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세기 반로환동전-19화 (19/103)

중학생 이바람 - [3]

여전히 일렁이는 불꽃을 보며 허풍개는 생각했다.

‘옛날에 본 삼매진화는 병뚜껑 크기였는데······’

혹시 마술사가 부릴 법한 속임수가 아닌가, 하는 의심은 불가능했다.

지금처럼 기를 사용하는 와중에도 기를 숨기지는 못하는 걸까. 비로소 그녀의 체내에 깃든 기가 보였다.

보이는 대로 말하자면, 그녀의 혈관에는 혈액 대신 기가 흐르고 있었다.

머리부터 발 끝에 이르기까지, 온몸의 혈관에 기가 흐르고 있었다. 혈액보다 많은 기가 혈류보다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피 대신 기가 흐른다는 것은 물론 과장이다. 실제로는 적혈구가 부지런히 산소를 운반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허풍개가 보기에는 정말 그래 보였다. 그녀의 몸 어디를 봐도 기가 있었다. 놀라울 만치 정순하고 자연스러운 기의 흐름이 몸 전체에 퍼져있었다.

저와 같은 기의 권화(權化)는 태어나서 딱 한 번 보았다.

최고의 재능을 타고나 황실의 지원을 받은 끝에 탄생한 절세의 고수. 일찌감치 스승을 넘어버린, 허풍개의 옛 제자. 그녀의 체내 기(氣)가 바로 저랬던 것 같다.

그리고 절세고수가 된 지금조차 허풍개는 그 옛 제자를 이기거나 맞먹을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면 눈앞의 소녀 또한 이길 수 없는 것일까.

저 소녀의 나이를 가늠해보았다. 물론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자신과 비슷하거나 많을 것 같지는 않았다. 젠장.

허풍개는 속으로 탄식했다.

이 순간, 허풍개가 느낀 것은 눈앞의 절세고수가 자신보다 강하다는 데서 온 위기감이나 열등감 따위가 아니었다.

지금 허풍개의 마음에 가득 찬 감정은 수치심이었다.

애써 키운 첫 제자가 스승을 능가해버렸을 때도, 웬 기업 회장이 마흔의 젊은 나이에 절세의 지경에 이르렀을 때도, 태어나 공덕이라곤 쌓은 적이 없었을 산적 놈이 절세고수랍시고 나타났을 때도 느낀 지긋지긋한 수치심.

자신의 지난 세월은 실로 보잘것없었다는 부끄러움이 허풍개를 채찍질하고 있었다.

보라, 세상에는 저렇듯 하늘에서 내린 존재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그러나 그들중에서도 하늘에 닿아 영원을 손에 넣은 자는 거의 없었다.

이 와중에 너 따위가 여유를 부려도 될쏘냐? 지금 하는 노력이 충분하다고 자만해도 될쏘냐?

수련하지 않고 딴짓하는 시간을 줄여야 하리라. 자는 시간도 줄여야겠다. 지금도 고작 네 시간 잠들 뿐이지만 이제는 한 시간쯤 더 줄여야 마땅할 것이다.

그리 노력하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죽을 뿐이다. 썩어 널브러져 땅의 비료가 되어서는 누군가의 똥이 되어버릴 뿐이다.

지독한 수치심과 거기에서 비롯된 위기감을 허풍개는 애써 숨겼다.

표정을 관리하고, 목소리를 평탄하게 유지했다. 이 또한 신선 수행의 일부 아닌가. 수행은 그 어느 순간에도 중단할 수 없다.

허풍개가 애써 태평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스카우트하러 오셨다고.”

라나는 아직도 유지하고 있던 불꽃을 없애면서 대답했다.

“그래요.”

“왜?”

“절세고수가 탄생했는데 당연히 포섭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군으로 만들어야 적이 되지 않을 거잖아요.”

아군이 되지 않겠다면 적으로 간주하겠다는 뜻일까?

“거절하면 이 자리에서 싸울 겁니까.”

“아니요? 설득이나 계속할래요.”

“설득을 해봤자······”

허풍개가 탐탁잖아 했지만 라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뻔뻔하게도 그놈의 설득을 시작하는 게 아닌가.

“무적비비탄 선생님께선 돈을 많이 못 버셨죠? 절세고수치고는 아예 못 버는 거나 다름없다고 들었어요. 일을 너무 가리시기 때문이라던데, 맞나요?”

“그랬죠. 제자인 저도 그렇고.”

“살인은 당연히 안 되시구요?”

“절대 안 됩니다. 공과에서 오백 점이 깎이는 거라서.”

“마약 유통에 관련된 일도?”

“누군가를 약물에 중독되게 하는 건 이백오십 점 감점이요.”

“유흥업 관련은요? 도교엔 방중술도 있겠다, 성에 그리 꽉 막혀 지낼 필요는 없을 텐데?”

“그건 그냥 내가 싫어해서. 공과격에 안 적혀있어도 감점될 것 같더군요.”

“음, 공과 관리? 그거 하는 도사들은 요새 별로 없던데. 요즘 도사들은 도관 나가면 고기도 실컷 먹고 그러잖아요. 대체 왜 혼자서 까탈스럽게 그러는 거예요?”

“다 저 잘 되자고 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걸 굳이 해야 할까요?”

라나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만력제를 보세요. 백삼십 살까지 살면서 도가에서 하지 말라는 짓 막 했잖아요? 도가에서 방중술을 가르칠 때 접하되 흘리지 말라는데, 만력제 그 오빠는 궁녀들이랑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막 놀아댔죠. 피가 있는 것을 먹지 말랬는데 고기 막 먹었고요. 병(兵)을 일으키지 말고 사람 죽이지도 말랬는데 병사 부려서 사람 잔뜩 죽였지요. 그런데도 각국의 사신들 보는 앞에서 멀쩡히 승천했잖아요?”

“만력제는 백삼십 살까지 쉬지 않고 나랏일에 힘쓴 중화 최고의 명군 아니었습니까. 그 공로가 하늘에 닿았으니 공(功)이 과(過)를 덮었겠지요.”

라나가 웃었다. 순진하고 해맑은 웃음, 그러나 선생이 학생을 보며 웃는 듯한 웃음이었다.

“하늘에서 인간이 뭐 하는지 신경이나 쓸까요?”

“무슨 말이 하고 싶습니까.”

“하늘이 왜 중요하겠어요?”

“도가에서는······”

“도가에서는 인간의 운수와 수명이 평소 행실에 좌우된다고 말하죠. 착한 사람은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고, 일찍 죽은 사람은 평소 행실이 나빠서 불행이 닥쳐온 거라고 말해요. 그걸 믿나요?”

허풍개는 부모와 새끼와 스승의 죽음을 생각했다. 젊은 나이에 불운하게 죽은 그들.

“아니요.”

“그렇죠. 장례식장에 가서 말했다간 뺨 맞기 딱 좋은 소리잖아요. 그런데 왜 스스로 믿지도 않는 걸 지켜요?”

“그걸 지켰기에 지금 이 부족한 성과라도 이룬 것 아니겠습니까.”

“그 반대 아닐까요? 제가 보기엔 그걸 지켜서 지금 성과가 부족한 것 같은데. 아, 절세고수의 경지가 부족하단 건 아니고요. 물론 대단한데, 지금보다 더 대단할 수도 있었단 거죠!

예를 들어, 이 일 저 일 가리지 않고 막 맡아서 떼돈을 벌어서는 그 돈으로 영약을 배부르게 먹었다든가······.”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지 슬슬 알 만했다. 대충 이런 주장일 것이다.

그리 까탈스럽게 일을 가리면서 받으면 영약을 제대로 못 사먹는다. 그러면 오히려 수행에 지장이 올 뿐이다. 거기서 성취를 더 이루고 싶거든 악한 일이라도 가리지 않고 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 사악한 나와 어울려서 같이 일하자.

허풍개는 눈살을 찌푸렸다.

“도교에 대해 절 가르치려 하시지만, 도사도 아니면서 그러시는 건······.”

“아, 저 마법사랑 도사 듀얼클래스예요! 도가 수련 좀 했어요. 내공도 현문정종 태허무량심법(太虛無量心法) 익혔고요.”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백련교라는 게 본디 불교와 마니교에 이어 도교까지 섞인 종교 아닌가.

그래서 마교의 구성원들은 불가의 수련을 하기도, 도가의 수련을 하기도 한다.

거기에 자기네만의 광적인 수련법을 섞으면 마공(魔功)이 될 뿐이다. 불교적인 수련 중에 무념무상을 이루겠답시고 마약을 잔뜩 복용하여 머릿속을 비워버리는 엽기적인 방식들.

하지만 눈앞의 소녀에서는 그런 왜곡된 수련을 하면 필시 쌓이게 마련인 혼탁한 기운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정순한 기운, 체내에 가득한 원기(元氣)만이 보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정말 제대로 도가적인 수양을 쌓은 것일까? 도사로서도 자신보다 더 높은 경지에 이른 것일까?

수치심이 더욱 커지는 가운데, 라나가 싱긋 웃더니 양복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내밀었다.

“그리고 이건, 도가 수련에 최고로 도움되는 물건인데요!”

공기가 잘 통하는 재질의 목재로 만들어진 작은 상자였다. 흔히 이런 함에는 영약을 담곤 했다.

과연 그랬다. 라나가 자신이 내민 물건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다.

“자하단(紫霞丹)이에요. 화산파에서 일 년에 딱 세 개만 연단해내는 단약이에요. 마교에서도 없어서 못 먹는 물건인데······ 선물!”

허풍개는 그 약이 몹시 탐났지만, 마교 수괴의 선물을 받아들일 마음은 없었다.

“뭘 주신들 마교에 투신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 동맹이 되는 일도 말입니다.”

“어, 이건 아군 되라고 드리는 거 아니에요!”

“그럼 뭡니까.”

“뇌물이에요! 우리 사이좋게 지내요. 한국 무림인들은 서로 싸우면 손해니까 그냥 친하게 지내던데요? 우리도 그러자구요.”

그리 말한다고 순진하게 받아들일 용기 또한 없었다. 받았다간 무슨 뒤탈이 있을 것인가?

“그래도 안 됩니다. 도로 가져가세요.”

허풍개가 목함을 밀었더니 라나가 마주 밀었다. 그러면서 말했다.

“돌려주면 안 돼요. 그럼 큰일나.”

“지금 뭐하자는······”

라나는 뒤에 서있던 이풍을 바라보며 웃었다.

“아저씨, 딸 있죠? 이름 예쁘던데. 바람이······.”

이풍이 눈을 부릅떴다. 저게 뭘 암시하는 것인지 못 알아들을 수야 없다.

라나가 다시 허풍개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목함을 내밀었다.

“드세요.”

바로 앞에 놓인 목함을 허풍개는 뚱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말했다.

“협박에 굴복하느니, 후환을 없앨 더 좋은 방법이 있는 것 같은데.”

라나는 여유로워 보였다. 앉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거나 자세를 바꾸지도 않았다.

“싸우시려구? 좋아요.”

허풍개는 이풍에게 눈짓했다. 이풍은 그 신호를 알아듣고는 조심스레 몸을 움직였다. 라나는 그것을 보면서도 막지 않았다.

싸움이 벌어지려는 이 상황, 허풍개는 생각했다.

이길 수 있을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순식간에 지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몇 분은 싸움을 이어나갈 자신은 있다. 지금 이 경지에 이르지 못했을 때도 절세고수들과 싸워서 그 정도는 버텼지 않은가.

절세고수 둘의 싸움에 이풍이 도움은 안 되겠지만, 시간을 끄는 동안 이 자리에서 빠져나갈 순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림맹에 연락해서 지원을 부르면······.

복도에서 발소리가 울렸다. 이도혁이나 박성철?

아니, 그 몸무게의 절반쯤 되는 발소리였다.

제기랄.

“나 왔어!”

제 딸을 본 이풍이 기겁했다.

허풍개도 그 비슷한 표정을 지은 모양이었다. 이바람은 두 남자의 표정을 보더니 불만스레 말했다.

“왜 그렇게 표정이 띠꺼워? 나 안 반가워?”

그리고 라나가 웃었다.

“나는 반가워요!”

이바람은 라나를 보더니 눈을 휘둥그레 떴다.

“와, 씨. 디게 이쁘네. 언니 누구야?”

“천재 마법사예요! 유튜브 해요!”

“마법사? 유튜브에서 마술해? 개쩌네, 언니 돈 많이 벌겠다!”

“맞아요, 엄청 벌어요! 마술 보여줄까요? 화이아 보ー루!”

라나의 손가락 끝에서 또다시 삼매진화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 화구의 크기는 아까보다도 더욱 커 보였고 더욱 위험해 보였다. 만약 휙 하고 날리기라도 한다면 소녀 하나 불태우기는 충분할 만큼.

이바람이 쩌네, 미쳤네 하면서 호들갑을 떠는 동안 라나는 속삭였다.

“안 드세요?”

이 상황에 이풍은 미칠 지경인 듯했다. 딸을 신경써야 할 것인가, 아니면 양아버지를 신경써야 할 것인가. 얼굴에서 마구 흘러내리는 땀만 봐도 그 갈등을 알 수 있었다.

허풍개는 계속 고민하게 내버려 두지 않기로 했다.

한숨을 푹 내쉬더니, 목함을 열었다. 그리고 삼켰다.

라나가 만족스레 웃었다.

“억지로 먹인 거니까 빚으로 생각 안 해도 돼요! 억지로 먹였다고 원한은 가지지도 말고요. 진짜 좋은 거 줬으니까.”

이 상황에 이풍은 안심하는 한편 불안해했다.

“괜찮아? 독 든 거 아니요?”

이풍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라나는 그마저 들었다.

“괜찮아! 비싼 거에 이상한 거 안 집어넣어요!”

확실히 그런 것 같았다.

허풍개는 단약을 먹자마자 느낄 수 있었다. 몸을 타고 흐르는 기를 느끼고는 전율할 지경이었다.

숨을 헐떡이고 싶은 걸 애써 참으며 물었다.

“왜 이런 걸? 나 말고도 포섭할 고수는······”

“내가 절세고수 꼬시려구 여기에만 왔을까요?”

허풍개가 입 다문 가운데 라나가 계속 말했다.

“그리고 사실, 딴 절세고수들은 안 꼬시더라도 오빠는 무조건 꼬셨을 거예요.”

“미안하지만, 난 그리 대단한 고수가 아닙니다. 포섭할 가치도 없는데요. 절 잘 모르시겠지만······”

그리고 라나가 말했다. 허풍개에게만 들릴 만치 작은 목소리로.

“알아요. 허풍개 오빠잖아요.”

허풍개는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라나는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자기 하고 싶은 말을 계속했다.

“내가 보기에 오빠는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이에요. 정말 높이 평가해요. 보니까 인맥도 많던데, 혹시라도 목 따버리면 나랑 싸울 고수가 하나 줄어드는 게 아니라 새로 생겨나겠더라구.

그래서 죽일 수 있어도 안 죽이려고요. 그 손녀쯤 되는 아가씨도 절대 안 건드릴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이바람은 여전히 라나가 만들어낸 불꽃을 보며 좋아하고 있었다. 허풍개는 그 소녀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래야 할 겁니다.”

라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길었네요. 슬슬 몸에 열 오르죠? 약에 기가 엄청 들어서 그래요.”

“그렇군요.”

“들어가서 몸에 녹여요! 마나통 더 늘려서 제대로 된 번개 마법사 돼야죠. 빨리 체ー엔 라이토닝구 익혀서 저랑 파티 맺고 다녀요. 마법사는 원래 사기 직업이라서 한 파티에 둘 있어도 괜찮아요.”

그리 말하더니 라나는 사무소를 나섰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풍은 그녀를 경찰 혹은 무림맹에 신고하려다 그만두었다. 어차피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아까 보면 얼굴까지 바꾸던데, 정말 마법사를 자처할 만한 실력이 있지 않던가.

이풍은 이바람을 바라보고는 한숨쉬었다. 그리고 허풍개에게 고개를 깊이 숙였다.

“미안합니다. 내가 집에 돌아가면 저년을 아주······”

“애한테 화풀이하지 마라. 어른들이 못나서 그런 거 아니냐. 영약 소화시키게 호법이나 서.”

허풍개는 작은 방에 들어섰다. 이바람이 눈치 없게도 물어왔다.

“나 무공 배우러 왔는데, 안 가르쳐줄 거야?”

이풍은 화를 참으며 딸을 달랬다.

“저 친구 지금 아파서 그래. 여기, 용돈 줄 테니까 떡볶이 먹으러 가.”

“신사임당? 감사함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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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사는 수행하기 위해 영험한 약을 복용해야 한다. 그것은 금단파로부터 시작된 수련법이요, 내단술의 형태로 발전되어 현대까지 내려온 수련법이기도 하다.

몸에 깃든 영약의 기를 녹여내기 위해, 허풍개는 복기도인(服氣導引)을 시작했다.

호흡을 반복하여 약에 깃든 정순한 기운을 체내에 받아들였다.

그로써 비루한 몸은 천지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기, 원기에 더욱 가까워진다. 그리하여 천상의 신들과 더욱 동일해진다. 기(氣)와 신(神)은 근본적으로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흡수해낸 원기를 연료 삼아 존사를 시작했다.

체내신들을 활성화하는 과정은 예전과 같지만, 두 달 전부터는 내면에 깃든 번개를 키워내는 작업이 추가됐다.

허풍개는 자신의 내면을 보았다.

시커먼 소우주가 보였다.

소우주의 중심에 조그마한 번개가 내리치고 있었다. 그것은 자연의 현상을 기를 통해 본뜬 것이지만, 근본적으로 체내신과 같았다. 그 번개는 허풍개의 기 그 자체요, 앞서 말했듯 기와 신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 번개를 키워내는 것은 자신만의 신을 키워내는 것과 같은 셈이었다.

예의 번개에 정신을 집중하여 존사했다. 아직 몸에 다 녹여내지 못한 기를 번개에 불어넣었다.

기를 받아들인 번개는 더욱 커져나갔다······.

맙소사, 양분으로 불어넣은 기가 예상보다 훨씬 컸던 모양이다.

내면에 생겨난 번개는 더욱, 더욱 커졌다. 그리고 현실에 투사할 수 있게 된 번개 또한.

허풍개는 영약의 흡수를 마친 뒤 방을 나섰다.

문 밖을 지키고 서있던 이풍이 걱정스레 물어왔다.

“그래서, 어때요? 몸에 이상 없어요?”

“없어.”

“와, 진짜 약 준 거야? 그래서 성취는 좀 있고요?”

허풍개는 설명하는 대신 보여주었다.

손가락 끝에 번개를 상상하자, 내면의 번개가 현실에 구현되었다.

허풍개의 손가락 끝에 나타난 전류를 보며 이풍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이제는 스파크라고 부르기 어려울 전기. 훨씬 굵고, 훨씬 길다란 번개가 그 손끝에서 번쩍이고 있었다.

일찍이 허풍개가 이뤄내지 못한, 놀라울 만치 빠른 성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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