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허풍개 - [3]
불과 오 분도 되지 않아 일련의 파괴 공작은 끝났다. 다섯 명은 예의 주택을 향해 나아갔다.
“차량 블랙박스는요? 그것도 다 부술 거예요?”
이도혁이 더듬거리며 묻자 이풍이 대답했다.
“진짜 맘 독하게 먹으면 그럴 수도 있지. 고작 깡패 새끼 하나 때려잡으러 가는 데 그럴 필요까진 없고.”
거침없이 나아간 끝에 네 명은 예의 주택 앞에 섰다.
문은 잠겨있었지만 상관없었다. 이 층 창문이 열려있었으니까.
허풍개는 벽돌 틈을 마치 계단처럼 사뿐사뿐 밟으면서 위로 올라갔다. 순식간에 창문 안으로 침투했다.
사라져가는 허풍개의 뒷모습을 박성철은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게 대체 뭔가. 무림인이 은밀 행동을 잘한다는 것쯤은 대충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상상 이상이다.
이런 식이면 도시 한 복판에서 사람 하나 잡아 죽여도 잡을 수 있기나 한가?
없을 것 같다. 경찰이건 과학수사대건 절대 알아챌 수 없을 테니까.
오싹했다. 그동안 법의 보호를 받으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아닌 것 같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무림 고수의 능력을 보니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 아닌가. 집에서 자는 중에 납치당해 야산에 파묻혀도 그 사실을 아무도 밝혀내지 못할 것 같다.
한편 이풍은 이 모든 것이 익숙한 모양이었다. 허풍개의 다음 행동을 기다리는 동안 이풍은 여유롭게도 말했다.
“맨날 이러진 못해. 이런 식으로 증거 다 없애놔도 누가 그랬는지가 뻔하면 어떻게든 잡아넣으려고 기 쓸 거 아니겠냐? 경찰이랑 그런 식으로 실랑이하면 무조건 손해니까 경찰 안 빡치게 적당히 이래야지.”
“지금은요? CCTV까지 죄다 부쉈는데 괜찮을까요?”
“뭐, 괜찮아. 전 세계에 이런 짓 할 수 있는 양반은 무적비비탄 그 양반뿐이라 알려졌거든? 지금은 갇혀있다고 알려져있고······”
문이 열렸다. 열린 문틈으로 허풍개가 손짓하고 있었다.
“자, 자. 들어가!”
이풍의 인도하에 네 명은 표적의 집에 발을 디뎠다.
당연히도 집주인은 이미 제압되어 있었다. 무릎 꿇은 채 이를 악물고 있는 그 남자를 네 명이서 마구 두들겼다.
폭행을 마치고 난 뒤, 허풍개가 말했다.
“부적 사.”
남자는 소리 지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것 같았다. 목에 침이 꽂혀있었다. 그 침이 목소리를 제한하는지, 남자는 겨우 들려오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뭔 부적······.”
허풍개가 예의 부적을 꺼내 들었다. 그 가격을 말했다.
“칠십만 원. 현금으로 내.”
남자는 돈을 줘서라도 이 상황을 넘기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힘겹게 입을 열었다.
“칠십만 원 주면 돌아가는······.”
허풍개가 고개를 저었다.
“매달 사.”
“매달?”
“안 사면 큰일나.”
지금 허풍개는 매달 칠십만 원씩 수금하겠노라 말하고 있었다. 그러지 않으면 큰일이 나게 해주겠노라고.
남자의 안면에 분노가 떠오르려다 말았다. 이풍이 그 머리를 걷어 찼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남자는 정신이 혼미한지 대답하지 않았다. 이풍은 두 번 더 걷어찼다.
“이해되지?”
부하직원들도 서로의 눈치를 살피다가 자기네 사장을 따라 했다. 남자를 차고, 차고, 또 찼다.
잠시 후 남자는 다섯 명 앞에서 벌거벗은 채 무릎 꿇게 되었다. 자기 집 안에서. 가장 아늑하고 안전하다고 여겼을 공간에서 처참하게 유린당해버렸다.
“아침에 신고했을 때, 얻어맞은 흔적 없다고 경찰이 그냥 돌아갔지?”
이풍이 남자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이런 일름보가 다 있나.”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이제 우리 떠나면 파출소 달려가. 바로 꼰질러. 그리고 어떻게 되는지 한번 봐, 응?”
그러고 나면 남자는 집은 물론 법조차 자신을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상식이 깨져버리는 공포 속에서 깨닫게 될 것이다.
박성철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 상황에 자신을 이입한 나머지 몸을 떨었다.
*******
다음 날 오후, 남자는 이풍의 사무소에 찾아왔다. 칠십만 원이 든 봉투와 함께.
이풍이 말했다.
“매달 15일에 내는 거다. 늦으면 이자 붙어. 더 늦으면 찾아갈 거고. 알겠냐?”
남자는 무릎을 꿇은 채 깊이 숙인 머리를 끄덕였다.
남자가 떠나간 뒤 이풍은 투덜거렸다.
“새끼, 결국 경찰에 안 꼰질렀네. CCTV 괜히 부쉈다. 동네 건달들이 그만 깝치라고 말해줬나?”
한편 칠십만 원이 든 봉투 앞에서 부하직원 셋은 질려있었다.
어제 일은 잔혹할 만치 범죄적이고 폭력적이었다. 자신들이 폭력에 익숙하다 생각한 세 명이 느끼기에도 두려운 일이었다.
이도혁이 중얼거렸다.
“이런 일 되게 익숙하신가보네······.”
이풍이 대답했다.
“응? 익숙하지. 이게 내가 이걸로 먹고 사는데.”
“이걸로 먹고 사신다고요?”
“어.”
“사채꾼은 부업이었어요?”
“응? 사채? 아······, 우리 사무소에 꼬박꼬박 돈 보내는 새끼들, 걔네들이 다 우리한테 돈 빌린 새끼들인 줄 알았어?”
“아닙니까?”
“절대 아니지. 내가 사채를 왜 해. 무적비비탄의 아우씩이나 돼서 치킨집 아재랑 떡볶이집 할매한테 돈 뜯으며 살 거 같냐?”
“그럼······”
“봤잖아?”
그 말뜻을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은 박성철이었다. 그 눈동자가 떨렸다.
“이런 일이 전에도 많았군요?”
“그래. 지금까지 받은 돈, 죄다 우리한테 얻어터진 깡패 아니면 조직들이 바친 거야. 일종의 상납금이지.”
“그런 식으로 매달 수천만 원을 벌었다고요? 대체 어떻게······.”
“무적비비탄 형님이랑 열심히 활동한 덕이지. 왜, 무림인 주 벌이가 이런 건 줄 모르냐? 깡패들한테 삥뜯는 거. 만수동 오가장만 해도 여러 조직에서 상납받잖아.”
이풍이 더 자세히 설명해주길, 지금까지 직원 세 명을 고용하여 상납 독촉을 대신하게 한 이유는 별거 없었다.
깡패들이 돈을 바치게 하는 원천이 무엇인가. 당연히도 건달들이 감당할 수 없는 무적비비탄의 무공이었다.
그러나 무적비비탄은 감옥에 들어간 와중이었다. 그동안 이풍에게는 상납을 강제할 방법이 없었다. 또한 만약 이풍 본인이 직접 상납을 독촉하고서 돈을 받지 못한다면, 그 혼자서는 상납을 강제할 수가 없음을 들키고 말 테니 큰일이었다.
그러니 부하직원을 시켜 대신 독촉하게 하는 게 안전했다. 그러면 돈을 받지 못하더라도 체면은 덜 구겨지는 것이요, 패거리가 있는 척하면서 허세를 부릴 수도 있었으며, 최후의 순간 이풍이 직접 나설 상황의 여지를 상상 속에서나마 남겨둘 수 있었으니까.
이풍이 말했다.
“뭐······ 이젠 아니야. 무적비비탄 그 양반 못지않은 제자가 나타났으니까. 이젠 한 달이라도 돈 안 내는 새낀 바로 족친다.”
이도혁이 물었다.
“그럼 이제 저희 고용할 필요 없습니까?”
“아니, 있어. 운전수도 필요하고, 잡일이나 감시 담당, 회계 담당도 필요하니까 계속 고용할 거다. 하지만 그 전에 말해둘 게 있는데, 이제부턴 우리 일이 달라질 거야. 그게 어째서인가 하면······.”
“무적비비탄의 제자가 왔으니까요.”
이풍이 허풍개를 보며 웃었다.
“그래, 그러니까 활동도 달라지겠지? 상납도 더 늘릴 테고, 다른 일도 찾아서 할 테고. 그러니까 너흰 이제 출근해서 전화만 하면 될 게 아닌 셈인데······ 그래서 너희, 어쩔래? 원하면 퇴직해도 된다. ”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박성철이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저, 그럼······ 이제 그만두겠습니다.”
“그럴래?”
“예, 이번 일 하면서 너무 놀랐습니다. 가슴이 너무 쿵쾅거렸는데. 계속 그런 일을 하진 못할 거 같아요.”
“그렇다면야······ 그동안 고생했다. 퇴직금 준비해놨으니까 갈 때 봉투 받아가.”
“감사합니다······.”
다른 직원 한 명도 덩달아 그만두겠다고 하자 이풍은 탄식했다. 그러나 아직까진 크게 상심하진 않은 눈치였다.
이풍은 이도혁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도혁이 넌 남을 거지?”
그리고 이도혁은 조금 뜸 들인 끝에 대답했다.
“생각 좀 해봐도 될까요?”
이 반응은 예상하지 못한 것 같았다. 이풍은 조금 당황하더니 물었다.
“왜? 너 무적비비탄 팬이잖아.”
“그랬죠.”
“그런데 왜?”
“제가 생각하던 일이랑은 많이 다른 것 같아서요. 무적비비탄 대협께서 하시던 일도 지금 보니 좀 그렇고······.”
“무적비비탄이 뭐 하고 다닌 줄 알았는데?”
“협객 일이요.”
이풍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말했다.
“오늘 한 게 그거잖아.”
“깡패 족쳐서 상납받는 게요?”
“정확히는 악질 기둥서방과 그놈에게서 벗어나려는 아가씨를 돕는 일이었지. 돈은 겸사겸사 뜯은 거고.”
이도혁이 눈을 크게 떴다.
“아가씨를 도왔다고요? 그게 무슨?”
“어, 설명 안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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