
반투명한 창이 부숴졌다. 그 너머의 녹림도들이 눈에 들어왔다. 기겁한 표정의 거한들, 그들은 무적무적자와 눈이 마주치자 질겁하여 몸을 숨겼다.
허풍개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가득 넣어둔 BB탄들이 장갑 낀 손에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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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장과 녹림 만월산채의 싸움은 거의 치졸하기까지 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서로서로 사람들을 보내 상대편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다가, 만약 중요 인물이 움직이면 히트맨들을 보낸다.
요새 다들 총을 들고 다니는 마당이니 이쪽만 목검을 쓰는 패기를 보일 순 없다. 중요 인물에게 쳐들어간 히트맨은 바로 총을 쏜다.
이때 총격은 실패할 수도 성공할 수도 있지만 만약 상대가 고수라면 반격을 당할 수도 있다. 고수 특유의 놀라운 반응속도로 이쪽보다 먼저 총을 꺼내어 방아쇠를 당겨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히트맨도 나름대로 고수여야 하는데, 이렇듯 총알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서로 고수 한두 명씩 잃은 마당이었다.
오가장과 만월산채의 악감정은 이미 상당했다.
그 와중에 웬 노래방에서 만월산채의 녹림도들이 술판을 벌였다.
고수가 포함된 술판이었다. 오가장은 그것을 일종의 도발이요 녹림 고수를 제거하기 좋은 기회라고 파악했다.
원래 습격을 벌이려거든 사람들의 눈에 띄어선 안 되는 것은 무림의 오랜 규칙이지만 오가장은 그마저 무시했다. 얼마 전에 오가장 고수 하나가 총격에 죽어 체면이 잔뜩 상했기 때문이다.
이제 오가장의 고수라곤 가주와 오은림뿐인데 오은림은 아직 어깨의 부상이 낫지 않았으므로 하수들이라도 보냈다. 저쪽엔 고수가 있을 테니 수로 압도해야 했으므로 열한 명이나 습격에 나섰다.
서로가 총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총격전이 벌어졌다.
녹림도들은 넷뿐이었으므로 수에서 밀렸다. 문을 걸어 잠그고 방에 틀어박혀야 했다.
이 와중에 노래방 도우미 한 명이 총을 맞고 녹림도들이 도우미 두 명을 인질로 잡았다. 쏠 테면 쏴봐라. 그런데 노래방 여자들까지 쏴 죽이면 우리도 좆되겠지만 너희도 좆 되는 거 아니냐, 이런 의도의 인질이었다.
그 상태로 서로 떠나지 못하고 대치하자니, 당연히도 인터넷에 이 사건이 널리 퍼졌다. 결국 상황은 이 지경에 이르렀다.
문밖에서 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지막이다. 나오든가. 민간인들이라도 내보내. 총 맞은 아가씨라도 어서.”
무적무적자의 목소리, 녹림도들도 저 고수를 알고 있었다.
모두 그 영상을 봤다. 총알을 연달아 튕겨내는 것을, 영화 CG에 가까운 절세고수 둘의 싸움을 봤다.
총 몇 자루 있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저기 부서진 창 안으로 무림에 악명 높은 BB탄이 정신 나간 도탄을 그리며 날아오리란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녹림도들은 방에서 나서지 않았다. 총 맞은 여자도, 인질로 삼은 두 여자도 방에서 내보내지 않았다.
이렇듯 고집부리는 이유를 절세고수라 할지라도 알아채지는 못할 것이다.
녹림도들은 입조차 열지 않고 침묵했다. 그저 각자 든 총만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설득은 정말 끝인 모양이었다.
탁, 하는 소리가 났다. 그 순간 방 안의 녹림도들은 모두 두 눈을 부릅떴다.
부서진 창 틈으로 BB탄이 날아오고 있었다. 그 하얀 플라스틱을 보기만 해도 섬뜩했다.
절세고수가 온다.
무림의 신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