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세기 반로환동전-7화 (7/103)

소가주(小家主) 오은림 - [1]

매춘과 도박과 밀매의 세계, 법의 울타리를 벗어난 이 뒷세계에 실재하는 것은 가장 원초적인 폭력뿐이다.

그런 일에 가장 능한 족속이 있으니, 그들을 바로 무림인이라 부른다. 무공을 익힌 초인들. 그들은 가장 단순한 힘으로 뒷세계를 제패하고 불법적인 조직들 위에 군림한다.

당연히 동인천의 폭력조직들 또한 무림 방파의 휘하에 있었으니, 만수동의 유서 깊은 양반가 오가장(吳家莊)이 바로 이 근방의 패자였다.

그 오가장의 무림인이 직접 나섰다. 이게 대체 무슨 날벼락인가. 이 상황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에 여섯 명의 건달들은 모두 몸이 굳어있었다.

뒤늦게나마 이풍이 일어났다. 그는 오가장 사람들의 앞을 가로막더니 중얼거렸다.

“귀여워해 줬다니? 별로 안 귀여워했는데. 안 귀여운 새끼들이라서.”

무림인 여자의 수행원이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그가 얼굴을 들이밀며 윽박질렀다.

“아저씨, 농담 따먹기 하려고 온 거 아니니까 싸무쇼. 우리 아가씨 얼굴 몰라?”

“알지. 그런데?”

“그럼 눈 까셔야지, 왜 까불어 아저씨?”

“새끼가 미쳤나.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와선 상전 행세야. 이 자리에 형님 계셨음 너 같은 새낀 여기 기어서 와야 하는 거 몰라?”

“좋겠네. 빵에 있는 영감이 뒷배라고 깝칠 수 있어서?”

대치 상황을 지켜보며, 이가 부러진 남자가 중얼거렸다.

“나 저 여자 얼굴 알아. 오가장 소가주잖아. 왜 직접 왔······”

중얼거리다 말고 흠칫했다. 오가장 소가주, 그러니까 무림인 여자가 이쪽을 노려본 것이다.

무림인의 눈빛에는 짐승 같은 구석이 있다. 조폭이고 뭐고, 일반인으로서는 그 눈빛을 받아내기 어렵다.

이가 부러진 남자가 덜덜 떠는 가운데, 그 옆에서 다른 건달이 속삭였다.

“새꺄. 저 여자니 저년이니 씨부리지 마! 말조심해. 무림인들 귀 좋아.”

“그래서 그 잘난 무림인이 왜 여기 왔냐고······.”

“내가 불렀으니까 왔지, 인마.”

이가 부러진 남자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저 여잘 니가 불렀다고?”

“저 아가씰 부른 건 아니고, 그냥 지원 요청했어. 전화해서 ‘잔뜩 얻어맞고 잡혀있으니까 형님들 보내달라’고 했지. 그런데 어깨들이나 보낼 줄 알았더니 오가장 아가씨가 직접 왔네. 뭐야 이거?”

참으로 어이없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동네 패싸움에 전차를 몰고 온 격 아닌가.

무림인들의 몸값을 생각하면 그 전차라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저 오가장의 소가주는 그럭저럭 고수라고 평가될 실력자다. 그 몸값은 백육십억을 넘는다고 평가된다. 단순히 몸값으로만 치면 K-2 전차보다도 비싼 셈이다.

백육십억 짜리 여자가 입을 열었다.

“풍 아저씨.”

이풍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왜 불러요?”

“제가 우리 애들 손봐줬냐고 물었잖아요. 그거 대답이나 하세요.”

“나 손금 볼 줄 몰라.”

“또 말장난이네. 디지고 싶어요?”

“양반 가문 아가씨가 입이 걸레네. 바닥 더러운데 청소하러 왔소?”

모욕을 참지 못한 것일까? 오가장의 소가주가 칼을 뽑았다.

길쭉한 죽검(竹劍). 경찰의 검문에 걸리지 않으려고 형태만 죽검일 뿐 실제로는 날을 세우고 단단하게 만들어서 사람 머리를 쪼개기 충분한 흉기였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풍은 그저 꼴 같잖다는 듯이 혀를 차고는 말했다.

“한 따까리 할 거면 안에 들어갑시다. 저기 마대자루 많아서 시체 넣어 나오기 딱 좋아.”

그리고 네 명이 침술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가장 소가주와 이풍, 그리고 침술원 원장이라던 청년과 이도혁. 그들이 안에 들어가기 무섭게 오가장 소가주의 수행원 넷이서 문을 닫고는 그 앞을 지켜섰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이가 부러진 남자가 하소연했다.

“좆됐네.”

그 옆의 남자가 말을 받았다.

“좆되긴 무슨. 잘된 거지. 니 이빨 씹창낸 새끼, 이제 뒤진 거야.”

“너 뻗어있어서 모르나 본데 그 새끼 좆나 고수야. 그 여자도 못 이길······.”

“니가 무림인들 실력을 보면 알긴 아냐?”

“모르지. 그런데 우리 좆된 건 맞아.”

“왜, 새꺄?”

“오가장 무림인을 출동시켰으니 우리 이제 상납금 좆나게 바쳐야 할 거니까.”

그 말에 남자는 흠칫했다. 당연하다. 전차보다 비싼 여자를 출격시켰으니 전차 대여료보다 비싼 요금을 치러야 할 것 아닌가.

그래도 실수를 인정하기 싫었던 남자는 고집스레 대꾸했다.

“괜찮다니까, 새끼가. 저 새끼들이나 잘 조져주면 돈값 하는 거지······”

한편 문이 굳게 잠긴 침술원 안, 이풍과 오가장 소가주는 서로 마주 보고 앉아있었다.

바깥의 건달들은 그 협소한 공간에서 무림 여고수와 정체 모를 남자들의 목숨 건 싸움이 펼쳐지고 있으리라 생각하여 두려워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떤가.

오가장 소가주가 입을 열었다.

“풍 아저씨. 나 진짜 여기 들어와도 돼요? 이 침술원, 무림인 출입금지 구역 아니야?”

이풍은 히죽 웃으며 말을 받았다.

“무적비비탄 그 양반이 여기에 무림인 들어오면 발작하긴 했지. 환자들이 쫄아서 동네 장사 망칠 거라 걱정했거든. 그런데 뭐 어때요? 지금 이 건물 지방세 내가 내주고 있는데, 그럼 내가 여기 주인 아니야?”

이풍과 오가장 사람들은 잘 아는 사이였다. 같은 인천 무림인 아닌가.

오가장 소가주가 중얼거렸다.

“그래도 불안하네······”

“괜찮아, 괜찮아. 그 양반 나한테 지랄 안 해. 그나저나 아가씨? 사람들 앞에서 욕 쓰지 마요. 무림초출이야?”

“어, 티나요?”

“엄청 티나. 고수는 싸울 때도 욕 쓰면 안 돼. 없어 보이잖소. 그것도 양반 가문 아가씨가 그러면 쓰나.”

“아, 그때 그거 분위기 잡으려고 헛소리한 게 아니라 진짜 훈계한 거구나. 조심할게요.”

“고수는 거칠어 보일 필요 없어요. 아가씨 센 거 누구나 다 아니까 그냥 자연스럽게 굴어요. 그것만으로도 조폭 새끼들은 다 쫄아서 고개 팍 숙여야 돼.”

둘이서 대화하는 동안, 허풍개와 이도혁은 침대에 앉아 그 대화를 듣고 있었다.

한바탕 싸울 줄 알고 긴장하고 있었던 이도혁은 저 친근한 대화를 이해할 수 없었다. 침술원 밖에서는 서로 살기등등하더니?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해 움츠러들어 있자니 허풍개가 말을 걸었다.

“왜 그러고 있어요. 편히 앉아.”

“어······ 안 싸워?”

“왜 싸웁니까. 무림인들끼리는 괜한 일로 싸우면 안 돼.”

“뭐? 왜?”

“저 아가씨 고수지요. 저 고수 한 명 키우려고 영약 값으로 얼마나 들었겠습니까.”

“어, 십억?”

“오십억은 들었을 겁니다. 그런데 아무한테나 오십억 치 영약 먹인다고 고수가 되나. 재능 있는 사람한테 영약을 잔뜩 퍼먹여야 고수가 될까 말까 합니다.”

“그렇지······”

“그런데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는 또 어떻게 알아봅니까. 일단은 영약 먹여가며 키워봐야 알지요. 그런 식으로 재능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려고 유망주들 여럿 키우는 과정에서 또 수십억은 듭니다.

그러니까 저 아가씨 키우는 데 들인 돈은 실제론 백억쯤 되는 거죠. 몸값은 당연히 그보다 훨씬 비쌀 테고. 그런데 괜히 싸우다가 어디 다치기라도 하면 손해입니다. 몸 사려야죠.”

그렇듯 영약 값은 터무니없이 비쌌다. 허풍개가 기억하는 조선 시대보다 지금이 훨씬 더.

조선 시대에도 영약은 비쌌지만, 요즘에 비하면 거저였다.

당시에는 영험하다는 영약이 있어도 동아시아 사람들이나 좋은 줄 알고 사 먹었지 서양 코쟁이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내공수련과 그것을 위한 영약 복용이 수명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게 알려진 지금, 전 세계의 부자들이 영약 시장에 큰손으로 끼어들었다.

그 큰손들은 영약이 시장에 나오는 족족 사들이고 있다. 옛날보다 영약 값이 체감상 오십 배 이상 뛰어오른 것은 그 탓이다.

이제 어느 심마니가 내공 증진에 큰 효력이 있는 인형설삼(人形雪蔘) 한 뿌리를 캐냈다 하면, 그 영약을 구입하길 원하는 무림인들은 같은 무림인들뿐만 아니라 빌 게이츠며 사우디 국왕과도 경쟁하게 된 것이다.

무림인의 육성에는 그 비싼 영약이 수두룩하게 든다. 영약 값이 비싸짐에 따라 당연히 무림인들의 몸값 또한 비싸졌으며, 무림인 중에서도 제대로 된 고수들의 가격은 일류 스포츠 스타들의 몸값에 비할 만했다.

“그래서, 귀하신 아가씨가 여기에는 왜 왔어요? 진짜 상납금 챙기려고?”

이풍의 물음에 오가장 소가주가 대답했다.

“그런 이유도 있구······ 여기가 무적비비탄 대협의 침술원인 거 뻔히 아는데, 뭔 일 났다고 하니까 기겁해서요. 우리 하부조직 잡것들이 무례를 끼쳤으면 친히 조지려고 했는데요.”

“괜찮아요. 그럴 필요 없어.”

“하기야 이미 다 조졌더라. 풍 아저씨가 그런 건 아니죠?”

“나야 못 그러지. 이 친구가 그랬소.”

이풍이 허풍개를 가리켰다. 오가장 소가주는 허풍개를 바라보더니 물었다.

“못 보던 얼굴인데. 저 오빠 고수예요?”

“엄청나게 고수요. 형님의 제자거든.”

“무적비비탄 대협의 제자? 풍 아저씨처럼요?”

“아니, 나랑은 달라. 공식제자요.”

“그럼······ 얼마나 강해요?”

그때까지 둘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있던 허풍개가 입을 열었다.

“제 스승보다 강합니다.”

오가장 소가주는 눈을 크게 떴다.

“무적비비탄 대협보다 강하다고요?”

“예.”

“장난하지 말고요.”

“진짜요.”

“한국에서 네 번째로 강한 고수보다 세다 이거예요?”

“그래요. 이제 내 스승은 한 순위 떨어져서 5위입니다.”

당연히도 오가장 소가주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녀는 한국의 무림인 중 하나로서, 한국 무림의 전설 중 하나가 핫바지 취급당하고 있음에 분개했을 뿐이다.

“무적비비탄 대협의 제자라면 저보다 무림상 배분이 높은 건 아는데······ 한 대 때려주고 싶네.”

“그러시든가.”

“그래도 돼요?”

“때릴 수 있으면,”

오가장 소가주가 죽검을 들어올렸다. 그러더니 이풍에게 허락을 구했다.

“여기 물건들 좀 치워도 되나요? 무적비비탄 대협의 물건들에 함부로 손대긴 싫은데······”

이풍이 말했다.

“괜찮아요. 얼마 전에 웬 양아치들이 원래 있던 물건들 다 망가뜨렸거든? 여기 있는 건 다 대충 넣어둔 거야. 다 때려 부숴도 돼.”

“그럼······”

오가장 소가주는 뭔가 말하는 척하다가 불쑥 행동에 나섰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기습이었다. 공격의 전조도 없이 신속한 기습.

그녀가 사이에 놓여있던 탁자를 걷어찼다.

탁자가 허풍개의 얼굴을 향해 비행했다.

이때 허풍개로서는 반격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날아드는 탁자에 시야가 가려진 데다 탁자가 앞을 막고 있으니 마주 반격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런데 아까 그 죽검은 충분히 단단해 보였다. 이 탁자의 얇은 판자쯤은 쉽게 뚫고 그 너머의 이곳에 공격을 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녀는 아마 옆으로 몸을 던져 탁자를 피할 거라 생각했겠지만, 허풍개는 그러지 않았다. 몸을 던지는 것은 너무 하수 같아 보일 터였으므로.

허풍개는 고수 같은 동작에 집착했고, 고수 같아 보이려거든 최대한 작은 동작을 취하는 게 좋았다.

그래서 그저 손가락을 튕겼다. 미리 집어둔 BB탄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속도로 천장을 향해 날았다.

탁, 하고 천장에 맞았다. 거세게 튕긴 BB탄은 힘을 잃지 않고 되돌아왔다. BB탄이 돌아오던 그곳에는, 이쪽으로 돌격하던 오가장 소가주의 등짝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의 혈도에 BB탄이 명중했다.

오가장 소가주는 칼을 쭉 뻗은 자세 그대로 몸이 굳었다.

그리고 날아가던 탁자는, 허풍개의 손바닥에 닿아 허공에서 멈추더니, 허풍개가 손바닥을 내리자 소리없이 똑바로 서게 되었다.

허풍개가 담담하게 말했다.

“뭐 했는지 봤나? 못 봤으면 다시 봐요.”

허풍개는 또다시 BB탄을 튕겼고, 똑같이 날아가 똑같은 도탄을 보인 BB탄은 방금 점혈했던 같은 자리에 또다시 명중했다.

그로써 점혈이 풀렸다. 비로소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된 오가장 소가주는 눈만 껌벅거렸다.

허풍개가 물었다.

“봤습니까.”

오가장 소가주는 어찌 대응해야 할지 모르는 듯 움찔하다가, 이내 힘없이 대답했다.

“봤어요. 탄지신공······.”

확실히 그녀도 알아보았다. 무적비비탄의 탄지공.

무림에 무적비비탄보다 강한 고수는 여럿 있어도 그 기술을 따라 할 자는 없으리라는, 무림의 역대 고수 중에서도 오직 승천한 만력제가 돌아와야만 재현할 수 있으리라는 절세의 기술이 이 자리에 펼쳐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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