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세기 반로환동전-6화 (6/103)
  • 제자 이풍 - [4]

    이풍이 중얼거렸다.

    “총성이 울려 퍼지긴 했는데, 이 동네에 신고 정신 투철한 놈이 없으니까 아마 신고는 안 했을 거고······ 짭새들이 이번 일 모르겠지?”

    허풍개는 아마 모를 거라고 대답하려다 그만두었다.

    그가 아는 동인천 경찰들이라면 관무불가침을 넘어 관민불가침을 실현하려는 건가 의심스러운 작자들이었다. 그들이라면 총성이 아니라 박격포 포성을 신고받아도 폭죽이겠거니 하고 넘겨버릴 것이다. 그런 신고에 출동하는 것은 돈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근처의 경찰들은 유흥가나 어슬렁거리면서 업주들한테 돈 받아 챙길 생각에만 혈안이 된 등신들이다.

    그러나 오 년이 흐른 지금은 어찌 변했는지 확신할 수 없다. 웬 양아치가 권총을 쏘는 지경 아닌가.

    허풍개는 우울한 기분으로 아까 자신이 이를 부러뜨렸던 놈을 보았다.

    자신들을 쫓아온 게 경찰이 아니라고 했던가? 결국 그 말이 사실이었다. 젠장.

    이풍이 물었다.

    “그러니까 이놈들이 너흴 총으로 쐈단 말이지? 너희가 도망치니까 쫓아온 거고?”

    이풍의 손가락은 포박되어 눕혀진, 권총을 쏜 건달과 그 패거리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빨이 부러진 남자가 대답했다.

    “예······”

    “어쩌다? 대체 뭘 했길래 총까지 쏜 거냐?”

    “모르겠어요. 근처에서 못 보던 새끼들이 대마 파는 거 같길래······ 증거 잡으려고 사진 찍었더니, 갑자기 총을 꺼내선······”

    정황상 그 말이 사실인 것 같았다.

    낭패였다.

    경찰에게 총까지 맞았으니 흉악범이리란 짐작은 잘못된 추측이었던 셈이다. 저들은 흉악범이 아니었고, 악인을 징벌하여 벌었다고 생각한 점수는 전부 무효였다. 공과격에서 ‘악인 계도’는 중대한 범죄자를 제압했을 때만 인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과한 폭력으로 감점만 잔뜩 얻게 되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치료라도 열심히 해서 손해를 조금이라도 벌충할 수밖에.

    허풍개는 묵묵히, 쓰러진 여섯 명의 치료에 전념했다.

    부러진 뼈를 맞추고 출혈을 그치게 했으며 비싼 약재도 아낌없이 썼다. 한 명의 치료마다 계산되는 공 3점을 얻기 위해 애썼는데, 그래봤자 폭행으로 인한 감점이 너무 커서 마이너스(-)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저 세 명이 경찰에 달려가서 폭행 및 고문을 신고할 일은 없으리란 것이었다.

    그들도 깡패였고 경찰을 꺼렸으며, 무엇보다 지금은 겁에 질려있었다.

    허풍개가 말을 걸었다.

    “빠진 이는 약물에 담가놨으니까 병원 가면 끼울 수 있겠는데. 지금 병원 보내줄까?”

    이가 빠진 남자는 질겁하여 고개를 돌렸다. 그러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뇨, 저도 조직 생활하는 놈이라서요. 어디 크게 다쳤으면 지정된 병원에만 가야됩니다······”

    그 겁에 질린 반응을 이해할 만하다. 그는 방금 눈앞에서 총알이 붙잡히는 장면을 목격한 것이다.

    그 단순한 동작에 실린 무공의 정수를 감히 알아보지는 못했겠지만, 그것이 인간의 능력을 벗어난 일이었음을 못 알아볼 수는 없다. 비현실적인 고수.

    한편 그와 비슷한 시선으로, 이도혁 또한 허풍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도혁은 대강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무적비비탄의 제자라는 것과 고수라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 급일 줄은 몰랐다든가. 동년배가 어찌 이런 고수일 수 있나 싶다든가.

    물론 지금은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그래서 어쩔까?”

    이풍의 물음에 허풍개가 되물었다.

    “무슨 소립니까?”

    “이 세 놈 말이야. 총 쏜 놈들, 이 새끼들을 어찌 처리해야 좋을까······ 아무래도 이번 사건이 9시 뉴스에 나올 것 같진 않지?”

    “그럴 것 같네요. 아직도 짭새들은 코빼기도 안 보이고.”

    “이 새끼들은 불법으로 총기를 소지한 데다 사람을 쏘기까지 했으니까, 우리가 신고하면 무조건 징역이겠고. 그러니까······”

    “협박하여 돈을 갈취할 수 있겠단 거죠.”

    “그렇지!”

    그 대화를 듣고 한 남자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러지 말고······ 우리 조직에 보고하는 게 어때요?”

    그는 여기에 도망쳐온 세 놈 중 한 명이었다. 어디 가서 씨부리면 디진다고 협박했다가 기절한 다음 방금 깨어난 놈.

    “뭐? 자네들 조직엔 왜?”

    이풍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남자가 설명했다.

    “우리 임무가 이 구역에 약 파는 놈들 찾아내는 거였거든요? 그러다 총 가진 놈들 발견하면 바로 보고하라고 들었어요. 확실한 증거를 찾아서 제출하면 포상도 준다 들었고······”

    “총 가진 놈들을 따로 찾아내려 했다고? 왜?”

    “정확히는 몰라요. 요새 왠지 총 가진 놈들이 많잖아요? 그중 하나 잡아서······ 무기 밀매 루트? 그걸 캐내려고 한단 소리는 들었는데······”

    요새 총 가진 놈이 많다는 것은 이풍도, 허풍개도 처음 듣는 소리였다. 그래도 다 알고 있다는 양 태연한 얼굴로 물었다.

    “기특한 일 하네. 그래서, 너희 조직이 어딘데?”

    남자는 비장한 어조로 말했다.

    “오가장, 알죠?”

    “알지. 만수동에 있는······”

    “오가장이 우리 윗선이요. 우리가 거기 하부조직이라고.”

    그 잔뜩 내리깐 말투에서는 대강 이런 느낌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나한텐 이런 뒷배가 있는데 너무 함부로 대한 것 아니냐? 지금이라도 좀 숙이는 게 어떻겠느냐?

    그러나 이풍과 허풍개는 태연히 말을 주고받음으로써 그를 분개하게 했다.

    “오가장이면 무림맹 소속이지?”

    “예, 아마. 그럼 총기 밀매 루트도 무림맹 차원에서 찾는 거겠는데요.”

    “그런데 신고 포상이라 해봤자 직접 협박해서 뜯어내는 것만 못할 거 같은데······ 어쩔까?”

    허풍개는 조금 생각한 끝에 대답했다.

    “그냥 신고하라 합시다.”

    그리고 남자가 웃었다.

    이풍이 작게 속삭였다.

    “하지만 저 새끼. 수작 부리려는 거 같은데요.”

    “수작? 지원이라도 부르려 하는 것 같다고?”

    “아마요. 저 새낀 그때 기절해있었으니까 형님이 총알 잡는 것도 못 봤을 거잖아요? 전화해서 사람들 부르면 우릴 족칠 수도 있겠다 생각하는 거 같은데······”

    “뭐, 괜찮아.”

    이풍은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휴대전화를 돌려받은 남자는 자기 조직에 전화했다. 꽤 길게 통화하더니 이풍과 허풍개를 거만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통보했다.

    “한 시간 내로 사람 오기로 했으니까, 어디 가지 마쇼.”

    허풍개는 그때까지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당장 침술원 영업은 중단해야 할 상황이요, 주변에는 깡패들뿐이라 맘 놓고 수련하기도 어렵지 않은가.

    그렇다고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것은 질색이다. 다른 할 일이 없을까?

    마침 생각나는 게 있었다.

    허풍개는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이도혁에게 말을 걸었다.

    “어제, 무공 봐달라고 했었나?”

    이도혁은 바짝 얼어서는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어? 어······.”

    “지금 봅시다.”

    *******

    허풍개가 무공을 봐주겠단 말에 이도혁은 긴장과 기대를 동시에 느끼는 눈치였다.

    방금 보았건대 허풍개는 예상을 뛰어넘는 고수였다. 단순히 무적비비탄의 제자라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될 정도의 고수. 그 사실이 이도혁을 주눅 들게 하는 동시에 설레게 하는 모양이었다.

    “무공 뭐 할 줄 압니까.”

    허풍개의 말에 이도혁이 대답했다.

    “탄지공이랑 모산(茅山) 태극권 연습 중이야. 잘하진 못하는데······.”

    “내공심법은 뭐 익혔고.”

    “옥검결(玉鈐訣).”

    허풍개가 이도혁을 바라보았다. 무적비비탄의 팬이라 했던가?

    “다 제 스승님의 무공들이네요.”

    “물론, 다 그분 따라 익히려고 노력했지!”

    “동자공은? 무적비비탄은 그것도 수련했는데.”

    이도혁이 입을 다물었다. 조금 뜸 들인 끝에야 중얼거렸다.

    “그건 안 익혔는데······ 익힐까?”

    “성(性)적인 모든 행위를 포기할 자신이 있으면 그래도 됩니다. 한 번이라도 사정하는 순간 지금까지 쌓은 모든 내공이 흩어지니까 수음도 안 되고요. ”

    보통 이렇게 말하면 포기하는 법인데, 놀랍게도 이도혁은 정말 무적비비탄을 본받고 싶은 것 같았다. 그놈의 동자공에 관심을 보내는 것 아닌가.

    “성욕억제제를 주기적으로 맞으면 가능할지도······.”

    허풍개는 속으로 질겁하며 설명했다.

    “동자공 수련에는 양기(陽氣)가 중요하니까 고자나 무성욕자는 수련 못 합니다. 정관수술 해도 안 되고요.”

    “그래? 그럼 무적비비탄 대협께선 그냥 참으시는 건가?”

    “예.”

    “거참······ 무적비비탄 대협께서 대단하시긴 해. 환갑 넘도록 쭉 욕망을 억제하셨단 거니까······ 혹시 너도 동자공 익혔어?”

    “예.”

    담담한 대답에 이도혁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고생이네······.”

    그래, 고생이다. 반로환동의 여파인지 요새는 몽정까지 다시 시작됐다. 당연히도 아주 죽을 맛이다. 게다가 다시 솟구치기 시작한 욕정을 억누르는 것은 또 얼마나 힘겨운 일인가.

    동자공을 익힌 열일곱 살 이후로는 늘 그런 고통에 시달렸다. 그리고 그런 종류의 고통에는 도저히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눈살을 찌푸린 허풍개가 말했다.

    “무공이나 보죠. 태극권 수련한다고 하셨나?”

    “어, 보여줄까?”

    “예.”

    이도혁의 짧은 권법 시연을 본 허풍개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네요.”

    “정말? 자세 교정해줄 거 없고?”

    “그냥 지금 방식대로 쭉 수련해요.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지 고수한테 배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그럼, 탄지공은?”

    “그건 좀 자세히 봐 드리죠. 탄지공은 제대로 가르쳐주는 곳도 없었을 테니까.”

    “정말?”

    “예.”

    “무적비비탄 대협의 탄지공이면 세계 최고잖아. 그걸 정말 가르쳐주겠다고?”

    그런들 안 될 것 없었다.

    사실 허풍개는 탄지공을 널리 퍼뜨리려 노력해왔는데, 탄지공의 고수가 많아지면 탄지공을 통한 범죄를 저질러도 자신이 의심받을 확률이 낮아지리란 계산이었다. 결국 무적비비탄만큼 탄지공을 익힌 사람은 한국은 물론 무림 어디에도 생겨나지 않았지만.

    게다가 눈앞의 청년은 이풍의 제자 아닌가.

    이풍은 허풍개의 제자였다. 그리고 제자의 제자를 신경 써주는 것은 스승의 의무이리라. 돈까지 써가며 챙겨줄 생각은 없지만 어쨌건.

    한편 이도혁은 눈에 띄게 기뻐했다.

    “이제 스승이라 불러야 하나? 하지만 내 스승은 사장님인데······”

    허풍개는 조금 고민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사숙(師叔)이라 불러요.”

    “사숙? 아, 스승의 사제란 뜻이지?”

    “예.”

    “아, 그러고 보니 무적비비탄 대협의 제자면 우리 사장님이랑 동렬······ 혹시 윗사람으로 모셔야 해?”

    “됐어요. 사람들 앞에선 사숙이라 부르지도 말고. 사장님이 공식적으론 무적비비탄의 제자가 아니니까.”

    이후로 무공을 전수하며 보내길 한 시간, 침술원 앞에 S클래스 벤츠 한 대가 섰다.

    벤츠에서 내린 것은 네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였다.

    그 한 명의 여자는, 무림인이었다.

    온몸에 흐르는 기(氣)를 보고서 알 수 있었다. 일반인의 몇 배나 되는 기. 무림에서도 나름대로 실력을 인정받을 젊은 고수.

    그녀가 말했다.

    “그래서······ 선생님이 우리 애들을 귀여워해 주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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