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세기 반로환동전-38화 (38/103)

하수 정진영 - [3]

요샌 조폭계에서도 하청이 대세입니다.

세상이 달라졌잖습니까? 쌍팔년도식으로 주먹질하다간 빵 가기 딱 좋으니까 함부로 그럴 수가 없습니다.

정말 용역깡패 노릇이라도 해야 하면 그런 일 대신해줄 곳에 하청을 주는 게 낫죠. 하청 자주 주다 보면 그것만으로 먹고사는 건달들도 생기고요.

일본 야쿠자들도 요샌 주먹 쓸 일 있으면 폭주족이나 동네 건달들한테 하청 주며 운영한다지 않습니까?

그런 일이 반복되니까 몇 년 전부턴 웬 이상한 게 생겼는데, 바로 십대 청부업자들입니다.

미성년자 청부업자들이요.

왜, 미성년자들이 중범죄 저지르고 쉽게 풀려나는 거 유명하지 않습니까? 그걸 믿고 아예 전문적으로 청부 받는 놈들이 생긴 거예요. 폭행은 물론이고 살인도 반값에 저지른답니다.

알다시피 일본 유행이 한국 건너오는 게 허다하지요. 일본에 있던 게 한국에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요새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들이 살인청부업자입네 하면서 사람 담그고 다니는데······.

무섭습니다. 좆나게 살벌하고 잔인해요.

조폭들은 고문 같은 거 무서워서 잘 못 하지 않습니까? 결국 담가버릴 놈한테나 고문을 하든 말든 그러죠. 죽이지도 않을 거면서 괜히 고어 포르노 찍었다간 신고 한 번에 조직 전체가 박살 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십대 새끼들은 분간이 없어요. 일단 고문부터 하고 봐. 수틀리면 그냥 제껴.

어디 만화에서 본 거 따라 하는지 사람 조지고 공구리 치다 콘크리트 부풀어 올라서 딱 걸리고 그러는데, 걸리고도 별로 좆되지 않을 거란 자신감이 있으니까 걸리든 말든 그냥 막 나갑니다.

제 보기엔 조폭들이 그놈들한테 하청 준 거 같거든요. 그놈들은 무림이고 뭐고 안 무서워할 거니까.

정말 그렇다면 단순히 침술원 부수는 걸 넘어 더 위험한 짓을 하려 들 수도 있습니다. 모쪼록 조심하셔야······.

*******

정진영과 김성진이 물러간 뒤, 이풍은 뚱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러다 문득 이도혁을 바라보더니 어색하게 웃었다.

“도혁아?”

“예?”

“내가 아까 막말한 것 같은데 미안하다, 응? 말실수야. 기분이 안 좋아서 그랬어.”

이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그런데 기분 안 좋으실 게 있습니까? 요새 엄청 잘나가는데······.”

“음, 요새 녹림이랑 무림맹이랑 뜨고 있는 거 알지?”

“예.”

“만월산에도 녹림 산채 있는 거 알고?”

“알죠. 만수동에 오가장이랑 신경전 벌인다던데요.”

“만수동이랑 여기 별로 안 멀잖아. 그러니까 우리도 인천 무림인으로서 거기 싸움에 낄 만하지?”

“어, 뭐. 그렇죠?”

“그런데 무림맹에서 우리 안 부르잖아! 오가장도 우리한테 같이 싸우자고 하질 않고. 일단 싸워달라고 불러놓으면 우리 절세고수님 혼자서 만월산채 때려 부술 만한데······.”

“얼마 전에 무림맹에서 이백억이나 줬잖아요. 또 싸워달라고 부르려면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꽤 줘야 할 텐데, 그게 부담스러워서 아닐까요? 가뜩이나 무림맹이건 오가장이건 요새 돈 쓸 일도 많을 테고요.”

“그놈들 사정 내 알 바야? 아무튼 우리가 돈을 못 버는 게 문제지!”

“방금만 해도 상납 새로 받게 됐으니 수입 늘었지 않습니까.”

“그거 쬐끔 늘어봤자지. 씨발······”

이풍은 욕설을 지껄이더니 하소연했다.

“내가 말이다. 참 소박한 놈이에요. 돈 꽤 벌면서 사무소도 거지 같은 곳에 계속 두고, 똥차도 계속 타고. 작은 돈이라도 귀한 줄 안단 말이야.”

“확실히 버는 것에 비해 엄청 검소하시죠.”

“그런데 저번에 이백억이나 한 번에 벌어들이니까······ 한 수백수천만 원씩 벌어들이는 게 애들 장난으로 보이는 거 있지? 내가 그날 십오억이나 뽐빠이 받아서 우리 애 영약도 주문할 수 있었잖아.

그날 얼마나 좋았는데, 또 그런 수입 올리면 좋겠거든? 근데 그러질 못하고······”

“뭐, 그 심정 저도 이해합니다.”

그날 이도혁은 한 게 전혀 없었음에도 천만 원이나 보너스를 받았다. 덕분에 영약도 싸구려나마 한 알 더 섭취할 수 있었지 않은가.

이풍이 하소연했다.

“이 와중에 웬 잡놈 둘이 무림인이랍시고 찾아와서 그런 제안 하니까, 벌어야 할 수백억은 못 벌고 이딴 거나 해서 용돈벌이해야 하는구나 싶어 화가 난 거야.”

“그래도······ 그것도 큰돈이죠.”

“알아, 안다고. 그런데 우리 절세고수님 봐라. 이백억짜리 영약 하나 잡수니까 막 어검술을 써대는데. 같은 영약 한 알 더 먹으면?”

“글쎄, 그럼 장풍이라도 쓸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그 천마님처럼 삼매진화 쓰면서 파이어볼 외칠 수 있게 될지도 모르고, 거기에 비슷한 영약 두세 알만 더 먹으면 등선하는 거 아닌가? 막 이런 생각이 드니까 초조해져. 뽐빠이 한 번 더 받아서 우리 바람이 영약 더 사 먹이면 정말 고수 시켜줄 수 있는 거 아닌가 싶고······.”

*******

사흘이 지난 뒤에도 허풍개는 침술원에서 영업을 했다.

오늘은 웬일로 환자가 별로 없었다. 가부좌를 틀고 복기나 하던 중이었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뭔가가 휙 하고 날아왔다.

허풍개는 눈 감고 있었지만 미리 소리를 듣고서 그 접근을 파악하고 있었다.

별 어려움 없이 날아온 그것을 바로 잡았는데, 잡고 보니 화염병이었다. 황급히 창밖으로 던져야 했다.

“와 씨, 실패!”

화염병을 던진 누군가는 부리나케 도망치기 시작했다. 몸을 챙기기 위한 필사의 도주가 아니라 낄낄거리며 달리는 장난스러운 도주였다.

허풍개는 침술원을 뛰쳐나갔다.

방금 화염병을 던진 개자식의 등짝이 보였다. 이번에는 바이크를 타고 오지 않아 달려서 도망치고 있었다. 왜?

설마 기름값이 떨어져서는 아닐 테고. 분명 이쪽을 유인하기 위한 목적일 것이다.

따라간 그곳에는 매복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요즘 이 바닥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매복한 그들은 단순히 야구배트 따위를 들고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보나 마나 권총 한 자루씩을 들고 있을 것이었다. 아니면 권총보다 위험한 무언가든가.

허풍개는 그것을 짐작하고 있었지만, 위험이 예상되는 그곳으로 나아갔다.

“그만 쫓아와, 새꺄!”

들으란 듯이 소리 지르면서 그놈은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은 벽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허풍개는 한쪽 눈을 감았다. 감긴 눈은 벽을 뚫고 그 너머의 기를 포착했다.

여섯 명이나 되는 인원이 저 골목 안에 매복해있었다. 그중 두 명은 바닥에 쭈그려 앉은 채 두 팔을 들어 특정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권총 사격 자세였다. 맙소사.

저들이 총 한 자루씩 들고 있으리란 건 이미 예상한 바였지만 그렇다고 이 상황에 무덤덤할 수는 없었다.

얼마 전에는 총알 세 발을 연달아 튕겨내는 묘기까지 보인 마당이지만, 그 덕에 몸값까지 확 뛰어올라 한 번 싸움으로 이백억까지 받아낸 마당이지만 여전히 총은 싫었다.

그 잘난 천마께서도 불의의 총격에는 대응하지 못해서 국뽕대협이 쏜 총알에 머리칼 몇 올이 잘려 나간 것이다. 하기야 소리보다 빠른 총알을 상대로 뭘 어쩔 방법이 있을 리 없다.

절세고수라도 총알을 눈으로 보고 피하거나 붙잡는 게 아니라 직감적으로 한 박자 먼저 움직여서 놀라운 결과물을 얻어낼 뿐이다. 그리고 직감이 빗나가거나 실수라도 하면, 그대로 죽는다.

만약 이따위 골목에서 총 맞아 죽는다면 그것은 참으로 허무하고 하찮은 죽음이 될 것이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허풍개는 필요하면 죽음의 위협마저 무릅쓰지만 그걸 즐기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죽음의 순간마다 누구보다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었다.

그리고 총은 하찮은 놈이 하찮은 싸움에서 절세고수에게 죽음의 위협을 느끼게 할 수 있는 무기여서, 그 무엇보다 증오스러운 물건이었다.

‘그놈의 총기를 보고 싶지 않아서 한국에서만 활동해온 건데, 이제는······.’

허풍개는 속으로 욕설을 지껄이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저들을 상대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예전에도 여러 번 해본 일이기 때문이다.

벽 너머 매복한 이들의 위치를 파악한 다음 BB탄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악, 억 하는 소리들.

골목 안에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기를 보고 확인하자니, 도탄을 통해 안으로 침투한 BB탄들은 연달아 다섯 명의 몸을 두들겼다. 완벽한 점혈, 거기 맞은 다섯 명은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이게, 뭐······”

한 명이 골목에서 튀어나왔다. 그 앳된 얼굴을 보고 허풍개는 눈살을 찌푸렸다.

어린애?

아니, 어린애까지는 아니고. 중고등학생쯤 돼 보이는 놈이 권총을 들고 있었다. 하여간 일 안 하는 동인천 경찰들 같으니.

미리 이풍이 언질을 주었으므로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그저 손가락을 튕겨 그놈의 가슴마저 쏴 맞혔을 뿐이다.

“어, 으······”

그 한 명마저 몸이 굳어 쓰러졌다. 이로써 총을 들고 있던 여섯 명은 순식간에 무력화되었다.

여기까지는 일제 강점기 무림에서도 수십 차례 겪어본 일이었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 하나.

거센 배기음이 들려왔다.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이쪽으로 질주하는 바이크가 보였다. 운전자 한 명과 그 뒤에 탄 한 명, 둘 다 총기를 들고 있었다.

빠르게 접근해와 가까이서 총질하려는 모양이다.

이건 또 처음 겪는 상황이다. 허풍개는 여기로 질주해오는 바이크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둘이서 동시에 쏘는 총알을 상대로 대응하기는 두 배로 어려울 것이다.

탄지공으로 총을 맞힐까?

그러기는 어렵다. 당장 플라스틱 BB탄만 주머니에 들어있는 상황이다. 그걸로 총기를 부수거나 떨어뜨릴 수는 없다.

손목만 점혈하는 것은?

그마저 어렵다. 저 개자식들은 총기에 지문을 묻히기 싫었는지 장갑을 끼고 있다. 가죽으로 된 장갑이다. 그 두꺼운 가죽 위에다 플라스틱 BB탄을 날린들 점혈이 되기는커녕 크게 아플 것 같지도 않다.

가장 쉬운 것은 몸을 맞혀서 몸 전체를 마비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저놈들이 탄 바이크는 지금 최고속도로 달려오고 있다.

저 상태에서 운전자를 마비시켰다간 바닥을 나뒹굴어 머리가 으깨질 것 같은데······.

고민할 시간은 많지 않았다. 허풍개는 낭패감에 이를 악물었다. 주머니 속 손에 힘을 주었다.

바이크가 기어이 여기까지 도달한, 그 와중에도 허풍개가 차마 BB탄을 쏘아내지 못한 그때, 저 멀리서 무언가가 날아오고 있었다.

그것은 칼이었다.

태극검. 아내가 준 그 물건. 평소에는 금고에 넣어두지만 요새는 어검술을 연습하느라 꺼내두게 된 그 칼이었다.

저 멀리 이풍의 사무소에서 날아온 칼은 여기에 순식간에 당도했다.

허풍개는 저 비행의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저 칼에 따로 의념을 불어넣어 조종하지도 않았는데 어째서?

주인이 의문을 품건 말건, 칼은 미사일처럼 발사되어 스스로 표적을 향했다.

“어?”

막 바이크를 멈추고 권총을 들어 올리던 바이크 운전자는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총을 들고 있던 그 손에 묵직한 충격이 전해지더니 총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제 할 일을 마친 칼은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이 와중에 바이크의 두 명은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다.

멈춘 바이크에서 뒤에 탄 놈이 내렸다. 놈이 총을 겨누더니 방아쇠에 손가락을 가져가려 했다.

그보다 허풍개의 손가락이 훨씬 빨랐다.

탁, 하는 소리가 나더니 놈은 총을 겨눈 자세 그대로 쓰러졌다.

이제 바이크 운전자 혼자 빈손으로 멍하니 바이크에 앉아있을 뿐이었다.

“어, 어?”

이제야 상황이 파악되는 걸까? 그는 마비되어 바닥에 쓰러진 패거리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다시 바이크를 움직이려 했다.

그러지 못하게 허풍개가 막았다.

터벅터벅 걸어간 허풍개가 놈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무림의 고수라도 벗어날 수 없는 금나수법이다.

붙잡히자마자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간 바이크 운전자는 그대로 골목 안에 끌려갔다.

그 눈에 이미 나자빠져 있는 다섯 명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허풍개가 침술원에서 챙겨온 삐죽한 침을 꺼내들었다. 바이크 운전자는 그게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사람 몸에 찌르기 딱 좋아보이는 물건임은 알아보았다.

고통에 겨워하던 바이크 운전자의 눈은 이제 불안감과 공포에 물들었다. 그 입이 열렸다.

“항, 복!”

허풍개는 담담하게 말했다.

“정당방위야.”

“이미 무력화됐잖아! 저항 못 하는 상대한테 뭔가 하는 건 정당방위 아니야!”

“그런가.”

뭔가 말하려던 놈의 입이 다물렸다. 그 허벅지에 침이 파고들었다.

대각선으로 찔러넣은 그 침은 굵지 않았지만 그 온몸을 떨리게 하기 충분했다.

진동하듯 몸을 떨며 놈이 겨우 힘을 짜내어 읊조렸다.

“좆되고, 싶······”

찔러넣은 침을 비틀었다. 그러자 그 입에서는 이제 협박 대신 걸쭉한 침이 흘러나왔다.

침을 더 깊이 찔러넣자 더 많은 침이 흘러나왔다. 더 찔렀다간 뼈에 닿을 것이었다.

그러는 대신, 허풍개는 입술을 달싹여 주문을 외웠다. 그리하여 침에 전류까지 흘려 넣자 놈의 가랑이에서 노란 물이 흘러나왔다.

그 눈이 까뒤집혔다.

그것을 포착한 허풍개가 전류를 회수했다. 어둠 너머로 가라앉으려던 놈의 의식이 돌아왔다.

의식과 함께 공포도 돌아온 모양이다. 몸과 함께 그 눈동자가 마구 떨렸다.

그 입이 열려서는 무언가 말하려 했다.

“나······”

그러느라 벌린 입안에 침을 꽂아 넣었다. 입을 마비시켜 소리를 내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허풍개가 다른 침을 꺼냈다. 이미 공포에 물들어 있던 그 눈이 더욱 크게 뜨였다.

놈이 고개를 마구 흔들어 거부의 의사를 드러냈다. 안 돼.

허풍개는 거부를 거부했다. 그 침마저 꽂아 넣고는 아까 벌인 일을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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