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天魔) 라나 - [1]
국뽕대협은 만나본 적도 없는 무적비비탄에게 일종의 라이벌 의식이 있다.
언젠가 국내에서 활동하는 친구에게 이런 식으로 물어보았다.
내가 해외파라서 국내 무림인들은 잘 모르는데, 무적비비탄은 해외에서도 유명하더라. 그래서 그 양반, 대체 뭐 하는 양반이냐? 절세고수가 맞다는 말도 있고 아니란 말도 있던데 대체 어느 쪽이냐?
그랬더니 애매한 대답이 돌아왔다.
“무적비비탄 그 양반, 거의 절세고수급이긴 한데 그렇다고 정말 절세고수는 아닐걸? 절세고수들이랑 꽤 자주 싸워봤다던데, 열 번 싸워서 대충 일곱 번은 비기고 세 번은 졌다고 하니까.”
절세고수에 비해 아주 밀리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동급은 아니란 소리였다.
국뽕대협으로서는 이 평가를 들었다고 정확히 얼마나 강한지 알 수는 없었다. 무적비비탄은 물론 절세고수와도 싸워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절세고수든 무적비비탄이든 얼마나 센 거냐?
이렇게 물었더니 이번에는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무적비비탄이랑 싸워보면 이런 생각이 들 거다. 이 미친 괴물도 이기지 못한다는 절세고수란 것들은 대체 뭐지?”
그래서, 절세고수는?
“그리고 절세고수랑 싸워보면 이런 생각이 들 거야. 이거랑 여러 번 비볐다는 무적비비탄은 대체 뭐지?”
솔직히 자존심이 상했다. 아무튼 너보다는 확실히 세다는 말이 아닌가.
그래서 국뽕대협은 무적비비탄에게 딱히 원한이 없었지만 언제나 그 존재를 의식해왔다.
또한 절세고수들에 대해서도 신경 쓰기 시작했는데, 국뽕대협은 이렇게 생각했다.
내게 그 인간들한테 밀릴 게 뭐냐? 손에서 불 꺼내고 칼에서 매화향기 뿜어대는 게 신기하긴 하지만 그게 뭐 대수냐?
기를 통해 요술까지 부릴 수 있는 걸 보면 절세고수란 인종들의 체내에 흘러넘칠 만큼의 기가 들어있음은 분명한 일이다. 그것만 봐도 그들이 엄청난 고수인 것은 분명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막대한 내공만으로 다 이겨 먹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왜, 아편전쟁 당시에 전열보병에 돌격한 절세고수가 죽은 전례도 있지 않은가. 그걸 보면 내공이 많거나 요술을 부릴 수 있다고 해서 무적인 것은 절대 아니요, 기술과 무기의 차이가 있다면 요술을 부리지는 못하는 자신도 그네들을 충분히 이길 자신이 있다.
평소에 그리 생각해왔기 때문에, 그리고 언젠가 기회가 되면 잘난 절세고수의 머리에 총알구멍 하나 뚫어주겠노라 마음먹고 있었기 때문에, 국뽕대협은 절세고수와 싸울 수 있다는 이번 싸움에 망설임 없이 끼어들었다.
가능하면 혼자서 미리 맞붙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국뽕대협은 도와달란 요청이 오자마자 저 먼저 뛰쳐나갔다.
컨테이너 창고를 향해 힘껏 달려가며 이번 작전에 대해 생각했다.
총기를 구매하는 척하며 가능하면 그 자리에서 총을 손에 넣고, 그 수작이 안 먹히더라도 일단 포위해서 덮치자는 간단한 작전이던가?
무전기의 다급한 목소리를 보니 작전대로 되지 않았나 보다.
뭐 그래도 일단 몰려온 숫자가 많으니 시간을 끌고는 있겠지. 이제 자신이 가서 거들어주면 된다.
국뽕대협은 컨테이너 창고에 안에 들어섰다.
그리고 들어온 장면에 잠시 자기 눈을 의심했다.
아군은 이제 없었다.
스물네 명의 하수들이 먼저 진입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 컨테이너 안에는 서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다들 신체 어딘가에 피를 흘리면서 쓰러져 있었다.
그 와중에, 양복을 입은 소녀 한 명만이 평화롭게 창고의 중심에 앉아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지원요청이 오면 언제든지 도울 수 있도록, 세 명의 고수는 이 컨테이너와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리고 국뽕대협은 여기 헐레벌떡 달려왔다. 만약 싸움이 벌어졌다 한들 그 싸움의 시간은 일 분도 넘어갈 수가 없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일 분만에 죄 쓰러뜨렸다고?
절세고수라고 해서 손이 여러 개인 건 아니다. 그걸 생각하면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그럴 순 없는데.
심히 당혹스러운 상황이지만 국뽕대협의 몸은 굳지 않았다. 생각보다 먼저 몸이 반응했다.
품에 넣어둔 총을 꺼내어 격발했다.
그 과정은 0.3초 만에 끝났다. 음속보다 빠르게 날아간 총알은 정확히 소녀의 몸을 향하여······.
몸이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어······ 으.”
국뽕대협은 멍하니 고개를 내려보았다. 자신의 허벅지가 뚫려있었다.
피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국뽕대협은 이 와중에도 투쟁심을 발휘했다.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건 없건 총을 마저 쏘려고 했다.
그리고 들고 있던 총이 폭발했다.
장전된 총알이 폭발하면 앞으로 쏘아질 법도 한데, 그렇지 않았다.
그 폭발은 총기매니아로서도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손에 든 권총은 마치 수류탄이라도 된 것처럼 요란하게 폭발했다.
폭발에 밀접한 국뽕대협의 손도 멀쩡하지 않았다.
“아으, 아으아그악!”
땅을 구르는 국뽕대협의 손은 넝마가 되어있었다.
국뽕대협이 컨테이너 창고에 들어온 지 약 이 초 지난 순간이었다.
그리하여 다음 순간, 컨테이너 창고에 진입해온 고수 두 명은 비명 지르는 국뽕대협과 곳곳에 쓰러져 피를 흘리는 스물네 명을 보고 당혹했다.
“대체 뭔······”
오은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허풍개도 이 장면을 보고는 심히 당황했지만 그것을 내색하지는 않았다.
태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총 판다더니, 총 쐈나?”
웃고 있던 라나가 대답했다.
“그쪽이 쐈어요. 어디서 신성한 무림에서 총질이야?”
“뭔 소린진 모르겠고, 부상자 치료부터 하고 싶은데. 괜찮나?”
“싫어요.”
“그러지 말고. 상태 심각한 이 양반이라도 먼저 치료하게 해줘요. 내가 신경 쓰여서 못 싸울까 봐 그래.”
라나가 웃었다.
“그렇다면야, 뭐.”
허풍개는 바닥에 주저앉아 국뽕대협을 살폈다. 그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침을 놓으면서 허벅지의 사입구를 보고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총을 쏜 적이 없다고? 이건 아무리 봐도 총 맞은 흔적인데.
물론 물어본다고 대답해줄 것 같지는 않았다. 묵묵히 치료를 마치고는 국뽕대협을 벽에 기대게 하더니,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끝났어요?”
“예.”
라나 또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오세요.”
라나가 자비롭게도 웃었다. 허풍개는 장갑을 벗어 던져 결투를 표시하는 척하면서, 탁.
기습적으로 주머니에 든 BB탄을 쏘았다.
무림 절기로 통하는 탄지신공, 허풍개의 뒤에 서 있던 오은림은 날아가는 그 탄환을 눈으로 볼 수 없었다.
장갑을 끼고 있을 때 그 BB탄의 탄속은 강속구보다 좀 빠른 수준이라던가? 그러나 저것은 그 정도 속도가 결코 아니었다. 장갑 하나 벗었다고 이렇게 속도가 오르는 게 말이 되나?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 투사체에 맞서, 라나는 피하거나 쳐내려 하지 않았다.
라나의 양손이 기묘한 움직임을 그렸다. 무슨 동작인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아무튼 공격적인 동작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허풍개는 명백히 방어 동작을 취했다. 허풍개의 손이 빠르게 움직이더니 날아온 무언가를 낚아챘다.
오은림이 흘긋 보니, 방금 허풍개가 날렸을 BB탄이 허풍개의 손에 도로 잡혀있었다.
허풍개의 손이 얼얼했다. 무심결에 중얼거렸다.
“건곤대나이?”
라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싸우는 중에 입 여는 취미는 없는 모양이다.
라나가 그저 웃는 가운데, 허풍개는 속으로 생각했다.
대체 어떻게?
방금 본 기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건곤대나이, 칼이든 화살이든, 받은 그대로 돌려주는 기술이던가.
소설에서 본 적이야 있지만 실제 가능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 기술이다.
그걸 직접 보다니. 충격적인 일이었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다.
허풍개는 방금 그 일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다시 주머니에 잡힌 BB탄을 쏘았다.
‘탁’ 소리와 함께 날아간 BB탄은 천장과 벽에 부딪혔다. 그리고 무림에서 악명 높은 기괴한 도탄을 그렸다.
과연 이마저 고스란히 돌려줄 수는 없는 모양이다.
라나는 슬쩍 몸을 움직여 피해야 했다. 그리고 바닥에 부딪친 BB탄은 다시 튕겨 예의 마법적인 도탄을 보이기 시작했다.
“오······”
라나는 감탄사 비슷한 소리를 내더니, 파리를 잡듯 손을 휙 움직였다.
그녀를 향해 날아가던 BB탄이 붙잡혔다.
그렇듯 라나의 팔이 방어에 쓰이느라 움직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 즉시 오은림이 공격에 나섰다.
몸값 백육십억짜리 고수의 찌르기는 과연 일품이었다.
문자 그대로의 신검합일(身劍合一). 깊게 숙인 그녀의 허리는 검과 일체였다. 그리 허리를 앞으로 내밀면서 팔 또한 저 멀리 뻗었다. 검은 가능한 멀리, 빠르게 쏘아졌다.
그리고 라나의 검지와 중지에 잡혔다.
“어······”
오은림이 당황하던 그때, 허풍개는 또 한 번 BB탄을 날리는 동시에 본인도 뛰쳐나갔다.
기를 잔뜩 담은 손바닥을 펼쳐 라나의 등에 날렸다.
이마저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일까.
그제야 라나는 무기를 사용했다. 허리에 차고 있던 나무 지팡이를 손에 쥐었다.
목혼이라고 했던가? 그녀는 그 나무 지팡이를 바닥을 향해 툭 하고 던졌다.
땅에 부딪힌 나무 지팡이는 바닥에 튕기더니, 거추장스러운 나무 뚜껑을 떨쳐냈다.
72cm짜리 삐죽한 칼날이 드러났다.
역시나 소드스틱(Swordstick)이었다. 제대로 된 병기라기보단 호신 겸 기습용 무기에 가까운 물건이지만 얕볼 수는 없다.
아무렴 맨손으로 싸우는 이쪽보다는 낫겠지.
허풍개의 손바닥에 맞서 라나가 소드스틱을 휘둘렀다.
그 얇고 짧은 칼날이 허공을 한 번 젓자 허풍개의 전진은 가로막혔다.
고수의 동작은 언제나 여러 목적을 한 번에 이루는 법이다. 방금 날렸던 BB탄마저도 그 한 번의 칼질에 함께 가로막혔다.
찍, 하는 소리가 나더니 BB탄은 반으로 갈라져 땅에 떨어졌다.
금속이 잘렸단 사실에 놀랄 여유는 지금 없었다.
허풍개는 거리를 내주지 않기 위해 바짝 달라붙었다.
본격적인 태극권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그 양손이 물과 같은 유려한 곡선을 그리면서 라나의 주변을 맴돌았다.
반대편에 있는 오은림도 놀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뒤떨어지는 실력이나마 보탬이 되기 위해 멀리서 필사적으로 칼을 찌르고 또 찔렀다.
그 양쪽에서 덮쳐오는 공격을 라나는 칼 한 자루로 막아내고 있었다.
챙, 탁. 칼을 한 번 휘저어 두 명의 공격을 방어했다. 찔러오는 오은림의 칼을 옆에서 쳐 밀어버리더니, 그 동작 그대로 허풍개에 반격했다.
허풍개는 뻗던 손바닥을 급히 회수했다.
손바닥을 스치듯 베고 지나간 칼날의 느낌이 스산했다.
불쾌한 교환을 마친 허풍개는 생각했다. 저게 대체 무슨 검술인가?
화산파 검술? 아니다. 유럽식 스몰소드 검술? 그것도 아니다. 그 형식조차 알아볼 수가 없다.
낭패스럽다. 무슨 검술인지 알고 다음 동작을 예상해야 손으로 칼에 맞서는 기행이 가능한 것인데. 아무리 봐도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어서, 오은림에게 신호했다.
‘지금 동시에.’
오은림이 알아듣고 대응했다. 둘이서 동시에, 가운데에 놓인 라나를 향해 칼과 주먹을 뻗었다.
그리고 라나가 경쾌하게 휘두른 소드 스틱은 이번에도 단 한 번의 궤적을 그림으로써 양쪽의 공격을 방어했다.
그것만 봐도 소드 스틱이 휘둘러지는 속도가 소름 끼치게 빠르단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정작 그것을 휘두르는 라나 본인에겐 몸을 빨리 움직이는 기색이 없다.
두 손으로 네 손을 감당하려면 손이 어지러워질 법도 한데 다급한 기색도 없다. 라나는 그저 여유롭다.
그것을 본 허풍개는 근접전을 이어나갈 생각을 버렸다.
두 명이란 이점을 살릴 생각이었지만 그냥 포기해야 할 것이다. 애당초 자신은 근접전에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은림에게 외쳤다.
“멀리 빠져!”
오은림이 뒤로 물러나는 걸 확인하기 무섭게, 허풍개 또한 뒤로 펄쩍 뛰었다.
그리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는 무언가를 던졌다.
날아간 BB탄은 천장에 부딪쳤다.
“음?”
라나는 도탄을 대비하려는 눈치였지만, 이번에 BB탄은 예의 도탄을 그리지 않았다.
낚싯줄을 꿰어둔 BB탄이었다. 반대편에는 금속 추가 달려있었다.
천장에 부딪친 BB탄이 회전했다. 그에 따라 BB탄에 연결된 실은 천장의 조명에 엉켰다.
컨테이너 창고를 가로지르는 줄 하나가 생겨났다.
허풍개는 연달아 비슷한 BB탄을 던졌다. 휙, 휙 던질 때마다 줄 한 줄기씩 뻗었다.
펼쳐진 줄들은 순식간에 방을 여러 구획으로 절단하듯, 컨테이너 창고 여기저기에 연결되었다.
허풍개가 부드럽게 땅을 박찼다.
그 발은 도로 바닥에 닿지 않았다. 방금 창문에 연결된 실을 밟았다.
낚싯줄은 별로 단단하게 고정된 것이 아니었지만, 절세의 경지에 이른 경공(輕功)은 줄이 주인의 무게를 잊게 만들었다.
또 한 번 도약하자 더 높이 연결된 실에 발이 닿았다.
허풍개는 공중의 실 위에 서서, 양손에 주머니를 넣고는, 양손에 잡힌 BB탄을 동시에 날렸다.
동시에 발사된 두 개의 BB탄은 각각 반대쪽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예상할 수 없는 궤도로 표적을 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