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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반로환동전-41화 (41/103)

모산파 정보라 - [2]

지금까지도 이바람에게 무공을 가르치긴 했지만 그것은 흥미 위주의 손장난에 가까웠다.

그러나 지금부터 하는 것은 진짜배기 무공 교습이었다. 허풍개가 설명에 나섰다.

“무협 장르 보면 도사들이 도사다운 도술은 안 쓰고 주먹질하거나 칼이나 휘둘러대지요.”

이바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확실히 그래서 이상하던데?”

“도술이랍시고 부적 날려대는 도사보단 그쪽이 실제 도사에 가깝습니다. 도교가 세간엔 정적인 이미지지만 실제론 동(動)적인 수련도 중요시했죠. 도인(導引)이라고 압니까?”

“아뇨.”

“몸동작을 펼쳐 행기하고 양생을 꾀하는 수련입니다. 도가에는 예로부터 있던 개념인데······”

“그거 체조 아니에요?”

“체조가 맞습니다. 도가 수련을 겸하는 신체굴신운동(身體屈伸運動)이지요. 그리고 무공은 그 연장이죠.”

허풍개가 자세를 잡았다. 몸 전체를 활용하는 입신중정, 허리를 반듯이 펴면서 양팔을 펼쳤다.

“몸을 움직여 건강을 유지하면서 기의 순환을 원활히 하고.”

자세 그대로 손바닥을 뻗었다. 태극권의 기본적인 장법.

“거기서 더 발전하면 종교적인 철학을 각 동작에 담고.”

부드럽고 느긋하게 움직였지만 뒤따른 여파는 그렇지 않았다.

소매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북소리처럼 방 전체에 울렸다. 그리고 몸으로 느껴지는 바람이 한차례 불었다. 그 바람은 이바람의 피부 또한 스치고 지나갔다.

“경지에 이르면 종교적인 조화를 펼칠 수 있죠. 젊어지거나 쭉 젊어 보이는 것도 그 조화 중 하나일 겁니다.”

이바람은 오, 하고 감탄을 토하더니 지대한 의욕을 보였다.

“그럼 나도!”

시키지도 않았는데 대뜸 태극권 자세를 취하는 게 아닌가. 허풍개는 웃지 않으려 애썼다.

그저 태연한 얼굴로 그녀에게 이런저런 시범을 보이거나 반복하게 시켰다. 자신이 알고 있는 제대로 된 무공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러는 것이 새삼 어렵지는 않았다. 백 년 전, 그리고 수십 년 전. 월녀와 이풍을 가르친 적이 이미 있지 않은가. 게다가 요새는 이도혁도 가르쳐보았다.

이렇게 여러 명을 가르치다 보면 절로 제자들을 비교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허풍개는 자신의 동작을 따라 하려 애쓰는 이바람을 보며 생각했다.

한 번에 상단전을 열 때는 월녀를 보는 듯했는데. 막상 제대로 무공을 가르쳐보니 월녀의 재림이라기엔 부족한 면이 많다고.

‘하린이 애는 보여준 동작을 절대 잊는 법이 없었지. 게다가 타고난 운동능력 덕에 조금만 가르쳐도 완전히 숙달되곤 했는데.’

게다가 이바람은 어릴 적부터 따로 이풍이 신경을 쓰고 가르쳐둔 게 이미 있다. 지금 이바람이 스무 살이 넘어서야 처음으로 무공을 배운 당시의 월녀보다 못한 것은 확연한 재능의 차이가 있는 셈이었다.

이바람이 영약과 절세고수의 도움으로 행기법에서는 어른마저 넘어서게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무공은 기(氣)만으로 하는 게 아니다.

어디까지나 무공은 무술이요, 몸을 써서 하는 일이다. 몸으로 하는 일에 땀을 흘리지 않으면서 성취를 이룰 수는 없다.

심지어 몸으로 하는 일에도 재능의 차이가 있는 법이니,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결국엔 벽에 막혀 자신이 원하는 경지엔 이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제 아비가 그랬던 것처럼. 끝내 고수라 불릴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 허풍개에게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일이었다. 무공으로 경지를 이룰 수 없어도 최소한 건강해지기는 하겠지. 손녀를 가르치는 만큼 그 정도면 만족할 수 있었다.

“팔을 좀 부드럽게 뻗고.”

“예, 사부!”

계속 가르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옛 생각이 나기 시 작했다.

자신이 앞서 두 제자를 가르칠 때와, 자신이 제자로서 아내에게 무공을 배울 때······.

기어이 허풍개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것을 본 이바람은 영문도 모르고 따라서 웃었다.

교습이 끝난 뒤, 이바람은 그녀답지않게도 허리 숙여 예를 표했다.

“가르쳐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사부님!”

허풍개는 허, 하고 웃었다.

“이젠 진짜 스승이라고 그러는 겁니까? 안 그래도 되는데.”

“그런 거 아닌데?”

“그럼.”

“저번에 영상 보니까 막 대하면 안 되겠더라구! 제대로 존경심 표해야겠다 싶어서 이래요.”

허풍개는 웃다 말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 영상 봤습니까?”

이바람이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응. 저번에 그 언니랑 싸우는 거요. 아빠가 보여주던데? 개쩔드라!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 새로 익혔다는 거······”

“이기어검?”

“예, 그거! 월녀님이 쓰는 그거 보여줘요, 응?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는 그거!”

허풍개는 자신의 태극검을 바라보았다. 그 눈짓 한 번이면 충분했다.

따로 손짓조차 하지 않았음에도 칼은 제 주인의 생각에 바로 반응했다. 절로 허공에 떠올라서는 허풍개의 등 뒤를 맴돌기 시작했다.

“오······ 사부. 뉴턴이 지옥에서 사부를 저주할 거야, 진짜······”

이바람이 눈을 반짝이며 허공에 뜬 검을 바라보던 와중이었다.

박성철이 방에 들어왔다. 공중에 떠 있는 칼을 아연한 얼굴로 쳐다보더니 말했다.

“저, 손님 오셨는데요.”

“누굽니까.”

“그게, 도복 입은 사람들입니다. 도를 아십니까 하러 온 건 아닌 거 같은데, 그래도 좀 수상해 보이기도 하고······”

“도복?”

누구인지 보러 나갈 필요는 없었다. 이풍이 예의 손님을 방에 데려왔다.

웬 남녀를 데려온 이풍은 방 풍경을 보더니 히죽 웃었다.

“마침······”

방에 들어온 남녀 또한 허풍개의 주변을 떠다니는 검을 보았다. 그들의 눈이 크게 뜨였다.

“어, 이거······”

“馭劍術?”

둘은 홀린 듯 날아다니는 검을 주시했다. 그러고는 아예 검을 향해 합장하고는 절까지 하는 게 아닌가.

허풍개가 검을 도로 땅에 내려놓을 때까지도 둘은 검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허풍개가 물었다.

“누구십니까.”

도복을 입은 여자가 그제야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정신을 차린 듯 눈을 껌벅이더니, 공손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무적무적자 대협이시지요? 만나 뵈어 영광입니다! 박애진이에요.”

“박애진?”

“예. 모산파에서 왔습니다.”

허풍개는 웬만해서는 무표정을 유지했다. 허세 겸 마음수련을 위해서였는데, 지금마저 그러지는 못했다. 그 눈동자가 흔들렸다.

“모산파에서? 명국 모산에 있는 거기?”

“예, 다른 모산파는 없지요?”

이풍이 자랑스레 웃었다. 그는 명문 정파에서 제 형님의 위명을 알고 찾아온 것을 매우 흡족하게 여겼다.

“이것 참 귀빈들이셔! 다시 말하는 거지만, 어서 와요! 연락이라도 주시지 않고 이렇게······”

박애진이 볼을 긁적였다.

“그게, 전화번호를 구할 수가 없더군요.”

이풍의 얼굴에 의문이 떠오르려다 말았다. 모산파씩이나 돼서 이 사무소 전화번호 하나 구하지 못했단 말인가? 모산파면 무협 소설에도 자주 이름이 나오는 명문 아닌가. 그런데도 그 정도 인맥조차 없단 말인가?

그래도 워낙 표정관리에 능숙한 편이라, 이풍은 금세 사람 좋은 미소를 짓더니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런데 한국말을 엄청 잘하시네요. 혹시 교포이신가?”

“예. 여기 이 사람은 명국인이지만, 저는 부모님 모두가 한국계라······”

드문 일은 아니었다. 19세기로부터 무공은 반 제국투쟁의 상징 아니었는가.

그러니 독립투사들이 무공을 배우는 것은 기본소양이던 셈이요, 일제와의 투쟁을 벌이겠답시고 무공을 배우러 조선인이 명국에 유학 가는 일도 많았다.

허풍개의 아내가 그랬듯이.

허풍개는 조금 주저하다가 물었다.

“혹시 정보라 선자님 아십니까?”

박애진이 웃으며 대답했다.

“외이모할머니 되십니다.”

요즘 세상에 어찌 그리 먼 친척의 이름까지 알고 있는지는 새삼 의아하지 않았다.

정보라는 허풍개 의사의 스승이자 아내였던 인물이다.

그리고 허풍개 의사가 한국뿐만 아니라 명국에서도 유명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심지어 모산파 무공을 널리 알리는 데 일조했음을 생각하면 모산파에서는 그녀의 이름을 기억해둘 만했다.

그리고 확실히, 허풍개의 사손에게 보낼 사람으로 그녀의 친척을 보내는 일 또한 당연한 일이었다.

*******

명국에서 무림의 위상은 상당하다 못해 사회의 한 축을 담당한다.

예로부터 워낙에 땅이 크고 넓어 중앙정부의 행정력이 널리 미치지 못해 지방 토착 세력의 힘이 강했던 명국이요, 그 지방 토착 세력이란 다름 아닌 각지의 무림 문파들이다.

그리고 아편전쟁 당시 황제조차 주도하지 못한 반외세 투쟁을 예의 무림 문파들이 해냈다. 이 와중에 그 협객들을 한낱 깡패들이라고 비하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그들의 위상은 중앙정부조차 쉽게 건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거대한 공을 세운 문파들은 관마저 존경을 표시하는 가운데 온갖 이권을 빨아들이며 몸집을 키워나갔다.

그리고 21세기가 된 지금은, 자본주의 논리에 따른 국제적인 활동을 벌였다.

과거의 무림 명문들은 이제 한 지역사회를 주름잡는 대기업으로써 활발한 사업 활동을 벌이고 있다.

각자 자리를 잡은 지역에서 부동산업이며 엔터테인먼트업 따위 온갖 사업을 펼치는 한편, 각국 재벌들의 돈을 쓸어 담기로 유명한 무공 시장에서 로열티를 챙기려 애쓰는 것이다.

이 흐름에 힘입어 도가 문파들은 가장 놀라운 위세를 떨치고 있다. 양생을 위한 그들의 무공은 각국 재벌들의 러브콜을 받을 만했다.

이 와중에 유서 깊은 도가 명문 모산파는 어떤가. 구파일방의 일문치고는 초라했다.

우선 그 유명도가 구파일방의 일문치고는 부족했다. 그 와중에 몇 번의 사업실패로 말미암아 그 세가 확 줄어들기까지 했다.

무당이나 화산에 비하면 같은 구파일방이라고 자처하기도 부족한지라, 각 문파들의 후원을 받기 마련인 무협 소설에서는 모산파가 구파일방의 일문으로 들어갔다 빠졌다 하는 형편이다.

다시금 성세를 회복하려거든 어째야 하는가? 사업실패는 어쩔 수 없겠지만 무공 시장에서라도 성과를 보여야 한다.

그리고 무공 시장에서의 성과란 당연히 세상에 선보일 만한 고수를 배출하는 것이요, 고수 중에서는 당연히 절세고수가 최고다.

전 세계를 다 합친들 서른 명도 되지 않는 절세고수의 존재라면 그 무엇보다 우월한 광고판이다. 자기네 무공의 우월성을 선보이고 전 세계의 재력가들에게 무공을 가르치며 막대한 후원금을 받아 챙길 수 있다.

이 와중에 모산파 본산에서는 절세고수를 배출한 지 오래되었다.

그러나 명국 바깥 한국에는? 모산파 무공을 쓰기로 유명한 절세고수가 이미 있었다.

월녀 말이다. 그녀는 황군 고수이므로 어떻게 데려갈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새로 생겨난 무적무적자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절세고수님을 모산에 모셔가고 싶어서 여기 오셨다고?”

박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일종의 프렌차이즈 스타가 되시는 거죠. 가만히 앉아 수련만 하셔도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이풍은 난색을 표했다. 최대한 그 제안이 달지 않은 것처럼 굴기 위해서.

“지금은 곤란한데요. 한창 한국에서 몸값이 비쌀 때거든? 저번에는 한 번 싸우기만 했는데 이백억이나 받았어요. 앞으로도 이런 싸움이 꽤 있을 예정이니까 얼마를 벌어들일지 모르는데, 지금 떠나기는 좀······.”

그러나 허풍개는 지금 이풍의 실제 속내를 알아볼 수 있었다. 지금 제 형님이 받은 제안을 듣고서 이풍은 좋아죽으려 하고 있다.

확실히 그럴 만한 제안이다.

무림에서 명국은 메이저 리그로 통한다. 무공의 본고장인 그곳은 무림인이 가장 큰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시장인 동시에 가장 큰 명예를 얻을 수 있는 전장이다.

그러나 명국인끼리의 꽌시가 워낙에 두꺼워 외국 무림인은 쉽게 진입할 수 없는 곳으로도 유명했다. 그래서 허풍개도 명국에서 활동하겠단 생각은 딱히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역시 절세고수쯤 되면 다른 걸까. 다 늙어서 저런 제안을 받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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