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월의보름을조심하라-22화 (21/34)

6.

“형님-”

원일이와 동생들이 한 아름씩 택배상자 같은 것을 짊어지고 들이닥친 것은 다음날 오후였다.

“개업 축하드립니다요-”

“형님 신장개업 축하……!”

“역시 형님께선-”

“저번에 봤을 때부터 이 가게가 마음에 들었다니깐요……!”

역시 형님이 뭐의 역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무래도 동생들이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아 박목화는 한 가지만 짚었다.

“난 월급사장이다.”

“예?! 아니 그 양반, 치사하고 쪼잔하긴-……”

원일이와 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김낙원을 욕하기 시작했다. 감히 형님을 부려먹느냐는 둥, 뭘 이렇게 커다란 가게를 차려놨냐는 둥, 이전엔 마음에 든다고 하던 가게 규모까지 욕을 하는 동생들을 옆으로 하고 목화는 묵묵히 꽃을 만졌다.

“이걸 어떻게 하는 거랬지?”

옆에서 멍청하게 넋을 빼놓고 있던 '에코'가 아, 하더니 견본으로 만들고 있던 꽃다발을 휙 돌렸다.

“이렇게 포장지를 겹쳐서요……”

두어 번 쳐다본 목화가 포장을 따라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옆에 서 있던 '에코'가 속삭이듯이 물어왔다.

“저기요, 사장님. 그러니까 저희 데려오신 분이 역시 사장님한테 가게 맡겨놓고 튄 건가요?”

“……”

박목화가 뭐라고 말해야 하나 말을 고르고 있을 때였다. 뒤에서 그 소릴 들었는지, 한창 욕을 하고 있던 원일이 툭 끼어들었다.

“바로 그거라니까! 우리 형님이 너무 성실하신 분이라 차마 거절을 못하고……”

“거절은 했었다.”

박목화는 사실을 밝혔다. 동생들이 귀를 쫑긋 세웠다.

“그렇지만 누님이 전화하셔서, 놈도 나쁜 마음은 아닌 것 같다고 하셨고.”

목화는 꽃다발을 쥐면서 약간 미간을 찌푸렸다.

이 문제는 아직도 수수께끼였다. 놈 자체는 나쁜 놈인 듯 했지만, 막상 낙원이 하는 행동은 어느 쪽인지 여전히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해도 놈이 벌여놓은 일을 수습하는 게 아주 거리껴지지 않는 걸 보면, 분명 나쁜 마음에서 벌인 짓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여하간 사택이랍시고 자기 아파트까지 팔아서 여기에 집을 마련했다는 데, 여길 차리느라 돈이 없어서 밥도 집에서 먹자는 놈한테 대고 다 네가 알아서 하라고 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나도 그런 것 같아서, 받아주기로 했다.”

'그런 것 같아서'에 비록 확신은 없었지만, 목화는 그렇게 말을 마쳤다.

그러나 다음 순간 터져나온 동생들의 비명은 그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지쟈스……!”

“형님, 목화 형님께서……!”

“진짜 받아주실 줄이야,”

“으아아-, 하필이면 경찰 양반을……!”

“으아, 그 면상에 대고 그 소릴 해야 하다니-”

아니 뭘?

어리둥절해진 목화가 꽃다발을 내려놓고 동생들을 돌아보았을 때였다.

자기들끼리 무어라 이야기를 나누던 동생들이 한숨을 쉬더니, 어두운 얼굴이 된 원일이 대표처럼 나와 그의 손을 꼭 붙잡았다.

“형님, ……형님이 받아주신 거니까 저흰 한 마디도 안 하렵니다.”

경찰이 만든 가게에서 월급사장을 한다고 저 난리를 쳤나 싶어 목화는 피식 웃고 말았다.

“알았다.”

거기에 '형님이 웃으셨다!' '목화 형님이 정말로……!' '으아 그 양반 더럽게 복 받았네……!'하는 외마디 비명 같은 소리들이 동생들 사이에서 터져나왔다. 그리고 원일이 더더욱 어두운 얼굴이 되어, 뭔가 말하고 싶은 얼굴로 그 커다란 덩치를 비비비 꼬다가 결국 한숨을 커다랗게 내쉬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하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문득 귀에 들려왔다. 그리고 원일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뭔가 마음을 단단히 먹은 듯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알겠습니다, 형님.”

동생들이 우어어, 하면서도 결국 무어라 토를 달지는 않았다.

그래, 녀석들은 현역들이니 경찰이 차린 가게에 드나들기가 불편하기도 할 것이다. 목화는 그렇게 동생들의 비명소리와 소란을 이해했다.

모두 네 것이라고 했던가.

김낙원의 어이없었던 말이 떠올랐지만, 목화의 마음속에서는 거기까지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놈이 미주알고주알 떠드는 법이야 어찌되었건, 이건 놈이 차린 가게였고 자신은 월급사장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새로운 직장과 함께 바뀐 것 한 가지가 생각났다. 동생들이 반드시 알아둬야 하는 부분이었다.

“이사한다.”

그가 말하자 동생들이 신나서 물어왔다.

“이사하신다고요? 어디로요?”

“부르기만 하십쇼, 형님!”

“서울입니까? 언제까지 다 옮겨드릴까요?!”

힘쓸 일이 생겼다고 하니 신나서 떠든다. 방금 전까지 경찰이 차린 가게의 월급사장이 되었다고 그토록 비명을 지르던 건 모두 잊은 듯 했다. 거기에 대고 더한 이야기를 한다는 게 어쩐지 조금 미안한 듯도 했지만, 목화는 내친 김에 말을 마쳤다.

“저 위다.”

목화가 가리키자, 이, 삼, 사, 오의 눈이 한 번에 언덕 위로 쏠렸다가 커다래졌다.

“우와, 저기요?!”

“진짜 가깝네요, 형님……!”

“무지 좋네요-!”

'에코'조차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위를 쳐다보았다가 좋아했다. '사장님 편하시겠네요.'하는 말에 목화가 '음'하는 소릴 냈다.

그 와중에 허연 얼굴이 되어, 목졸리는 듯한 소리를 낸 건 원일이였다.

“형님, 설마…… 그 양반 이사 왔다는……”

원일이는 아는구나.

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택으로 제공해준다고 하길래, 알겠다고 했다.”

“……!”

일, 이, 삼, 사, 오의 모든 눈과 입이 커다랗게 열렸다가, 껌벅거렸다. 도저히 거기까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는 얼굴들이었다.

다음 순간에는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 비명 같은 소리들이 터져나왔다. 간간히 '그 악덕공장주 새끼가 마수를', 이라든가 '이 가게는 거미줄이었던 거야……!' 같은 말들이 들리는 것 같았지만 대부분은 괴성 같은 소리들이었다. 원일이는 헤에, 하고 입만 벌리고 있었다.

“……”

그 정도로 놀랄 일인가. 박목화는 동생들의 과격한 반응에 오히려 더 놀랐다.

같이 사는 게 처음도 아니었다.

작년 겨울이었던가. 놈이 다쳤을 땐 자신의 반지하방에서 돌봐주었더랬다. 위험했기 때문에 같이 있었던 거긴 했지만 놈이 그렇게 최악의 동거상대만은 아니었다.

좀 시끄럽고, 애 같고, 제멋대로고, 심지어 반찬투정도 하긴 했지만 감방동료보다는 나았다. 끊임없이 떠들어대도 밉지만은 않았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시끄러운 게 조용한 것보다는 나았다.

놈과 있으면서 그는 의외로 그 점을 깨달았었다. 귀를 기울이면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만 들리던 차가운 방에 사람의 온기와 소음을 불어넣은 건 김낙원이었다.

다 나았으니까 가라고, 뭉그적대던 녀석을 내쫓고 나서 어쩐지 귀가 허전한 듯한 마음에 놈이 놓고 간 TV를 켜놓고 잔 적도 있었다. 남들은 이럴 때 여자를 사는 모양이라고, 따뜻해진 방바닥에 누워 그런 생각을 하다 잠들었던 기억이 난다……

곧 귀는 정적에 도로 익숙해졌지만, 그때의 생경했던 기분은 아직도 생생했다. 돈이 돌 때까지 같이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한 건, 어쩌면 그때의 기분 탓인지도 모른다.

이번엔 자기가 밥을 한다고 했으니 대부분의 분란은 초기에 해결된 셈이었다. 게다가 월급사장을 시키면서 사택을 제공한다는 건 그렇게 나쁜 조건은 아니지 않나, 목화는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놈에게 익숙해진 탓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렇게 옆에서 난리를 치면서 불러오는 혼란을 무시하는 것도 쉽지 않지 않나. 목화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피식 웃고 말았다. 그리고 역시 마수나 거미줄은 좀 심하다 싶어 동생들에게 입단속을 시키려고 했을 때였다.

동생들을 돌아보자 원일이를 비롯한 모든 동생들의 입은 이미 다물어져 있었다. 어쩐 일인지 조용해진 원일이, 조금 뒤에 심각하고 진지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갖고 온 건 개업선물이니까 잘 쓰시구요, 형님.”

그 목소리는 사뭇 비장했다. 무슨 선물이길래 그렇게 심각한가 싶어 쳐다보자 동생은 망설이는 눈치더니 진지하게 덧붙였다.

“전 말입니다, 형님만 잘 지내시면 다 좋습니다.”

그러자 동생들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러시면 되는 겁니다!”

“으으, 형님만 잘 챙겨준다면……!”

“형님만 좋으시면,”

“예, 맞습니다……!”

어쩐지 처절하게까지 들리는 그 외침들에, 목화는 어리둥절했지만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나쁘진 않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오히려 동생들은 더 당황하는 것 같았다.

경찰이, 그 중에서도 특히 의중을 알 수 없는 김낙원이 나름 착하게 굴고 있다는 걸 납득하지 못하는 것이리라. 목화 역시 그 부분은 스스로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그저 그렇다고 밖에는, 말할 수가 없었다.

스스로도 잘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을 동생들에게 말로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가 그렇게 밖에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사이, 동생들은 고개를 힘주어 끄덕이면서 어떻게든 스스로에게 세뇌를 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형님이 선택하신 거니까.'하고 몇 번 중얼거린 녀석들이 또 오겠다면서 물러나갔다.

“이사는 꼭 도와드릴 테니까, 부르셔야 합니다!”

“짐이 많지 않은데……”

목화가 배웅하면서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동생들은 물러나지 않았다.

“아닙니다! 꼭 봐야만 합니다!”

경찰양반이 충심껏 형님을 모시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게 그 주장의 요지였다.

관계만 놓고 보면 자신이 고용인인데. 목화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더 이상은 입 밖으로 어떤 말도 내보내지 않았다.

“잘 가라.”

목화는 결국 알았다고 하고 동생들을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안녕히 가세요-!”

동생들을 보내는 직원들의 인사는 우렁찼다.

다 나간 뒤에 직원들이 그의 옆으로 우르르 모여들었다. 테라스에 있는 손님 두 분 외에는 카페가 텅 비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긴 했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일하는 중에 이렇게 오다니 신기한 일이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목화가 쳐다보자 직원들도 뭔가 묻고 싶어 하는 듯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결국 물어본 건 '에코'였다.

“친동생 분들이신가요?”

“그래.”

핏줄이 통하지는 않지만 그것보다 더한 것이 통한다. 망설임 없는 박목화의 대답에 '에코'를 비롯한 직원들이 미묘하게 부럽다는 얼굴로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시구나……”

짧게 깎은 스포츠머리에 덩치를 보고 위화감을 느껴서 물어본 게 아닌가, 생각했던 박목화는 이 카페의 동생들이 뭘 생각하는지 알 수가 없어 침묵을 지켰다.

'형제분들이 다 같이 운동 하셨나보다.' 한 명이 중얼거리자 다들 그런가보다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착각이었지만 그래도 무서워하진 않아서 다행이라고, 목화는 생각했다.

“일하자.”

목화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다들 정신을 차렸는지 '예!'하고 흩어져갔다.

제자리로 돌아오던 에코가 커다란 상자들을 보고 어, 하고 멈칫했다. 목화는 동생들이 놓고 갔던 것을 떠올렸다.

“개업선물이라던데.”

에코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손님들 드리죠.”

그래, 하고 목화는 곧 동생들의 소동은 잊은 채 묵묵히 일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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