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월의보름을조심하라-23화 (22/34)
  • 7.

    은봉은 자기도 모르게 숨을 들이마셨다. 카페라는 곳에 발을 들여놓는 건, 이걸로 두 번째였다. 뭔가를 마시기 위해 찾은 걸로 따지자면 처음인지도 모른다.

    “어서 오세요-”

    유리문을 열자마자 직원의 인사와 함께 커피향이 코에 확 와 닿았다. 어쩐지 매일 가게에서 맡던 향과 비슷해서 은봉은 조금 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문가에 서서 서성이고 있자, 하얀 셔츠에 까만 바지를 입은 남자직원이 재빨리 다가와서 안쪽으로 그를 안내했다.

    “여기로 앉으시겠습니까?”

    “아, 예.”

    은봉은 어색하게 자리에 앉았다. 곧 직원이 물과 메뉴판을 가져다주었다. 물이 담긴 유리잔과 메뉴판의 모양새조차 가게의 것과 굉장히 비슷한 느낌이 났다.

    은봉은 유리잔을 쥔 채 어색하게 메뉴를 넘겼다.

    ……혼자 이곳에 온 것을 알게 되면 성주는 화를 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고, 은봉은 스스로를 타일렀다.

    이 카페가 생기기 전에도 신경을 쓰고 있었던 황성주는, 이 가게가 문을 연 뒤로는 좀 더 노골적으로 신경을 썼다. 물어보면 아니라고 하지만 손님들의 반응을 살피는 게 보통은 아니었다.

    계산하러 온 단골에게 '저 안쪽에도 카페가 생겼던데, 가보셨습니까?'라고 질문하던 때도 있었다. 의외로 여기가 인기가 좋은지 여자 손님들 중에는 가 봤다고 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

    성주가 '저쪽 원두에 비해서 저희 쪽은 어떻던가요?'라고 물어보자, 여자 손님 하나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아, 저쪽은 로스팅이 좀 탄 듯한 느낌이 나요'라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때부터일 거다, 하루에 세 번씩 하던 로스팅의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한 건.

    '그러니까 그쪽은 자기들이 로스팅해서 쓴다는 거군……'

    성주는 그렇게 중얼거린 뒤로, 그 실험 같은 짓에 좀 더 열중하기 시작했다. 뭔가에 열심인 건 좋은 일이다. 뭔가에 열심인 건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평소의 황성주 같지가 않았다.

    이 정도로 카페의 경쟁자가 중요한 문제가 될 줄 몰랐던 은봉이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의외다 싶긴 했지만, 녀석도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또 한 번 들었다.

    아닌 척 하면서도 경쟁자를 신경쓰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도움이 되고 싶다고 은봉은 생각했다.

    커피를 마시고 뭔가 맛을 판단해서 이야기해줄 수 있었다면 그게 가장 좋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은 이런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생각해본 게 최소한 여기 서비스라도 경험해보자는 것이었다. 서빙을 하는 자신이라도 뭔가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일을 할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메뉴판에서 최근 굉장히 익숙해진 단어를 발견한 은봉은 메뉴판에서 잠시 눈을 떼고 주변을 한번 둘러보았다.

    다행히 이 집이나 성주의 가게나 최소 요건은 같았다.

    여기 직원들도 모두 남자였다.

    어쩌면 자신이 몰라서 그렇지, 세상의 카페들에선 의외로 남자들이 일을 많이 하는 건지도 모른다. 구두 가게 가면 남자가 일을 하는 거랑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고.

    여자 상대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고, 나름 속으로 상당히 아귀가 맞는 듯한 추론을 한 은봉이 자신이 상대해보았던 손님들처럼 손을 들었다. 그러자 직원이 재빨리 달려왔다.

    '뭘로 드릴까요?'하는 질문은 자신에게도 매우 익숙한 것이었다.

    “이걸로 주세요.”

    “예, 카페라떼로 드리겠습니다. 시럽은 같이 드릴까요? 아니면 빼드릴까요?”

    “같이 주세요.”

    그리고 메뉴판을 가져가려는 직원에게 '조금만 더 볼게요'라고도 이야기했다. 직원은 그러시라고 하면서 웃으면서 자리를 떴다.

    웃는다. 이 요소에 은봉은 자기도 모르게 주목했다.

    자신이 일할 때를 돌이켜보자 웃었던 기억이 별로 없었다. 남자도 웃으면서 응대를 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해보지 않았거니와, 자신이 웃어봤자 그게 딱히 더 친절해보일 거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탓이다.

    그렇지만 자신도 노력해보면, 어쩌면 좀 나아보일지도 모른다.

    그래, 아까처럼 주문하는 것도 그나마 여태껏 성주네 가게에서 일을 해봤기 때문이다. 맛에는 도움이 안 되더라도 다른 건 배워갈 수 있으리라.

    다른 직원들도 한 번 보자 싶어 안쪽을 힐끔 쳐다보자, 자신만큼 덩치가 큰 남자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등만 보면 어느 쪽 '어깨'라고 해도 믿겠다 싶을 정도의 어깨빨에 위화감이 들었지만, 그 뒤로 보이는 건 꽃 화분에 포장지였다.

    저런 사람도 카페에서 일을 한다고 생각하자 긴장감이 풀려나갔다.

    -저 사람도 조폭같구만, 뭘.

    은봉은 어깨에 큰 짐을 내려놓는 듯한 기분이 되어 자기도 모르게 안도하면서 웃었다.

    그래, 이런 카페에서 일하는 남자들도 많다면, 다 젊고 가냘픈 애들만 뽑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남자가 있다 보면 개중에는 덩치가 큰 사람도 가끔 있을 수 있을 터였다. 안심을 하고나자 주위 환경이 눈에 더 들어왔다.

    이렇게 와서 둘러보자 성주가 왜 그렇게 신경쓰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묘하게 인테리어나 커피냄새 같은 것이 성주의 카페를 떠올리게 하는 공간이었다.

    원목으로 만들어진 바닥이나 바, 흰색 벽 같은 게 특히 그랬다. 풍겨오는 냄새도 그렇고, 바 위에 올려진 은색 주전자나 주전자 안의 온도계까지 같았다. 메뉴판에서 가격대와 메뉴를 하나하나 대조해보던 은봉은 정말로 이 가게의 메뉴판조차 성주네 가게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놀랐다.

    카페는 다 이렇게 비슷한가, 은봉이 생각하고 있었을 때였다.

    “……비슷한데……”

    “카페라떼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던 모양이다. 마침 커피를 들고 왔던 직원이 그 말을 들었는지, '예?'하고 물어왔다.

    은봉은 당황하다 곧 그럴듯한 변명을 떠올렸다.

    “아, 아뇨, 제가 가던 카페랑 비슷해서……”

    말하면서도 이게 혹시 시비를 거는 말인가 싶은 생각이 들긴 했다. 당구장 안에 큐대 바 있고 당구대 있는 게 당연한 것처럼, 혹시 카페에서도 이런 게 다 비슷비슷한 게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의외로 직원은 친절하게 웃으면서 설명해주었다.

    “원래 스쿨에서 배운 사람이 나와서 가게를 차리면 스쿨에서 인테리어 업자나 원두 같은 걸 대주거든요. 방식도 비슷하구요. 여기랑 같은 데 출신이 하는 카페를 가셨었나 봐요.”

    “아……”

    그렇겠구나. 성주도 어디에서 배워서 했다고 했으니까.

    그제야 은봉은 성주가 왜 그렇게 신경을 썼는지 알 것 같았다. 같은 파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들이 똑같은 나와바리 안에 사무실을 각자 내버린 것과 마찬가지다. 지기 싫은 마음이 들기도 했겠다고, 은봉은 속으로 납득했다.

    카페라떼를 들어서 조금 마셔보았다. 맛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성주가 해주는 게 조금 더 달았다. 더 검고 더 하얗던, 놈이 내주는 음료를 떠올리자 가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은봉은 몇 모금 만에 한 잔을 다 마시고 재빨리 일어섰다.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에 돌아가야 했다.

    카운터에 가서 계산을 끝냈을 때였다. 나가려는데 직원이 그를 붙잡았다.

    “손님, 저희 개업선물이 있어서요.”

    “예.”

    그래, 그런 게 있겠다 싶어 은봉은 가만히 기다렸다.

    직원은 서랍을 열고 뭔가를 뒤지더니, 거스름돈과 함께 은색 쟁반을 카운터 위로 올려놓았다.

    쟁반 위에는 금칠한 복돼지 열쇠고리와 전자계산기가 놓여 있었다.

    “……?”

    이런 건 호프집이나 당구장에서 주는 개업선물 같은데……

    전직이 전직인지라 누군가 그런 가게들을 열면 개점당일에 가본 적이 있는 은봉이, 이 카페에 너무나 안 어울리는 개업선물에 잠시 눈을 깜박였다. 직원을 쳐다보자 직원도 조금 난감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곧 직원은 붙임성 있게 웃으면서 설명을 덧붙였다.

    “사장님 아시는 분이 개업선물로 준비해주신 건데, 좀 개성이 있죠?”

    “……아, 예……”

    있어도 좀 많이 있는 편이었다.

    복돼지 열쇠고리를 뒤집어본 은봉은 이건 정말로 누군가 호프집 개업선물로 준비해놨던 걸 여기로 가져왔다는 결론을 내렸다. 단순한 열쇠고리가 아니라, 돼지 엉덩이로 불이 나오게 되어 있는 라이터였다.

    이런 걸 누가 줬을까. 사장이 젊고 돈이 많다더니, 혹시 건설업 쪽이었나. 예전에 알던 사무실 사람들이 줬을까-

    “뭘로 하시겠어요?”

    은봉은 그 말에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전자계산기를 집어들었다. 어찌되었건 저런 수상한 걸 들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은봉은 거스름돈과 함께 전자계산기를 들고 그 100억 카페를 나섰다.

    그래도 이 카페를 와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서 아까 그 직원처럼 웃어본 은봉이, 자꾸 어색해지려는 입가를 누르면서 웃는 걸 조금 더 연습했다.

    골목길이라 아무도 없었다. 웃는다. 붙임성 있게 응대한다. 자신은 그렇게 카페에서 일하기에 어색한 사람이 아니다. 이 세 가지를 스스로에게 되뇌이면서, 은봉은 골목길을 걸어나왔다.

    “밥은 잘 먹었어?”

    “……어.”

    전자계산기를 안보이게 슬쩍 바 안쪽 의자에 내려놓은 은봉이, 카운터 바 안쪽으로 들어섰다.

    “이젠 너도 먹고 와야지.”

    교대니까 다녀오란 말에, 성주가 알았다고 앞치마를 풀었다.

    검정색 앞치마만 벗어도 녀석은 꼭 정장을 입은 것처럼 단정하고 매끈했다. 커피 뽑는 남자직원이 세상에 아무리 많아도 이런 녀석은 없을 거라고, 은봉은 속으로 생각했다.

    자기도 모르게 멍하니 황성주를 쳐다보고 있었을 때였다. 성주가 서 있던 카운터 옆에 뭔가가 금색으로 반짝였다.

    어쩐지 낯익은 느낌이 들어서 가까이 가본 은봉은 잠시 말을 하지 못했다.

    “……!”

    아까 그 금칠한 복돼지였다. 엉덩이가 라이터 부분으로 되어 있고 입에는 열쇠고리가 달려있는, 돼지해를 맞아 호프집에 다량으로 돌려졌을 것만 같던 그 물건. 아까 그 집에서 개업선물로 줬던-

    ……갔었던 건가.

    은봉의 머리가 단숨에 복잡해졌다. 성주는 한 번도 그 카페에 가봤다는 이야길 한 적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부터는 손님들에게 거기 커피 어떠냐고 묻지 않기는 했지. 로스팅 횟수가 늘어나기도 했고.

    신경 쓴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혼자 가서 마셔본 뒤에 얘기도 하지 않을 정도로 신경 쓰는 줄은 몰랐다.

    설마 가게 상태가 그 정도로 심각한 걸까.

    은봉은 갑작스럽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장부를 보는 건 성주의 일이었다. 손님을 상대하는 자신의 입장에선 손님 숫자가 준 것 같지는 않았지만, 돈 계산을 해보면 또 다를 수도 있었다.

    성주가 부자라는 건 머리로는 알았다. 그렇지만 녀석이 기반을 두고 있는 게 이 가게라는 것도 분명했다. 말도 안 하고 혼자 신경 쓸 정도로 어려워졌나 싶어, 은봉은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말투로 성주에게 물어보았다.

    “요새 매상 좀 줄었어?”

    “무슨 소리야?”

    성주가 그를 휙 돌아보았다.

    의문과 놀람과 진지함이 섞인 얼굴에 은봉은 자기도 모르게 말을 흐렸다. 진짠가. 진짜 가게가 어려워져서 이렇게 신경을 쓰나.

    “아니 그게……”

    뭐라고 말해야 될지 몰라서 침을 삼키고 있을 때였다. 성주가 진지한 얼굴로 대꾸했다.

    “전혀 안 줄었거든?”

    그럼 왜, 은봉은 의아해졌다. 의문이 얼굴에 드러난 모양이었다. 녀석을 쳐다보자 성주가 여전히 진지한 얼굴로 한 마디 덧붙였다.

    “그러니까 딴 데 간다는 둥 이상한 생각하지 마라.”

    “……?!”

    그게 무슨 소리야. 그렇지만 은봉이 되묻기 전에 황성주가 테라스를 가리켰다.

    “야, 저기 손님 부르시잖아.”

    “어? 응.”

    은봉이 테라스의 손님에게 고개를 돌린 사이, 성주가 '나 잠깐 나갔다 온다' 그러고 나가버렸다.

    정말로 테라스에 앉아있던 손님들은 저기요, 하고 부르고 있는 중이었다.

    재빨리 그쪽으로 향하던 은봉의 머릿속에, 자신이 이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했던 말이 갑자기 퍼뜩 떠올랐다.

    뭐라고 했었더라. 내가 여기 있어서 폐가 되면 안 되니까, 가게 매상 떨어지면 나 바로 그만둔다고, 딴 일 찾아보겠다고-……

    “여기 물 좀 더 주세요,”

    “예,”

    반사적으로 대답하고 나서 물 주전자를 찾으러 몸을 돌리던 은봉은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확 붉어졌다.

    그걸, 신경 쓰고 있었구나.

    갑자기 가슴이 뛰었다. 백번 양보해서 직원으로라도 자신이 필요하다는 것만 같아서, 좀만 덜 양보하면 이 몇 달 간 자신이랑 있었던 게 좋았다는 것 같아서, 그래서 그렇게 신경 쓰고 있었다는 말 같아서-

    ……어떻게 하지.

    은봉은 물주전자를 집어들고 다시 테라스로 향하면서 문 쪽을 힐끔 쳐다보았다.

    성주가 나가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이 여기 있었으면 정말 어쩔 줄 몰라서 화장실에 가서 물이라도 끼얹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5월인데도 날이 확 더워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그 부끄러운 듯한 화끈함에, 은봉은 시원한 주전자 손잡이를 손으로 꽉 틀어쥐었다.

    그렇지만 그 열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은봉은 카운터에 놓여져 있었던 금복돼지 라이터를 한참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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