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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반로환동전-33화 (33/103)

녹림총채주(綠林總寨主) 구자성 - [1]

만력제는 명국의 13대 황제로, 선천적인 기형이 있어 매사에 고통을 느꼈으며 자기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심각했다.

스승의 죽음 이후 황제의 일을 하지 않고 태업을 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자신을 업신여긴다고 느껴지는 신하들을 마주하기가 싫었을뿐더러, 책상 앞에 앉아 집중하여 정무를 돌보자니 척추에서 전해지는 고통이 방해되었다. 병을 이유로 들어 칩거했다.

태업하는 동안 아편을 탐닉하여 고통을 지웠다. 자연스레 아편에 중독되었는데, 약쟁이들은 으레 성교에도 집착하는 법이다.

만력제는 궁녀들을 모아놓고 정사를 즐기는 일에나 몰두했다.

더 원활한 정사를 치르기 위해 정력을 키우길 원했다.

정력에 좋다는 온갖 음식들을 찾아먹을 뿐만 아니라 방중술을 수련하고자 황궁에 도사까지 초청했다.

예의 도사는 황제에게 방중술뿐만 아니라 도가적인 수행법 또한 가르쳤다. 도인(導引)의 이치에 따라 도가적 무술을 익히게 했으며, 온갖 도가 명문에서 보내온 영약들을 있는 대로 섭취시켰다.

그리고 만력제는 도사조차 기대하지 않던 놀라운 성취를 보였다. 도사가 가르친 모든 무술을 일 년 만에 모두 익혀냈을 뿐만 아니라 기어이 도가의 이상인 환골탈태(換骨奪胎)에 성공했다.

불완전했던 몸이 완전한 형태로 뒤바뀐 것이다.

뒤틀렸던 골격이 새로이 구성됨으로써 기형이 사라졌다. 온몸의 노폐물이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아편 중독까지 사라졌으며, 추한 곱추의 외모에서 당당한 장부의 외모로 거듭났으므로 자신감 또한 회복되었다.

태업한 지 일 년 팔 개월 만에 만력제는 정무에 복귀했다.

수행 과정에서 상단전이 개통되었으므로 그 총기는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웠다. 그 온몸에 감도는 활기는 역대 그 어느 황제보다도 정력적인 집무를 가능케 했다.

이후 수십 년은 영락제의 재위기간을 넘어 진정한 명국의 전성기로 여겨지는 영광스러운 (······)

만력제는 친정에 나서는 일 또한 마다하지 않았다. 임진년 조선을 침공한 왜구를 몰아내기 위한 원정에서도, 이후 벌어진 여진족과의 전쟁에서도 황제가 몸소 총사령관을 맡았으며 단 한 번의 전투에서도 패하지 않았다.

그 어느 신하도 토목의 변을 근거 삼아 황제의 친정을 막아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칼 한 번 휘둘러 바위를 쪼개며, 전설 속 여동빈이 그랬듯 검을 의지만으로 움직이고, 맨피부로 칼과 화살을 받아내도 멀쩡한 황제에게 몸을 사려야 한다는 만류 따윈 조금도 필요하지 않은 것이었다.

민간전설이 으레 그렇듯 지나치게 황당무계한 야사에 따르면, 만력제가 시선을 보내기만 해도 삼천 척 바깥에 진을 친 왜군의 조총이 모조리 터져나갔다고도 (······)

백삼십 세 생일날, 어제까지도 황제로서의 일에 몰두하던 만력제는 자신의 소명이 다했음을 깨달았다.

문무백관과 각국의 사신들이 늘어선 가운데, 중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제는 지상을 떠났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천천히 하늘로 걸어 올랐다.

당시 기록된 바에 따르면, 만력제는 보이지 않는 계단이라도 놓여있는 것처럼 허공을 밟고 걸었다고 했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면서, 저 하늘에 거대한 고래라도 날아다니는 것처럼 저 위를 향해 흥미로운 시선을 보냈다고도.

승천한 만력제는 지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괴력난신을 부정하던 사관들도 이날의 사건을 완전한 거짓으로 여기지는 못했다. 당시 모여있던 각국 사신들의 기록을 교차검증해보았건대, 이날의 사건이 일부분이라도 진실이었음은 명백했다 (······)

*******

그날 창고에서 벌어진 두 절세고수의 싸움은 영상으로 남았다.

무림맹에서는 그 영상을 여러 문파에 전파했다.

무림맹으로서는 절세고수에 천억짜리 고수까지 동원해놓고 실패한 것이 자기네 잘못이 아니었음을 증명해야 했을 것이다.

이쪽의 준비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저쪽이 너무 비정상적이었노라 무림인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이쪽에서 동원해낸 절세고수의 능력 또한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음을 보이기 위해서. 그러니까 조금 더 준비한다면 다음에야말로 희망이 있음을 보이기 위해서였다.

불과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예의 영상은 무림인들 사이에 널리 퍼졌다.

무림인들이 그 영상 속 절세고수들의 능력을 보고 얼마나 감명받았을 것인가? 그것은 이풍의 반응만 봐도 추측할 수 있었다.

또 한 번 영상을 보고 난 이풍이 중얼거렸다.

“형님, 뭐 이리 세지셨소?”

허풍개가 코웃음을 쳤다.

“세지긴.”

“절세고수 중에 4등이라더니 아닌 거 같은데? 총알 세 개 반사하는 건 또 어떻게 한 겁니까?”

“그 짓 했다가 손 이렇게 된 거 안 보이냐.”

“대충 붕대 감고 끝난 게 어디요! 형님 왜 이리 거만해지셨어? 박 회장은 총알도 맨손으로 잡을 수 있을 거라며 부러워하시던 게 불과 몇 년 전인데······”

“새끼가.”

“아무튼 입금된 거 봤어요?”

“봤어.”

“이렇게 많이 번 건 거의 처음 아니요?”

허풍개는 조금 생각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탕 뛰었다고 이백억 넘게 받은 건 처음이긴 해.”

이풍이 웃었다. 그는 무림맹과의 보수 협상을 전담하여 그 보수의 일부를 챙겼으므로 제 형님이 거금을 벌어들인 것은 남 일이 아니었다.

“절세고수 몸값이야 딱히 정해진 것도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얼마를 주든 무림맹 재량이었을 건데, 이번에 상당히 무리해서 준 거 같긴 해요. 아마 형님한테 잘 보이려고 과하게 퍼주는 거 같은데? 다음에도 또 이런 싸움 벌어지면 빼지 말고 나서달라고······.”

이풍이 휴대전화를 들었다. 무림인들이라면 모두가 열 번은 돌려봤을 그 영상이 저장되어 있었다.

이풍은 영상에서 벌어지는 절세고수 둘의 싸움을 감상하더니 중얼거렸다.

“라나 이년, 저번에 봤을 땐 딸년 갖고 협박이나 하니 이런 쌍년이 또 없었는데 말입니다. 지금 보니 이렇게 이쁠 수가 없네요.”

“미쳤나.”

“예?”

“외모만 보면 지 딸이랑 비슷한 기지배한테 어딜······”

“아, 낯짝 말고! 하는 짓 말이요 하는 짓. 이 기지배 하는 행동이 이뻐 죽겠단 말입니다.”

“뭔 개소리냐.”

“왜, 그동안 한국 무림이 지나치게 평화로웠잖습니까? 해외 무림인들은 서로 총질하기 바쁜데 한국 무림인들은 목검이나 들고 다녔죠. 그 목검 들고 잘 싸우지도 않아서 문파 간에 항쟁도 거의 안 벌어졌고요.”

“그게 왜.”

“이게 형님한테 좋은 환경이 결코 아니었어요. 절세고수가 나서서 싸울 필요가 없으면 절세고수인 게 무슨 소용입니까? 그냥 소총이면 충분한데 이쪽에선 핵폭탄을 들고 온 셈이니 취급하기 부담스러울 뿐이었지. 이제야 적이 핵폭탄을 가져왔으니 이쪽 핵폭탄도 존재가치가 생긴 셈입니다그려.”

지금 이풍은 막강한 절세고수 무림공적이 생겼음에 기뻐하고 있었다. 그 강력한 적수의 존재로 말미암아 제 형님의 가치도 덩달아 뛰어오른 셈이라고.

허풍개로서는 아비의 복수를 하려다 패배하고 입원까지 한 오은림을 생각하면 순수하게 기뻐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이번 일이 이득이었음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이풍이 계속해서 말했다.

“그동안 형님이 하는 일이 뭐였습니까. 그냥 건달들한테 상납이나 받다가 웬 무림인이 사고 저지른 다음 찾아와선 살려달라고 졸라대면 돈 좀 받고 도와주는 게 고작 아니었습니까? 이러니까 실력에 비해 쥐뿔도 못 벌었죠. 국뽕대협 그 양반만 해도 형님이 평생 번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었을 겁니다.

내가 말로는 표현을 안 해도 그게 엄청 억울해 죽을 지경이었는데요. 이제야 제대로 대우받으니 얼마나 좋아요?”

확실히, 지금 허풍개는 그 어느 때보다 귀히 대우받고 있었다. 협객으로서 훨씬 이름 높았던 옛 시절에도 이만한 대우를 받지는 못했다.

정말이지 그 영상이 무림에 어지간히도 충격을 준 모양이었다. 저번 싸움을 치른 후, 전국의 문파에서 또다시 이런저런 선물을 보내온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허풍개는 저기 탁자 위에 놓인 선물들을 흘긋 보았다. 무적무적자로서 무림에 데뷔했을 때보다 더한 선물이 지금 사무소에 가득 쌓여있었다.

한편 이풍은 계속해서 영상을 보고 또 보았다.

이미 수십 차례 감상한 영상이지만 아무리 봐도 지겹지 않은 걸까? 그는 더없이 황홀한 표정을 지은 채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휴대전화가 울렸다.

“이풍입니다! 예? 예. 한번 물어보지요, 잠시만······”

통화를 마친 이풍은 허풍개를 보더니 씩 하고 웃었다.

“형님? 기뻐해요. 또 일 생겼어.”

“또 무림맹 연락이냐?”

“예. 지금 와줄 수 있으면 와달라는데요. 그런데 손은 좀 괜찮아요? 일하러 가도 되나?”

“만약 싸울 일 있으면 권법은 무리더라도 BB탄 정돈 날릴 수 있을걸.”

“그럼 뭐 충분하겠네. 얼른 갑시다!”

이풍은 무슨 의뢰가 들어왔는지 설명하더니, 히죽히죽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 행차로 또 벌어들일 돈이 벌써 기대되는 눈치였다.

허풍개가 물었다.

“도혁이는. 이번에 안 데려가나?”

“데려가면 돈 나눠줘야 하잖아요. 이번 일에 그놈 데려간다고 도움 될 것도 아닌데 왜 데려가?”

제자로 삼았으면 제대로 챙겨주란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 모양이다.

제 형님이 보내는 비난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이풍이 변명했다.

“그리고 이번 일은 걔가 좋아할 일도 아니요. 방금 설명 들어서 알잖아요? 이번 일은 진짜 무림 깡패스러운 일이잖아. 도혁이 그 새낀 협객 로망에 취해서는 지 머릿속에서 무림을 미화하고 있어서······”

“됐으니까 가자.”

둘은 무림맹이 부른 장소로 향했다. 꽤 거리가 있었으므로 이풍이 오래 운전해야 했지만, 운전대를 잡은 그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내내 떠나가지 않았다.

차가 멈춘 그곳에는 일단의 무리가 마중 나와 있었다.

무림맹 소속의 무림인들이었다. 허풍개가 차량에서 내리자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허풍개는 그들의 눈길을 신경 쓰지 않는 척, 그러나 속으로는 꽤나 부담스러워하며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어 나갔다.

허풍개의 그 한 걸음 한 걸음을 여기 모인 무림인들이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허풍개가 가까이 다가온 그때, 여기 모인 무림인들은 일제히 허리를 숙여 예를 표했다.

“와주셔서 영광입니다, 대협!”

심지어 무림맹 위원까지 새로운 절세고수를 맞이하러 여기 나와 있었다.

그 얼굴을 본 이풍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 저 씹새끼······.”

고진철이었다.

과거에는 무적비비탄과 악연이 있었으며 몇 달 전에는 크나큰 굴욕까지 겪었으므로 그 누구보다 이쪽을 증오해 마땅할 그 자존심 강한 노인은, 허풍개의 앞에서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고진철은 납작 엎드려 절하면서 애원했다.

“모쪼록 도와주십시오, 대협······.”

그제야 이풍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는 희열에 차 웃었다.

“도와주기 싫은데······ 뭐 설명이나 들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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